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세월호 생존자들이 국가에 던지는 질문 [세상에 이런 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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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4.27. 오전 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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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법이 어딨어.” 우리가 자주 하고 듣는 말. 네, 그런 법은 많습니다. 변호사들이 민형사 사건 등 법 세계를 통해 우리 사회 자화상을 담아냅니다.
세월호 참사 생존자인 한 화물차 기사가 복용하는 항우울제와 수면제.©시사IN 이명익


‘파란 바지’의 의인, 세월호 생존자 김동수씨는 10년 전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국가 구조 기능이 마비됐던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들을 구해 우리 사회 의인으로 등극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건 4년 전이다. 김씨는 국회 앞 시위 도중 자해로 이송된 병원 응급실에서 난동을 부렸다는 이유로 응급의료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6년 만에 그는 의인에서 피고인이 되었고, 나는 그의 변호인이 되었다.

의인이 마땅히 누려야 할 자부심과 행복은 고사하고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던 그를 변호하기 위해 제주를 오가며 나는 제주 세월호 생존자 23명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참사 당시 대부분 화물차 운전사였던 그들은 아직도 약을 먹지 않으면 두려움에 잠을 이룰 수 없는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일보다는 쉼과 치료가 필요해 보인다는 말에 그들은 반문했다. “생계는 누가 책임져주나요?”

솔직히 나는 세월호 생존자들이 평생 생계를 걱정할 필요가 없을 만큼 큰돈을 국가로부터 받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당시 억대 보험금 이야기가 나왔고 국민 성금도 많이 모였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이 받은 배상금은 1~2년 급여 수준이고, 그들을 위한 배상 절차가 졸속으로 진행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15년 3월29일 시행된 세월호 피해 지원법은 배상금 지급 신청 마감을 법 시행 6개월로 못 박았다. 생존자들은 배상 신청을 위한 필수 서류인 후유장애 진단서 발급부터 막혔다. 당시 정신과 전문의들은 ‘재난 후 발생한 트라우마는 최소 2년이 경과된 후에 평가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앞세워 진단서 발급을 거부했다. 정부 개입으로 마지못해 후유장애 진단서를 발급해야 했던 의사들은 ‘추후 재평가를 통하여 치료 지속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문구를 함께 기재했다.

“곤궁에 처한 피해자에게 억지스레 받은 동의서 한 장”

2월25일 세월호 참사 10주기 전국 시민행진단이 제주 성산일출봉 앞에서 행진을 시작했다. ©시사IN 신선영


참사 7주기인 2021년 4월, 제주 세월호 생존자들은 국가를 상대로 추가 배상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배상 당시 발급된 진단서에 기재된 문구대로 재평가를 통해 다시 배상액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도 그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세월호참사 배·보상 기준과 추진 과정의 적정성 조사 결과 보고서’를 통해 세월호 참사 배·보상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문제점 등을 고려하여 직권 재심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뜻을 피력한 것이다.

세월호 10주기를 맞은 올해, 아직도 제주 세월호 생존자들은 국가와 싸우고 있다. 그들의 트라우마가 배상 당시 발급된 불완전한 진단서에 담긴 최대 5년이 아니라 최소 2028년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정신감정 결과가 법원에 제출되었지만, 피고 대한민국은 계속 이런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 당시 생존자들이 배상 결정에 동의한 이상 더 이상의 추가 배상 지급은 불가능하다.”

당시 불완전한 진단서의 내용을 알고 밀어붙인 배상 결정의 오류가 낱낱이 밝혀졌음에도 절대로 시정할 수 없다고 우기는 국가와 싸우며, 세월호 10주기를 맞이하는 제주 세월호 생존자들과 함께 나는 피고 대한민국에 이런 질문을 던진다. “참사 이후 곤궁에 처한 피해자로부터 억지스레 받은 동의서 한 장 내밀며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는 피고 대한민국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할 의무 주체인 국가가 정말 맞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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