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 미국 외교의 기본은 먼로주의라고 하는 고립주의라는 명목 하에 중립노선을 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세기 말에 국내의 자본주의 체제가 정돈되고 경제적 성장을 거듭하면서 카리브해와 태평양을 향하여 적극적인 팽창정책을 취하였으며,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 결과 하와이, 괌, 필리핀, 푸에르토리코 등을 병합하고 이어서 1921년에는 중국시장의 문호개방을 요구하는 워싱턴조약을 체결하였다.
제1·2차 세계대전에는 먼로주의를 관철하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말려들었으나, 개입의 배경에는 유럽에서 초대국(超大國)으로 성장한 독일의 세력이 미국의 번영을 크게 위협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한 목적이 다분히 포함되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전쟁 당시 그 역할이 지대하였던 미국은 유럽의 피폐,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의 대두 등 국제정세에 비추어 외교정책을 적극적인 개입주의로 전환하지 않을 수 없었다.
UN(United Nations: 국제연합)에의 참가, 마셜플랜에 의한 유럽의 부흥 원조, 중국의 공산화, 더욱이 소련과의 냉전 격화 등에 따라 공산주의에 대한 ‘봉쇄정책’에서 ‘반격정책’을 목표로 하는 상호방위조약의 적극적인 체결 및 신흥 제국에 대한 원조로 미국은 경제적·군사적 원조를 세계적인 규모로 확대하기에 이르렀다. 1959년 소련 수상 흐루시초프의 미국 방문을 계기로 한 미·소 간의 해빙(解氷)은 1962년의 쿠바미사일위기를 거쳐 1963년의 부분적 핵실험 정지조약의 체결을 성립하게 하였고 1970년부터 시작된 SALT(전략무기감축협정)에서는 우발 핵전쟁 방지협정이 1971년 9월에 체결되었다. 5월에는 대통령 닉슨이 소련을 방문함으로써 ABM망(網)의 제한 등 일련의 성과가 있었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 대통령 레이건 때 다소 경화되었던 미·소 관계는 대통령 부시가 1989년 12월 몰타에서 소련 공산당서기장 고르바초프와 정상회담을 가짐으로써 적대관계에서 동반관계로 변화하였다. 양 거두는 베를린 장벽 개방과 동유럽의 혁명적 개혁을 지지하면서 비개입을 다짐, 냉전시대의 종식과 신(新)데탕트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소련의 붕괴와 함께 러시아와 새로운 협력관계를 추진해온 미국은 1993년 2단계 전략무기 감축 협정 합의, 대 러시아 경제지원 등으로 옐친정부의 민주화 개혁을 지지하고 있다. 베트남전쟁의 종결 후 대 중국관계의 개선에 노력하던 중 1979년 1월부터 정상화되었던 미·중 관계는 1980년대에 들어와서 크게 진전되어 왔으나, 중국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일어난 1989년의 톈안먼[天安門] 사건으로 급격히 냉각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세계평화와 동북아 지역 안정에 대한 중국의 역할을 고려하여 미국은 대 중국 최혜국 대우를 연장하였으며, 1993년 APEC(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경제지도자 회의에서 양국 관계 강화와 경제협력을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하였다. 대 중남미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 것은 대 쿠바 관계로, 오바마 행정부는 쿠바와 국교를 회복하고, 양국에 대사관을 설치하였다.
1979년에 조인된 이스라엘·이집트 간의 평화조약, 1980년대의 이라크·이란 전쟁과 호메이니 사망 후의 대 중동 관계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으나, 1990년 이라크군의 전격적인 쿠웨이트 침공에 대한 다국적군의 반격으로 시작된 걸프전에서 승리함으로써 미국의 국제적인 지위는 한층 견고해졌다. 그후 이라크, 리비아 등에 대한 강경한 외교노선을 펴는 한편 이스라엘과 PLO(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팔레스타인해방기구) 간의 화해를 주도함으로써 중동평화협상에 주력하였다.
그러던 중 2001년 9월 11일에 일어난 세계무역센터 테러사건으로 5,000여 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하였고, 미국은 그 주범으로 아프가니스탄에 은신 중인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오사마 빈 라덴(Usama Bin Laden)을 지목하고 그를 양도할 것을 요구하였다. 모하메드 오마르(Mohammed Omar)가 이끄는 탈레반이 이를 거부하자 미국은 우방인 영국과 함께 맹렬한 공격을 감행하였고, 미국의 침공에 대하여 크게 반발하는 이슬람문화권과 미국의 관계는 냉각되었다. 2011년 5월 미국은 마침내 파키스탄에서 은신 중인 빈 라덴을 찾아내어 사살했다. 빈 라덴 사살 이후에도 한동안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은 계속되었고, 2021년 바이든 행정부는 미군의 철수를 결정하였다. 미국으로서는 20년이라는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이 막을 내렸지만,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이 재집권하면서 정세 혼란이 가중되었다.
2000년대 들어 가장 중요한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은 중국과의 관계이다. 냉전 종식 이후 중국은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고, 이를 바탕으로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중국의 부상에 대해서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 당시 중국을 우호적인 파트너로 대우하면서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편입시키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중국의 부상을 제어하려는 목적의 대 중국 견제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요약하면, 미국은 양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세계 패권국의 지위에 올라섰다. 그 이전까지는 주로 고립주의 외교를 취하면서 국내문제에 치중하였으나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국제주의를 표방하고 세계패권국으서의 지위를 차지하였다. 냉전 시기에는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세력과 경쟁하기 위하여 봉쇄정책을 추진하였고, 냉전이 끝나고 공산권이 몰락한 이후에는 세계 유일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빠른 속도로 세력을 키우고 있는 중국의 도전을 받고 있는데, 중국의 세력 확대를 저지하는 것이 미국 외교안보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대외정책의 기본적인 기조는 다른 모든 나라와 마찬가지로 국익을 추구하는 것이지만, 그 방법론에 있어서는 각 정권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왔다. 고립주의와 국제주의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으며, 무력사용에 대한 선호, 다자주의에 대한 선호 등도 정권에 따라서 다르게 적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