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한·미·중의 ‘6·25 전쟁 재평가’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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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3.07.30. 오후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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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렬/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장·중국학

7월 27일 6·25전쟁 정전(停戰) 60주년을 맞아 서울과 평양, 그리고 미국의 워싱턴에서 제각기 성대한 행사가 열렸다. 한국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정전 60년 만에 처음으로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행사를 가졌고, 평양에서는 중국 국가부주석인 리위안차오가 김정은과 나란히 20년 만에 열린 대규모 ‘전승기념일’ 열병식에 참석했다.

약속이라도 한 듯 미국 워싱턴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6·25전쟁의 정전이 ‘휴전(休戰)’의 의미보다 ‘종전(終戰)’의 의미를 가지며, 한국의 새로운 발전의 토대가 됐다는 점에서 6·25전쟁을 ‘무승부(tie)’가 아니라 ‘이긴(victory) 전쟁’으로 재평가했다.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동시다발적 현상이다. 뭔가 이제는 6·25전쟁이 역사의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의 지난 2월 3차 핵실험 이후 한반도를 감쌌던 긴장감이 세 곳에서 국제정치의 토네이도가 돼 한꺼번에 솟아오르는 듯한 환영(幻影)에 빠지기도 한다.

6·25전쟁 정전일을 북한은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일’로 착색해 왔던데 비해, 한국은 ‘정전’이란 기술적 전쟁 상태의 연속이며 ‘분단의 고통’과 ‘미완의 통일’의 뿌리로 인식해 왔다. 그동안 조용하게 정전기념일을 보냈던 이유다. 이번에 한국 정부가 27개국 대표가 참가한 대규모 기념행사를 가진 것은, 적어도 겉보기에는 북한 다루기에 대한 자신감과 함께 어두웠던 6·25전쟁의 상처로부터 벗어나 역사를 정면으로 바라보겠다는 의지의 표시다. 미국의 6·25전쟁 재평가는 한·미 군사동맹을 과시하는 한편, 미국이 주도한 유엔연합군의 ‘승리’와 한국의 발전을 연계함으로써 동북아시아 지역에 대한 미국의 개입 전략의 정당성을 뒷받침했다.

중국은 그동안 북한 스스로의 ‘조선전쟁’과 1950년 10월 중공군 참전 이후의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으로 구분해 왔다. 2010년 10월 당시 국가부주석이던 시진핑은 참전 60주년을 맞아 중국에 있어서 6·25전쟁이 ‘미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었다고 역설했다. 그동안 6·25전쟁을 주로 미국에 대항한 중국의 전쟁으로 묘사해 온 중국이 올해는 별다른 자체 행사 없이 국가부주석을 평양에 보내면서 ‘조선전쟁’으로 지칭함으로써 북한의 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중국과 미국의 갈등 구조를 부각시키기 싫은 것이다.

북한 핵실험 이후 북·중 관계의 ‘제자리 찾기’에 나선 중국 입장에서 북한은 ‘계륵(鷄肋)’이다. 버리자니 전략 카드로서의 북한이 아깝고, 그대로 껴안고 가자니 중·미 관계나 한·중 관계가 삐걱거리는, 그야말로 버릴 수는 없으나 꽤나 성가신 존재가 됐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서울과 워싱턴, 그리고 베이징의 분위기는 크게 나무랄 게 없다. 60년 만에 6·25전쟁의 아프고도 어두웠던 구름이 서서히 걷혀 가는 듯한, 장마 끝의 상쾌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가슴 저몄던 역사를 이제야 드러내 놓고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올해 정전기념일을 전후한 서울과 평양, 그리고 워싱턴과 베이징의 표정을 보면서, 지난 60년의 기나긴 세월 동안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남북관계의 더딘 변화에 대한 자괴감을 떨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핵 표기 배낭’부대가 등장한 평양 열병식에서 웃고 있는 중국 부주석과, 반세기 이상 지나버린 과거의 전쟁을 재평가한 미국의 자신감, 60년 만에 새삼 유엔군 참전의 날 행사를 한 한국의 모습에서 여전히 냉전의 비애를 느끼는 게 필자만의 ‘과민증후군’ 병증(病症)일까? 정전기념일 행사가 주변국에 전략 카드를 쥐여준 ‘한반도 분단기념일’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말로만 떠돌지 않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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