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플랫폼 공정화'에 사활건 공정위, '쿠팡 김범석' 동일인 지정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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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5.14. 오전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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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쿠팡 김범석 의장 동일인 지정에 무게…'실질 지배' 판단
특혜 논란에 원점 검토…최초 외국인 총수 탄생하나
업계에선 '혁신 저해' 우려…30년 넘은 동일인 제도 개선 필요

공정거래위원회가 미국 국적인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을 그룹 총수 격인 동일인으로 지정할지 여부를 놓고 고심에 빠졌다. 당초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한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미국 국적인 김 의장 대신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회사의 모든 수익활동을 한국에서 쿠팡을 ‘총수 없는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하는 것을 특혜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변수가 생겼다.

이에 공정위는 쿠팡 동일인 지정 문제를 원점 재검토하기로 했고, 각계 입장을 수렴해 김 의장의 총수 지정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김범석 의장이 미국 국적자이지만, 모든 경제활동을 한국에서 하는 ‘검은머리 외국인’이라는 점도 공정위로서는 고민스러운 지점이다.

일각에서는 의결권의 70% 이상을 소유한 김 의장의 지배력을 고려해 공정위가 사상 최초로 외국인인 김 의장을 총수로 지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 공정위가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이하 온플법) 제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변수다. 대표적인 온라인 플랫폼 기업인 쿠팡에 지배구조 규율에 대한 특혜를 주는 인상을 주기 싫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앞에서 상장을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김범석 의장 동일인 지정으로 기우는 공정위

공정위는 오는 30일 쿠팡을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할 예정이다. 쿠팡의 지난해 자산은 50억6733만달러(약 5조7000억원)으로 공시대상기업집단 기준인 자산 5조원을 넘어섰다. 쿠팡의 대기업집단 지정은 기정사실화된 수순이지만, 관심은 김 의장이 대기업 총수에 해당되는 동일인으로 지정되느냐에 쏠리고 있다.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혈족 6촌, 인척 4촌까지 계열사 지분 보유 현황 등을 공시해야 하고 사익 편취 여부가 적발되면 제재, 검찰 고발을 당할 수 있다.

공정위는 21일 김 의장의 동일인 지정 여부를 이날 전원회의 긴급 토의안건으로 상정했다. 통상 전원회의에서는 법규를 제·개정 하기 위한 논의를 하거나, 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중요 사건을 심의한다. 정책 사안이 아닌 안건을 비공개 토의안건으로 부쳐 위원들의 의견을 듣는 것은 이례적이다. 공정위가 김 의장의 동일인 지정 여부를 민감하게 따져보고 있다는 얘기다.

관가와 업계 의견을 종합하면 공정위가 김 의장을 총수로 지정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공정위는 동일인으로 지정할 때 지배력 행사 여부를 가장 중요하게 보기 때문이다. 쿠팡의 창업자인 김 의장은 단순 지분으로만 10.2%를 보유한 3대 주주지만, 차등의결권을 가진 ‘클래스B’ 주식을 단독으로 가지고 있어 의결권은 76.6%에 달한다. 김 의장이 쿠팡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만큼 공정위가 김 의장을 총수로 지정할 확률이 높다. 일상적인 경영활동에도 김 의장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공정위는 보고 있다.

김 의장이 동일인으로 지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의 근거는 전례다. 공정위는 지금껏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지 않았다. 외국인이 투자한 국내 법인은 본사가 있는 모국의 현지 법인 통제를 받는다는 점도 감안됐다. 그러나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쿠팡의 경우 외국인이 지배하는 기업이지만, 총수없는 기업으로 지정된 외국인 투자 기업인 한국GM과 에쓰오일의 경우와는 사정이 다르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쿠팡은 자연인인 김 의장이 실질적 의결권과 경영상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1인 총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업계는 "FTA위반 우려…낡은 동일인 제도 손 보자"

무엇보다도 조성욱 위원장과 공정위가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 법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것도 중요 변수로 대두되고 있다. 조 위원장은 플랫폼 기업이 독점 기업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법과 규제, 거래 관행을 정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투철하다. 이에 공정위는 ICT 기술에 기반한 신산업 규제에 조직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대표적인 온라인 플랫폼 기업인 쿠팡에 특혜를 준다는 비판을 받을 조치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시민단체 등에서는 쿠팡이 총수없는 대기업이 될 경우 사익 편취 규정 적용에 특혜를 받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정위는 총수없는 기업집단이더라도 공정거래법 제23조 제1항 제7호에 따른 부당지원행위 금지규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는 입장이지만, 동일인 지정이 될 경우와 그렇지 않는 경우의 규제 강도는 차이가 상당하다. 김범석 회장이 동일인으로 지정될 경우 매년 제출하는 지정자료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고, 배우자,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 등 특수관계인과의 거래에 대한 공시 의무도 생긴다.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지 않을 경우 지속적으로 특혜 논란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공정위가 쿠팡 특혜라는 비판을 부담하며 ‘총수없는 대기업’ 지정을 감행할 이유가 없다는 분석이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미국 국적인 김 의장이 총수로 지정하는 것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상 최혜국 대우 위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최혜국 대우는 미국인 투자자가 제3국 투자자에 비해 불리한 대우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내용이다. 김 의장을 미국기업 쿠팡에 일정 지분을 보유한 외국인 투자자로 보는 시각이 깔려있는 논리다. 또 쿠팡은 지난달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하면서 앞으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규정에 따른 규제를 받게 되는데, 이는 국내와 미국에서 이중 규제가 된다는 시각도 있다.

전문가들은 낡은 틀인 동일인 제도 자체를 이번 기회에 손 봐야 한다는 지적도 하고있다. 한국 공정위가 유일하게 운영하는 동일인제도는 1987년 도입됐다. 정부 지원 속에 성장한 소수 대기업에 경제력이 집중되는 걸 억제하기 위해 나온 규제였다. 총수 일가가 상호·순환 출자 등을 활용해 소수 지분으로 기업을 지배하는 걸 막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그러나 쿠팡 등 최근 성장한 IT 기업은 친족이 경영에 개입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상호·순환 출자도 하지 않는다. 과거 기업과 다른 모습의 기업을 과거 방식의 규제로 옭아매게 되면 혁신 동력이 약화될 거라는 게 업계 시각이다. 한 로펌 관계자는 "산업 변화에 낡은 틀인 동일인 제도를 적용하는 것은 혁신에 저해가 된다"며 "총수 지정 관련 법 체계가 이번 기회에 정비돼야 한다"고 했다.

[최효정 기자 saudad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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