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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찬란하길- 8장. 좋은 남자

2024.05.11. 오전 8:00

원장님의 사촌 동생은 참 좋은 남자 같았어. 항상 내가 먼저라고 해줬지.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 이야기하라고 하고.

어느 날은 백화점에 날 데려가더니,

“정숙씨는 이렇게 화려하게 생겼는데 옷이 너무 수수해요.

맘에 드는 것 골라봐요.”

어안이 벙벙했지만, 그 사람의 친절한 손에 이끌려 쇼핑을 해봤어. 내가 고르는 것에 머뭇거리자 괜찮다면서 이 날은 나를 위한 날이라고 마음껏 고르라고 격려해주더라.

옷을 다 사고 나서는 식품관으로 내려가 울 엄마 드리라고 영양제를 잔뜩 사주었어.

“정숙씨. 어머니 이야기는 다 들었어요. 그동안 많이 힘들었죠? 이제 내가 있으니까 내게 기대요.

갑자기 나타난 이 사람은 내게 왜 이러는 걸까? 내 어디가 좋다는 건지. 내 어깨 위를 짓누르는 모든 불행을 이 사람이라면 다 해결해 줄 것 같았어.

집으로 돌아와서 엄마에게 쇼핑백 꾸러미를 풀면서,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했어.

“엄마. 나 말이야. 지금 만나는 사람이 백마 탄 왕자님이야.”

그런데 엄마가 고개를 가로 저었지.

“정숙아. 네가 이쁘고 착하고. 정말 내 딸이지만 자랑스러워. 하지만 우리 집안이 내 세울 거라곤 하나 없는데. 그 사람처럼 번듯한 사람이 이렇게 다가오는 거 이상하다.”

“아니, 엄마. 나를 사랑하면 그럴 수도 있잖아. 엄마는 내 행복이 싫은 거야? 그 사람이 엄마 아픈 것도 다 이해해준다고 했는데 뭐가 문제야?”

엄마의 이야기가 너무 듣기 싫었어. 다 잘 되고 있는데 뭐가 이상하다고 하는지. 방으로 들어갔더니, K가 보낸 편지가 놓여있더라. 하지만 봉투 겉면을 뒤집어서 놓았어. K의 이름이 보이지 않도록.

침대 위에 누워서 생각해보니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았어. 내일이 기대되는 밤 이라니. 밤마다 불행이 이불처럼 내 몸을 감싸서 불면에 시달렸는데.

‘오늘은 기분이 좋아. 아주 좋아.’

다음 날 출근했는데 원장님이 부르시더니

“정숙씨 울 사촌 동생이랑 요즘 데이트 한다면서? 어때? 착하지 않아? 아주 젠틀하고 법 없이도 살 애야.”

“네 좋은 분 같았어요. 같이 있으면 편하고.”

“그렇지? 걔가 집에서도 얼마나 사랑받고 컸는지. 외동아들인데다 인물도 좋지, 능력도 좋지. 정숙씨 애랑 잘해봐. 내가 그쪽 집에다가 정숙씨 자랑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 참한 아가씨라고.”

“감사합니다. 원장님. 진심 이에요”

“또 언제 둘이 만나?”

“오늘 퇴근하고 식사 같이 하기로 했어요.”

“어머 자주 만나네. 이러다 결혼 하는 거 아니야? 호호. 잘되면 나 옷 한 벌 해주는 거 잊지마.”

퇴근하고 유치원 정문을 나서니 근사하게 정장을 입은 그 사람이 서 있었어. 기다리고 있었나 봐. 내 얼굴을 보더니 환하게 웃어주는데 나도 모르게 ‘멋있다.’ 라고 말했던 것 같아.

“오늘 조금 늦었네요? 잠시인데 보고 싶어서 혼났네요.

순간 내 얼굴이 조금 붉어졌던 것 같아.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이야기 해주는 사람은 처음 이었거든.

“하하하. 부끄러운 거에요? 저 정숙씨 이렇게 순수해서 좋아요. 허락하심 제가 한번 안아줘도 될까요? 사랑스러워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 남자는 커다란 팔로 나를 감싸 안아주었어. 듬직한 그 사람의 품에 폭 하고 안기자 머스크 향이 나더라. 우리 아빠도 예전에 이런 향의 스킨을 쓰셨던 것 같은데. 성인 남자에게서는 이런 향이 나는 걸까.

심장이 콩닥이는 첫 포옹 후 이 남자의 차를 타고 호텔 레스토랑으로 갔어. 보기만 해도 비싸 보이는 곳이었는데, 이런 분위기의 식당은 처음 와 봤어. 왠지 내가 촌스러워 보이면 어쩌나 걱정이 되더라. 게다가 여기는 포크랑 스푼이 왜 이렇게 많은 거지? 뭘 사용해야 할지 모르겠어.

이 배려심 돋는 남자는 이미 이런 내 마음을 눈치챘었나 봐. 음식이 나올 때 마다 그릇 위로 사용할 식기를 올려 줬어.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의 이런 행동들이 나는 좋더라.

“식사는 괜찮아요? 여기 여자분들이 좋아하는 곳이라고 선배들이 추천해주더라구요.”

“네. 다 맛있어요. 분위기도 좋구요.”

“정숙씨 마음에 들면 저도 기뻐요. 그리고 이 상자 한 번 열어 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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