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중구청 핑퐁게임하는 그곳, 리모델링 대장주 ‘남산타운’ 무산 위기 [감평사의 부동산 현장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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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현장진단]


서울 중구 신당동에서 서울시 시범사업으로 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남산타운’ 단지. (윤관식 기자)
서울 지하철 3호선과 6호선 환승역인 약수역 5번 출구로 나와 골목 안쪽으로 조금만 걸으면 멀리서 봐도 한눈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언덕 자락에 위치한 이 아파트는 2002년 준공한 남산타운이다. 북쪽으로 약수역부터 시작해 남서쪽에는 6호선 버티고개역까지 넓게 펼쳐진 단지다. 단지 남쪽에는 매봉산공원이 위치했으며 오른쪽에는 옥수동이 자리하고, 왼쪽은 장충동으로 이어진다. 인근에 위치한 약수하이츠와 함께 서울 내 대표적인 리모델링 추진 단지로 꼽힌다.

남산타운의 가장 큰 장점은 ‘도심 속 숲세권’이라는 점이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위치했지만 단지 주변에는 남산·매봉산·쌈지공원 등이 있어서 주거 환경이 쾌적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남이나 종로, 용산 등 주요 업무지구와 20~30분 내 이동 가능하다는 입지적 장점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강북에서 보기 힘든 대단지라는 점도 매력적인 요소다. 총 42개동, 5152가구 대단지로 강북에서 가장 유명한 단지 중 하나인 마포래미안푸르지오(3885가구)보다 규모가 크다.

입지와 규모, 숲세권 등 여러 장점으로 인해 남산타운은 비교적 구축이지만 여러 매력을 인정받았다. 2018년 ‘서울형 리모델링’ 첫 시범 단지로 선정된 배경이다.

이후 리모델링 사업 주체가 서울형추진위원회와 주민주도준비위원회로 양분됐지만 2022년 7월부터 통합 작업에 착수해 지난해 1월 설립통합추진위원회를 발족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조합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조합설립인가를 신청하는 등 리모델링 사업에 속도가 붙는 듯했다. 임대주택을 제외한 공동주택 3116가구를 향후 467가구 증축한 3583가구로 탈바꿈한다는 구체적인 청사진도 마련됐다.

가격은 안정세다. 지난해 12월 전용 84㎡가 13억2000만원에 거래됐지만 이후 조금씩 조정기를 거치고 있다. 올해 1월 16층 매물이 11억7000만원, 2월에는 10억~12억원에 거래됐다. 단지가 커 동호수별 편차가 심하기는 하지만 대체로 전용 84㎡ 기준으로 12억원 전후에 거래가 이어지는 모습이다. 현재 나온 매물 역시 12억~13억원 수준에 호가가 형성됐다. 리모델링 이야기가 구체화되면서 지난해 거래량은 전년 대비 무려 5배 이상 증가했다.

아파트 리모델링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남산타운 리모델링 사업이 최근 행정적인 측면에서 암초를 만나 사업이 중단될 위기에 처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조합설립 반려된 남산타운…왜?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데…

서울 중구(구청장 김길성)는 남산타운 아파트 리모델링 사업에 대한 주택조합설립인가 신청을 반려 처리했다고 밝혔다. 남산타운 리모델링조합추진위원회 측이 지난해 11월 조합설립인가 신청을 접수한 지 6개월 만이다.

중구청은 남산타운이 조합설립을 위한 법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조합설립을 승인하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설립인가 신청 당시 주택법 제11조 제3항 제1호로 규정된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해당 조문에는 “주택단지 전체를 리모델링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주택단지 전체의 구분소유자와 의결권의 각 3분의 2 이상의 결의와 각 동의 구분소유자와 의결권의 각 과반수의 결의”가 있어야 주택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고 규정됐다.

리모델링 조합설립인가 요건을 충족하려면 ‘같은 필지’를 공유하는 주택단지 내 분양주택과 임대주택, 부대, 복리시설 구분소유자 전체 중 3분의 2 이상 동의를 얻어야 한다.

문제는 남산타운의 경우 임대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은데 처음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할 때부터 임대주택을 제외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5000가구 넘는 남산타운 내에서 임대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40%에 달한다.

