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 북한 인민군이 38선을 넘었다. 전쟁은 광복 후 분단이 낳은 비극의 정점이자 이후 발생한 모든 분단 비용의 시발점이었다. 1990년대 이후 힘겹게 쌓아 올린 남북 화해와 통일의 가능성은 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은 지금 급속히 닫혀 가고 있다. 전쟁의 기억이 여전히 한반도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박태균 교수는 한국전쟁이 정책 결정자들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발생했다고 말한다.<편집자주>

한국전쟁은 꼭 일어나야 했는가? 전쟁을 막을 방법은 없었는가? 우리에게 전쟁은 항상 필연으로 설명됐다. 우리 힘으로 해방되지 못했으니까, 외세에 의해 분할 점령이 됐으니까, 그리고 때마침 냉전이 시작됐으니까.… 전쟁이 필연적으로 일어나야만 하는 이유가 너무나 많았다.

그러나 전쟁 발발로부터 60년이 흐른 지금 다른 각도에서 새로운 질문을 던져 보고 싶다. 왜 우리가 분단이 돼야 했나? 유럽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분할점령되면서 분단됐다. 그러나 한국은 패전국이 아니었다. 일본이 분단되지 않고 왜 우리가 분단돼야 했는가?

분단을 극복하지 못한 내부의 문제
독일은 분단이 됐지만 왜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는가? 오스트리아는 분단되지도 않았으며, 1955년 분할점령에 종지부를 찍고 통일국가를 수립했다. 

1947년 트루만 독트린과 마셜 플랜 이후 세계적 차원에서 냉전이 심화되면서 한반도가 분단될 운명에 처해 있었다고 한다면 냉전의 와중에서 통일국가를 수립한 오스트리아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오스트리아의 위치 역시 서유럽과 동유럽 사이의 중요한 완충지대였다.

이러한 질문의 중심에는 서구 열강 중심의 세계관이 짙게 깔려 있다. 서구 열강의 힘이 한국과 같은 주변부에 관철되는 과정을 일방적으로 강조함으로써 주변부 국가들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베트남의 통일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베트남에는 열강의 힘이 관철되지 않았단 말인가? 한국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 베트남에 대한 개입보다 더 강력했던 것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좌우합작 운동과 남북 협상은 쓸모없는 것이었는가?

그렇다면 한국은 왜 냉전 체제 아래에서 다른 나라와 달리 분단을 겪어야 했으며, 전쟁이라는 처참한 비극을 거쳐야 했을까. 중국·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일본의 이웃 국가라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설명하지 않고서는 한국의 분단을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 공산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 사이의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해 미국과 소련에 의한 분단을 설명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분단을 설명하는 조건이 될 수는 있겠지만 분단을 극복하지 못한 조건은 되지 못한다. 냉전의 와중에서 오스트리아, 베트남, 독일도 분단을 극복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분단의 책임은 외부에 있다 하더라도 분단을 극복하지 못한 이유는 내부 문제로 화살이 돌아올 수밖에 없다.

전쟁 문제로 가면 이보다 더 큰 의문이 제기된다. 1950년의 시점에서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1948년 이래로 위기가 계속되고 있던 독일 베를린이나 대만이 전쟁터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대세였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전쟁은 한반도에서 발발했다. 일본에 있던 연합군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는 북한의 군사적 동향이 심상치 않다는 보고서에 그다지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딘 애치슨 국무장관은 미국의 방위선에서 한반도와 대만을 제외시켰다.

그렇다면 전쟁은 왜 일어난 것이었을까? 1949년 세계적 차원에서 소련의 핵무기 개발과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 한반도에서의 미군 철수는 한국전쟁의 직접적인 배경으로 이야기되곤 한다. 중국의 공산화와 주한미군의 철수는 북한에 정신적으로 큰 힘을 주었기 때문이다. 중국 혁명 이후 북한으로 들어온 조선인들, 1949년 이후 소련의 북한에 대한 원조는 북한에 물질적인 힘을 제공했다. 여기에 더해 1949년 이후 계속된 이승만의 북진통일론과 38선 분쟁은 북한의 남침에 또 다른 원인을 제공했다.

그러나 1950년 봄에 전쟁이 최종적으로 결정되는 과정을 보면 1949년을 통해 일어난 국내외적 상황은 전쟁의 배경이 될 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특히 1950년 3월 말부터 4월 말 사이에 이뤄진 김일성과 박헌영의 소련 방문은 전쟁이 왜 발발했는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스탈린과 김일성의 결정적 오판
소련의 공산주의 정권이 붕괴된 이후 공개된 이오시프 스탈린과 김일성·박헌영 사이의 대화에서는 미군의 개입 여부가 논의의 가장 중요한 초점이 된다. 1949년 봄에 김일성이 스탈린과 만났을 때 스탈린은 김일성의 전쟁 계획에 반대했다. 북한군이 전쟁을 수행하기에는 아직 충분히 강하지 않으며, 남한에 미군이 있다는 것이 김일성 계획에 대한 스탈린의 반대 이유였다.

