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조지아 전쟁 2주년..긴장은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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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0.08.04. 오전 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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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도화선 된 남오세티야.압하지야 지위 협상 난항

전략 요충지 카프카스 둘러싼 미-러 세력 다툼 양상도

(서울=연합뉴스) 유철종 기자 = "러시아가 조지아를 완전히 점령하려고 한다. 우리 군(軍)은 전면적 방어에 나서야 한다".

"사카슈빌리가 양국 간 긴장을 부추기고 있다. 러시아는 조지아를 침략할 의도가 없다".

최근 미하일 사카슈빌리 조지아 대통령과 러시아 외무부 산하 국제현안연구소 소장 알렉세이 푸시코프가 주고받은 설전(舌戰))이다.

'5일 전쟁'으로 불리는 러시아-조지아 간 전쟁이 끝난 지 2년이 지난 지금도 양국관계에는 긴장이 가시지 않고 있다.

외교 관계는 단절됐으며 양국을 연결하는 육.해.공 교통도 여전히 막혀 있다.

전쟁 직후 러시아가 독립국으로 승인한 조지아 내 자치공화국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 지위를 둘러싼 줄다리기는 계속되고 있다. 조지아 분쟁 해결을 위해 지난달 제네바에서 소집된 국제회의는 구체적 성과 없이 끝났다.

러-조지아 갈등은 카프카스 지역을 옛 소련권 진출의 교두보로 삼으려는 미국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미-러 간 세력 싸움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전날 카프카스 지역에서 터진 러시아-조지아 전쟁이 7일로 2주년을 맞는다.

조지아 내 자치공화국 남오세티야의 분리.독립 움직임으로 촉발된 전쟁은 2008년 8월 7일 밤(현지시각) 조지아가 친(親) 러 성향의 남오세티야 공화국 수도 츠힌발리에 대규모 포격을 가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앞서 조지아에서 독립해 러시아로 편입하려는 남오세티야와 조지아 간에는 수개월에 걸친 크고 작은 충돌이 있었다.

남오세티야와 또 다른 조지아 내 자치공화국 압하지야는 조지아가 소련에서 독립한 90년대 초부터 분리.독립을 시도해 중앙 정부와 갈등을 빚었다.

2004년 시민혁명으로 집권한 사카슈빌리가 강력한 영토 통합 정책을 펴면서 갈등이 더욱 증폭돼 마침내 무력 충돌로 번진 것이다.

조지아의 선제공격에 러시아는 80%에 달하는 남오세티야 내 자국 시민권자 보호를 명분으로 곧바로 대규모 지상군을 투입, 반격에 나서는 한편 조지아 영토 깊숙이 진격해 들어갔다.

공군과 해군도 공격에 가담해 불과 며칠 만에 고리 등을 포함한 조지아 내 주요 도시들이 러시아군의 점령하에 들어갔다.

러시아 공군은 수도 트빌리시 인근 군사 비행장까지 폭격하며 조지아를 압박했다.

그 사이 친(親) 서방 정책을 표방해온 사카슈빌리 대통령이 믿었던 미국은 말로만 러시아의 군사 공격을 비난했을 뿐 군사적 지원에는 끝내 나서지 않았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또 다른 전선을 열 수 없다는 현실적 고려가 작용했다.

러시아군의 압도적 공세에 조지아는 결국 무릎을 꿇었고 전쟁 5일 만인 12일 유럽연합(EU) 순회 의장국인 프랑스의 중재로 양국 간에 휴전협정이 체결됐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조지아로 진격한 모든 군대를 철수키로 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상황이 종료된 게 아니었다.

휴전 후 근 보름 만인 같은 달 26일 러시아는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를 완전한 독립국가로 승인하며 또다시 분쟁에 불을 지폈다.

승전의 기세를 몰아 두 자치공화국을 완전히 러시아로 복속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조치였다.

조지아는 즉각 러시아가 자국 영토를 병합하려 하고 있다고 강하게 반발하면서 러시아와의 외교 관계 단절을 선언했다.

미국과 유럽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도 두 자치공화국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다.

러시아 편에서 독립 승인에 가담한 국가는 반미 성향의 중남미 국가 니카라과와 베네수엘라 뿐이었다.

러시아는 휴전 협정을 준수하라는 조지아와 국제사회의 요구에도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에 여전히 수천 명의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유럽연합은 지난해 9월 자체 보고서를 통해 "5일 전쟁이 조지아 측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됐다"고 평가하면서도 "이에 앞서 수개월간에 걸친 (남오세티야 측의) 도발이 있었으므로 쌍방이 모두 국제법을 어긴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보고서는 전쟁에서 850명이 희생됐고 1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패전으로 조지아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및 유럽연합 가입을 추진하는 등 친(親) 서방 노선을 걷던 사카슈빌리 대통령은 통치력에 큰 타격을 입었다. 경제난과 함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풍부한 에너지 자원과 전략적 중요성을 지닌 카프카스 지역으로의 진출을 노려 사카슈빌리의 조지아에 경제, 군사적 지원을 아끼지 않던 미국도 체면을 구겼다.

미국의 지원 속에 추진되던 조지아의 NATO 가입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친미 성향의 조지아와 우크라이나 등을 발판삼아 옛 소련권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추구하던 미국의 대외전략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반면 개방 이후 처음으로 치른 대외 전쟁에서 승리를 거머쥔 러시아는 상당한 자신감을 회복했다. 이를 토대로 잃어버린 옛 소련권에 대한 영향력을 되찾겠다는 야심을 불태우고 있다.

지난달 5일 조지아를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미국은 조지아의 주권과 영토 통합 노력에 변함없는 지지를 보낸다"고 말했다.

클린턴 장관은 이어 "러시아는 전쟁 전 상황과 같이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에 대한 점령과 군대주둔을 끝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두 지역과 조지아 간 협상에 제3자(미국)가 개입해선 안된다"고 일침을 놓았다.

이런 와중에 러-조지아 관계는 여전히 긴장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카슈빌리는 지난달 29일 전쟁 2주년을 앞두고 국방부를 찾아 "적(러시아)의 목표는 조지아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러시아에 대항해 전면적인 방어에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하루 전날 전국에 생중계된 TV 방송에서도 "우리의 목표는 완전한 영토수복"이라며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 재복속 의지를 천명했다.

이에 러시아 국제현안연구소 소장 푸시코프는 "사카슈빌리는 자국민이 경제상황과 월급, 연금 수준 등에 대해 생각하는 대신 조국이 러시아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려고 고의로 러시아와의 긴장을 유지시키려 애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러시아와 조지아 간에는 올 1월 신년 연휴 기간에 몇 편의 전세기 운항이 재개되기도 했으나 정기 노선 운항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2006년 10월 조지아가 러시아 정보장교 4명을 체포한 데 대한 보복으로 양국 간 항공, 해상, 육상 교통과 우편물 왕래를 중단했다가 2008년 3월 항공 운항을 재개했으나 전쟁 이후 다시 중단했다.

잠재적 화약고로 부상한 조지아 분쟁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와 조지아, 남오세티야, 압하지야, 미국, EU, 유엔 대표 등이 참여하는 협상단은 전쟁 뒤인 2008년 10월부터 스위스 제네바에서 여러 차례 만나 조지아 사태 해결 방안을 논의해 왔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열린 12차 회담도 성과 없이 끝났다. 협상단은 10월14일 회담을 재개하기로 했다.

옛 소련권 내 민족분쟁과 러시아와 서방 간 세력 다툼이 복잡하게 뒤얽힌 조지아 사태가 가까운 시일 내에 해법을 찾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cjyo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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