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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면캡쳐
나는 MBC 오락 프로그램 <무한도전>을 보면 10년 전 영국 영화 <풀 몬티(The Full Monty >가 생각난다. 'full monty'란 영국 속어로 발가벗은 알몸뚱이를 뜻한다고 한다. 영국 노동계급의 일상이 피폐해지는 것에 대한 영화는 꽤 많으나 이 영화처럼 극적으로 쾌감을 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것이 혹여 알몸뚱이에 대한 저속한 관심이 개입했다고 해도 영화를 다 본 후엔 드는 감정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뿌듯함이기 때문에 더욱 성공적이다. 사실 마지막에 연령 다양한 실업자 '찌질이' 남자 6명의 다 벗은 몸에 남아 있던 모자까지 휙 날려버릴 때, 거기가 보였는지 안 보였는지에 신경 쓰는 사람은 없다. 그들의 몸이 근육질의 젊은 몸이 아니라고 해서 야유하는 사람도 없다. 다만 아낌없이 환호할 뿐이다.

<무한도전>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각설하고, 현재 <무한도전>은 명실상부 인기 프로그램 중 하나다. 이렇게 화제가 되고 인기를 얻기까지 절치부심한 시기를 상당히 견뎌야 했던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말하기 부끄러운 시청률에, 하는지 안 하는지 돋보이지 않는 내용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이 없어지지 않았던 것은 단지 대체할 프로그램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무한도전>의 생존은 경이롭다.

내가 <무한도전>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고정 출연자들 중에서 하하와 정형돈의 어색한 관계를 다른 멤버들이 중재하고자 했던 '빨리 친해지기 바래'부터였다.

설정된 각본으로 연예인을 대놓고 속이면서 그들의 일상적인 공간을 훔쳐보고 의외의 모습들을 구경하고자 하는 것이 몰래카메라다. <무한도전>은 이 형식을 빌려와서 출연진들의 사적인 관계를 프로그램의 소재로 삼았다. 그러더니 하하와 형돈을 남산으로 불러내어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도록 한다. 둘은 닭살 돋는 애정행각(?)을 벌이는데 이 어색함의 극치가 프로그램의 주된 내용이 된다.

어색함이 주된 내용이라니? 여기서 여타 오락프로그램들과 <무한도전>의 다른 점을 볼 수 있다. '리얼 버라이어티 쇼'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면서 그들이 창조한 것은 새로운 오락적 요소다. 대개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람들은 실제로 서로 친하지 않아도 친한 척 할 것이고 시청자들은 그걸 예상하면서도 프로그램 안에서 친하게 구는 것을 의례 자연스럽게 볼 것이다.

그런데 <무한도전>은 출연자들 간의 사적인 관계를 통상적이지 않은 측면으로 까발린다. 멤버들은 대놓고 안 친하다고 말한다. 심지어는 1인자, 2인자를 가리고 이해관계에 따라 줄을 선다. 다른 오락프로그램이 형성해 놓은 일반적이고 암묵적인 룰을 깨는 것이다. '허, 웃기네. 얘네들 뭐 하는 거야?' 이런 호기심은 <무한도전>이 다른 프로그램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관심을 받게 만드는 동력이 되었다.

집단적 '찌질함'에서 개별적 캐릭터 형성까지

@BRI@<무한도전>의 시청률이 크게 뛰어오르고 숱한 화제를 양산하게 되면서(그 중의 으뜸은 반장 유재석의 연애 소식이다). 이 프로그램의 인기에 대한 분석글도 많이 나왔다. 그 글들의 대략적 공통점은 무한도전 멤버들의 캐릭터화에 대한 것인데, 나도 여기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빨리 친해지기 바래' 편은 몰래카메라의 형식을 빌려왔지만 성격은 다르다. 몰래카메라는 어이없고 무례한 일을 당해도 화내지 않거나 부당한 상황에서는 적당히 분노를 표출하는, 공인으로서 품위를 지키는 선에서 한 사람만 모르고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상황극이다.

