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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특진 50명” 내걸고, 정부 ‘건폭몰이’ 맞장구쳤다

2023.05.04 06:00 입력 2023.05.09 11:33 수정

전세사기’ 30명보다 훨씬 많아···시·도청, 일선 경찰 대거투입

구속자 적고 조폭 동원 갈취 무관한데 ‘양대노총 단속’ 강조

<b>분신 장소에 헌화하고 “투쟁”</b>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앞두고 분신해 숨진 민주노총 건설노조 간부의 유서 일부가 공개된 3일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정의당 등 진보정당, 시민단체 회원들이 분신 장소에 헌화하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분신 장소에 헌화하고 “투쟁”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앞두고 분신해 숨진 민주노총 건설노조 간부의 유서 일부가 공개된 3일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정의당 등 진보정당, 시민단체 회원들이 분신 장소에 헌화하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절에 건설노동자가 ‘건설노조 탄압 중단’을 호소하며 분신한 뒤 하루 만에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자 경찰의 무리한 수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건설현장의 특수성과 구조적 원인을 도외시한 채 정부의 ‘건폭몰이’에 발맞춰 대규모 특진까지 내걸고 모든 책임을 노조에 묻고 있다는 것이다.

건설노조를 상대로 한 경찰의 전방위 수사는 지난해 11월 본격화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을 ‘국민체감 3호 약속’으로 선언했다. 윤 청장은 지역 관서까지 내려가 건설현장 불법행위 단속 성과를 올려 특진한 경찰관의 새 계급장을 직접 달아줬다. 경찰 내에서도 ‘이례적 행보’라는 반응이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 ‘건폭’이라는 신조어까지 동원하며 “건설현장의 법치를 바로 세우라”고 지시한 이후 경찰의 수사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

경찰이 건설현장 불법행위 특별단속에 내건 특진 규모도 파격이었다. 경찰청은 올해 국가수사본부에 배당된 전체 특진자 510명의 10분의 1에 달하는 50명을 건폭 수사에 할당했다. 건폭 특진이 단일 수사 부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컸다. 전세사기 특별단속 특진자는 30명이 배당됐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 1∼2월 경찰 특진자는 모두 19명인데 이중 13명은 전세사기, 6명은 건설현장 불법행위 수사 공로로 진급했다.

경찰은 지난해 12월8일부터 오는 6월25일까지 200일 동안 ‘건설현장 폭력행위 특별단속’을 진행한다. 특별단속에는 전국 시·도 경찰청과 일선서 수사경찰관들이 대거 투입됐다.

경찰이 성과·실적 쌓기에 치중해 무리한 수사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특히 ‘건설현장 폭력행위’보다 ‘건설노조 폭력행위’를 부각하는 것을 두고 ‘도를 넘은 코드 수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경찰은 지난 3월9일 특별단속 중간 결과를 발표하면서 단속 대상(2863명)의 77.3%가 양대노총 소속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당시 검찰에 송치된 102명 중 63명, 구속된 29명 중 12명이 양대노총 소속이었다. 단속된 양대노총 조합원 2214명 중 송치는 2.8%, 구속은 0.5%에 그쳤다. 수사를 통해 확인된 범죄 혐의보다 양대노총 조합원을 얼마나 많이 조사했는지를 알리는 데 강조점을 둔 발표였다. 경찰이 부각한 조폭 일당의 갈취 등 사례도 양대노총과 무관했다. 당시 브리핑에서 조폭이 개입된 불법행위 적발 가운데 관련된 양대노총 조합원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경찰은 “없다”고 했다.

노동계는 경찰이 월례비·전임비 등 건설현장의 특수성에서 기인한 요구마저 불법으로 낙인을 찍었다고 비판한다. 건설현장마다 지급 구조와 기준이 다른 데다, 월례비의 경우 사실상 임금 성격의 돈이라는 판례도 나온 만큼 이를 섣불리 범죄로 규정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중간 수사 결과 발표에서 단속행위 대부분(75.2%)은 전임비·월례비 등 ‘금품갈취’였다. 분신 사망한 A씨(50)도 조합원 고용과 노조 전임비를 요구한 혐의(공동공갈)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터였다. 법원은 지난 1일 A씨의 분신 이후 A씨를 포함한 건설노조 전·현직 간부 3명의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3일 “월례비·전임비와 관련해 형사·사법의 관점에서 수사하고 있다”며 “월례비 등을 지급하기로 계약하는 것은 민사의 영역이지만, 그 과정에서 강요·협박·폭행 등 불법적 요소는 없었는가를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특별단속 대상에 사측의 불법행위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 “사측의 불법적 행위가 적발되면 담당부서나 관계부처에서 당연히 조사하게 된다”면서 “다만 이런 부분은 저희가 지휘하는 영역이 아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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