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님, 편히 눈 감으세요"…남겨진 두 고양이, 가족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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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4.04. 오전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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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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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살리려 화마 뛰어들다 순직한, 故(고) 박수훈 소방관 키우던 '흰둥이'와 '두부'
팅커벨프로젝트서 구조된 뒤, 고양이 키우는 좋은 집사에게 함께 입양
새 이름은 '로이'와 '레이'…"2022년 무지개다리 건넌 아이 생각나 끌려, 이름 부르니 벌써 옵니다"
고 박수훈 소방관님의 고양이, 두부와 흰둥이. 좋은 가족을 만났다./사진=시내씨
"소방관님께서 고양이들에게 인사하고 나가셨을 거잖아요. '갔다 올게'라고요."

시내씨가 조심스레 짐작하며 말했다. 떠올린 건 아침에 출근하는 평범한 장면이었을 거였다.

가족은 셋이었다. 아빠는 소방관이었다. 두 고양이가 함께 살았다. 새끼 때부터 그랬다. 고된 시험 공부도 함께했고, 소방관이 된 기쁨도 같이 나누었다.

지난 1월 31일 아침, 아빠는 출근해 돌아오지 않았다. 공장에 불이 났고, 사람이 있을 수 있단 말에 주저없이 들어갔다. 평소 소방과 결혼했다던 사명감 짙었던 소방관. 아빠가 들어간 건물은 화마에 무너졌다. 이날 순직한 문경 소방서 고(故) 박수훈 소방관 얘기다.
경북 문경 육가공 공장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故 김수광 소방장과 故 박수훈 소방교의 영결식이 3일 오전 경북도청 동락관에서 엄수됐다. 동료 소방관들이 순직 소방관을 향해 마지막 경례를 하고 있다./사진=뉴스1
아빠는 언제 돌아올까. 이쯤이면 와야하는데. 두 고양이, 흰둥이와 두부는 의아했을 거였다. 현관문 앞을 서성거려도 열리지 않았다.

2주 뒤 고양이들을 데려간 건 황동열 팅커벨프로젝트 대표였다. 박 소방관 부모는 감당하기 힘든 슬픔에 고양이를 보내준다고 했다. 두 고양이를 볼 때마다 아들이 생각나 너무 괴롭다고, 죄송하다고.
고 박수훈 소방관님과 두 고양이, 두부와 흰둥이./사진=시내씨
두 달이 흘러 이 되었다. 3월 30일. 황량했던 땅에 싹이 움트고, 메말랐던 가지에 꽃이 피었다.

팅커벨프로젝트 입양센터에 손님이 찾아왔다. 흰둥이와 두부를 보러 온 거였다. 아니, 가족이 되어주겠다고 했다. 함께 살던, 박 소방관의 두 고양이를 생각해, 둘 다 데려가겠다던 좋은 사람. 그게 시내씨였다.



마지막 숨 버티다가…집사 보고 떠난 '나니'와 모습이 겹쳐서


시내씨와 11년을 함께 살았던 고양이 '나니'. 박 소방관의 고양이 '두부'와 닮았다./사진=시내씨
흰둥이와 두부의 새 가족이 되려한 마음은 뭐였을까. 시내씨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겠다.

2011년에 시내씨는 '나니'란 고양이를 만났다. 그가 독립해 혼자 살고 설 때였다. 그때 나니는 8개월이었다. 파양을 세 번이나 당했다고 했다.

"털이 많다는 이유였던 거예요. 친칠라(종)는 원래 털이 많은 건데요. 친구가 동물병원에서 일했었는데, 나니를 키워볼 생각이 없냐고 했지요. 그때 입양했어요."

그리 11년을 함께했다. 2022년 늦가을이 됐다. 나니가 갑작스레 많이 아팠다. 병원에 입원해 하루하루를 버텼다.
시내씨와 11년을 함께 살았던 고양이 '나니'. 즐거웠던 한때. 무지개다리를 건넌 뒤 깊은 슬픔에 잠겼다./사진=시내씨
나니와 함께한 마지막 날. 병원에서 빨리 오라고, 급히 연락이 왔다. 진짜 버티기 힘들 것 같다며. 회사에 있던 시내씨는 최대한 빨리, 미친 듯이 달려서 갔다. 나니는 고맙게도 버텨주었다.

생사를 오가면서도 마치 집사를 보고 가려던 것처럼. 시내씨를 보며 '그르릉'하더니 1분도 안 되어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그리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함께했던 삶에서 나니만 빠져나갔다. 시내씨 마음엔 커다란 구멍이 났다. 집이란 공간에 나니가 없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보내는 아픔이 너무 커,다른 고양이 입양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나니가 떠난 뒤 홀로 남겨진 '니나'./사진=시내씨
'나니'와 함께 키우던 친구 '니나'만 잘 키워야겠다 맘 먹었다. 그리 1년 반이 흘렀다. 지난 2월에 우연히, 박 소방관이 남기고 간 흰둥이와 두부 기사를 봤단다. 두부를 보며 무지개다리를 건넌 '나니'를 떠올렸다.



