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국 에너지 의존했다가...” 삼면초가 유럽, 뒤늦은 깨달음

채제우 기자 2024. 4. 18.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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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제텔마이어 브뤼겔연구소장 “유럽, 생산 비용 오르고 생산력 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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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민 제텔마이어 소장은 WEEKLY BIZ와의 인터뷰에서 "유럽은 높은 국방비를 감수해야 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고 말했다. /브뤼겔연구소

미국 2.7%, 유로존 0.8%. 국제통화기금(IMF)은 16일 세계경제전망(WEO)을 내놓고 미국과 유로존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이렇게 전망했다. 미국 경제가 선진 경제권에서 날아오르는 반면 유럽 경제는 종전 전망치(0.9%)보다 떨어지며 위축되는 모양새다.

WEEKLY BIZ는 브뤼겔연구소의 제로민 제텔마이어(Zettelmeyer) 소장을 화상으로 만나 유럽의 경제 현주소를 진단했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브뤼겔연구소는 글로벌 경제, 금융, 정부 규제, 미래 정보 기술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는 유럽의 대표적 싱크탱크 중 하나다. 제텔마이어 소장은 독일 연방경제에너지부 경제정책국장, IMF 전략·정책 담당 부국장 등을 역임한 유럽 지역 경제정책 전문가로 꼽힌다. 그는 유럽이 현재 ‘높은 에너지 값’ ‘생산력 감소’ ‘더딘 첨단 산업 전환’ 등이란 난제(難題)를 안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럽이 이른바 ‘삼면초가(三面楚歌)’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래픽=김의균

-현재 유럽의 가장 큰 고민은.

“‘안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가 ‘적대적 국가’에 의존할 수 없다는 걸 일깨워줬다. 그동안 유럽 각국은 러시아의 송유관을 통해 가스를 공급받아 왔는데, 전쟁으로 가스 공급망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결과적으로 에너지 값이 치솟아 지역 내 기업과 가계의 경제 활동 부담이 커졌고, 유럽은 향후 10년 넘게 비싼 에너지 값을 감당해야 할 처지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유럽 각국이 ‘경제적 안보’를 강조하는 이유다. 특히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의 침공 등 전쟁을 대비해 국방비도 늘리기 시작했다. 재정 적자가 불어나는 상황에서 국방비까지 지출 부담이 느는 건 사실이지만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새로운 시대가 왔고, 지역 안보를 위해 국방비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미국의 대(對)중국 제재 동참 요구에 대한 부담은.

“유럽은 미국이 내세우는 ‘디커플링(decoupling·공급망 등 분리)’ 대신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완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미국은 핵심 공급망에서 중국을 아예 배제하는 ‘디커플링’ 전략을 쓰지만, 유럽은 중국 의존도를 줄여 위험을 완화한다는 ‘디리스킹’을 내세우고 있다.) 중국과의 디커플링에 대한 경제적 부담을 우려해 독자적인 노선을 택한 것이다. 유럽에서 중국의 권위주의에 대한 불신은 계속 커지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은 ‘투자자의 논리’로 중국 시장에 접근할 수밖에 없고, 유럽 각국 정부도 이를 신경 쓰고 있다. 일부 독일 기업은 국제 정세에 따라 공급망이 휘둘리지 않도록 중국 현지에 공장을 세우는 등 오히려 적극적으로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도 한다. 물론 중국에 대한 경계도 유지 중이다. 유럽연합(EU)은 중국이 자국 기업을 돕기 위해 불공정한 보조금을 지급하는지, 중국 전기차들이 생산 원가 이하로 판매되는지 등을 조사한다. 더불어 관세 등 각종 제재 조치도 검토하고 있다.”

-유럽 경제가 직면한 어려움은.

“유럽 주요국들은 에너지 비용 때문에 생산 부담이 커졌는데, 저출산과 고령화로 전반적인 생산력마저 떨어지고 있다. 이에 유럽 내에선 (에너지 비용을 줄이기 위해) 그간 부정적으로 봤던 원전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있다.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이민도 적극 받아들이는 등 대안 마련에 한창이다. 하지만 당분간 높은 에너지 값은 유지될 것이고, 이민자를 늘리는 것도 사회적 반발 때문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본다. 유럽 각국은 시장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첨단 산업 양성에도 애쓰고 있다. 그러나 막대한 자본 투자가 필요한데다, 글로벌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져 쉽지 않은 상황이다.”

-향후 유럽 경제 전망은.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독일의 올해 연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5% 정도에 그칠 것으로 본다(IMF는 올해 독일의 연간 GDP 성장률을 0.2%로 전망했다). 인구 고령화와 생산력 감소의 영향이다. 유럽의 주요국들이 엇비슷한 상황이다. 하지만 유럽은 EU를 중심으로 지역 차원의 협력이 가능하다는 게 장점이다. 가령, 대부분의 EU 국가들은 전력 공급을 국가 단위로 해결하는데, 생산 비용이 낮은 곳에서 에너지를 생산하고 이를 분배하는 식으로 에너지 공급 구조를 바꿀 수 있다. 남쪽에서는 태양광, 북쪽에서는 풍력, 인구 밀도가 낮은 곳에서 원자력 에너지를 생산하는 식이다. (국경선을 넘어서는) 이런 아주 긴밀한 협력에 현실적 어려움이야 있겠지만, 유로존 차원의 행동이 이뤄진다면 유럽은 훨씬 매력적인 투자처가 될 것이다.”

-한국 경제는 어떨 것으로 보나.

“한국의 가장 큰 장점은 첨단 산업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등 다양한 영역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유럽이 뒤처져 있는 동안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다져온 셈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에서 가장 큰 성공 스토리는 한국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술 선점을 위한 경쟁이 나날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지금의 성공을 앞으로도 이어나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히 지정학적 여건이 한국의 단점이다. 우방국에 둘러싸여 있는 유럽 주요국과 달리 한국은 바로 옆에 중국이, 위로는 러시아가 있다. 이 때문에 일본과 긴밀한 협력이 현실적이라고 본다.”

☞브뤼겔연구소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브뤼겔 연구소는 글로벌 경제, 금융, 정부 규제, 미래 정보 기술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는 유럽의 대표적 싱크탱크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 2005년 설립됐으며, EU 회원국과 글로벌 기업 및 기관 등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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