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 역사 속 오늘] 1923년 3월20일, 방정환 잡지 '어린이'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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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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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3월 창간, 1935년 7월까지 122권 발간…어린이날 제정 등 어린이 인권운동도 
▲ 100년전 잡지 '어린이' 표지. 사진=국립한글박물관
1923년 3월20일 어린이 인권운동가 방정환 등이 잡지 '어린이'를 창간했다.

'어린이'는 일제에 주권을 빼앗긴 환경에서 1923년 3월호를 시작으로 1935년 7월까지 12년간 냈다. 1920년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잡지는 '새동무'(1920), '신소년'(1923), '새벗'(1923), '아이생활'(1926), '별나라'(1926) 등 다양했지만 '어린이'는 당시 신문보다 더 많은 인기를 얻으며 가장 장기간 발행된, 성공한 잡지다.

개벽사에서 발행을 맡았다. '어린이'는 12면 신문 형식으로 출발했다가 1923년 9월 제8호부터 책 형식을 띠면서 일반호 26면(9·11호), 특별호 46면(8·10호)로 증면했다. 처음엔 월 2회 발행하다 1924년 1월(12호)부터는 월간지로 발행했다. 1927년 이후에는 70면을 넘어 정간할 때까지 72~98면 정도로 발행했다. 꾸준하게 증면했다는 건 당시 '어린이'의 인기를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월간지로 바뀌면서 1세대 아동문학가 고한승, 마해송, 정인섭, 이원수 등의 동화와 윤극영의 동요극 등이 실렸다. 1930년대엔 이광수, 주요한, 주요섭, 이태준, 정지용 등도 참여하게 됐다. 이정호, 신영철 등이 이어 12년동안 잡지를 계속 맡았으나 1934년 7월에 123호를 끝으로 폐간했다. 광복 이후 1948년 5월 고한승이 '어린이' 잡지를 속간했지만 1년 반 만인 1949년 12월 통권 제137호로 폐간했다.

▲ 잡지 '어린이'에 실린 어린이 노래. 사진=국립한글박물관 제공
잡지 '어린이' 창간은 어린이 인권운동이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1922년 첫 어린이날은 5월1일이었다. 1919년 3·1운동 등을 계기로 어린이를 새 나라의 주체로 존중하고자 방정환 등은 천도교소년회를 조직했다. '어린이' 창간은 소년회 회원 모집과 연계된 활동이었다. 1927년 5월 첫 번째 일요일로 어린이날을 바꿨다가 1939년 일제 탄압으로 어린이날 행사가 중단됐다. 해방 이후 첫 일요일인 5월5일을 어린이날로 정했다.

방정환이 결성한 소년운동협회가 발표한 '어린이 해방선언'은 1924년 국제연맹의 어린이 권리 선언보다 1년 앞서 사실상 '세계 최초의 인권 선언문'으로 어른들이 어린이를 동등하게 대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어린 것', '아이', '애새끼', '사내', '계집' 등의 표현이 아니라 이들을 격식있게 부르기 위해 '어린이'라는 명칭을 쓰기 시작했고, 어린이에게 존댓말 쓰자고도 제안했다. 당시 방정환은 20세 이하를 '어린이'로 정의했다.

※ 참고문헌

박현수, 잡지 미디어로서 <어린이>의 성격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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