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해저터널]각국의 해저터널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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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프랑스 채널터널

구상서 건설까지 200년… 94년 역사적 개통

공사비 150억 달러… 매일 25차례 열차운행

오전 8시 파리 북부 역에서 유로스타 특급열차를 탄다. 기차는 영불해협(영국은 도버, 프랑스는 칼레라 부름)을 관통하는 해저 ‘채널터널(Channel Tunnel)’을 건너 영국 오전 10시30분에 런던 시내 워털루역에 도착한다. 파리를 떠난 지 3시간30분 만에 450km의 육로 철길과 50km의 채널터널을 달려 런던의 의사당 빅벤이 바라보이는 템스강 동남쪽에 이른 것이다.

로마제국과 나폴레옹 시대부터 유럽인들의 숙원이던 영불해협의 연결이 200년 동안 계속된 연구와 시도 끝에 1994년 5월 6일 개통됐다. 이후 9년 동안 여객 1억6000만명, 승용차와 화물차량 3500만대, 화물 2300만t이 이 해저터널을 건너 유럽 대륙과 영국 사이를 오갔다.

영국인들이 ‘처널’(Chunnel·채널과 터널의 합성어)이라는 별명을 붙인 이 해저터널은 영국 남동부 켄트군 포크스턴에서 프랑스 북부의 칼레를 잇는 총 길이 49.87km 구간을 말한다. 1987년 12월 15일에 영국 쪽에서, 이듬해 2월 28일에 프랑스 쪽에서 각각 첫 삽을 뜬 지 5년5개월 만에 완공된 채널터널은 공사비 150억유로가 소요됐으며, 20세기의 가장 정교한 기술이 동원된 난공사였다.

터널은 해저 바닥 50m 이하에 조성된 암반을 굴착해 만들었기 때문에 터널 속에서 화재가 발생하더라도 마손되지 않도록 철저한 방재 장치와 설비를 갖추었다. 1996년 11월 터널 남측 구간에서 화물차량에 탑재한 트럭에 불이 났을 때도 375m 간격으로 설치한 환승처 덕분에 인명 피해가 전무했다.

채널터널이 태어나는 데는 200년의 긴 세월이 필요했다. 처음 해저터널을 구상하고 설계도면을 작성한 사람은 알베르 마티외라는 프랑스인 광산 기술자였다. 1830년대 토메 드 가몽이라는 프랑스 광산 기술자가 7개의 상이한 설계도에 30년간 매달려 씨름을 했다.

1957년에는 해협터널 연구그룹이 영국에서 만들어지고 1973년 에드워드 히드 영국 총리가 조르주 퐁피두 프랑스 대통령에게 정식으로 해저터널 공사를 제안했다. 1986년 3월 양국 사이에 터널공사 조약이 체결되고, 1987년 12월에 마침내 공사가 시작됐다. 국제 화물열차가 운행을 시작한 것은 1994년 6월 1일, 유로스타 운행은 11월 14일, 객차가 운행된 것은 12월 22일이었다. 실로 200여년 동안의 노력이 결실하는 순간이었다.

채널터널 공사는 최초로 유럽 대륙과 영국을 연결하는 국제 하이웨이로 어려운 기술들이 동원된 암반 해저공사였음에도 별다른 사고 없이 이루어진 대역사라는 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채널터널은 처음엔 공사비 70억달러를 책정했으나, 난공사인 해저 암반 굴착과 공사기간 연장 등 난항 끝에 2배가 늘어난 150억달러나 소요됐다. 매일 25차례의 승용차·화물차 운반 전용 셔틀기차와 승객 운송용 유로스타가 운행되고 있다. 채널터널 통과 운행은 24시간 내내 계속되며 365일 동안 쉬지 않는다. 요즘과 같은 여름 성수기에는 1시간에 4편의 열차가 출발하며, 물론 여권검사는 승차 이전에 이루어진다.

영불 양국 정부는 1986년 9월 유로터널 회사를 설립해 2086년까지 터널 운영권을 위탁한 상태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공사 채무액과 지난 11년 동안의 운행 수입 적자로 이 회사는 2005년 6월 현재 90억유로의 부채를 안고 있다.