그러나 1950년 봄의 대화 속에서 스탈린과 김일성은 미국이 더 이상 국외의 일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에 동의한다. 이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으로 이어진다. 물론 여기에는 1949년의 제반 상황, 1950년 초 애치슨 국무장관의 미국이 설정한 방위선에 대한 언급이 스탈린과 김일성의 잘못된 판단을 끌어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스탈린과 김일성의 판단은 결정적인 오판이었다. 미국의 대외정책은 1949년 말 이후 서서히 변화하고 있었다. 미국의 핵 독점이 깨지고 아시아 대륙에 공산주의가 확산되면서 소련과 중국을 둘러싸고 있는 대륙의 주변부 어디에서도 미국이 물러나서는 안 된다는 정책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1949년 시점에서 전쟁이 발발했다면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었다. 당시 미국은 제한된 자원을 고려해 자유세계 전체가 아니라 중요한 거점들만 방어한다는 것이 세계 안보전략의 핵심적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일부 연구자들은 최근 공개된 옛 소련의 문서들을 바탕으로 스탈린이 미국의 정책 변화를 알고 있었음에도 미국을 시험하고 미국의 관심을 유럽에서 아시아로 돌리기 위해 한반도에서의 전쟁 계획에 동의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1950년 초 전쟁 결정 과정에서 나타나는 결정적인 오판은 비단 미군의 참전 여부에 대한 문제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1950년 초 북한의 조선노동당에서 이뤄진 제반 보고에서는 북한이 남한의 이른바 ‘혁명역량’에 대해 너무나 큰 오산을 하고 있었음이 잘 드러난다. 남한에 근거지를 두고 있다가 월북한 공산주의자들은 1950년 초 북한에서의 보고를 통해 남한에 수많은 혁명분자가 있다고 보고했다. 북한이 전쟁을 개시할 경우 남한의 혁명 세력은 모두 봉기할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남한의 좌익 세력은 1949년에 대대적으로 검거됐다. 여순 사건 이후 군과 정부 내의 좌익 세력에 대한 검거가 있었고, 1949년 말부터 1950년 초까지 빨치산이 대부분 토벌됐다. 1950년 봄에는 그나마 지하에 남아 있던 과거 남조선노동당의 조직이 괴멸됐다. 그런데 왜 월북한 공산주의자들은 이와 다른 보고를 한 것일까. 자신들의 정치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허위보고를 한 것인가, 남한으로부터 잘못된 정보가 전달되고 있었던 것인가.

이유야 어쨌든 간에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은 세계 정세뿐만 아니라 남한 내의 정세에 대해 지극히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물론 남한 정부 역시 잘못된 계산과 판단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이승만 정부는 북진통일이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전쟁 발발 직후 북한에 의해 무너진 방어벽을 보면 이승만 정부의 판단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만에 하나 북진을 시도했다면 미국이 남한을 도와줄 수 있었을까? 1968년 남한에 의한 북한 보복계획을 막기 위해 방한한 미국의 특사는 한국이 북한의 침략으로부터 피해자가 될 때에만 한국을 도와줄 수 있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또 이승만 정부의 거듭되는 북진 주장이 단지 ‘수사’에 불과했다고 하더라도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에게 ‘위기’를 느껴 전쟁을 일으키도록 하는 빌미를 제공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전쟁은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정세가 배경이 됐다면 전쟁이 발발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정책 결정자들의 잘못된 판단과 계산이었다. 전쟁을 하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이들의 잘못된 생각이 결국 한반도를 비극의 전쟁터로 만든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전쟁은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비록 국내외적 변화가 전쟁 결정의 배경이 됐다 하더라도 전쟁을 필연적인 과정으로 만들지는 못했다. 정세 변화를 전쟁이 필요한 요인으로 고려한 정책 결정자들의 ‘판단’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또다시 찾아온 한반도의 긴장 위기
이렇게 보면 전쟁은 막을 수도 있었다. 정책 결정자들이 당시 상황을 제대로 판단했다면 전쟁은 발발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한국의 정책 결정자들과 한국인들이 전쟁을 원하지 않는데 스탈린이 전쟁을 하라고 떠밀 수는 없었다. 전쟁을 해야 한다는, 전쟁을 할 수밖에 없다는 잘못된 판단이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1953년에 정전협정을 맺었지만 한반도에서의 안보 위기와 전쟁 위기는 계속됐다. 비무장지대(DMZ)에서는 1968년 청와대 습격 사건과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이 일어나기 전 1년 동안 400회가 넘는 충돌이 발생했다. 그리고 1967년 말 유엔군사령관과 한국의 중앙정보부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1968년 제2의 한국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전쟁은 발발하지 않았다.

1975년 봄 남베트남이 패망하기 직전에 김일성은 중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북베트남은 남베트남을 점령했다. 1976년에는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남한과 미국은 북한의 도발에 대해 보복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다행히도 전쟁은 발발하지 않았다. 한반도의 운명을 운에 맡기고 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지금 한반도에 또 다른 위기가 왔다. 남한은 북한에 천안함 사건의 책임을 묻고 있으며, 북한은 남한의 주장이 위기를 고조시키는 전쟁 도발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한 번 위기가 상승작용하고 있다. 이번 위기도 이전처럼 운 좋게 잘 넘길 수 있는 것일까?

그러나 마냥 한반도의 운명을 운에만 맡기고 살 수는 없다. 1950년의 전쟁 발발이 정책 결정자들의 잘못된 판단과 계산에 의한 것이었다면 이들이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는 정책 결정자들이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또다시 우리의 운명을 운에 맡길 것인가?

전쟁 발발 후 60년이 흐른 오늘 우리는 후손들에게 한국전쟁과 같은 비극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전쟁 발발 과정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만 한다. 전쟁이 끝난 지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전쟁에 빠져드는 멍청한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전쟁 발발 과정으로부터 소중한 교훈을 얻어야만 한다. 이것이 전쟁 발발 이후 60년이 된 우리에게 주는 역사의 증언이다.

<글·박태균 서울대 교수,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