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오지 않지만 잔뜩 흐린 날씨다. 나는 유난히 해를 좋아해서 아이들이 나의 별칭을 '써니Sunny'라고 지어줄 정도인데 계속 흐림이다. 휴일이라 모처럼 걷는 한 팀을 지나친다. 함양군과 산청군 경계인 등구재 바로 아래는 예전부터 주막이 있던 곳이다.
목도 축일 겸 잠시 배낭을 내려놓는데 미리 자리를 잡은 사람이 "며칠째 걷고 있느냐?"고 물어왔다. 가끔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디에서 왔느냐? 뭐 하는 사람이냐?" 등 별로 궁금하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는 질문을 해서 성가셨는데 "며칠째 걷고 있냐"고 물어서 조금 놀라웠다. 내 모습이 길 떠난 지 오래 된 것처럼 꼬질꼬질한가?
간밤에 비가 얼마나 세차게 오는지 계곡물 소리에 잠이 들었다가 깨기를 번갈아했다. 내일 갈 길이 걱정이다. 가을과 겨울 사이의 비는 달갑지 않다. 새벽이었다. 비는 걱정한 만큼은 아니지만 살짝 내리고 있어서 그냥 출발했다. 가랑비인 것이다.
벽송사에 도착해서 부처님께 인사를 하고 나오니 비가 갑자기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어쩔까 하며 한동안 추녀 안에서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는데 보살님께서 올라와서는 공양간으로 가서 요기라도 하며 비를 피하자고 한다. 얼씨구 따라 나선다.
이미 밥 때가 지났는데 국을 데우고 반찬을 내 오며 춥고 배고픈 나그네를 챙겼다. 따뜻한 밥 한 그릇의 위로는 정말 대단한 것이다. 밥 두 그릇을 뚝딱 해치웠는데 뭐 더 줄 게 없는지 보살님은 자꾸 찬장을 열어보고는 했다. 이들이 바로 우리식 트레일 엔젤Trail Angel인 것이다. 배도 부르고 빗줄기도 가늘어졌겠다. 몸도 마음도 따뜻해져서 길을 나선다.
솔가리가 융단처럼 깔린 부드러운 오르막은 순결하기까지 하다. 첫 눈길만 순결한 것이 아니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비에 젖은 솔가리 길도 그 못지않다는 것을 느끼며 걷는다. 오후로 접어들면서 비는 그치고 바람이 분다. 거의 태풍 급이다. 옷깃을 잔뜩 여미고 바람에 떠밀리듯 걸음을 빨리한다.
지리산둘레길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사단법인 숲길'에서 동네마다 한 집씩은 권해서 하는 민박이다. 할 수 없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데 주민들은 몹시 내켜하지 않지만 나그네에게는 여간 고마운 것이 아니다.
수철에 도착해서 안내된 숙소에 연락해 보지만 전화도 받지 않고 주변에는 식당조차 없다. 동강 할머니가 지나가는 말처럼 "택시 기사 집에 가서 누(누워) 자"라고 한 말이 생각나서 둘러보니 마침 택시가 서 있는 집이 있다. 가서 사정을 하니 망설이다가 방을 하나 내줬다.
먹을 것이 없다고 하자 쌀과 김치, 참치, 김 등을 주며 밥을 해 먹으라며 감과 고구마를 내왔다. 따뜻한 방에서 종일 비와 바람에 시달린 육신을 녹이며 따뜻한 밥에 김치찌개를 해서 배 두드리며 먹는다. 식당 밥과 달리 내가 막 한 밥은 반찬이 없어도 맛이 좋다.
다음날 남은 밥으로 도시락을 싸서 출발했다. 날씨는 춥지 않지만 여전히 바람 길이다. 산청읍을 외곽으로 돌며 경호강에서 수달가족을 만났다. 아침이라 인적이 없어서일까? 아주 신나게 장난치며 놀고 있어서 한동안 넋을 잃고 구경했다. 아침부터 보기 힘든 천연기념물을 만난 것이 신기하고 좋았다.
바람 때문에 노상에서 쉬거나 먹을 수 없어서 성심원 매점에 들어가 한쪽 귀퉁이에서 길 떠난 후 처음으로 도시락을 먹었다. 나병이 다 나았다는 할머니에게 '길에서 고생하지 말고 천주교를 믿으라'는 전도를 받는다.
다시 길을 나서 웅석봉을 오른다. 가파른 경사 길은 둘레길의 순함이 사라졌다. 모처럼 땀 흘리며 오르는 길은 내가 나로 사는 것 같은 느낌이라 기분 좋다. 오르막도 좋지만 긴 임도를 내려오며 혼자 충만한 기분이 되어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많이 걸은 날이다. 그런데 이날은 좀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 민박집을 찾아 갔는데 여러 마리의 개들이 몹시 사납게 짖어대고 무척 화가 나 보이는 할머니가 엄청 귀찮은 표정으로 나왔다.
방은 몹시 누추했고 샤워실도 화장실도 밖에 있는데 지저분하기까지 해서 불평을 했더니 그러면 호텔에 가지 왜 시골 민박집에 왔냐며 마구 화를 내는 바람에 쫓기듯이 그 집을 나와야 했다. 나오기는 했지만 난감한 것이 그 동네의 숙소는 그 집이 유일했고, 날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여기 저기 수소문해서 이웃 동네 가겟집과 연결이 되었다. 오늘은 가겟방에서 하루를 접어야 했으나 나쁘지 않았다. 할머니가 내온 음식은 깔끔했고 방은 따뜻했다. 하지만 이부자리는 좀, 하하! 다음날 새벽 하회탈 같은 할아버지께서 길 입구까지 태워 주셨다. 요즘 컴퓨터로 문서 작성하는 것을 배우고 있다고 자랑하신다. 노인도 자기계발 하는 시대인 것이다.
아름다운 백운계곡을 지나 덕산 장을 지나 덕천강 둑길을 지나 긴 임도를 지난다. 다시 하동 땅에 들어섰다. 몇 번을 지난 곳들인데 낯선 곳이 더러 있다. 가끔 스토리가 있는 장소를 지날 때면 지난 일이 생각나기도 한다. 주로 보호관찰 청소년인 아이들과 걸을 때 생각이 많이 났다.
그때 좀더 따뜻하게 아이를 대했어야 했는데, 자비심이 부족한 나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몸과 마음이 벽 같은 아이를 상대하기에는 나 자신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 시간이었다. 서로 위태롭게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하동 땅에서 결국 터지고야 말았다.
나는 더 이상은 역부족이라며 아이와 함께 걷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며 집으로 가겠다고 작정했다. 아이를 두고 앞서 뛰듯이 걸으며, 그렇게 떠난 것을 후회했고, 내 한계에 절망했다. 나는 정말 집으로 돌아갈 작정이었는데 다른 사람의 중재로 겨우 화해를 했다. 아이는 꽁꽁 숨겨둔 속내를 내보이며 울기까지 했다. 어른인 내가 계속 화만 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후 우리는 한동안 평화로웠다. 최소한 겉으로는.
그때가 생각나서 부끄러웠다. 나라는 인간은 나이만 잔뜩 먹었지 모자라는 것이 너무 많은 중생이지 않은가? 그 아이는 이제 성인이 됐을 텐데 잘 살고는 있을지. 아주 가끔 풍문으로 소식을 접하는데, 어쩌면 그가 이 길을 걸은 것을 언젠가 기억하고 찾아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한 걸음 한 발자국은 참 대단한 것이다. 이제 지리산 동그라미를 완성할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