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 상자와 맞바꾼 목숨, 세월호 똑 닮은 참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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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4.16. 오전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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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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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10년의 세월—세월호‘들’이 있었다
2014년 참사 뒤 10년 동안 발생한 선박 침몰 사고 35건 살펴보니
낡은 배 위험하게 개조, 문제제기 묵살 등 사고 원인 판박이
2021년 1월29일 전남 완도군 인근 해상에서 ‘삼성1호’가 침몰하며 화물들이 흩어져 떠내려가고 있다. 완도해양경찰서 제공.


편집자주—낡디낡은 배를 사다가 이름만 바꿔달았다. 승객과 화물을 더 싣겠다며 배를 마구잡이로 뜯어고쳤다. 위는 무겁고 아래는 가벼운,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한 배가 완성됐다. 그 배에 출항 직전까지 화물을 꾸역꾸역 실어넣었다. 선장과 선원이 위험하다며 걱정했다. “윗선 결정에 관여 말라”는 핀잔만 돌아왔다. 안개가 자욱한데도 출항을 밀어붙였다. 그리고 차가운 바다에 가라앉았다.

이것은 2014년 4월16일 전남 진도군 인근 해상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다. 동시에 세월호를 똑닮은 배들의 이야기다. 돈 버는 덴 거침이 없었으나 안전엔 지극히 무심했던 선박 운영 회사들에 관한 이야기다. 모두 세월호 참사 이후에 있었던 일이다.


2021년 1월29일 새벽 1시20분 제주 성산항. 3500t 규모 화물선 ‘삼성1호’는 분주하게 출항 준비를 마쳤다. 삼성1호는 이날 전남 고흥 녹동항으로 귤과 무 등을 실어나르기로 했다. 배 화물창 안은 이미 310개의 철제 화물상자가 빈틈없이 들어차 있었다.

그때 선박회사(선사)인 삼성해운 대리점 담당자가 선장에게 다급히 연락해왔다. ‘귤이 담긴 화물상자 7개를 추가로 실을 수 없겠냐’고 했다. 삼성해운 대표이사의 지시였다. 그날은 풍랑경보가 발효돼 파도가 너울댔다. 선장은 곤란해했다. “화물을 더 실으면 화물창 덮개를 덮을 수 없습니다.”

화물창이 열린 채로 항해하면 틈새로 바닷물이 유입돼 배가 전복될 수 있다. 하지만 대표이사는 쉬이 물러나지 않았다. 이번엔 화물을 싣고 직접 부둣가에 들이닥쳤다. “내가 책임질 테니 선적하라”고 했다. 선장은 결국 화물창 덮개를 열어둔 채 귤 상자를 배에 실어야 했다.

대표이사는 출항도 재촉했다. 선장은 “기상이 안 좋으니 새벽 3시쯤 출발하겠다”고 했지만, 기어이 1시57분께 배를 출항시켰다. 그리고 2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각, 바닷물이 화물창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휘청이던 삼성1호는 결국 오전 8시32분께 전남 완도 인근 바다 아래로 가라앉았다. 선원 8명은 가까스로 구조됐으나, 1명은 끝내 찾지 못했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침몰 당시 갑판에 실린 컨테이너가 바다에 쏟아지고 있다. 해양경찰청


선원 1명 끝내 찾지 못했다


2014년 4월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이윤만 추구하면서 안전을 등한시한 선박 운영 회사의 비윤리적 경영 실태를 전면에 드러냈다. 선박을 개조하며 화물칸 덮개를 철제가 아닌 천막으로 바꿨고 적정 화물량의 3배까지 과적하면서 고박도 불량했다. 25년 된 선박이라 개조에 신중해야 했지만, 화물·여객칸을 더 넓혀놓아 무게중심이 훌쩍 올라갔다. 선장과 선원들이 수차례 복원성(배가 기울었을 때 원상태로 돌아오려는 성질) 불량과 과적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선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안개가 심하게 끼어 다른 배들은 포기한 바다에 세월호만 출항하기도 했다.

참사 뒤 10년, 바다 위를 다니는 배의 안전 관리는 얼마나 개선됐을까. <한겨레21>이 중앙해양안전심판원(해심원) 특별조사보고서와 선박 매몰 관련 사건 판결문 등을 토대로 세월호 참사 이후 10년 동안 발생한 1천t 이상 선박의 침몰 사고 35건을 살펴본 결과, 이 가운데 5건의 사고는 세월호 참사 때처럼 안전을 뒷순위로 둔 경영과 조직 운영으로 일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낡은 선박을 위험하게 개조하고 방치하는 기업의 의사 결정이 어떻게 안전을 저해하는지 각 사고를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봤다.

