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한복판서 잔혹살인…"길거리가 무섭다"는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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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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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신용품이라도 들고 다녀야 하나"…불안감 호소
'강남역 살인사건' 현장 인근서 또다시 살인 발생
'눈 마주쳤다'는 이유로 공원서 여대생 구타하기도


2016년 5월20일 강남역 10번 출구에 만들어진 ‘강남 묻지마 살인’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장소에 시민들이 애도의 뜻을 표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서울 한복판에서 여성을 상대로 한 잔혹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 강남구에서 40대 남성이 일면식 없던 여성을 인질로 붙잡고 흉기 난동을 부린지 이틀 만에, 비슷한 장소에서 20대 대학생이 여자친구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묻지마 흉기 난동'에 이어 도심에서 연달아 벌어진 극악무도한 범죄로 인해 여성들의 불안감은 고조되고 있다.

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소재 의대 재학생인 A(25)씨는 5월6일 오후 4시께 서울 서초구 강남역사거리 인근 15층 건물 옥상에서 동갑내기 여자친구 B씨에게 수차례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강남역 9번 출구에서 50m밖에 떨어지지 않은 건물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건물은 일하는 직원을 포함해 외부인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장소는 2016년 5월17일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 현장에서 불과 500m 떨어진 곳이기도 하다.

유동 인구가 많고 사방이 CCTV로 뒤덮인 서울 한복판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A씨가 범행을 저지르기 이틀 전인 5월4일, 강남역 인근 생활용품매장에서 40대 남성은 모르는 여성을 붙잡아 흉기로 위협하며 '인질극'을 벌였다. 5월1일엔 서울 서대문구청에서 공무직으로 일하는 40대 남성이 공원에서 축구를 하던 여대생의 뺨을 때리고 구타했다.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였다. 4월25일에는 20대 남성이 강남의 한 호텔 객실에서 지인인 20대 여성을 폭행, 사망케했다.

공원 등 공공장소에서까지 강력범죄가 벌어지면서 여성들은 범죄로부터 안전한 장소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 양천구에 사는 직장인 김아무개(25)씨는 "언제 어디서 범죄 피해자가 될지 몰라 이젠 길거리도 무섭다"며 "뉴스를 보고 가족이 호신용품이라도 소지하고 다녀야 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다"고 말했다.

직장인 박아무개(25)씨는 지난해 유행처럼 번진 '묻지마 흉기난동'의 악몽이 떠오른다고 했다. 박씨는 "경기 성남시 서현역에서 흉기난동 사건이 벌어진 뒤로부터 지하철역을 다니는 것조차 무서웠다"며 "지하철이나 공원도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직장인 김아무개(27)씨도 "여성이 폭행, 살해당한다는 기사를 일주일에 5~6번은 보는 것 같다"며 "주변 여성들이 남자친구와 헤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꼭 '안전이별(자신의 안위를 보전하면서 이별하는 것)'을 하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대검찰청 자료를 기반으로 작성한 2023년 3분기 ‘분기별 범죄동향리포트’ ⓒ대검찰청 홈페이지 캡쳐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대검찰청 자료를 기반으로 작성한 '분기별 범죄동향리포트'에 따르면, 여성 피해자 비율이 가장 높은 범죄유형은 강력범죄다. 2021년부터 2023년 3분기까지 강력범죄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74%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다. 강력범죄 피해자 10명 중 7명이 여성이라는 점이다. 2023년 3분기에는 강력범죄 피해자 82.5%가 여성이었다.

전문가들은 서울 도심에서 범행을 저지르는 것이 일종의 '표현형 범죄'라고 분석했다. 금전 갈취 등의 목적을 갖고 살해한 것이 아니라, 분노 등을 표출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이다. 이를 대중에게 과시할 수 있는 범행 장소로 강남역 등을 고르는 셈이다.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시골 등 한적한 곳에서 범행을 저지르면 눈에 띄지 않으니, '강남역 사건' 등 특정한 범죄를 떠올릴 수 있는 공간에서 살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강남 등 젊은 층이 많고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에 예방 순찰을 강화하거나 CCTV를 확대 설치하면, 범죄 억제 효과가 나타나 범죄율 감소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반면 배 프로파일러는 "서울 한복판을 범행 장소로 택했다는 것 자체가 경찰에게 잡히는 건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라면서 "범죄 취약 지역에 경찰을 전부 배치할 수도 없고, 한다고 해도 막을 수 있는 범죄는 극히 일부"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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