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하락에 임상시험 지연까지… '의대 정원 파장'에 속타는 제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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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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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공백 후폭풍 上] 제약업계에 다가오는 문제들
의대 정원 확대를 둔 의정갈등이 임상시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임상시험이 중단될 경우, 각종 항암제와 신약 등의 국내 도입이 지연 또는 무산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의대 정원 확대 문제로 정부와 의료계의 강대강 대치가 길어지면서 환자들만큼이나 속 타는 이들이 있다. 바로 제약업계다. 환자 수 감소는 단순히 약 사용자 감소로 인한 매출 하락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신약 출시의 필수 단계인 임상시험까지 어려워질 수 있다. 임상시험을 책임지는 의대 교수들은 사표까지 던진 상태다. 제약업계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항암제·신약 임상 타격 커… 기약없는 임상시험 개시
현재 전공의 이탈, 의대 교수 사직서 제출 등으로 인해 임상시험에 타격을 받은 제약사는 대부분 항암제나 신약의 비중이 높은 글로벌 제약사다. 회사마다 차이는 있으나 일부 회사에선 임상시험 무기한 연기까지 걱정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은 치매 신약 '도나네맙'을 보유한 ‘일라이 릴리’다. 본래 도나네맙은 5월 중 환자 모집을 마무리하고 6월 중 임상시험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진료축소로 환자 모집이 어려워지면서 임상시험 시작 시점이 불투명해졌다. 일라이 릴리 관계자는 "도나네맙 임상시험이 무산되진 않을 것이다"며 "물론 환자 모집에 어려움을 겪는 건 사실이라, 사실상 임상시험이 무기한 연기되면서 임상시험 개시에 어려움은 있다"고 밝혔다.

항암제를 다수 보유한 제약사의 사정도 비슷하다. 익명을 요구한 또다른 글로벌 제약사 관계자는 "항암제는 타과 협진이 필요한 절차가 있어 전공의 파업이 임상 개시와 등록에 영향이 있는 경우가 있다"며 "타과 협진 의뢰에 차질이 생기는 경우, 환자가 클리닉 등 다른 병원에서라도 검사할 수 있도록 본사와 긴밀히 소통해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은 괜찮다'고 보는 곳도 있다. 글로벌 제약사 A사 관계자는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교수의 사직이나 전공의 이탈 등으로 인해 임상시험이 중단되거나 임상시험 종료 시점을 변경해야 하는 사례는 확인되지 않는다"며 "그러나 의대교수들의 사직서가 실제로 수리되고, 전공의 복귀 지연이 계속된다면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B사 관계자도 " 임상시험은 교수들이 직접 진행하는 거라 전공의나 인턴 이탈이 있다 해도 큰 영향을 받진 않았고, 사직으로 임상시험이 어렵다는 뜻을 밝힌 의대 교수도 아직은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제약사들도 이런 상황은 처음 겪어보는 거라 본사에서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교수들이 사직하면 진행 중인 임상시험에 영향이 갈 수밖에 없을 텐데, 부디 집단 사직이 현실화하지 않고, 사태가 원만하게 해결되길 바랄 뿐이다"고 말했다.

임상시험 중단 위험은 낮다고 보고, 당장의 매출하락이 더 걱정이라는 제약사도 많았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의 수익이 대학병원에서 나오는 글로벌 제약사 몇 곳은 이 상황이 한 달만 더 지속해도 영업·마케팅 부서를 절반으로 감축해야 할 정도로 사정이 좋지 않다.

항암제를 다수 보유한 C사 관계자는 "임상시험은 정상적으로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됐으며, 매출이 더 걱정인 상황이다"고 했다. 그는 "암 등 중증진료 시스템은 거의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암환자는 정기적인 진료를 받으니 지금까지 매출엔 큰 영향이 없었다"며 "문제는 신규 환자 감소가 매출로 이어지는 시기가 다가온다는 거다"고 했다.

"환자 못 떠나" 의사들도 고민 커
실제 임상시험을 맡은 의대교수들의 상황은 어떨까? 사직서를 제출했더라도 상황 개선을 기다리며 예정대로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의대 교수들은 자신을 믿고 임상시험 참여를 결정한 환자들에 대한 책임감이 컸다. 다만,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는 데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글로벌 제약사의 임상을 진행 중인 D 대학병원 교수는 "의대생이 증원될 경우 도저히 정상적인 연구와 진료를 이어갈 수 없고, 업무 과중 상태가 장기화하면서 한계가 온 상태다"며 "사직 생각이 간절하지만, 임상시험에 참여해 약 투여만 기다리는 환자를 생각하면 병원을 박차고 나갈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임상시험을 중단하거나 포기하면 국내에서 이 약을 사용할 수 있는 시점이 늦어진다"며 "사직서 제출을 망설인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도 사직하면 임상시험 진행이 어려워질 수 있단 점이었다"고 밝혔다.

모 약의 적응증 확대를 위한 글로벌 임상을 진행 중인 E 대학병원 교수도 "수리가 된 건 아니지만, 사직서를 제출한 상태라 제약사에서도 계속 문의를 하는데, 상황이 계속 변하고 있기에 일단은 임상시험에만 집중하겠다고 했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 국민이 약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다"며 "현재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E 대학병원 교수는 "병원이 심각한 적자 상태라 어쩔 수 없이 병원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더 걱정이다"며 "빨리 상황이 해결되어 임상시험은 물론, 진료도 정상적으로 할 수 있길 간절히 희망한다"고 했다.

한편, 의대 증원 문제로 의정갈등으로 의료 공백이 장기화하면서 '빅5'(서울대·서울아산·삼성서울·세브란스·서울성모병원) 등 대학병원의 적자는 심각한 상태다. 대한병원협회가 전국 500병상 이상 수련병원 50곳을 대상으로 경영 현황을 조사한 결과 지난 2월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후 병원당 의료수입은 평균 84억7670만 원 감소했다.

특히 1000병상 이상 의료기관의 의료수입은 전년 대비 19.7% 줄었다. 서울아산병원은 최근 한 달 간 511억 원 손실을 봤고, 상황이 연말까지 이어지면 순손실만 4600억 원에 달한다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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