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꿈꾸는 우크라이나, 레닌을 끌어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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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3.12.09. 오후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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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윤현 기자]

 레닌 동상을 쓰러뜨린 우크라이나 반정부 시위를 보도하는 영국 BBC 갈무리.
ⓒ BBC

우크라이나와 유럽연합(EU)의 협력협정 체결중단에 항의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뒤덮었다.

AP·BBC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키예프에서는 9일(현지시각) 수십만 명에 이르는 인파가 키예프 도심의 '독립광장'에서 ▲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퇴진 ▲ 총선 및 대선 실시 ▲ 야권 인사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를 주도하는 야권의 추산으로 이날 100만 명이 모여 우크라이나 국기와 EU 깃발을 들고 반정부 구호를 외쳤다. 야권은 지난 2004년 친(親)서방의 빅토르 유셴코 정권을 탄생시킨 '오렌지 혁명' 이후 우크라이나의 최대 규모라고 주장했다.

이날 시위에서 감옥에 수감돼 있는 야권 지도자 율리야 티모셴코 전 총리는 딸이 대신 읽게 한 호소문을 통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물러날 때까지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경찰은 약 5만 명의 병력을 시위 현장에 배치하여 국가 비상사태에 버금가는 경계를 펼쳤다. 경찰은 대통령 관저와 정부 청사로 향하는 길을 전면 차단하며 시위대와의 큰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시위대는 구소련을 세운 사회주의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의 동상을 쓰러뜨린 뒤 대형 망치로 머리를 제거하고 몸통을 내리치는 등 격렬하게 항의하며 일촉즉발의 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 선택한 우크라이나, 중세로의 회귀?

이번 반정부 시위는 최근 우크라이나의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EU와의 협력협정을 전격 철회하면서 시작됐다. 우크라이나와 EU는 관세의 95%를 없애고, 인력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포괄적 협력협정을 추진해왔다.

그러자 우크라이나와 관세동맹을 맺으려는 러시아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EU와 관계가 껄끄러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한다"고 비난하며 러시아와 EU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했다.

지난해부터 벨라루스·카자흐스탄과 관세동맹을 결성하여 운영하고 있는 러시아는 여기에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다른 구소련 국가도 끌어들여 '유라시아 연합(EAU)'이라는 경제통합체로 키워 EU와 맞서려는 구상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관세동맹을 맺고, EU와도 협력협정을 체결하는 양다리 전략을 구사하려고 하자 우크라이나 철강 제품의 수입금지와 가스공급 중단 등의 압박 카드를 내밀고 있다.

EU는 우크라이나가 협력협정을 체결할 경우 연간 5억 달러에 이르는 무관세 이익을 거둘 것이라고 설득했지만, 러시아에 연간 170억 달러를 수출하고 있는 우크라이나로서는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더 나아가 티모셴코 전 총리를 비롯한 친서방 성향의 야권 인사를 감옥으로 보내면서 러시아와 밀착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반정부 시위대를 향해 "비이성적"이라며 비난했다.

레닌 쓰러뜨린 우크라이나, 무엇을 원하나

사태가 불리해지자 EU는 이례적으로 성명을 통해 "우크라이나는 스스로 미래를 결정할 권리와 능력이 있다"며 러시아를 비난했고, 미국도 우크라이나 정부의 과도한 시위 진압을 지적하며 EU를 거들고 나섰다.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벨라루스·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등도 러시아의 압박에 못 이겨 EU와의 협력협정을 거부했다. 다급해진 EU는 러시아와의 자동차 관세분쟁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정식 제소하며 맞섰다.

EU 경제권에 편입하여 서구식 민주주의와 경제 자유화를 기대했던 우크라이나 시민도 협력협정 체결을 중단하고 러시아를 선택한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반정부 시위를 시작했다.

구소련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경제 규모가 큰 우크라이나는 상당한 경제·국방 등을 러시아에 의존하며 '말라야 로시야(작은 러시아)'로 불렸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러시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우크라이나는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 했다.

마침 EU와 미국 등 서방 자본이 대거 우크라이나에 진출했고, 친서방 성향의 유셴코 대통령이 오렌지 혁명을 통해 정권을 잡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EU 가입을 추진하면서 러시아와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우크라이나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EU-미국과 러시아의 힘겨루기로 보고 있다. 이날 키예프에서 쓰러진 레닌의 동상은 최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복잡한 관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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