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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국민드라마’ 부재시대

[한겨레] ‘주말드라마’가 드라마의 고갱이었던 때가 있었다. 문화방송 <사랑이

뭐길래>는 코믹하면서도 통렬한 세태풍자로 전 국민의 눈길을 붙잡았다.

닐슨미디어 조사에선 92년 5월24일 최고 시청률이 무려 64.9%를 기록했다. 88년

서울올림픽과 국회 5공비리 청문회를 뛰어넘는 시청률이었다. 40, 50대 남성들은

‘대발이 아버지’의 불호령에 가슴 시원한 대리만족을 느꼈고, ‘대발 어머니’의

은근한 저항에는 동시대 아주머니들의 비원이 실려있었다. 96년 한국방송엔

<첫사랑>이 있었다. 그 가슴저린 사랑 얘기는 시청률 60%를 오르내리며 숱한

연인들의 발길을 바깥 나들이 대신 텔레비전 앞에 묶어두기도 했다.

주말드라마의 화려했던 영광이 옛말이 된지도 오래된 느낌이다. 2000년 이후

주말드라마로 ‘국민 드라마’급 반열에 오른 작품은 찾아볼 길이 없다. 8시대

주말연속극 가운데 시청률 30%를 넘어선 것은 한국방송 <보디가드>와 문화방송

<여우와 솜사탕>이 전부다. <보디가드>는 차승원의 개인적 인기에 힘입은 점이

크고, <여우와 솜사탕>은 김수현 작가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법원판결까지 받은

드라마다.

시청률 하락은 시청자 생활리듬의 변화 때문에 생겨난 어쩔 수 없는 추세라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각종 바깥활동이 활발해지고, 주 5일제 등으로 주말

나들이족이 늘어난 탓이라는 것이다. 요즘 누가 주말에 텔레비전 보고

앉아있느냐는 얘기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견해를 조심스레 반박한다.

시청률 조사기관인 티엔에스리서치 분석 결과를 보면, 주말드라마의 전반적 하락

추세는 뚜렷하다.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을 합친 8시대 주말드라마의 전체 시청률은

2000년 1월 46%대에서 20004년 6월 33%대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전체 텔레비전 사용량은 60%대 초반에서 60%대 후반으로 약간 높아지는 추세다.

텔레비전을 보는 가구 비율은 늘어난 반면, 주말드라마 시청인구는 경향적으로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채널과 프로그램으로 리모콘을 돌리는 시청자가

그만큼 많아졌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 그래서 다시 내용이다. 2000년대 들어 주말드라마 가운데 시청자들

사이에 화제를 뿌린 ‘화제작’ 또는 ‘문제작’은 찾아보기 힘들다. 중년

유부남과 20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표민수 피디의 <푸른안개> 정도가 유일하게

눈에 띈다. 에스비에스의 9시대 드라마로 외연을 넓혀봐도 <발리에서 생긴 일>

정도가 추가될 따름이다. 이게 더 큰 문제일 수도 있다. 주말드라마가 쇠락하고

있다는 가장 뚜렷한 증거일 수 있어서다.

<진주목걸이>와 <애정의 조건>, <회전목마>와 <장미의 전쟁>. 최근 전파를 탔거나

타고 있는 주말드라마들이다. 주말드라마 특유의 활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가족이

함께 보는 훈훈한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고, 그렇다고 힘있는 화제거리를

던져주지도 못한다. 불륜과 꼬인 가족관계 소재에, 이야기와 화면은 일일연속극을

닮아 왜소해지고 있다. 주말드라마의 분발이 필요한 시점이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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