임대주택 7개동과 나머지 민간주택은 모두 ‘신당동 844번지’ 한 필지로 묶여 있다. 주택법을 적용하면 같은 필지에 해당하는 임대주택 소유자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중구 측 입장이다.

반면 서울시는 남산타운을 리모델링 시범 사업 단지로 선정한 후 지금까지 항상 임대주택을 리모델링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서울시가 지원하고 중구청이 주관한 2019년 주민설명회에서도 임대주택은 그대로 두는 것으로 결정됐다.

당시 서울시는 남산타운 리모델링 사업에 대해 “임대주택 거주자의 거주권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며 임대주택은 리모델링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다만 서울시 측은 조합설립인가에 대해서는 “인허가권을 가진 중구청이 결정해야 할 사항”이라며 공을 넘겼다.

중구청 관계자는 “시범단지 선정은 공동주택 리모델링 활성화를 위한 정책 수단으로 리모델링의 기본구상 작성과 타당성 분석을 위한 하나의 절차일 뿐이며 시범단지로 선정됐다는 사실이 조합설립인가 근거가 될 수는 없다”며 “조합설립인가는 주택법상 법적 요건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임대주택이 동일 필지에 묶여 있는 한, 임대주택 소유자 동의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중구청 관계자는 “남산타운처럼 임대주택이 포함된 혼합단지에 대한 리모델링 요건은 어디에도 없다”며 “이런 법적 공백은 지자체와 주민 간 불필요한 갈등과 불편만 가져올 뿐이며 국토교통부 등 상위 기관에 혼합단지 리모델링 요건 보완 등 제도 개선을 적극적으로 건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3000가구 남산타운 주민들만 분통

남산타운 리모델링 조합설립을 위한 핵심 쟁점은 바로 리모델링 동의 대상이 어디까지인지다.

중구 측은 조합설립인가 신청 당시 즉시 반려할 사안이었지만 지난 5년간 들인 주민 노력과 행정에 대한 주민 신뢰가 중요한 만큼, 인가 신청을 위해 6개월 동안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상위 기관 질의·법률 자문, 서울시 사전 컨설팅 등 여러 경로로 검토를 진행했지만 뚜렷한 해답을 얻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반려 처리를 했다는 입장이다. 임대주택 소유자인 서울시로부터 조합설립 동의를 얻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서울시에 두 차례 의견을 조회했으나 동의 여부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을 얻지 못했다고 했다.

올해 역시 중구 측은 서울시에 남산타운 리모델링 조합설립 동의를 문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시 측은 기존 계획대로 임대를 유지하며 리모델링 시 임대주택 입주민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달라는 의견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분양단지 리모델링 추진 여부에 대한 직접적인 서울시 동의는 없었다는 얘기다.

결국 중구 측은 “임대주택 소유자인 서울시 동의가 있어야 리모델링 조합설립을 인가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반복하는 반면, 서울시 측은 “남산타운 내 임대주택은 리모델링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서울시와 중구의 공방 속에 애꿎은 남산타운 조합원만 피해를 입고 있다는 분석이다. 조합 측은 과거 중구청이 자체 법률 자문이나 내부감사 의견을 통해 조합설립인가를 내주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음에도 이번에 굳이 태도를 바꾼 것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필지를 분할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충분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남산타운 내 임대가구 7개동(34~40동)과 일반가구(1~31·41·42동)를 다른 필지로 분할하면 주택법 제11조 제3항 제1호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현재 남산타운 7개 임대동은 모두 단지 북동 쪽에 위치했다. 관리비 납부 등 단지 운영이 이미 별개로 이뤄지고 있다. 이후 법적 요건이나 행정적 절차, 개발행위 관련 인허가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면밀하게 살펴봐야겠지만 충분히 검토해볼 만한 부분이다.

서울시와 중구 간 책임 회피로 리모델링 대장주로 평가받았던 남산타운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처음부터 시범단지를 선정할 때 서울시와 중구가 임대단지와 관련된 충분한 법적 검토 없이 사업을 추진한 꼴”이라며 “정부 제안으로 몇 년 동안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했는데 이제 와서 시 동의가 필요하다는 중구 측 입장은 조합 입장에서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8호 (2024.05.08~2024.05.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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