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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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08.01.17. 오전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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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미국, 그 새로운 희망의 진화

 [프레시안 김민웅/성공회대 교수]

   "미국인들은, 정부가 자신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를 조금만 바꿔도 우리 아이들이 품격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고,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을 뼛속 깊이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선택만 제대로 한다면, 우리는 분명 보다 잘 해나갈 수 있다."
  
  말이란 같은 말이라도 그 현실적 문맥이 중요하다. 듣기에 따라 얼핏 평범한 것 같지만, 진지한 목소리와 명쾌한 어조로 뿜어내는 이 연설에 사람들은 순간 열광했다. "단지 정책의 우선순위가 약간만 변화해도 (just a slight change in priorities)" 세상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을 들으면서 눈앞에 놓인 거대한 문제 앞에서 어떻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하는가에 무력감마저 느끼고 있던 이들이 "그래, 조금만 밀고 나가도 변화는 올 수 있어"라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 기조연설의 매력: 변화와 품격
  
  또한 "품격 있는 삶(decent life)"이라는 말에 정치의 언어가 격을 달리하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격조 있고 기품이 담겨 있는"이라는 뜻을 가진 "decent"라는 단어는 미국 정치에서 오랫동안 실종된 처지에 있었다. 클린턴 정권 시기에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economy, stupid.)"라는 담론을 거쳐, "테러와의 전쟁(war against terror)" 구호가 대세를 장악한 부시 정권의 현실에서, "격조와 품격의 미국"이라는 발상은 낯설기조차 했던 것이다. 예상 밖으로 이 말들은 사람들의 가슴에 신선하게 꽂혔다. 까마득히 잊고 있던 꿈과 각도를 달리한 정치적 상상력을 미국인들은 여기에서 새삼 발견했던 것이다. 오바마의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 기조연설은 그렇게 사람들의 영혼에 파고 들어갔다.
  
  2004년 미국 선거는 아무래도 또다시 공화당이 대세를 쥐게 될 것이라는 예상으로 민주당은 전의가 다소 가라앉아 있던 분위기였다. 부시와 맞설 대선 후보도 사람들을 들뜨게 만드는 인물은 아니었다. 존 케리 상원의원의 대선 주자 출정식이라는 의미를 가지기도 했던 그 해 7월의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 시의 민주당 전당대회는, 그러나 전혀 짐작하지 못했던 새로운 정치적 스타의 등장을 목격하게 된다.
  
  전국에 TV로 방영된 이 날의 현장을 통해 미국인들의 상당수가 다소 졸린 듯한 눈매와 재미없는 말투로 일관한 대선 후보자 존 케리보다는, 기조연설 하나로 일거에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은 바라크 오바마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그는 당시 일리노이 상원의원에 이제 막 도전한 정치적 풋내기에 불과했다. 그리고 4년 뒤 2008년, 오바마는 민주당 경선 첫 접전지 아이오와에서 기라성 같은 워싱턴 주류의 기세를 꺾는 돌풍의 주역이 된다. 이어 벌어진 뉴햄프셔에서 힐러리 클린턴에게 패배하지만, 아직은 초반전에 불과한 이번 경선의 긴 과정을 마치고 그가 대통령 후보가 되던 아니 되던 언젠가는 반드시 미국 최초 흑인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예상에는 이론을 다는 이가 없을 정도로 오바마는 미래형 지도자의 재목으로 우뚝 섰다.
  
  빈민가 공동체 조직 운동가로서의 오바마
  
  1961년생이니까 금년에 47세가 되는 오바마는 1983년 콜럼비아 대학에서 정치학과 국제정치학 전공으로 학부를 마치고 뉴욕의 한 기업에 잠시 취직했다가 이어 시카고에 가서 빈민가 지역 공동체 조직가로서 활동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는 가난한 사람들의 주택문제를 비롯해서 이들의 곤경에 처한 현실적 삶을 해결해나가는 사회운동의 경험을 착실하게 쌓아나간다. 이 시기의 오바마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영향을 받은 흑인 전도사의 지도 아래 시카고 외곽지대의 빈민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운동을 조직해나갔던 10대 시절의 힐러리와 적지 않게 닮아 있다. 이후 법률가로 성장하는 것도 외견상으로는 일단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당의 진보성을 공유하는 세대적 차이를 넘는 공통분모가 있는 셈이다.
  
