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이동권’ 노동자와 시민도 연루돼있다

입력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2.18 대구지하철참사 21주기 토론회…‘안전’을 화두로 열려
2024년 2월 6일 진행된 “제58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현장 모습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인 이동권 보장과 해고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최중증장애인 노동자 400명의 복직 등을 요구하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와 시민단체들이 진행 중인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이 530일을 넘겼다. 왜 이들은 여전히 지하철에서 이동권 보장을 외치고 있을까?
 
서울시의 저상버스 도입률(2023년 기준)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65.5%라고 하고, 서울지하철 역사 내 엘리베이터 설치율(2023년 기준)도 95%라고 하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테다. 문제는 그 숫자가 전부가 아니라는 거다.

2.18 대구지하철화재참사 21주기를 맞이해 8개 단체(공공교통네트워크, 공권력감시대응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원회, 생명안전 시민넷, 전국 철도.지하철노동조합협의회, 전장연, 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녹색정의당 심상정, 배진교, 양경규 국회의원실이 함께 토론회를 열었다.
 
2월 15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인 이동권과 노동자 시민의 안전〉을 주제로 진행된 토론회에선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 외침이 비장애인 시민들, 노동자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그리고 이동권이 안전한 사회 만들기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짚었다. 즉, 장애인 이동권이 왜 모두와 연결되는 문제인지 드러낸 자리였다.
 
저상버스 도입률, 엘리베이터 설치율…숫자에 빠져있는 것
 
2001년 오이도역에서 장애인 노부부가 리프트에서 추락해 한 명이 사망, 한 명은 중상을 입은 참사를 계기로 불붙은 장애인의 이동권 투쟁은 23년째 이어져오고 있다.
 
박경석 전장연 공동대표는 “(오이도 참사 이후) ‘장애인 이동권 쟁취를 위한 연대회의’(이하 이동권연대)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이동권연대는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막아 세웠다. 시민들과 정부에게 장애인 역시 언제나, 어디서나, 어디로든, 누구든지 이동할 권리가 있음을 선전하고, 시혜와 동정의 서비스가 아니라 장애인 역시 헌법이 보장한 국민이기에 국가가 이에 대해 책임질 것을 사회에 외치기 시작했다.”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총 41차례의 버스타기 투쟁, 3번의 선로점거(서울역, 광화문역, 시청역), 무기한 서울시청 천막농성, 39일간 국가인권위원회 앞 단식농성”을 했다. 그 결과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이 마련됐다. 이 법은 “장애인 등 교통약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장애인 등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 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말한다. 또한 이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책무 또한 함께 기재되어있다. 하지만 현실은 법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박경석 공동대표는 “2023년도 저상버스 도입률은 전국 평균 32.8% 그 중 서울은 65%라고 하지만, 사실 서울시 제출 자료에는 마을버스가 제외되어 있다”고 꼬집었다. “타 지자체와 마찬가지로 마을버스까지 추가한다면, 서울시 저상버스 도입률은 39%까지 감소하게 된다”는 것.
 
또한 저상버스 도입률이 높아지는 것만으로 이동권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전국 각지엔 ‘저상버스 예외노선’이 있다. “이는 전국 평균 12.5%나 되며, 특히 충청북도의 경우 전체 노선의 41.5%가 예외노선, 전라남도도 34.6%가 예외노선이다. 광역시인 부산도 29.7%, 인천도 24.8%나 된다.”

2021년 5월 서울 혜화 마로니에 공원에서 진행된 “장애인 이동권 투쟁 20주년 사진전” 중 ©일다    


 
김훈배 공공네트워크 정책위원은 지하철의 경우, “서울지하철 역사 전체 337개 역사 중 320개 역사에 1역사 1동선 엘리베이터 작업이 완료”되었지만, 이 또한 이동권을 보장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엘리베이터 전면에 휠체어 사용자의 승강을 위해 1.5m*1.5m 이상의 유효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지만, 이는 2008년부터 적용되어 그 규칙과 상관없이 설계된 엘리베이터엔 들어갈 수 없는 휠체어도 있기 때문”이다.

“승강장의 높은 단차와 넓은 연단(틈새)도 문제”다. 이 또한 현재는 “단차는 1.5cm, 연단은 10cm 이내로 규정하고 있지만, 오래 전에 설계된 곳은 해당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존재한다. 안전발판 마련, 단차개선 등을 시설개선을 하면 되지만,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심지어 “실제 2019년 4월 2호선 신촌역에서 휠체어 바퀴가 빠지는 사고를 계기로 서울교통공사에 소송을 제기했으나 1, 2심 모두 패소한 사례”가 있다. “현재의 법 개정 시행 전에 만들어졌기에 교통공사의 법적 책임이 없다는 이유”였다. 지금도 이런 공간은 “법의 사각지대”로 자리하고 있다.
 
대구지하철참사, 기관사가 한 명만 더 있었더라면…
 
이런 문제를 상세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장애인의 이동권만 보장받지 못하는 게 아니라 누구에게나 위험한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데, 실상이 그렇다.
 
