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의 대부' 제임스 브라운, 성탄절에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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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타=AP/뉴시스】

랩, 펑크 그리고 디스코의 선구자인 '소울의 대부' 제임스 브라운이 성탄절인 25일 사망했다. 향년 73세.

브라운은 전날 폐렴 증세가 악화돼 미 조지아주 애틀란타의 에모리 크로포드 롱 병원에 입원했으나 이날 새벽 1시45분(현지시간)께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올 2월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기도 했던 브라운은 엘비스 프레슬리, 밥 딜런 등과 함께 지난 반세기 동안 음악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로 평가된다.

특유의 다리떨기는 믹 재거와 마이클 잭슨에게, 그만의 독특한 창법은 데이비드 보위의 '페임'(Fame), 프린스의 '키스', 조지 클린턴의 '아토믹 도그', 그리고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의 '싱 어 심플송'에 그대로 전해졌다.

브라운의 음악은 실제로 아이스티(Ice-T), 퍼블릭 에너미 등 거의 모든 래퍼들의 음악에 샘플링돼 있다.

퍼블릭 에너미의 래퍼 척 D는 "브라운은 단연 최고의 연주를 보여줬다"며 "오늘날까지 그 누구도 브라운의 펑크를 흉내조차 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브라운은 지난 2003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디스코도 제임스 브라운, 힙합도 제임스 브라운, 랩도 제임스 브라운"이라고 농담하며 "모든 래퍼들의 음악을 들어보라. 그 가운데 90%는 내 음악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1949년 미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반웰의 빈민 가정에서 태어난 브라운은 1956년 '플리즈 플리즈 플리즈'로 데뷔, 음악 생활을 시작한다.

이후 '아웃 오브 사이트', '섹스 머신', '아이 갓 유' 그리고 '메이크 잇 펑키' 등 히트송 제조기로 명성을 날렸다. 그는 1965년 '아빠에게 새 가방이 생겼어'(Papa's Got a Brand New Bag)로 그래미 최고 R&B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가장 화려했던 시절 그는 마약과 술에 찌들고 심지어는 세번째 아내인 아드리엔느를 폭행하는 혐의가 인정돼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한다.

이후 슬럼프를 극복, 무대에 복귀에 성공한 브라운은 1992년 그래미 평생공로상을 수상, '소울의 대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브라운은 노래를 통해 흑인들의 자부심을 고취시킨 '흑인의 우상'이기도 하다. 그는 특히 1969년 '크게 외쳐요-나는 흑인이고 나는 자랑스러워요'(Say It Out Loud - I'm Black and I'm Proud)를 발표,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 사건 이후 실의에 빠진 흑인들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그는 "나는 '크게 외쳐요..'를 부른 뒤 우리가 우리를 당당히 흑인이라 불렀던 것을 확실히 기억한다"며 "이 노래가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가사와 음악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관련사진 있음>

배혜림기자 beh@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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