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에 숨겨진 ‘인간 엘비스’의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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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 끝나지 않는 전설 / 피터 해리 브라운 지음, 성기완

·최윤석 옮김/이마고::)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가 최근 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만나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테네시주 멤피스에 있는 ‘그레이스랜드’

였다.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의 집이자 기념관인 이곳에서

고이즈미 총리는 엘비스의 노래를 따라부르고 그의 춤을 흉내냈

다. 그레이스랜드는 고이즈미 총리처럼 엘비스의 광팬이라면 거

부할 수 없는 매력의 총본산이다.

고이즈미 총리가 그레이스랜드 방문에서 발견한 것은 ‘다리 떨

기’ ‘허리 돌리기’ 등 엘비스 활동 기간 중 가장 현란했던 무

대 장면의 사진과 여전히 77kg 이하의 완벽한 몸매만 담은 사진

뿐이다. 엘비스를 ‘신화’의 영역에서 다루는 일은 이제 보편화

된 규칙이 돼 버렸다. 대중음악의 스타를 스타 이상의 ‘무엇’

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은 ‘팍스 아메리카나’로 표현되는 미국 중

심의 사회를 더욱 누리고자 하는 계산된 욕망의 일단이다.

엘비스의 전기(傳記)를 다룬 이 책은 신화 속에 머물러 있는 엘

비스의 허상을 최소화하고, ‘사실’을 바탕으로 인간 엘비스의

면모를 부각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저자는 엘비스의 전처 프

리실라가 운영하는 ‘엘비스 프레슬리 엔터프라이즈(EPE)’가 엘

비스의 진실을 알리기보다 엘비스의 신화를 창조하는 데 급급하

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10년간 모은 자료와 300명의 인물 인터뷰를

통해 ‘인간 엘비스’를 추적해 나갔다.

책은 1935년 미국 남부 투펠로의 빈민가에서 쌍둥이 중 하나로

태어난 엘비스의 출생으로 시작한다. 태어나자마자 죽은 쌍둥이

형을 뒤로하고 기적적으로 출생한 스토리, 11살 생일 선물로 자

전거 대신 기타를 받은 일화 등 로큰롤의 제왕에 이르기 위한 서

막의 흔적들이 곳곳에 스며있다.

엘비스는 백인인데도 흑인의 블루스를 기가 막히게 불렀는데, 어

릴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간 일터인 목화밭에서 흑인들의 찬가를

수없이 들으며 흥얼거린 노력 덕분이었다. 어머니의 생일 선물

로 노래를 하고 싶다는, 엘비스의 계산된 핑계로 53년 처음 녹음

된 곡 ‘댓츠 올 라이트(That’s All Right)’는 로큰롤의 시초

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

엘비스는 이후 메이저 레코드사 RCA와 계약한 뒤 본격적인 스타

의 길로 들어선다. 돈벌이에 눈이 먼 기획사 대표 톰 파커 대령

이 어느 날 엘비스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섹스는 베스트셀러야

. 엉덩이를 흔들면 좋겠는데, 그러면 여자애들이 흥분할거야.”

보수적인 기성 세대의 비판이 거셌던 ‘엉덩이 흔들기’는 제도

와 관습에 저항하는 로큰롤 특유의 정신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사

실은 기획사에 의해 세심하게 계획된 ‘작품’이었다고 엘비스는

훗날 고백한다.

저자는 60, 70년대 엘비스의 의료기록에 접근해 엘비스의 마약

복용이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오랫동안 이어졌다고 밝히고

있다. 여성 편력은 어땠을까. 수없는 여자와 잠자리를 하면서도

엘비스는 열댓 살 소녀 프리실라와 순수한 사랑을 가꿔나갔다.

“섹스, 그거 쉬운 거지. 내 말을 들어줄 여자가 필요해. 나머진

모두 헛소리일뿐야.” 엘비스는 프리실라를 통해 죽은 어머니의

빈자리를 메우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려고 했다.

가장 미국적인 신화 뒤편에 숨겨진 그의 인간적인 고뇌들을 면밀

히 따라가다보면 빠뜨릴 수 없는 한 가지 명제와 만나게 된다.

그가 죽을 때까지 노래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엘비스는 아내와

이혼하며 이렇게 내뱉었는지도 모른다. “로큰롤이야. 로큰롤은

아내를 허락하지 않지.”

김고금평기자 dann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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