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손병호] 문재인과 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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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제1야당 대통령 후보이지만 개인적 모습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림자가 따라다녀 참여정부의 렌즈로만 그를 바라보려 하기 때문이다. 또 본인부터 개인 얘기를 하길 싫어해 알려진 것도 별로 없다. 하지만 그를 오래 지켜본 이들이 전하는 ‘인간 문재인’의 면모는 그를 새롭게 들여다볼 기회를 준다.

문 후보는 경선이 한창이던 지난달 중순 캠프 내 TV토론 책임자를 찾아 언성을 높였다. 화를 내는 일이 처음이라 다들 당황했다고 한다. 이유인즉슨, TV 토론을 앞두고 후보에게 미리 준비원고를 줬는데, 다른 후보 공약의 허점을 비판하는 내용이 수두룩했다는 것이다. 문 후보는 “그쪽이 나름대로 공들여 만든 공약인데 어떻게 면전에서 비판할 수 있느냐. 내 공약만 잘 설명하면 되지 남들 것은 앞으로 비판하지 마라”고 꾸짖었다고 한다.

특전사 출신인 그는 겉으로는 아주 강해 보인다. 특히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부산대병원에서 서거 사실을 발표할 때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냉정을 유지했던 모습을 높이 평가하는 이들이 많다. 그는 장례기간 내내 그랬다. 하지만 그건 겉모습만 그랬었다. 그의 지인은 20일 “문 후보가 장례기간 귀가할 때마다 거의 대성통곡을 했다. 거의 매일 그랬다. 그러면서 밖에 나가선 표정 하나 흔들리지 않고 장례를 진두지휘했다”고 말했다. 다른 지인은 “그렇게 속상한 일이 있을 때마다 밖으로 표출하지 않고 혼자 이를 꾹 다물고 삭여서 치아가 많이 상했다”고 했다.

‘감나무 사건’은 그의 감수성의 일단을 엿보게 한다. 집에 감나무가 있는데, 거의 다 죽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부인 김정숙 여사가 잘라버리려 하자 문 후보가 한사코 “좀더 기다려보자”고 만류했다고 한다. 그날 이후 문 후보는 틈날 때마다 나무를 어루만지거나 물을 주는 등 지극 정성을 기울였다. 지인은 “문 후보가 나무랑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이웃들이 여러 번 목격했다”고 전했다. 그렇게 6개월을 애지중지했더니 감쪽같이 되살아났다. 문 후보의 ‘대화’는 술을 마시고 올 때면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와도 한참이나 이어진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은 생전 경남 김해 봉화산을 자주 등산했는데, 문 후보 때문에 산행 도중 자주 멈춰서야 했다. 문 후보가 산에 핀 꽃이 예쁘다고 혼자 뒤처져 한참이나 들여다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야생화 공부를 따로 했을 정도로 꽃을 좋아하고, ‘문학소녀’를 꿈꾼 부인도 감수성이 풍부해 부부가 꽃을 소재로 ‘유치한’ 대화를 자주 나눈다고 한다.

그의 ‘청렴 결벽증’은 선거를 치르면서도 이어지고 있다. 그는 얼마 전 참모들을 다 불러 “선거법에 한치도 어긋나지 않게 하고, 돈도 법정 선거비용만 써라. 그 이외 돈이 모자라면 타 캠프처럼 ‘알아서 하는’게 아니라 아예 하지를 마라”고 지시했다. 이 때문에 그의 캠프는 명함, 직책, 기름값·밥값이 없는 ‘3무(無) 캠프’로 불린다.

그는 승부근성도 아주 강하다. 뭘 하나 접하면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린다는 것이다. 측근은 “후보가 서울대 상대를 쳤다가 떨어져 재수를 했는데, 이후 하도 화가 나서 당시 입학이 까다로운 종로학원 입학시험에서 1등을 차지했다”고 말했다. 다른 측근은 “경희대 법대 출신인 문 고문이 사법연수원에서 차석을 차지했다”며 “학습능력이 뛰어나기도 하지만 지고는 못 배기는 성격”이라고 귀띔했다.

손병호 정치부 차장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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