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사형 제도의 역사 사형제 기원은 인류의 역사 초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가장 오래된 실정법인 기원전 18세기 함무라비 법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해보복(同害報復) 사상에 입각한 형벌을 제시하였고, 사형이 부과되는 범죄 30여 개가 규정되어 있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중대한 흉악 범죄에 대한 보복과 응보로써 인류는 역사 이래 사형 제도를 규정하고 집행하여 왔다.
사형 제도 폐지론이 등장한 것은 사형 제도 역사에 있어서 비교적 근래의 일이다.
1764년 이탈리아 형법학자 베카리아는 그의 저서 '범죄와 형벌'에서 사회계약 사상을 기반으로 하여 사형 제도 폐지를 최초로 주장하였고, 인권을 중시하는 계몽사상 영향을 받은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20세기에 들어선 이후 사형 제도 폐지가 실현되기 시작했는데, 1981년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은 의회 4분의 3이 찬성해 사형제를 폐지하는 데 이르렀다.
국제사면위원회 기준에 따르면 현재 133개 국가가 법률상 또는 실질적 사형 폐지국에 속하며, 사형 제도 존치국은 66개 국가에 이른다.
② 생명권의 제한 가능 여부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국가 가치체계를 이루는 헌법의 기본권 중에서도 최정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를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중대한 의무이기도 하다. 생명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논하는 데 있어 최소한의 전제 조건이며 역시 '생명권'이라는 기본권으로서 보호받는다.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ㆍ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즉 우리 헌법상 규정된 기본권은 제한이 가능하고,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도 사형 제도를 합헌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학계에서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제한할 수 없는 기본권으로 보고 있으며 생명은 그 전제가 된다는 점, 박탈된 생명은 회복할 수 없고 기본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이루고 있다는 점 등에서 과연 생명권이 제한 가능한 기본권인지 여부는 단정하기 어렵다.
③ 형벌로서 사형의 적정성 문제
사형은 형벌의 한 종류다. 형벌은 범죄에 대한 법률 효과로서 범죄자의 범죄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전제로 부과하는 제재다.
형벌의 목적은 '응보(應報)'와 '교화(敎化)'에 있다. 범죄에 대한 '응보'를 통하여 정의를 구현하고 법질서를 회복하며, 범죄자를 '교화'하여 사회를 방위하고 범죄자를 사회에 복귀하게 하는 데 형벌의 존재 의의가 있는 것이다.
사형 제도 폐지 여부를 둘러싼 논의를 검토하는 데 있어서는 사형이 형벌의 목적인 응보와 교화를 달성하는 데 적절한 제도인지에 대한 판단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사형 제도 존폐 여부에 대한 논의
① 사형 제도 존치론의 논거
◆ 일반 국민의 정의 관념에 합치한다
= 산업의 발달로 사회가 대중화하고 물질 만능주의가 발호하면서, 인간의 생명보다 물질적 가치를 우선하는 판단 아래 계획적이고 잔혹하게 이루어지는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우발적 살인이 아닌 연쇄 살인이나 대량 살상 범죄인은 '생명을 앗아간 데 대하여 생명으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정의 관념이 국민들에게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범죄인의 생명이 소중하다면 피해자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것이다.
◆ 범죄에 대한 강력한 억제력
= 생명에 대한 애착은 생물의 본능이다. 범죄 행위로 인하여 생명을 박탈당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어떠한 제재보다도 잠재적 범죄인이 범죄행위의 충동을 억제하고 법질서 범위 안에서 행위하도록 유인하는 기능을 할 수 있다.
② 사형 제도 폐지론의 논거
◆ 어떤 존재도 타인의 생명을 박탈할 권한을 가질 수 없다
= 베카리아는 사회계약설에 입각하여 "어느 누가 자기 생명을 박탈할 권리를 타인에게 위임하였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국가 역시도 개개인과 사회적 계약을 기반으로 성립하였고, 그 계약 내용에 사형 제도가 포함될 수는 없다는 의미다.
또한 인간은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는 상대적 존재다. 인간의 생명을 관장하는 것은 자연 법칙 혹은 신이라는 절대적 존재의 영역이다. 생명을 박탈하는 사형은 오판을 범하면 회복할 수 없으므로 오판의 여지가 없을 때만 부과되어야 하는데, 인간이 무오류의 확실성이 보장된 판단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욱이 사형은 역사에서 정치적 반대파를 제거하는 사법 살인으로 종종 악용되었다. 최근 8명이 사형을 선고받고 집행되었던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 결과 전원이 무죄 판결을 받았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사형이 범죄 예방 효과를 갖는다고 보기 어렵다
= 중세에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인체에 가혹한 고통을 가하는 방법으로 사형을 집행하였다. 국민을 잠재적 범죄인으로 보는 시각을 전제로, 공개 사형 집행이 '범죄 억제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 기대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 행위를 결단할 당시 범죄의 결과로 사법기관에 체포되어 부과받을 형벌의 고통을 고려한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계획적. 반사회적 범죄인일수록 국가 수사망을 피하여 처벌받지 않을 수 있다는 확신과 판단 하에 행동하게 마련이다.
형벌의 강도보다는 '국가 형벌권에 대한 신뢰'가 인간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잠재적 범죄자가 국가의 수사망과 형벌권을 피해갈 수 없다고 판단할 때 범죄 행위를 포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 함께 생각해 볼 문제
1. 범죄자에 대한 응보(應報)와 교화(敎化)를 달성하기 위해서 형벌은 어떤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가?
2. 사형이 폐지된다면 범죄 피해자와 가족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3. 사면, 가석방이 불가능한 '절대적 종신형'은 사형을 대체할 형벌로서 적합한가?
[박민건 대성논술아카데미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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