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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만으로도 위대했던 ‘팝의 황제’ 44년 무대조명 꺼지다

[동아일보]

여섯 살 때 잭슨파이브로 데뷔…통산 7억5000만장 앨범 판매팝의 역사에 새 장 열었지만 성형 탐닉하며 나락으로

‘영원한 네버랜드의 피터 팬을 꿈꿨던 황제, 끝내 영원으로 떠나다.’

‘킹 오브 팝’(King of Pop·2008년 발매한 베스트앨범 제목). 그에게 다른 호칭은 필요 없다. 전 지구에 오싹한 충격을 안겨준 스릴러(Thriller·1982년 앨범)이자, 노래는 치명적으로 아름답다 못해 위험하기까지(Dangerous·1991년 앨범)했다. 13개의 그래미상 수상, 통산 7억5000만 장이 넘는 앨범 판매. 팝 DJ인 김광한 씨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로큰롤의 제왕이었다면 그는 장르를 초월한 황제였다”고 말했다.

Who is it (앨범 ‘데인저러스’ 수록곡)

1958년 8월 29일 미국 인디애나 주 게리 시. 평범한 노동자 가정 잭슨가(家)의 7번째 아이. 하지만 마이클 조지프 잭슨의 천재성은 일찌감치 드러났다. 다섯 살짜리 꼬마가 ‘솔(soul)의 대부’ 제임스 브라운의 춤과 음악을 그대로 따라 했다. 장안의 화제가 된 이들 형제를 여가수 다이애나 로스가 음반레이블 ‘모타운’에 소개했다. ‘아일 비 데어’ 등 7장의 플래티넘(100만 장 이상 팔린 앨범)을 기록한 ‘잭슨 파이브’는 이렇게 탄생했다.

하지만 영광 뒤엔 잭슨의 시련이 감춰져 있었다. “아버지 조가 마이클을 가혹하게 조련한 건 돈벌이가 목적이었다”(미국 MTV 다큐멘터리 ‘마이클 잭슨의 부침’) 같은 폭로에 이은 가족과의 불화와 결별. 마이클은 1979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음반 프로듀서 퀸시 존스와 손잡고 앨범 ‘오프 더 월’을 낸다. 1000만 장 이상 팔렸으나, 이는 대관식을 앞둔 황제의 전초전에 불과했다.

History (앨범 ‘히스토리’ 타이틀)

하얀 장갑, 선글라스와 중절모, 그리고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문 워크(moon walk)’. 1982년은 팝의 역사에서 하나의 분기점이다. 잭슨의 앨범 ‘스릴러’는 팝을 이전과 이후로 가르는 가늠자였다. “팝 역사상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퍼포먼스.”(가수 비) 이 앨범은 통산 37주 동안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하며 지금까지 1억4000만 장 이상 팔렸다. 군무나 몸동작의 맵시를 내세우기 위한 퍼포먼스로 입었던 제복 같은 무대 의상도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여러 개 뒤따른다. ‘최초로 앨범 9곡 모두 빌보드 댄스 차트 1위.’ ‘MTV 사상 처음 방영한 흑인 뮤직비디오.’ ‘싱글과 댄스, 블랙차트에서 최초로 동시 1위.’ 황제의 통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87년 ‘배드’와 1991년 ‘데인저러스’, 1995년 ‘히스토리’까지 계속 음반마다 2000만 장 이상 판매를 기록했다. 한상철 팝 칼럼니스트는 “가장 거대한 임팩트(impact)를 가진 지구상 가장 완벽한 팝 뮤지션”이라고 평가했다. 자신의 저택을 동화 ‘피터 팬’에 나오는 네버랜드라고 이름 지은 잭슨은 살아 있는 전설이 되기 시작했다.

Human Nature (앨범 ‘스릴러’ 수록곡)

기나긴 고독한 군림이 독이 됐을까. “지나친 부와 권력은 조금씩 그를 현실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로버트 톰슨 미국 시러큐스대 교수)

MTV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그는 아버지의 얼굴과 피부색을 싫어해 성형수술에 빠진다. 흰 재킷이 어울리던 검은 피부는 재킷보다 하얘졌다. “코는 보철물”(미국 잡지 배니티 페어)로 바뀌고, 피부암에 시달린다는 말도 나왔다.

사생활도 우울했다. 1994년 엘비스의 딸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 ‘세기의 결혼’을 치렀지만 2년을 못 넘겼다. 1997년 성형수술 때 만난 간호사 데비 로와의 결합도 99년 결별. 세상을 치유하는(Heal the world·데인저러스 수록곡) ‘어린이의 친구’란 이미지도 사라졌다. 1993년 10대 꼬마 조던 챈들러를 성적 학대한 혐의로 2330만 달러란 합의금을 치른다.

2005년 또 한번의 성추행 혐의는 그를 벼랑으로 내몬다. 무죄로 판결났지만 마이클은 세상에 등을 돌린다. 바레인과 아일랜드 등을 전전한 은둔생활. 주머니 사정마저 악화돼 네버랜드까지 남의 손에 넘겼다. 10년 만에 갖는, 7월 영국 런던 콘서트는 고별무대이자 전세를 뒤집을 회심의 카드였다. 하지만 황제의 심장은 스스로 왕관을 물려줄 기회를 앗아갔다.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피터 팬처럼.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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