'나니'와 닮아 끌렸고, 그렇기에 또 신중히 고민했다


시내씨와 11년을 함께 산 고양이 '나니'. 그와 닮은 포켓몬스터 스티커를 붙이며 웃었던 날들./사진=시내씨
"나니가 떠날 때 그랬었거든요. 나중에, 언젠가 고양이를 가족으로 맞더라도 같은 종은 어려울 것 같다고요. 나니를 바라보고 걔를 키울 것 같은데, 그럼 나니한테도 미안하고 새로 올 친구에게도 미안하니까요."

그럼에도 나니와 닮은 두부를 보며 시내씨는 마음이 끌려갔다. 망설임 없이 입양 신청을 했다. 원래는 두부만 입양할 생각이었다.

흰둥이와 두부를 보호하고 있던, 팅커벨프로젝트에서 연락이 왔다. 신청한 지 한 달이 지났을 때였다.

"혹시, 흰둥이와 두부를 함께 입양할 생각이 없으실까요?"

시내씨의 고민이 시작됐다. 집엔 체구가 작은 7살 고양이 '니나'가 있었고, 흰둥이가 오면 덩치에 밀려 기죽지 않을까 싶어서. 새끼 때부터 동고동락하며 곁을 나눴을 두 고양이. 그러니 하나만 데려오는 것도 맘이 쓰였다. 둘 다 데려오거나, 데려오지 않는 게 낫단 생각이 들었다.

두 고양이를 만나면 결정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만나고 왔음에도 망설였다. 평생 잘 책임질 생각이기에 당연히 그랬다.
팅커벨프로젝트를 찾아, 두부와 흰둥이를 데려가는 시내씨(오른쪽)와 그의 모친./사진=팅커벨프로젝트
마음을 정한 계기는 뭐였을까. 시내씨는 이리 말했다.

"기자님 기사 보고 입양하고 싶다고 연락을 많이 주셨대요. 근데 실질적으로 끝까지 고민하시던 분이 많이 없었나 봐요. 거의 저만 남은 것 같아서, 결심하게 됐지요. 가족이 되어주기로요."



'로이(흰둥이)'와 '레이(두부)'…새 가족도, 이름도 생겼다


집에 온 흰둥이(새 이름은 로이)./사진=시내씨
두 고양이를 보내는 황동열 팅커벨프로젝트 대표도 간사들과 진지하게 고민했다. 어떤 게 흰둥이와 두부에게 행복한 결정이 될지. 시내씨 집안이 고양이를 사랑한단 게 좋았단다. 그의 어머니도 길고양이를 돌보다 입양했다고. 시내씨가 말했다.

"엄마가 아파트 단지에 새끼 고양이가 며칠 보여서 돌봐주셨대요. 주민들이 밥도 챙겨주고 경비실 근처에서 지냈나봐요. 며칠 뒤 비가 너무 많이 오는 날이었는데, 신경이 쓰인다며 데려오신 거지요."

그러니 흰둥이와 두부도, 사랑해줄 좋은 집으로 가는 거였다. 3월 끝자락에 새 가족을 만났다. 가는 길에도 '내가 잘하는 걸까' 고민하던 시내씨에게 그의 어머니가 말했다. "네가 선택한 거야. 그러니까 잘 책임져야지." 흔들리던 마음이 멈췄다.
새 가족이 생긴 '두부(새 이름은 레이)'/사진=시내씨
집도 가족도 이름도 새로 생겼다. 흰둥이는 '로이', 두부는 '레이'라 정해주었다. 소방관 아빠가 지어준 이름도, 이윽고 생(生)을 다했다.

두 고양이는 새 집에 잘 적응하며 지낼까. 시내씨에게 물었다.

"가족들이 다 좋아하며 보러 오는 거예요. 언니도 일 끝나고 보고 가고요. 애들이 진짜 성격이 강아지 같아요. '레이야' 부르면 망설임 없이 와요. 눈만 마주쳐도 오고요."
앞으로의 바람은 담백했다. 좋은 집사가 될 거란 말에, '같이 사는 사람' 정도일 거라고.

역할을 잘 마친 황 대표는 이리 말했다. 고 박수훈 소방관을 향한 말이었다.

"소방관님, 이제 두부와 흰둥이 걱정 마시고 평온히 눈 감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둘에서 혼자로, 다시 셋으로 함께하게 된 고양이들. 무탈히 평온하기를./사진=시내씨
에필로그(epilogue).

단짝이었던 '나니'를 먼저 떠나보내고 남겨졌던 '니나' 이야기.

나니가 살아 있을 때, 두 고양이는 숨숨집(몸을 숨길 편안한 공간)을 하나씩 썼단다.

나니가 떠나고, 니나는 어쩐 일인지 숨숨집을 쓰지 않게 되었다.

박 소방관의 두 고양이, 로이와 레이가 온 날. 로이는 망설임 없이 나니가 쓰던 숨숨집에 들어갔단다.

그러자 오랜 시간 숨숨집을 쓰지 않던, 니나도 다시 쓰게 되었단다.

언니 고양이가 떠난 뒤 혼자였던 니나에게도, 새로운 이 생긴 거라고.
읽어주셔서 고맙숩니다. 꾸벅. 시내씨의 고양이 니나./사진=시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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