착한 연예인들의 행동은 이제 오락적인 재미가 크게 떨어진다. 그런데 무한도전은 "무한이기주의"를 표방하며 자기 돋보이기에 열중한다. 그래도 이것이 꼴사납지 않고 재미있는 것은 고정출연자들의 캐릭터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이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전부 '찌질한' 것들이다. 몇 차례 변신을 겪었지만, 처음부터 출연자들은 멋지고 근사한 캐릭터들이 아니었다. <무모한 도전> 때도 별 웃기지도 않는 것을 도전이랍시고 하면서 버벅거리고, 자빠지고, 그러다 지고, 그래도 다시 화이팅한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 당시와 지금의 차이점은 집단적 찌질함의 이미지에서 분화되어 개별적인 캐릭터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이 많아도 어른스럽기는커녕 잘난 척만 해대는 아버지 캐릭터(박명수), 덩치는 산도적 같으면서 귀여운 척하며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는 식신 캐릭터(정준하), 바바리를 땅에 질질 끌고 다니는 단신이지만 그 안에서는 꽃미남이라고 으쓱대는 꼬마 캐릭터(하하), 말은 엄청 많지만 쓸 말 적고 행동은 야무지지 못해서 몸개그로 승부하는 퀵마우스 캐릭터(노홍철).

하나 같이 자랑스러운 아들이거나 믿음직한 남편이거나 존경스러운 아버지와는 거리가 '겁나' 멀리 떨어져 있다. 특히 정형돈은 어떤 말을 해도 웃기지 않고 어색하다는, 오락 프로그램의 출연자로서는 치명적인, 더구나 본업이 개그맨은 입장에서는 자기 정체성마저 의심하게 되는 특징을 캐릭터로 승화(!)시켰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지금 정형돈은 어색해서 구박 받는 캐릭터를 하고는 있지만 남을 웃기는 재간이 뛰어난 개그맨이었다. 그런데 초반의 건방진 뚱보라는 캐릭터는 온전한 찌질이가 되기에 적당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들 중에서 가장 번듯한 외양의 노홍철도 그 무리에 섞이면 영락없이 오합지졸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런 굴욕을 감수할 수 있을 만큼 <무한도전> 안에서의 캐릭터는 시청자들에게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세계 평화나 호연지기와는 전혀 상관없다.

각박한 세상, 유쾌한 웃음 주는 <무한도전>

매주 벌어지는 이 찌질이들의 합창의 주제는 바로 이것이다. 평균보다 잘나지 못하고 평균보다 잘하지 못하고 평균보다 잘되지 못하는 인간들이지만, 모여서 함께 놀면서 신나고 즐거운데, 이것이 구겨져 사는 것보다 훨씬 좋지 아니한가.

이들은 무엇을 하든 유쾌하다. 디자이너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지만 요즘 시대 잘 빠진 사람들의 대명사인 모델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패션쇼 무대에 섰던 적도 있고, 얼마 전에는 잘 나가는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처럼 둥글게 둘러 앉아 무한 백분 토론도 벌였다. 모델의 체형에 얼마나 근접 했는가 혹은 토론의 내용이 얼마나 알찼는가는 사실 아무 의미 없다.

잘나지 못했다고 숨지 않고, 잘하지 못했다고 위축되지 않고, 잘되는 일 하나도 없다고 우울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잘나지 못한 사람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만성 실업의 시대에 잘 나지 못하고 잘 나가지 못하고 앞으로 당분간은 잘 될 일도 없어 보이는 많은 청년들과 부모들에게도 위축되지 않고 즐겁게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무한도전>을 보면서 영화 <풀 몬티>가 생각나는 이유는 어딘가 조금씩 빠지는 남자 6명이 주인공이어서만은 아니다. 어떤 일을 하는가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고 돈을 얼마나 버는가에 따라 행복 지수가 달라진다고 믿는 사회에서, 직업을 간절히 원하면서도 얻지 못하는 부박한 인생들이 우울증에 빠지지 않고 유쾌함을 길어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것은 보여줄 것 없는 몸을 기꺼이 다 보여주는 영국의 남자들처럼, 잘난 구석 없는 자기를 한껏 추겨 주며 인생의 에너지를 만끽하는 것이다. 실업문제를 감당하느라 인생이 우울해지는 것보다는 잘난 것의 기준을 내 맘대로 바꿔보는 게 더 건강하다. 삶은 그지없이 굴욕적이지만 누가 뭐라든 나는 충분히 유쾌하다. 주눅 들지 마, 그게 나의 힘이야.

덧붙이는 글 | TV리뷰 응모기사


태그:#TV, #방송 프로그램, #무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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