김훈배 공공네트워크 정책위원은 늘어나고 있는 무인지하철 및 경전철 안전 문제를 짚었다. “안전을 대비해 기관사가 배치되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자동 운행이 되기 때문에 출입문이 열리고 닫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 휠체어를 이용하거나 이동에 지원이 필요한 경우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는 거다.
 
김 정책위원은 “도움을 받기 위해 기관사나 지원을 요청했을 때, 역사에 인력이 없기 때문에 대응에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만약 요청 사항이 비상 상황이라면 또 다른 사고을 야기할 위험도 있다”고 설명했다.
 
안전한 지하철을 만들기 위해 20년 넘게 활동해오고 있는 황순오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원회 전 사무국장도 “(참사 당시) 기관사가 단 한 명뿐이었던 점이 늘 마음에 걸렸다. ‘한 명만 더 있었어도…’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이야기했다. 그 생각은 유가족들의 활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참사 유가족들의 주요 과제는 원인규명, 책임자 처벌, 추모사업 그리고 안전한 지하철 만들기”였다.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이런 사고 나면 유가족은 보상금 받고, 지자체 등에서 만들어주는 위령탑 같은 걸로 마무리가 되는 거 아니냐, 왜 당신들은 ‘안전한 지하철을 만들어야 한다’는 공적 담론을 꺼내느냐, 혹시 보상금이나 배상금 더 받으려고 그려느냐고요.”
 
황순오 전 사무국장은 “사고 이후 현장에서 (사고로) 돌아가신 어머니가 타고 있던, 불 탄 전동차의 모습과 냄새, 그 때 느꼈던 기분까지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한다”며 “커다란 쇳덩이인 줄 알았던 지하철이 어떻게 이렇게 탈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이후 유가족들은 “지하철 안 내장재가 엉망”이었으며, 약 1년 후 홍콩에서의 지하철 화재 사고(사망자 없음)를 통해 “한 회사에서 만든 전동차임에도 내수용과 수출용의 내장재 구성이 전혀 달랐다는 사실” 등을 알게 된다. 유가족들은 변화를 요구했고, 그로 인해 전동차 내장재가 불연성 혹은 난연성이 좋은 것들로 개선됐다.
 

2024년 2월 15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2.18 대구지하철참사 21주기 토론회 〈장애인 이동권과 노동자 시민의 안전〉에 참여한 발제자들과 토론자들이 나란히 앉아 있다. ©일다    


“예전에 비해 지하철 안전에 변화가 생긴 건 맞다”고 이야기한 황 전 사무국장은 “그렇지만 대구 지하철 3호선은 비용 절감 등을 이유로 무인자동 모노레일로 만들어졌다. 이런 점에서 여전히 지하철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고 지적했다.
 
장애인 이동권과 지하철 노동자의 권리는 맞닿아 있어
 
지하철 안전 확보의 문제는 지하철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도 문제가 된다. 김훈배 공공네트워크 정책위원이 짚은 “지하철 역사 내 인력 적음”은 이용자와 제공자 모두에게 힘든 상황이 된다. 휠체어 이용자가 (타인의) 도움이 필요해 기관사나 역사 내 직원을 요청했을 때, 상주 인원이 1명밖에 없다면 어떻게 될까? 휠체어 이용자가 도움을 받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고, 직원 또한 그 업무를 하기 위해 다른 업무를 중지해야 한다. 이로 인한 (지하철 운행) 지연 등의 문제가 생긴다면 다른 이용자들의 불편을 야기시킨다.
 
김 정책위원은 자신이 겪은 경험도 공유했다.
“우이신설 경전철에서 카드를 충전하는데 거스름돈이 안 나와서 직원을 호출했었어요. 근데 직원이 역사 안에 없어서, 다음 열차에 와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그 열차 안에 계신 분이 뛰어와서 작업을 해 주셨어요. 이렇게 인력이 없다는 거죠.”
 
강효찬 궤도협의회(전국지하철철도노동조합협의회) 전 집행위원장은 “궤도노동운동의 지향과 가치는 장애인 운동의 지향과 본질적으로 대치하지 않는다. 아니 대치할 수 없다”고 했다. “이동권 보장은 국민의 기본적 권리이고, 권리 보장을 위해서는 이를 수행할 시설과 인력이 필수”라는 점에서 그 지향점이 같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강효찬 전 집행위원장은 지금의 상황, “원하지 않는데도 어쩔 수 없이 현장에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대치로 내몰리고 있는 노동자가 있다는 점에 고통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또한 “노조 내에서 우리의 운동이 공공교통 확보와 교통약자에 대한 이동권과 연결된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고, 장애인 이동권 운동과 연대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겠다”고 덧붙였다.
 

 
대구지하철화재참사 21주기 토론회는, 누구나가 편리하고 자유로우며 안전하게 공공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왔고 지금도 그것을 위해 투쟁에 나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자리였다. 이 투쟁이 왜 지속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