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 피지로 여행 가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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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09.04.17. 오전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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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윤여문 기자]
피지 여성들의 '피지언 스마일'.

남태평양의 아름다운 섬,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신혼여행지 피지가 결국 세상과의 문을 굳게 닫아버린 듯하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해안과 낙천적 국민들의 밝은 미소로 대표되는 이미지와는 반대로 20여 년 간 쿠데타 내홍을 겪어온 피지에 4월 9일자로 헌정이 파기되고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됐다.

그러나 이런 피지의 상황은 피지의 국민들은 물론, 전 세계에 거의 타전되지 못했다.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된 이후, 피지에서 사상최악의 언론탄압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언론은 제 기능을 멈추었고, 피지가 세상과 통할 수 있는 인터넷도 강력한 통제대상이 되었다.

국가비상사태 선포된 피지... 언론기능 '정지'

피지의 이런 상황은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다. 인구 85만 명인 피지는 지난 20여 년간 인구의 54.5%를 차지하고 있는 원주민계와 인구의 38.2%를 차지하고 있는 인도계의 헤게모니 쟁탈전으로 인해 4차례의 쿠데타를 겪어왔다. (관련기사 : 신혼여행지 피지의 오랜 비극)

저녁뉴스가 방송되지 않는다고 예고하는 피지1TV(상), '이 페이지는 정부의 제한조치에 의거 발행되지 못했습니다'라며 백지신문을 낸 피지 선데이타임스(하).
ⓒ 호주국영 abc-TV 화면 캡처

이번 사건은 지난 2006년 12월, 4번째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프랭크 바이니마라마 인도계 군부정권에 의해 주도됐다. 지난 4월 9일, 피지 고등법원이 "2006년 쿠데타는 불법이었다, 쿠데타로 집권한 현 정부는 자격이 없으므로 신속하게 총선을 치러 새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고 판결한 것.

 

3년 동안 집권한 자신들의 정통성이 부정되자, 바이니마라마 총리는 대법원에 상고하는 대신 절친한 친구인 조세파 일로일로 대통령을 조종해 헌정을 파기하도록 만들었다.

재판에 관여한 판사들을 해임하고 사법부를 해산하는 동시에 향후 5년 동안 현 정부가 과도정부를 이끌도록 한 것이다. 이어 바이니마라마는 군 사령관과 과도정부 총리직을 계속 맡으면서 30일 동안의 비상사태를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논란의 초점이 되고 있는 언론검열은 비상사태를 선포한 가장 큰 이유다. 

뉴스들은 군 정보당국의 검열을 통과하지 못하면 보도될 수 없다. 때문에 신문은 공백상태로 발행되고, TV 정기뉴스도 취소되기 일쑤다.

"체포당할 각오로 기사 써야"...정통성 없는 정권의 언론검열

"언론의 자유는 골칫덩어리"라고 말한 바이니마라마 피지 총리 겸 군사령관.
ⓒ 호주 abc-TV 화면 캡처

프랭크 바이니마라마 과도정부 총리가 15일, 뉴질랜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은 그가 언론에 대해 갖고 있는 불신을 그대로 보여준다.

"언론의 자유는 골칫덩어리일 뿐이다. 현재 피지의 정치적 혼란도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에서 비롯됐다. 정부와 미디어가 2006년 쿠데타 이후 지금까지 협력했다면 지금쯤 피지는 훨씬 발전했을 것이다. 다른 나라가 피지를 위해서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뉴질랜드 저널리스트가 피지를 방문해서 현장을 리포트하면 어떻겠냐?) 그럴 필요 없다. 나한테 물어보면 내가 대답해주겠다."

이런 상황에서 피지의 국내외 언론인들은 군부독재당국에 체포당할 각오로 기사를 쓰던가, 아니면 아예 손을 놓고 지내는 형국이다. 이미 호주 저널리스트 한 명과 뉴질랜드 저널리스트 두 명이 언론검열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강제추방됐다.

호주국영 abc방송 숀 도니 태평양지역 특파원도 4월 9일에 발생한 '피지 헌정중단 사태'를 보도했다는 이유로 피지 정보당국과 이민당국에 의해 강제추방됐다.

숀 도니 특파원은 해외 특파원으로만 30년 이상 활동해온 베테랑 저널리스트다. 특히 그는 취재현장을 종행무진으로 뛰면서 수십 건의 심층보도를 기록하여 1998년에 '발로 뛰는 기자 상'을 수상한 바 있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피지 정국을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서 그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취재를 금지당하는 피지 주재 외국기자들.
ⓒ 호주abc-TV 화면 캡처

 

"피지정권의 언론탄압 보도했다는 게 내 추방 사유"

- 어떤 이유로 추방된 건가?

