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10월 시나위 보다 8개월 뒤 부활이 '희야'로 데뷔했다. 김태원(기타), 이태윤(베이스), 황태순(드럼), 이지웅(기타), 이승철(보컬)로 짜여진 부활은 이미 언더그라운드에서 검증을 마친 팀으로 음반을 내기 전부터 음악 잘 한다고 소문이 나 세종문화회관 별관에서 콘서트를 열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오버그라운드로 올라오자 기타를 강조한 밴드였던 부활은 시나위, 백두산,블랙 홀, H20 등과 더불어 그 무렵 붐을 이룬 젊은 헤비 메탈 밴드의 선두주자로 꼽혔다.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삽입한 '인형의 꿈' 같은 곡 때문에 1960년대 후반 영국에서 유행했던 클래시컬 록 밴드라는 상반된 별칭도 붙었다.
하지만 부활은 엄밀하게 말하면 헤비 메탈 밴드도 클래시컬 록 밴드도 아니었다. 1985년 결성한 전신 디 엔드 때부터 현재까지 17년 동안 부활을 이끌고 있는 김태원(37) 역시도 “당시 록의 주류가 헤비 메탈이었으니 우리 음악이 헤비 메탈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또 우린 클래식 편곡을 좋아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활의 지향은 예나 지금이나 멜로디가 있는 록이다. 부활은 헤비 메탈이라기 보다는 그냥 록 밴드”라고 말한다.
김태원의 말대로 부활의 음악은 귀에 익은 1970년대식 록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시나위의 정통 헤비 메탈처럼 당대에 유행하는 록도 아니었다. 김태원이 만드는 음악은 기본적으로 어두웠지만 기타 등 연주에서는 기교가 많아 화려한 느낌이 났다. 힘보다는 슬픈 감상이 앞섰다. 노랫말 역시 뚜렷한 메시지보다는 사랑 이야기를 비롯해 어떤 상황에도 꿰어 맞출 수 있는 가볍고 은유적인 표현들이었다. 한마디로 여성적이었다. 특히 록 밴드로서는 드물게 자작곡이 아니라 작곡가 양홍섭에게 받은 타이틀 곡 '희야'는 록이라기 보다는 발라드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희야'를 부르는 이승철의 보컬은 록 보컬리스트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부드럽고 윤기가 흘러넘쳤다. 고음의 소리를 지른다기 보다는 마음의 밑바닥을 울리되 화려하고 세련된 목소리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각시탈, 마파람, 파이오니어, 상록수 등의 록 밴드에서 단련되었지만 타고난 음색은 어쩔 수 없었다. 이승철(36)은 어려서 록을 들을 때도 블루스 계열을 많이 들었고 부활 이전 헤비 메탈 밴드에서 노래할 때도 레인보우의 '레인보우 아이즈' 같은 발라드를 훨씬 더 잘했다고 말한다. 원년 보컬이던 김종서가 군에 입대하는 바람에 보컬을 찾고 있던 김태원이 딥 퍼플의 'Soldier Of Fortune'으로 오디션을 본 한동네 후배 이승철을 망설이지 않고 선택한 것도 그의 음색 때문이었다.
“무조건 고음을 질러대는 록 보컬리스트보다는 '한국적 정서'에 맞는 음색의 소유자를 찾고 있었거든요.”
이후 멜로디를 중시한 김태원의 작곡은 이승철의 보컬과 묘한 울림을 이루며 록을 잘 듣지 않던 사람들까지 끌어 당겼다. 두 사람은 “그 때는 잘 몰랐는데 딱 붙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라고 서로를 인정한다.
부활은 시나위처럼 방송을 마다하기는 커녕 오히려 카메라 앞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가요판에서 잔뼈가 굵은 이가 매니저를 맡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멤버들 역시 굳이 마다하지 않았다. 발라드 멜로디에 애절한 보컬, 왕성한 방송 활동은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이후 생겨난 오빠 부대를 사로잡았다. 이승철이 노래의 첫 마디인 '희야'를 부르기만 하면 소녀 팬들의 비명이 어김없이 터져 나왔다. 음반은 1집과 이듬해 발매한 2집이 연속 빅 히트를 기록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부활의 음악은 헤비 메탈도 심지어 록도 아니다”라며 비난했다.
이에 대해 김태원은 한국적 록에 대한 나름대로의 고민이었다고 말한다. 한국인의 정서를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음악은 어떤 음악이냐보다는 들려지고 들으면 되는 것이라는 이승철의 단순하고 편한 논리도 한몫 거든다. 당대 최고의 테크닉으로 인정받는 김태원의 기타를 앞세운 연주력에 자신이 있기 때에 할 수 있는 소리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지금도 무엇이 정통 록이냐. 록, 록 밴드에 대한 규범이 없어야 하고 누군가는 나서서 연예인으로서 록에 대한 이미지, 인식부터 심어주어야 록도 발전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확실히 부활은 1980년대 중반 그런 역할을 했다.
하지만 부활이 터놓은 스타 록 밴드의 맥은 이어지지 못했다. 부활은 1988년 밤무대 활동 여부를 놓고 의견이 엇갈린 이승철과 김태원이 결별하며 해체했다. 김태원의 팀이라고 할만큼 확실한 리더였던 김태원에 대중적인기를 등에 업은 이승철이 맞서게 되면서 모든 것이 180도 달랐던 두 사람은 갈등할 수 밖에 없었다. 록은 1990년대 들어 댄스에 밀려 하루 아침에 몰락했다. 이후 수많은 록 밴드 출신들은 록을 하지 못하고 대신 '록 발라드'라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새로운 장르로 우회해야만 했다. 막막한 앞길에 부활의 대중적 성공이 모범답안이 됐음을 물론이다. 그런 점에서 부활은 1980년대 중반 한국 록의 부흥을 가장 화려하게 상징하는 밴드이기도 하지만 이후 한국 록의 기형적 구도에 '본의 아니게' 기여한 팀이기도 하다.
부활 역시 1990년대 내내 부침을 겪었다. 해체하면서 부활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기로 약속했지만 1994년 김태원은 부활 3집을 내고 더욱 애절해진 록 발라드 '사랑할수록'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후 계속되는 멤버 교체 속에서도 홀로 부활을 이끌었던 김태원은 2002년 결국 다시 이승철과 손을 잡았다. 이승철이 설립한 루이 엔터테인먼트의 첫 작품으로 13년만에 함께 부활의 8집 '새벽'을 내놓았다. 타이틀 곡 '네버 엔딩 스토리'를 비롯한 노래들은 김태원의 애잔한 멜로디와 이승철의 울림이 많은 보컬이 기본적으로는 1,2집의 연장선상에 있다. 한결 완숙해지고 힘을 뺀 이승철의 절제미가 돋보이긴 하지만. 그 때를 기억하고 음반을 사주는 이들도 많지만 부활이 결성할 무렵 태어나 이승철에게 “열심히 하면 제 2의 조성모가 될 수도 있겠다”는 용감한 멘트를 날리는 지금의 10대들에게도 부활의 음악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음반과 공연 모두 성공을 거두었다. 이승철은 원래 스페셜 음반으로 한 장만 내려 했는데 회사 홍보를 위한 이벤트가 아니냐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5년은 같이 하기로 했다고 말한다.
부활에게는 여전히 대중이 좋아하는 음악으로 일단 록과 록 밴드를 알려야 한다는 역할이 주어져 있다. 마흔을 바라보는 이제는 나이 많은 팀은 안된다는 요지 부동의 선입견을 깨야 한다는 것이 하나 더 얹혀졌지만. |
부활 (Born Aga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