  시카고에서의 활동을 통해 오바마는 좀 더 전문적인 위치에서 미국의 빈민가 현실에 다가가야 한다고 느끼고 1988년 하버드 로 스쿨에 진학하게 되고, 2년 뒤 "하버드 로 스쿨 리뷰 편집장"으로 뽑힌다. 1990년 2월 6일자 <뉴욕타임스>는 "하버드 대학 104년 역사에서 최초의 흑인 편집장"이라고 그의 취임을 예사롭지 않게 주목했다. 하버드 로 스쿨 리뷰 편집장이 된다는 것은 미국사회에서 주류 최고의 집단에 속하는 동시에, 그가 가는 곳 어디에서나 사회적 존경이 일정하게 보장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하버드 로스쿨 리뷰 편집장과 정치입문
  
  1991년 하버드 로 스쿨을 우등으로 졸업한 오바마는 그와 비슷한 수준의 졸업생들이 대부분 선택하는 뉴욕의 대규모 법률회사나 워싱턴의 정치적 성향이 강한 법조계로 가지 않는다. 여기서 워싱턴의 100대 변호사로 선망의 대상이 된 힐러리의 삶과 그의 진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게 되는 것이다. 오바마는 과거 그가 지역 활동가로 일했던 시카고로 돌아가, 각종 차별 문제해결에 진력하게 되며 유권자 운동에 나서고 인권변호사로 뿌리를 내려간다. 이와 함께 그는 시카고 로 스쿨에서 헌법강의를 하는 등 이론과 현실 모두의 영역에서 왕성한 작업을 펼쳐나간다.
  
  사회활동가의 면모를 가진 변호사이자 법률학자로서의 오바마의 인생에 새로운 전기는 1996년에 찾아온다.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 선거에 뛰어들어 선출되었던 것이다. 1998년 재선에 성공했던 그에게 패배도 있었다. 2000년 민주당 하원의원 경선 도전에 실패했던 것이다. 오바마는 다시 2002년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으로 뽑혔고 2년 뒤 연방 하원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연방상원의원 입성에 성공하게 된다. 일리노이 주 지방 정치인에서 전국단위의 정치가로 크게 되는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이었다. 빠른 성장이었다.
  
  주 상원의원을 지내면서 오바마는 열악한 보험제도 개선을 위한 입법, 정치관련 윤리법, 빈민들을 위한 세금 혜택 법안, 육아 재정 확대, 사회보장제도의 개선, 인종차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범죄자 취조과정의 비디오 녹화 필수화 입법 등 중요한 정치적 성취를 이룬다. 2004년 상원의원으로 선출된 오바마는 이민자 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민법 개정작업에 힘을 쏟고, 대인지뢰를 포함한 재래식 무기통제 입법에도 적극적인 활동을 펴나간다. 연방정부의 재정지원을 받는 단체 모두의 재정투명도를 확인하기 위한 입법에도 성공함으로써 재정부정의 소지를 최소화하는 노력을 기울였으며, 중동과 아프리카 등지를 순방하면서 국제적 갈등 해결에도 실력을 쌓아나간다.
  
  이라크전쟁에 대한 일관된 반대
  
  그러나 무엇보다도 오바마의 정치적 진로를 주목하게 한 것은 이라크 전쟁에 지속적으로 반대를 표명한 동시에, 이라크 주둔 미군 철수 계획을 제안하고 미국의 에너지 정책을 바꾸어 나가는 변화가 없으면 전쟁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한 대목이었다. 존 케리나 힐러리나 이라크 문제와 관련해서 중간에 입장을 교묘하게 바꾸거나 애매하게 대응한 것과는 차이가 나는 자세였다.
  
  이런 그가 2007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서겠다고 발표한 이후, 6개월간 모은 정치헌금은 5800만 달러로서 최고 기록을 남겼고 이 가운데서도 200 달러 이하의 소액 기부가 16 40만 달러나 되 어떤 후보보다 소액 기부자가 많은 성과도 올렸다. 아직 경선에 나서려면 한참 멀었던 시기인 2007년 4월, 미 연방정부는 오바마가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해서 전례 없이 그에게 비밀경호를 붙일 정도로 그의 위상은 엄청난 변화를 보였다.
  
  오바마의 그늘과 희망
  
  이렇게 화려한 정치적 입지를 굳히게 된 오바마에게도 그늘이 있다. 아버지는 케냐 출신 흑인이고 어머니는 캔자스주 출신의 백인이다. 인종적으로 복합적인 배경을 가진 그는 하와이에서 태어나 자랐고, 부모의 사이가 어려워 진 가운데 인도네시아에서 성장기를 보냈다가 다시 하와이로 돌아온다. 십대 시절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고민으로 술과 마리화나와 코카인에 손을 대기도 한 그는 그래서 주변부 인생에 대한 깊은 연민과 이해를 가지고 있다. 케냐 출신 아버지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아랍계 이름의 이미지를 주는 바락 오바마라는 이름으로 해서 그가 겪은 상처와 고통도 컸다. 9.11 이후 아랍계에 대한 적대감이 한참 높아졌을 때에 그를 아끼는 이들은 그에게 이름을 고칠 것을 권유할 정도였다. 그러나 오바마는 자신의 정체성을 그대로 지켜나가면서 미국의 꿈을 이루는 것이 모두에게 진실에 눈뜨게 할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오바마의 저서 제목 <희망의 담대함(Audacity of Hope)>이 말해주는 대로 그의 기본 철학과 태도는 바로 이러한 고독하고 힘들었던 성장과정과 그의 정치적 용기의 축적이 낳은 결과인 셈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 교단으로 알려진 UCC(United Church of Christ)에 소속된 교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신앙고백은 실존적인 동시에 사회적이다. 정의와 사랑이 하나가 되는 것에 대해 민감한 그의 종교적 자세는, 힘과 부를 추구하는 부시를 비롯한 미국 보수기독교의 근본주의와는 완연히 다르다. 그에게 희망은 정의로운 미래를 만들어내기 위한 힘이다. "패권국가 아메리카"가 아니라 "지도력으로 존경받는 미국"이 그가 제시하고 있는 미국의 미래적 진로이다. 구조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대로 되기만 한다면 이 거대한 제국의 새로운 선택을 통해, 인류는 매우 다른 경로로 진보할 수 있다. "우선순위만 약간 달라져도" 세상은 변한다.
  
