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산행기] 요들송이 생각나는 알프스 니더호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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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에서 찍은 필자 부부의 모습.
멀리서 봤을 땐 몰랐다. 알프스는 생각보다 낮아 보였다. 저렇게 낮은 산에 만년설이 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산 가까이 다가서자, 알프스는 커다란 거인으로 변했다. 기다랗게 늘어선 능선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만년설 덮인 2,500m의 고지대. 만년설 녹은 물이 폭포수가 되어 떨어져 내렸다. 찬란하게 빛나는 폭포수 아래로 붉은색 지붕들로 가득 덮인 산골짜기 마을들이 보였다. 흰 폭포와 대비되는 선명한 붉은빛은 알프스를 한층 더 아름답게 만들고 있었다. 처음 만난 알프스는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본격적으로 알프스로 들어서기 전에 베른이라는 곳에 들렀다. 높은 건물 없이 낮은 건물들로 대부분 이루어진 도시였다. 동네 자체가 깨끗하고 조용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곧 기차를 타고 베른을 벗어났다. 평지가 사라지고 산맥이 풍경 대부분을 이뤘다. 산비탈에는 담장 없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영화에서 보던 동화 같은 풍경! 한없이 평화로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튠호수가 나왔다. 이곳은 아이거산에서 녹아내린 만년설이 흘러드는 곳으로, 규모가 꽤 컸다. 호수 양쪽으로는 산맥들이 도열하듯 쭈욱 늘어서 있었다. 호수 옆을 따라 한참을 이동했다. 융프라우를 오르는 출발점, 인터라켄에 도착했다. 역 근처 야영장에는 텐트가 잔뜩 설치되어 있었고, 야영객들은 따뜻한 햇살을 만끽하고 있었다. 길거리를 드나드는 배낭여행객들도 눈에 띄었다.

인터라켄을 떠나 왼쪽 산길로 들어섰다. 굽이굽이 산길을 돌며 고도를 높였다. 높은 곳에 올라오니 튠호수의 모습이 한눈에 보였다. 마찬가지로 산비탈에는 별장 같아 보이는 집들이 드문드문 자리 잡고 있었다. 만년설 덮인 알프스를 파노라마로 볼 수 있는 명당자리임이 분명했다. 나는 문득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부러워졌다. 매일 튠호수에서 물고기를 낚으며 사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니 행복해서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산길을 한참 올라 케이블카 탑승장에 도착했다. 우리가 탈 케이블카에는 독일 여행객 두 사람이 있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안녕"이라고 인사하고, 한국에서 왔다고 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휴대폰을 꺼내 우리에게 보여 줬다. 휴대폰에는 'samsung'이라는 글자가 떡하니 적혀 있었다. 한국인임이 은근히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즐거운 여행이 되라고 했다.

니더호른으로 오르는 케이블카. 침엽수 나무로 덮인 숲을 지나자 확 트인 초원이 나왔다. 초원 곳곳에는 방목된 소들도 많았다. 정상에 도착하니 노랑부리 까마귀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장엄한 산들과 푸른 호수가 보이는 전망! 역시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정상은 평평한 초원지대였다. 느긋하게 걷기 좋았다. 그림 같은 풍경 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초원 이곳저곳을 마음껏 걸었다. 목동이 쉬는 간이 통나무집과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레스토랑들이 있었다.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휴식을 취하고 있던 꼬마가 우리를 보고 반갑게 웃어주었다. 나는 아이에게 간단히 우리를 소개했다. 어쩌구저쩌구… 열심히도 말했다. 잠시 후 꼬마는 뭐라뭐라고 대답했다. 아쉽게도 아이의 말을 알아들을 순 없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여행지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서슴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좋았다.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꼬마 부모도 빙긋이 웃고 있었다.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

알프스 속 니더호른은 자연의 위대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봤던 그림 같은 풍경이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당장이라도 아름다운 알프스 소녀의 요들송이 들릴 것 같은 대단한 풍경이었다. 행복했다.

그네에 앉아 장벽처럼 우뚝 솟은 아이거산과 푸른빛의 튠호수를 오래도록 바라봤다. 방목된 소의 목에 달린 커다란 방울소리가 귀를 타고 들어왔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 시름이 사라졌다. 현실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꿈만 같은 시간이 이어졌다.

월간산 4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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