폴크스톤=남정호 특파원



일본 세이칸터널

해저터널론 세계최장 53km… 24년만에 완공

고압 용출수로 공사 난관… 첨단기술로 해결

홋카이도(北海道)는 원래 일본에서 오지 중의 오지다. 아직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추운 지방의 원시림이 밀집해 있는 무공해 청정지역이다. 이곳에서 나는 싱싱한 과일과 채소, 생선류를 일본 국민은 제 때 싼값에 맛볼 수 있다. 홋카이도와 혼슈(本州) 간 쓰가루(津輕)해협을 바다 밑으로 가로질러 연결된 53.85km의 세이칸(靑函)터널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일본이 해저터널로는 세계에서 가장 긴 세이칸터널 공사에 착수한 것은 1964년. 1988년 철도가 개통되기까지 만 24년이 걸렸으며, 1조5000억엔이 들었다.

당시 전후 19년째를 맞은 일본은 국가재정이 충분치 않았으나 대형 토목공사에 착수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쓰가루해협을 관통하는 철도건설계획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1954년 태풍 ‘도야마루’로 세이칸 연락선이 침몰해 수백명이 숨지자, 일본 정부는 일자리 창출과 경제 부흥을 위해 대규모 공사를 구상했다.

당시 토목기술로는 세계 최고 수준인 일본철도건설공단이 설계에 들어갔다. 공단 기술진은 세이칸터널 공사를 통해 용출수 처리공법 등 몇 가지 신터널공법을 개발해 냈다. 기술진은 “해저에서 최고 100m까지 굴착해가는 과정에서 뿜어 나오는 고압 용출수와의 투쟁이 공사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말했을 정도. 용출수 압력은 1㎥당 240t.

용출수 제압을 위해 개발된 것이 지반 주입 기술이었다. 암반에 수백개의 구멍을 정밀하게 뚫은 뒤 구멍에 특수 시멘트를 주입해 수맥을 차단하는 공법이다. 특수 시멘트는 ‘규산소다’와 ‘시멘트 밀크’라는 고강도 시멘트를 혼합한 것이다. 지질 상태나 용출수 상태 등을 치밀하게 조사하고, 시멘트 주입 범위나 타이밍을 제대로 맞춰야 한다.

다음 문제는 굴착 기술이었다. 통상 지상 터널 공사에선 암반 굴착 직후 무너지지 않도록 강철관 거푸집을 박으면서 파 들어가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해저터널은 고압 용출수와 수압에 밀려 나오는 토사 때문에 강철관을 끼워넣는 공법은 쓸 수가 없다. 기술진은 이에 따라 강철관 대신 고강도 콘크리트를 고압으로 터널 벽면에 내뿜어 터널을 견고히 하는 ‘취부(取付) 콘크리트’ 공법을 도입했다. 이는 안전성뿐 아니라 굴착 속도를 크게 높였다. 이 기술은 유럽에서 시험적으로 도입됐지만 이를 더욱 발전시켜 해저터널 공사에 처음 채용한 것은 세이칸 해저터널이었다.

공단 기술진은 또 터널 공사 때 보통 채용하는 수직 볼링작업 대신 수평 볼링작업을 해 파낸 토사를 조사함으로써 지질 상태나 단층상태, 용출수의 유무와 압력 등을 파악하는 선진 볼링 기술을 개발했다.

선행 터널 굴착공사는 홋카이도 쪽 하코다테(函館)시 시리우치(知內)와 아오모리(靑森)현 이마베쓰(今別)에서 동시에 시작돼 중간에서 만나는 형식이었다. 선행 터널 공사가 3분 2 정도 완료됐을 때 본 터널과 보조 터널 굴착도 개시됐다.

본 터널 공사는 선행 터널 공사 과정에서 얻은 정보와 기술을 그대로 적용하기 때문에 공사기간이 훨씬 적게 걸린다. 보조 터널은 본 터널의 굴착공사를 위한 기술자와 자재가 운반되는 터널이다. 이로써 선행 터널은 19년, 본 터널과 보조 터널은 13년이 걸렸다. 1985년 모든 굴착공사가 완료됐다. 난공사라 사망 사고도 있었다. 용출수 처리작업 도중 급류에 휩쓸린 것이다.

아오모리=정승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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