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나 죽인다” 日 히키코모리 공포… ‘은둔형 외톨이’ 무차별 살인

도쿄 | 박용채특파원

실업 등 자포자기 탓 ‘사회적 병리’ 비상

“7 ~ 8명 죽여 보려고…” 죄의식도 없어

“상대가 누구든 관계 없었다. 그냥 죽이고 싶었다.”

일러스트 | 성덕환기자

일러스트 | 성덕환기자

동기 불문, 대상 불문의 무차별적 살인 사건이 일본에서 잇따라 발생, 열도가 발칵 뒤집혔다. 그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현대사회의 병리현상, 이른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범죄로 인한 충격이다. 이 같은 현상은 경쟁 지상주의에서 도태된 젊은이들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지만 정작 해법은 없어 파문이 커지고 있다.

지난 25일 밤 11시쯤 일본 중부 오카야마시의 한 전철역에서 18세 소년이 남성(38)을 플랫폼으로 밀어뜨리는 바람에 진입하던 열차에 치여 사망케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소년은 경찰 조사에서 “사람을 죽이면 형무소에 갈 수 있다. 누구든지 관계 없었다”고 말했다.

앞서 23일에는 도쿄 인근 이바라키현 쓰치우라시역 대로에서 가나가와 마사히로(24·무직)가 행인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칼을 휘둘렀다. 1명이 숨지고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가나가와는 사건 직후 경찰에 전화, “나 잡아봐라”며 조롱했다. 이틀 뒤 자수한 그는 “7, 8명을 죽이고 싶었다”고 진술했으나 죄책감은 없었다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가나가와는 나흘 전인 19일에도 동네에서 노인(72)을 살해했다. 경찰 조사에서 “당초 동생을 죽이려 했지만 집에 없어 그만뒀다. 누군가를 죽이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에 갔지만 때마침 졸업식이 진행되고 있어 포기했고, 학교에서 나와 길을 걷다 누군가 보여 살해했다”고 증언했다.

일본 사회가 주목하는 것은 범행이 안고 있는 사회적 병리현상이다. 오카야마의 소년은 고교때 반에서 1, 2등 하는 성적 우수자였으나 가정형편 때문에 진학을 포기, 스스로 돈 벌어 대학에 가겠다는 뜻을 갖고 있었다고 주변에서 전했다. 그러나 일거리를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노우에 도시아키 아시야대 교수는 “일거리를 찾지 못하면서 뭔가의 계기로,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가나가와도 마찬가지다. 프리터(아르바이트 생활자), 히키코모리, 게임 중독증 등 현대 일본 사회가 안고 있는 고민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다.

가나가와는 고교 3년때까지 평범한 학생이었다. 궁도부에서 서클 활동을 했고, 2학년때는 전국대회에 출전했다. 3학년이 되면서 학업에 의욕을 잃고 대학 진학마저 포기, 취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기업 몇 군데에 응모했지만 채용이 안 돼 실업자가 됐다. 그후 프리터를 전전하다 집안에 틀어박혀 인터넷에 빠졌다.

그의 범행도 그 연장선상으로 보인다. 집에서는 100종류 이상의 게임 소프트웨어가 발견됐다. 경찰에 자수할 때 메고 있던 배낭에는 최근 발매된 ‘닌자 가이덴’ ‘드래곤 소드’ 등 게임 소프트웨어가 들어있었다. 주인공이 흉기를 휘두르며 마주치는 행인들을 잇달아 쓰러뜨리는 내용이다.

후쿠시마 아키라 상지대 명예교수(범죄심리학)는 “아마도 가나가와에게 게임 소프트웨어는 보물이었던 것 같다. 적을 쓰러뜨리며 전진하는 스토리에 빠져, 게임의 주인공이 돼 가상 공간과 현실의 벽을 넘나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가나가와가 고교를 졸업하던 당시 일본 경제는 거품붕괴에서 회복되지 못한 채 취업률이 바닥을 기었다. 상당수 젊은이들은 백수 혹은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프리터로 몰렸다. 가나가와는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가두면서 프리터도 그만두고, 결국 히키코모리족으로 전락한 것으로 일본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히키코모리는 당초 입시 과열에 따른 부담감 등으로 인한 등교를 거부한 채 집에 틀어박혀 있던 학생들을 지칭하는 표현이었다. 그러나 경기침체로 인한 실업률 증가와 경쟁 격화 구도 속에서 도태된 성인들이 스스로 외부와의 선을 긋고 집안에서 외톨이로 은둔하는 경우까지 포함했다.

정신과 의사이자 평론가인 사이토 다마키는 “히키코모리족의 유일한 교류수단은 인터넷이다. 나홀로 놀기가 가능한 인터넷 의존증이 심화되면 타인과 사회와의 접촉이 더욱 멀어지는 악순환에 빠진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시 한번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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