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지만 엉길 수 있을까 [김소민의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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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5.09. 오후 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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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언스플래쉬 제공


김소민 | 자유기고가

도시에서 평생 산 나한텐 초록색인 건 다 그냥 풀이다. 수도권에선 햇살을 누리는 데도 돈이 든다. 채광 좋은 집을 가지려면 그만큼 축복받은 통장이 필요하다. (핑계일까?) 풀이 살기 힘든 집에선 사람도 살기 퍽퍽하다. 경남 남해로 난데없이 이사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7일 나는 난생처음 낫을 들고 풀을 벴다. 여기가 어딘지, 나는 누군지 모르겠다. 봄볕 아래 노동에 생각은 모조리 증발했다.

남해상주동고동락협동조합이 벌이는 남해퍼머컬처학교 수업 중이었다. 퍼머컬처는 ‘영구적’이란 낱말(permanent)과 문화(culture) 또는 농업(agriculture)의 합성어다. 생태 원칙에 뿌리를 둔 지속가능한 농법이다. 친환경적으로 살아보겠다는 굳건한 의지를 갖고 이 수업에 참여한 건 아니다. 동네 골목길 돌아다니다 얼떨결에 들었다. 이 동네에선 오다가다 아는 사람을 만나고 수시로 예상치 못한 걸 배우게 된다.

이날 배운 퍼머컬처 원칙의 핵심은 여하튼 ‘다양성을 높여라’이다. 이날 강사인 임경수 박사(협동조합이장 센터장)는 이렇게 말했다. “생태계는 다양하면 안정해요. 다양해지면 지나치지 않아요.” 이질적인 것들이 만나는 가장자리는 다양성의 보고다. 가장자리가 길수록 좋다. 자연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구불구불 강의 곡선은 오만 생태를 품는다. 다양성이 확보되면 토양 안 미생물이 알아서 균형을 맞춘다. 유기물은 토양의 구조를 성기지만, 엉기게 만든다. 숨은 쉬되 쓸려가 버리지 않도록 말이다. 1㎝ 깊이를 만드는 데 200년이 걸린다는 흙은 건강한 공동체의 비법을 태고부터 알려줬다. 앉아서 수업을 듣던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땅의 섭리에 감동했다. 내가 직접 파야 하기 전까지 말이다.

퍼머컬처에서 “잡초란 없다.” 최고의 퇴비 재료란다. 풀, 분뇨, 신문지를 무지개떡 쌓듯 올리고 수분을 주면 산소가 알아서 퇴비를 만든다. 다 익은 퇴비에선 달콤한 향이 난다는데 퇴비용 풀 베는 나는 코에서 단내가 났다. 이놈의 풀.

이제 퍼머컬처식 열쇠고리 모양 두둑을 만들 차례다. 단위 면적당 작물의 양을 늘리고 노동을 줄이려고 이랑을 둥글게 만든다. 중심을 잡고 동심원을 그려나가야 하는데 벌써 허둥지둥이다. 게다가 여러 작물의 특성을 파악해 오밀조밀 심어야 한다. 당귀는 퍼지면서 자란다. 작물 사이 심으면 허브 역할로 병충해를 줄여준다. 파도 빽빽이 심으면 다른 작물의 병충해를 막는다. 가지와 고추는 60㎝ 이상 자라 그늘을 드리운다. 고추와 고추 사이는 60㎝를 띄운다. 그보다 키가 작고 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작물을 그 사이 심는다. 애호박은 두둑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지한다. 상추는 직사광선에 녹는다. 여름 해는 서쪽이 길다. 그러면 상추는 어디에 심어야 할까? 땅 파서 뇌를 묻었을까? 아무 생각 없는 나는 상추 모종을 들고 배회했다.

땅의 유기성을 끌어올리는 데 노동이 필요하다. 비닐로 덮어 잡초를 막는 멀칭 대신 뿌리덮개를 한다. 벤 풀 위에 분뇨를 뿌리고 그 위에 젖은 신문지를 덮고 짚을 얹었다. 신문지는 비닐 대신 잡초가 자라는 걸 막는다. 그 말은 짚더미를 지나 신문지 구멍을 뚫고 풀을 파내야 닿는 땅에 모종을 심어야 한다는 거다. 구멍 뚫다 지쳐버렸다. 나는 몇몇 모종은 ‘팔자대로 살라’는 맘으로 대충 걸쳐뒀다. 같이 수업을 듣는 어른 6명을 따라온 다섯살 아이 둘은 흙탕물 웅덩이 하나로 환희 상태에 빠져 있고, 나를 따라온 반려견 몽덕이는 풀 속을 뛰어다니다 흙강아지가 됐다. 이제 넓고 촘촘하게 펼쳐진 미생물들의 네트워크가 일할 차례다. 임경수 박사는 “기후 위기는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다”며 “자연의 과정에 의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린 상추들은 살아남았을까? 비가 내렸다. 단톡방에 뜬 사진 속 애호박 잎사귀에 힘이 실렸다. 상추와 파도 기어이 올라왔다. 이 열쇠고리 모양 작은 이랑에서 작물은 미생물에, 고추는 상추에, 상추는 당귀에 기대 자란다. 나는 왜 이곳에 왔을까? 그 이유가 있었던 거 같은데 경부고속도로 어디쯤에서 떨구었는지 낯선 밤엔 헷갈린다. 그러다 애호박, 당귀, 고추 사진을 보는 날엔 내가 이런 기대 때문에 이곳에 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온갖 미생물과 작물 같은 사람들에 엮여 나와 반려견 몽덕이도 자랄지 모른다는 기대 말이다.

※그동안 ‘김소민의 그.래.도’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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