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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85권, 세종 21년 6월 21일 정유 3번째기사 1439년 명 정통(正統) 4년

강무를 세자에게 위임하도록 하는 논의를 하다

임금이 김돈에게 이르기를,

"내가 젊어서부터 한쪽 다리가 치우치게 아파서 10여 년에 이르러 조금 나았는데, 또 등에 부종(浮腫)으로 아픈 적이 오래다. 아플 때를 당하면 마음대로 돌아눕지도 못하여 그 고통을 참을 수가 없다. 지난 계축년 봄에 온정(溫井)에 목욕하고자 하였으나, 대간(臺諫)에서 폐가 백성에게 미친다고 말하고, 대신도 그 불가함을 말하는 이가 있었다. 내가 두세 사람의 청하는 바로 인하여 온정에서 목욕하였더니 과연 효험이 있었다. 그 뒤에 간혹 다시 발병할 때가 있으나, 그 아픔은 전보다 덜하다. 또 소갈증(消渴症)이 있어 열 서너 해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역시 조금 나았다. 지난해 여름에 또 임질(淋疾)을 앓아 오래 정사를 보지 못하다가 가을 겨울에 이르러 조금 나았다. 지난봄 강무(講武)한 뒤에는 왼쪽 눈이 아파 안막(眼膜)을 가리는 데 이르고, 오른쪽 눈도 인해 어두워서 한 걸음 사이에서도 사람이 있는 것만 알겠으나 누구누구인지를 알지 못하겠으니, 지난봄에 강무한 것을 후회한다. 한 가지 병이 겨우 나으면 한 가지 병이 또 생기매 나의 쇠로(衰老)함이 심하다. 나는 큰 일만 처결하고 작은 일은 세자로 하여금 처결하게 하고자 하나, 너희들과 대신들이 모두 말리기에 내가 다시 생각하매, 내가 비록 병이 많을지라도 나이가 아직 늙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가볍게 말을 낸 것을 후회한다. 다만 강무(講武)는 나라의 큰 일이고 조종께서 이미 세우신 법이다. 하물며 이제 동서(東西) 두 국경의 수어(戍禦)를 바야흐로 일으켰으니, 군자의 준비를 늦출 수야 있겠느냐. 내가 지난번에 세자로 하여금 강무하게 하려고 하였더니 대신들이 말리고 너도 역시 말렸는데, 나는 그 옳은 줄을 알지 못하겠다. 하물며 이제는 쇠하고 병이 심하여 금년 가을과 내년 봄에는 친히 사냥하지 못할 듯하니, 세자로 하여금 숙위(宿衛) 군사를 나누어서 강무하게 하고, 군중의 일은 병조의 당상(堂上) 한 사람과 병방 승지(兵房承旨) 한 사람이 같이 의논하여 처결하며, 만일 큰 일이 있거든 세자에게만 고할 뿐이다. 종친은 5, 6명에 지나지 말고, 사복(司僕)도 반(半)으로 나누어서 역마(驛馬) 1백여 필로 하면 강무의 큰 일을 폐지하지 아니하고 폐를 덜 것이니, 너희들은 병조의 당상과 더불어 사목(事目)을 의논하여 아뢰라."

하니, 김돈이 대답하기를,

"예로부터 세자는 군부(君父)의 곁을 떠나지 아니하였습니다. 신이 지난번에 아뢰기를, ‘현시로써 말하오면, 세자가 비록 삼군(三軍)의 군사를 거느리고 온 나라에 행할지라도 누가 의심하고 다른 마음을 가진 이가 있겠사옵니까마는 후세에서 예사로 삼아 행한다면 반드시 소인(小人)이 있어 이간하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하오매, 전하께서 신에게 이르시기를, ‘네 말이 옳다. 나와 태종(太宗) 사이에도 박습(朴習)·이관(李灌) 등의 무리가 있었다. ’고 하셨으므로, 신은 생각하기를, 전하께서 이런 의논을 다시 내시지 않으시리라고 하였삽더니, 이제 다시 상교(上敎)를 받자오니 이는 행할 수 없는 일이옵니다."

하고, 여러 승지가 모두 아뢰기를,

"진실로 의 아뢴 바와 같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강무는 중대한 일이며 세자는 내 아들인데, 세자로서 강무함이 무엇이 불가함이 있겠느냐. 춘추 시대(春秋時代)에 정벌(征伐)을 회맹(會盟)하였는데, 나라의 임금이 병이 있으면 세자 및 대부(大夫)가 회맹에 참예하였으니, 나의 뜻이 이미 결정되었다. 너희들은 병조 당상관과 더불어 사목을 의논하여 바치어라."