  실로, 인종차별이 여전히 존재하고 아랍적 요소가 약점이 될 수밖에 없으며, 미국본토가 아닌 하와이 출신이라는 점이 미국 주류사회의 지도적 위상을 갖기 어렵게 만드는 현실을 그는 진지하고도 맹렬하게 뚫고 나갔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역사적으로 설치한 장애물을 뛰어넘는 한편, 미국이라는 나라가 마련한 기회를 자신의 자산으로 삼는데 성공한 것이다.
  
  천박한 제국에게 품격과 변화를
  
  그러나 오바마의 진실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입지전적 출세주의자가 되지 않았다. 꿈과 이상을 위해 자신을 헌신적으로 바치는 지도자로서의 훈련을 스스로에게 철저하게 부과해온 것이다. 그의 말은 그런 까닭에 철학이 있고 가치 논쟁이 담겨 있다. 그의 주장에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극한 아픔과 고통 받고 있는 인간에 대한 따듯한 영혼의 온도가 스며 있다. 그래서 오바마의 연설을 듣는 사람들은 논리와 감성이 함께 작동하는 감동을 느낀다고 한다. 희망의 출구가 단지 경제성장이나 정책논쟁 또는 국제전략의 선택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아픔과 갈망을 자신의 정치적 육체에 체화시키는 지도자에게서 비롯될 수 있음을 미국인들은 지금 "뼛속 깊이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 있는 것이다.
  
  부시 8년 집권의 미국은 돈과 권력 지상주의로 천박해졌다. 메마르고 강팍해졌으며 인간에 대한 배려와 생명과 정의에 대한 사고는 마비되었다. 마침 미국 체류 중에, 아이오와 경선에서 승리한 오바마를 보고 미국인들이 뜨겁게 열광하는 것을 목격하는 기회를 가지면서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희망, 정의, 가치, 품격, 사랑, 평화, 용기, 이런 단어들이 정치의 담론이 되고 정치는 현실이 아니라 이상이라고 외치는 지도자가 있는 나라에서, 우리는 오랜만에 유쾌한 희망을 발견한 미국인들의 기쁨을 본다. 세계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어버린 아메리카 제국의 현실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면서 변화를 모색하는 오바마는 그런 미국인들의 진심을 담고 있다. 물론 그에게도 모순과 약점이 있을 터이다. 그도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계속해서 성장해나가야 할 한 인간이다.
  
  이명박시대,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그러나 자본주의 대본영 미국에서, 경제와 안보를 둘러싼 수준의 논의를 넘어 삶의 품격과 희망을 말하는 것은 분명 진화이다. "오바마의 돌풍"이라는 정치적 전적만 보는 한국 언론은 그 안에 담긴 메시지의 가치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듯하다. 신자유주의적 선택은 불가피하다면서 인간의 존엄성이 실종된 한국 정치에 오마바의 꿈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건 바다 건너 경마경기의 관전에 머문다. 오바마가 힐러리에게 이기는가 아닌가보다 더 중요한 주제를 놓치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용기 있게 선택하자는 오바마의 도전 앞에서, 이명박 정권을 맞이하게 될 우리는 지금 퇴행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진화하고 있는 것인지 치열하게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면 연일 쏟아지는 미국 대선 보도는 진정한 가치를 잃는다.
  
  오바마의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도 던져본다면? 약간의 변화라도 주면 세상이 달라질 우선순위의 문제는 과연 무엇일까? "인간의 존엄성이 빠진 경제주의"가 가져올 재앙에 대해 사고하지 않는 한국사회의 현실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지 잊고 있는 자의 모습이다. 이천 냉동고 공사현장의 화재는 바로 그렇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놓친 결과의 비극이다.
  
  우리의 희망은 과연 어디에 시선을 두고 있을까? 일이 한참 진행되고 나서 비로소 이렇게 묻는다면 서로를 패자로 만들 뿐인 상처투성이의 책임논란에만 갇힐 것이다. 이 질문은 빠르면 빠를수록 모두에게 좋다.
  
  * 이 글은 <시사IN>에 동시 게재됐습니다.

김민웅/성공회대 교수 (inkyu@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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