주먹구구식 화물 관리… 출항 직전 무리하게 밀어넣기도


삼성1호는 그런 비윤리적 경영의 대표적 사례다. 사실 삼성1호는 사고 2년 전인 2019년에도 화물창 덮개를 개방한 채 운항하다 해양수산부의 지적을 받았다. 선장은 ‘즉시 시정’을 약속했다. 그러나 사고 보름 전인 2021년 1월3일과 1월10일에도 화물창을 일부 열어둔 채 출항했다. 안전을 외면하고도 ‘그래도 사고가 나지 않았다’는 결과만을 알리바이 삼아 위험한 관행을 지속했다.

이 배는 평상시 화물 관리도 주먹구구식이었다. 선사 대리점은 평소 화물 개수를 구두로 항운노조에 알려줄 뿐 정확한 화물 위치와 중량을 적재계획서로 기록하지 않았다. 화물 현황도 ‘삼다수’ ‘귤’ 등 품목과 개수만 사무실 화이트보드에 적어놓고 정확한 무게도 재지 않았다. 화물을 어디에 얼마나 싣느냐로 선박 복원성과 화물 선적 효율이 결정되는데 사실상 ‘되는대로’ 일해왔다.

삼성해운 성산대리점 사무실에 적어놓은 화물품목. 무게도 없이 화물 품목과 개수만 적혀 있다. 해심원 보고서 갈무리.


화물 관리가 체계적이지 않으니 선사가 출항 직전 화물을 무리하게 밀어넣어도 선장이 거절할 근거를 찾지 못했다. 사실 삼성1호의 최대 선적량은 화물 330개로 대표이사의 요구로 늘어난 317개보다 많다. 하지만 최대 선적량을 실으려면 미리 지게차를 동원해 촘촘하게 화물을 실을 수 있도록 하는 사전 계획이 필수다. 이를 선박 용어로 ‘로딩플랜’(화물 적재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체계 없이 화물을 싣는 바람에 최대 선적량보다 13개나 덜 싣고도 화물창을 닫지 못했다.

이는 세월호 참사 때도 고스란히 드러난 문제다. 선사가 출항 15분 전까지 화물을 밀어넣는 통에 로딩플랜 수립이 거의 불가능했다. 화물 운송은 적자투성이인 세월호 운항에 유일한 매출 자원이었다. 선사 물류팀이 상습적으로 화물을 과적해도 해무팀과 선원들이 이를 제어하기는커녕 화물 목록을 받아보지도 못했다. 세월호 1등항해사 강원식이 과적으로 인해 불안정한 배 상황을 전하며 “날씨 안 좋은 날 배 한번 타봐라. 우리는 죽겠다”고 말했지만, 배를 타본 적이 없는 해무팀은 이를 알아듣지 못했다.

삼성1호 침몰 사고에서 무리한 과적과 운항을 지시한 김아무개 삼성해운 대표이사는 2023년 11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8개월 실형을 최종 선고받았다. 범죄를 은폐하려 관계자들을 회유한 점 등이 불리하게 작용했다. 대표이사를 도와 화물 선적을 지시한 삼성해운 성산대리점 소장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를, 대표이사의 지시를 거부하지 못한 선장은 징역 1년4개월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삼성해운 주식회사는 벌금 3천만원형을 받았다.

어획량 늘리려고 노후 선박 마구잡이식 개조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또 다른 문제는 마구잡이식 선박 개조였다. 세월호는 국내 도입 때 이미 선령이 25년인 낡은 배였다. 선사는 화물과 승객을 늘릴 목적으로 배를 확대 개조하면서도 그것이 배의 복원성에 미칠 영향은 고려하지 않았다. 선장 신보식이 ‘선미를 증축하면 안전성이 떨어진다’고 우려했지만, “위에서 하는 것이니 관여 말라”는 핀잔만 돌아왔다.

이런 문제는 세월호 참사 7개월 뒤인 2014년 12월1일 발생한 명태잡이 원양어선 ‘제501오룡호’(오룡호) 침몰 사고에서도 드러났다. 참치캔으로 유명한 식품기업 ‘사조산업’이 소유하고 운영한 오룡호는 베링해에서 풍랑을 만나 침몰했다. 선원 27명이 숨지고 26명이 실종됐다.

2020년이 돼서야 선고된 이 사건의 1·2심 판결문과 해심원 조사보고서를 보면, 오룡호는 2010년 수입 때부터 선령이 32년이나 됐다. 기상이 좋은 아르헨티나 연안에서만 작업하던 배라 기상 악화가 심한 북태평양으로 옮길 땐 개조에 신중해야 했다. 하지만 사조산업은 어획량을 늘리기 위해 도리어 배 끝에 달린 어획물 창고를 기존보다 크게 넓히고 3t 무게 장비도 새로 실었다. 이렇게 개조를 마친 오룡호는 선미(배 뒷부분)가 해수면과 매우 가까워, 조금만 파도가 쳐도 침수될 위험이 있었다.