하니, 이 아뢰기를,

"춘추 시대에는 열국(列國) 중에서 만약 회맹에 참예하지 아니하면 열국에서 맹서(盟誓)를 배반하였다고 책하였으므로, 그 세자가 모임에 참예한 것은 부득이한 일이었사오니 나라 안에서 군사를 거느리는 것과 비교할 것이 아니옵니다. 또 전하께서 나라 안에 계시고 세자가 입조(入朝)하는 예(例)도 아니오며, 이 전에 없는 일이오니 대신에게 알리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먼저 가부를 의논한 뒤에 그 사목을 선택하는 것이 옳을까 하옵니다."

하매, 임금이 말하기를,

"너희들이 말하는 춘추 시대의 일은 그러하나, 속히 사목(事目)을 선택하도록 하라. 내가 장차 사목을 가지고 대신에게 의논하도록 하겠다."

하였다. 이에 병조 판서 황보인(皇甫仁)·참판 신인손(辛引孫)과 더불어 의논하니, 황보인이 아뢰기를,

"태자의 직책은 무군(撫軍)과 감국(監國)이온데, 따르는 것[從]을 무군이라 이르고 지키는 것[守]을 감국이라 하오며, 태자(太子)가 국경안에서 군사를 거느린 것은 있지 아니하였습니다. 원컨대, 먼저 대신들과 그 가부를 의논하옵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 뜻을 이미 결정하였는데, 경 등이 옛 글에 없는 바라고 말하니, 재촉하여 집현전으로 하여금 옛 글을 상고해 올리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7책 85권 43장 A면【국편영인본】 4책 220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국왕(國王) / 군사-병법(兵法) / 역사-고사(故事) / 보건(保健)

○上謂金墩曰: "予自少一脚偏痛, 至十餘年而少愈, 又患背浮腫久矣。 當痛之時, 不能隨意輾轉, 其苦不可忍。 去癸丑春, 予欲浴於溫井, 臺諫有言弊及於民, 大臣亦有言其不可者, 予因二三人之請, 浴於溫井, 果有效驗。 其後雖或復發, 其痛則減於前矣。 又患消渴已十三四年矣, 而今亦小愈。 去年夏, 又患淋疾, 久不視事, 至秋冬小愈。 去春講武後患左目, 以致翳膜, 右目亦因而昏花, 跬步之間, 但知有人, 而不辨爲某某也, 悔予去春之講武也。 一病纔愈, 一病又生, 予之衰老甚矣。 予欲但決大事, 而小事則令世子處決, 爾等與大臣皆止之。 予更思之, 予雖多病, 年今未老, 悔予輕易發言也, 但講武則國之大事, 而祖宗已立之法也。 況今東西兩界, 戍禦方興, 武備其可緩乎? 予於向者, 欲令世子講武, 大臣止之, 汝亦止之, 吾不知其可也。 況今衰病甚矣, 今秋及來春, 似不能親狩, 欲令世子分宿衛軍士, 以講武事, 其軍中之事則兵曹堂上一人、兵房承旨同議處決, 如有大事, 則但告世子而已。 宗親不過五六, 司僕亦分半驛馬百餘匹, 大事不廢, 而弊則除矣。 爾等與兵曹堂上擬議事目以啓。" 金墩對曰: "自古世子不可離君父之側。 臣向者啓云: ‘以當世言之, 世子雖率三軍之士, 擧國而行, 孰有疑貳之心乎? 後世以爲常事而行, 則必有小人之離間者矣。’ 殿下謂臣曰: ‘汝言是矣。 吾與太宗之間, 亦有朴習李灌等輩。’ 臣以爲殿下更不出此議也。 今復承上敎, 是不可行之事也。" 諸承旨皆曰: "誠如所啓。" 上曰: "講武, 大事也; 世子, 吾子也。 以世子講武, 何不可之有? 春秋會盟征伐, 國君疾病則世子及大夫與會。 予意已決, 汝等與兵曹堂上議事目以進。" 曰: "春秋之世, 列國若不與會, 則列國責以背盟, 其世子之與會, 不得已也, 非帥師境內之比也, 又非殿下在國中而世子入朝之例。 前此所無之事也, 不可不令大臣知之, 必須先議可否, 然後撰其事目可矣。" 上曰: "爾等所云春秋之事, 然矣。 然速撰事目, 予將以事目議諸大臣。" 於是與兵曹判書皇甫仁、參判辛引孫議之。 等啓曰: "太子之職, 撫軍監國, 從曰撫軍, 守曰監國, 未有太子帥師於境內者也。 乞先與大臣議其可否。" 上曰: "予意已決, 然卿等云: ‘古書所無。’ 促令集賢殿稽古文以進。"


  • 【태백산사고본】 27책 85권 43장 A면【국편영인본】 4책 220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국왕(國王) / 군사-병법(兵法) / 역사-고사(故事) / 보건(保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