"나는 평소와 다름없는 업무를 수행했을 뿐이다. 그런데 호주로 리포트한 것을 트집 잡아서 군정보당국자가 나에게 강제추방을 통보했다. 그나마 나는 외국인 기자이기 때문에 추방으로 끝났지만, 피지 국내 언론인들은 체포되어서 고초를 당하는 걸로 알고 있다."

- 추방당했던 날의 상황은.

"13일 아침 9시쯤이었을 것이다. 내가 호주 abc-TV로 전파송출을 위해서 활용하는 피지 1TV에서 피지 저널리스트와 커피를 마시던 중에 군정보당국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런 다음에 5시간쯤 억류됐다가 공항으로 에스코트 되어 추방당했다."

호주국영 abc-TV '7 30 리포트'에 출연한 숀 도니 특파원.
ⓒ 호주abc-TV
- 5시간 동안 억류되는 동안 정신적, 신체적 위해는 없었는가?
"그렇지는 않았다. 내가 호텔에 가서 짐을 챙기는 것도 허용했다. 다만 그들이 자진해서 출국하면 좋겠다고 말해서 거절했다. '나는 언론인 정식비자를 가졌고 사실과 다른 루머를 보도한 적도 없기 때문에 계속 남아서 일하고 싶다, 내 직업은 뉴스를 전하는 일이다'고 답변했다."

- 구체적인 추방사유는 무엇인가.

"12일자 <피지 타임스>가 언론검열에서 통과하지 못한 기사를 공백지면으로 내보낸 걸 abc-TV 뉴스에 자세하게 보도했다. 무려 7페이지가 공백지면이었고 시사만평도 삭제됐다. 신문뿐만 아니라 TV가 검열당하는 모습도 보도했다. 그게 전부 피지 군사정부의 언론검열을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 그게 전부인가?

"리포트의 끝부분에 '피지미디어협회' 데릴 타트 회장 인터뷰를 포함시켰다. 그런데 그가 '피지 군사정부가 언론의 자유를 관속에 집어넣고 마지막 못을 박아버렸다,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요체다, 결국 피지의 민주주의를 죽인 것이다'는 내용의 심한 독설을 퍼부었다."

"한국인 허니문 여행객들도 각별한 주의 필요하다"

 

- 추방당한 기자가 또 있나?

"뉴질랜드 저널리스트와 카메라맨이 함께 억류됐다가 따로따로 추방됐다. 내가 억류되기 직전에 <피지 타임스> 기자가 나를 인터뷰했지만 보도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억류된 동안에 피지 3TV 카메라맨이 몰래 우리를 찍는 것 같았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그가 체포됐다고 한다."

- 왜 피지 군사정부가 당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하나?

"특파원의 임무는 해당국가에서 일어나는 관심사항을 취재하고 보도하는 것이다. 나는 피지의 모든 것을 보도하고 싶었고, 그렇게 했다. 그런데 그들이 해외리포터들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

- 그러나 피지 국민들도 인터넷을 통해서 외신을 읽지 않겠는가.

"그럴 가능성이 아주 낮다. 주요 외신사이트는 물론이고 '페이스 북' 같은 사이트도 샷다운 된 상태다. 블로깅도 불가능하다. 현재 언론검열의 총책을 맡은 군정보국 소속 니우미 르웨니 소령은 신문사 편집국과 방송국 뉴스룸에 군인과 경찰을 파견할 정도로 주도면밀한 인물이다."

피지의 위치
ⓒ 오마이뉴스

- 결국 피지의 민주주의는 끝장났다고 보는 건가.

"그렇다. 언론의 보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강제로 통제하는 국가는 민주주의를 논할 자격도 없다. 피지 국민들이 저항해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이 없다. 성품이 지나치게 순한 탓인데 군사정부가 그걸 악용하고 있다."

- 피지는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다. 호주 정부는 피지로 가는 관광객들에게 최고 수준의 주의를 요구했는데 실제 어느정도 위험한 건가?

"특히 한국인 허니문 여행객이 아주 많은 걸 목격했다. 그러나 당분간은 조심해야 한다. 피지 경제가 워낙 어려운데다 관광객도 급격히 줄고 있어서, 여행사에서 파격적인 가격으로 여행객을 모집할 것이다. 그러나 안전이 최우선 아니겠는가. 피지는 여행객의 천국이니까 나중에 많이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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