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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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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국가는 목적이 질서와 안전의 확립이라는 점, 유지수단이 법규범이라는 점, 영토와 주권을 보유한다는 점에서 다른 사회조직과 구별된다. 국가의 역사는 서유럽에서 고대 그리스로부터 시작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폴리스를 정치·경제·종교·문화에 대한 공동체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이상적인 사회형태로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급자족을 주요특성으로 하는 도시국가를 인간이 도덕성을 함양해가는 터전이라고 생각했다. 20세기에 국가에 대한 개념은 정부가 유해하다는 무정부주의로부터 국가는 국민의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야 한다는 복지국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협의로는 통치조직을 뜻한다.

인간사회의 한 형태인 국가는 목적이 질서와 안전의 확립이라는 점, 유지수단이 법규범과 그것의 적용이라는 점, 영토가 지리적 경계를 가지고 있으며 사법권의 대상이 된다는 점, 그리고 주권을 보유한다는 점에서 다른 사회조직과 구별된다. 대개 국가는 법이라는 수단에 의거하여 분쟁을 해결하려는 개인들의 합의로 이루어진다. 미국이나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더 큰 단위 즉 연방의 권위에 종속되는 주권이 없는 통치단위(주)를 가리키기도 한다(→ 행정).

국가의 역사는 서유럽에서 고대 그리스로부터 시작된다.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폴리스(도시국가)를 정치·경제·종교·문화에 대한 공동체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이상적인 사회형태로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급자족을 주요특성으로 하는 도시국가를 인간이 도덕성을 함양해가는 터전이라고 생각했다.

언어·문화·역사를 공유하는 일정지역의 거주민들을 가리키는 그리스적 개념이 근대적인 민족개념과 유사하다면, 로마의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공화국)는 국가의 개념에 더 가깝다. 레스 푸블리카는 로마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한 법규범의 체계였다.

로마의 공화정 체제가 분열되자 유럽의 봉건영주들은 권력의 소재와 질서·안정의 확립을 두고 기나긴 투쟁을 벌였다. 근대적 국가개념이 싹튼 것은 16세기에 들어와서이다. 이탈리아의 니콜로 마키아벨리와 프랑스의 장 보댕은 국가를 '안정을 이룩하는 결집된 권력'으로 파악했다. 〈군주론 The Prince〉에서 마키아벨리는 도덕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지배권력의 유지를 최우선시하여 논의의 초점을 활력·용기·자주성 등 통치자의 능력에 맞추었다.

동시대 인물인 보댕은 힘만으로는 주권이 창출될 수 없으며 안정된 지배를 위해서는 윤리성과 함께 권력승계의 메커니즘을 통하여 연속성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댕의 이론은 유럽 절대군주제의 근거가 된 왕권신수설의 선구였으며 존 로크, 장 자크 루소와 같은 개혁사상가들이 출현할 수 있는 정신적 분위기를 형성했다. 국가의 기원과 목적은 이들에 의하여 재검토되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루소는 국가의 권위란 군주의 통치권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피치자의 일반의지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주권은 국민 자체이며 법이란 다름 아닌 전체 국민의 의지였다. 플라톤의 영향을 받은 루소는 국가를 최고선의 실현형태로 받아들였다. 현실문명의 나락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란 본래 선한 존재이며 따라서 전체의 행복을 추구하는 윤리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었다. 개인들이 각자의 목적을 추구하다 보면 공동체 내에 반목이 야기되므로 공동선(共同善)이 사회공동체의 진정한 목표로 인식될 때에만 건전한 국가가 성립하게 된다.

루소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한, 16세기 영국의 사상가인 존 로크나 토머스 홉스보다도 긍정적인 입장에 서 있었다.

홉스에 의하면 '인간의 자연상태'란 이기적이고 경쟁적인 것이다. 공동생활에서 필연적으로 야기되는 파괴의 악순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개인은 국가의 지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로크의 인간관은 홉스보다는 덜 비관적이었으나 국가는 홉스의 경우에서처럼 어떤 보호의 필요에서 생겨나며 보호의 객체는 인간이 갖는 천부적 권리였다. 로크에 따르면 국가는 사회계약의 산물인데, 개인은 생명·자유·재산 등 '자연권'을 상호침해하지 않을 것에 동의하고 그 대가로 각자의 '자유영역'을 보장받는다는 것이다.

19세기 독일 철학자 G. W. F. 헤겔은 자유영역을 곧 국가 전체로 보았다. 자유는 개인의 권리라기보다 인간이성의 결과였다. 자유는 하고자 하는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행복을 추구하는 보편의지와의 일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인간이 도덕적 주체가 되었을 때 갈등은 해소되고 각자의 목표는 일치를 이루게 된다. 개인은 국가에 편입됨으로써 비로소 가족과 경제생활의 포괄적인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국가는 헤겔에 있어서 도덕적 행위의 정점이었다. 자유로운 개인의 선택은 이성적 의지와 일치되고 사회의 각 부분들은 전체의 번영 속에서 성장한다. 헤겔은 그러나 민족주의의 위력에 매료되었다. 그는 국가간의 연맹체를 창설하여 분쟁을 종식시키고 '영구평화'를 구축하자는 임마누엘 칸트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19세기 영국의 공리주의자들은 국가를 사회구성원의 다양한 의사를 수렴하여 안정을 도모하는 인위적 장치로 받아들였다. 제러미 벤담, 제임스 등이 주장한 이 기계적인 국가관은 카를 마르크스를 비롯한 초기 공산주의 사상가들에게 이론적 기초를 제공했다. 그들에 따르면 국가란 지배계급이 무산 민중을 억압하는 수단에 불과했다.

지배계급은 국가를 통하여 경제적 우위를 지켜나갈 수 있다. 〈공산당 선언 Manifest der Kommunistischen Partei〉에서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자유와 만족의 완전한 실현을 위해 기존의 정부를 전복시키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때에 국가는 소멸되며 법이 아닌 생산수단의 사회화와 부(富)의 공정한 분배를 바탕으로 계급없는 사회가 형성될 것이다.

20세기의 국가개념은 정부란 불필요할 뿐 아니라 어떠한 식으로든 강제에 의존하게 되므로 유해하기까지 하다는 무정부주의에서, 국가는 국민들의 생존에 책임이 있으므로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야 한다는 복지국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과열된 민족주의가 세계대전을 초래한 뒤, 한스 켈젠과 오스카르 이카초 등은 국제주의 이론을 주창했다. 켈젠은 국가를 단순히 총체적인 법질서로 정의했다. 국가란 존재와 경험만으로는 인식될 수 없으므로 개인 이상의 권한을 갖지 못하며 주변국가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카초는 인간의 보편성에 기반을 두고 하나의 유기체로 기능하는 새로운 국가개념을 제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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