2014년 12월1일 러시아 서베링해에서 침몰한 사조산업의 1753t급 명태잡이 트롤선인 ‘제501오룡호’의 모습. 배 뒷부분이 확장개조돼 해수면과 매우 가까워졌다. 사조산업 제공


개조된 오룡호의 선체 구조는 침몰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 사고 당일 베링해는 기상 악화로 파도 높이가 5m에 달했다. 선원들이 명태 20t을 창고로 쏟아 넣는 순간 선체 뒷부분이 기우뚱하더니 바다에 잠겼다. 엄청난 양의 바닷물이 선박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설상가상 바닷물 유입을 막는 수밀문도 모두 열려 있어, 조타실까지 밀려온 바닷물에 조타기가 고장 났다. 갖은 애를 써도 돌이킬 수 없자 선장은 자책하며 스스로 침몰하는 배에 남았다. 그렇게 선장과 선원들은 배에서 나오지 못한 채 가라앉았다.

참사 초기 비난의 화살은 조업을 강행한 선장에게 향했다. 그러나 그 이면엔 사조산업의 실적 경쟁이 있었다. 판결문을 보면, 사조산업은 참사 전 러시아 수산청의 명태 어획량 쿼터 배분에서 최종적으로 배 무게의 4배가 넘는 7900t을 배정받았다. 다른 기업들이 너무 많다고 반납한 물량을 사조산업이 넘겨받은 것이다. 배분에 참여한 국내 선박 5개 중 오룡호가 두 번째로 작았으나, 쿼터량은 두 번째로 많았다.

선장은 상당한 압박을 받은 듯했다. 2014년 11월 회사에 보낸 이메일에 ‘계속 황천항해(기상 악화 중 항해) 중’ ‘쿼터를 다 채우긴 어려우나 최선을 다하겠다’ 등의 내용을 적었다. 선장은 사고 당일에도 피항하려다 돌연 마음을 바꿔 조업에 나섰다.

2015년 1월5일 오룡호 실종자 선원 가족들이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사조산업 본사 앞에서 수색 재개와 회장 면담 등을 요구하며 오열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선사는 오룡호에 미자격자도 대거 승선시켰다. 선장부터가 법적 자격(2등항해사 이상)에 미달하는 3등항해사였다. 사조산업 서울본부는 이를 알고도 그를 선장으로 발령 냈다. 남태평양 쪽 조업 경력이 있다는 이유였고 자격은 보지 않았다고 한다. 부산본부는 그 결정에 대해 “된다, 안 된다 토 달 수 없”었다.(1심 판결문) 서울본부가 정한 출항 일자가 다가오자 부산본부는 필수 자격자 9명 중 4명(선장 포함)을 미자격자로 채우고 3명은 아예 승선시키지 않았다. 어차피 적정 선원을 못 채워 적발되더라도 “회사가 담당자 벌금을 대납하는 일이 반복”됐다.

사조사업은 어로 작업에 필요한 설비나 연료유 등은 바로바로 공급했다고 한다. 하지만 선원 안전에 대해선 지극히 무관심했다 . 선원들은 형식적으로 서명만 할 뿐 위기 대응 훈련을 거의 받지 못했고, 배 안의 비상상황배치표는 러시아어로 적혀 있었다. 선원 60명 가운데 러시아인은 1명뿐이었다. 기상을 알리는 팩스가 고장 났으며 배는 오물배출구 닫힘 셔터가 낡아 없어져 사실상 구멍 난 상태로 운항했다. 선사는 이를 사고 당일까지 수리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사고를 다음과 같이 평했다. “(희생자들은) 모두 하나같이 존엄한 생명들이었다. 선장은 회사가 아니라 자신을 자책하며 퇴선하는 대신 침몰하는 제501오룡호와 운명을 함께했다. 피고인들이 어선의 안전한 조업을 위해 인적·물적 운항능력을 갖출 주의 의무를 가볍게 여길수록 회사는 조업 실적을 늘리고 비용을 줄일 수 있을지 모르나, 이는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의 소중한 생명을 대가로 삼는 일이다.”

사조산업 김아무개 대표이사와 문아무개 이사는 2020년 2월 이 사건으로 각각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전·현직 부장과 과장, 계장 3명은 징역 1년~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공무감독은 부정한 방법으로 어선검사증서를 발급받은 혐의로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사조산업은 벌금 1500만원형을 선고받았다.



*장편 기사는 분량을 쪼개어 선보입니다. 이 기사도 ‘결함 있어도 항해 못 멈춰, 세월호 똑 닮은 참사들’(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370.html) 기사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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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에서 잠시 <한겨레21>로 이사 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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