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United States of America,]

북아메리카 대륙의 캐나다와 멕시코 사이에 있는 연방공화국이다. 1607년 영국이 제임스강 연안에 식민지를 조성한 이후 영국의 식민 상태였다가 1775년 미국독립혁명 후 1776년 독립을 선언하고 1783년 파리조약에서 독립이 승인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군사·정치·경제·문화 등에서 강대국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다인종 · 다민족 국가이다.

공식 명칭은 아메리카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 USA)이다. 북아메리카 대륙의 중남부를 차지하는 대국()이며 위로는 캐나다와 접하고 있고 아래로는 멕시코와 접경을 이루고 있다. 동쪽으로는 대서양, 서쪽으로는 태평양, 남동쪽으로 카리브해와 접하고 있다. 177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으며, 독립 당시 13개의 주로 시작하였으나 2022년 현재 50개의 주와 1개 수도구(District of Columbia:D.C.)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외에 푸에르토리코, 사모아 제도, 괌 등 다수의 해외속령이 있다.

러시아와 캐나다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영토의 국가이며, 하와이와 알래스카를 제외한 본토 면적만으로는 중국에 이어 네 번째이다. 2020년 기준 3억 3천만 명 이상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어 인구 규모 면에서 중국과 인도에 이에 세계 3위의 국가이다. 2021년 기준 GDP는 $23조를 기록하여 세계 1위의 경제 규모를 갖고 있고, 1인당 GDP는 $69,288로서 세계 9위를 기록하고 있다. 삼권분립의 민주주의를 현실정치에 구현한 최초의 국가인 만큼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수도는 워싱턴 D.C.이며 가장 인구가 많고 경제적으로 왕성한 도시는 뉴욕이다. 국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국기는 성조기, 국가는 〈The Star-Spangled Banner〉이다. 냉전기간 소련과 경쟁하였고 최근에는 중국의 도전을 받고 있지만,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여전히 세계 패권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1776년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 승리하여 독립을 선포하였고 1783년 파리 협약을 통해서 정식 국가로 인정받았다. 독립 당시 동부 13개의 주에 불과하였으나, 점차 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37개의 주가 추가되어 알래스카와 하와이를 포함하는 광대한 영토를 건설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본국 영토 이외에 해외에도 적지 않은 영토를 보유하고 있다. 노예제의 폐지를 두고 남북으로 나뉘어 5년 동안 내전을 치렀으며(The Civil War, 1861~1865), 1930년대에는 경제인구의 1/4이 일자리를 잃은 경제대공황을 겪는 등 어려움이 없지 않았으나, 자유주의 경제체제와 끊임없는 기술혁신 등을 바탕으로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였다. 제1,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리더 국가로 부상하였다.

참조항목

참조항목
캐롤라인제도 미크로네시아 연방과 팔라우 공화국을 이루는 태평양 서부의 제도.
웨이크섬 북서태평양에 있는 미국령의 작은 섬.
아랍-이스라엘분쟁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촉발된 아랍 국가와 이스라엘의 분쟁으로 '중동전쟁'이라고도 한다.
사모아제도 남태평양 중부 폴리네시아 서부에 있는 제도.
달러 1792년 화폐주조법 제정 이후의 미합중국의 통화단위(通貨單位).
푸에르토리코 서인도 제도(카리브해)의 대(大)앤틸리스 제도에 있는 미국의 자치령이다. 1493년부터 400년간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받다가 미국-스페인전쟁 이후 1898년 미국이 점령하여 군정(軍政)을 실시하였다. 그후 1952년 국방·외교·통화를 제외한 내정을 이양받아 미국의 자치령이 되었다.
베트남전쟁 베트남의 통일 과정에서 미국과 벌인 전쟁 (1960~1975).
워싱턴 D.C. 미국의 수도이다. 미국의 동부 대서양 연안 지역인 메릴랜드주와 버지니아주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법적으로 어느 주에도 속하지 않는 특별구이다.
서태평양 마리아나제도에 있는 미국 자치령.
북미자유무역협정 북아메리카에 위치한 미국·캐나다·멕시코 3국이 관세 등 무역장벽을 폐지하고 자유무역권을 형성한 협정.

1 .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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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연재해와 환경보호

일찍이 미국은 산업화 시대에 환경문제를 경험하였다. 1930년대 서부의 대평원 지대에서의 과목, 밀경작지 확대, 부적절한 경작기술로 인한 건조화와 한발은 이른바 대규모의 ‘먼지폭풍’(Dust Bowl)을 가져와 미국전역을 암흑세계로 만들고 엄청난 피해를 가져왔다.

미국은 후기산업사회에서도 여전히 다양한 형태의 환경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대표적인 환경문제로는 미국의 주요 대도시지역과 산업지역이 둘러싸고 있는 체사피크만 지역에서의 해안오염, 서부의 LA를 중심으로 하는 도시화지역의 대기오염, 대평원 지역의 관개와 지하수 개발로 인한 수자원 고갈문제, 지진·태풍·홍수에 의한 대규모의 자연재해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의 온도상승으로 태풍은 더욱 강력해졌으며 그 피해 또한 더욱 커졌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2005년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에서 일어났던 태풍 카트리나에 의한 피해를 들 수 있다. 카트리나에 의한 대규모 피해는 지구온난화와 함께 도시팽창과 석유개발을 위한 습지제거가 복합적 원인이 되어 발생하였다고 분석된다. 그밖에도 미국은 멕시코만 연안에서 해마다 발생하는 태풍에 의해 잦은 자연재해를 입는다.

국가적으로 환경 보존과 보호에 관한 관심은 매우 높은 편이다. 총 63개의 국립공원과 그 외 정부가 관리하는 공원, 삼림, 자연보호 구역이 수 백개에 이른다. 일부 구역이 원유와 석탄, 가스 등 천연자원 채취, 벌목, 군사적인 목적을 위해서 활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자연보호 구역에서의 개발은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 다른 환경 이슈에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어서 원자력 에너지의 사용, 삼림벌채, 기후변화 등의 이슈에 대한 사회적 논쟁도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환경보호와 이슈는 주로 1970년에 설립된 환경보호국(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 EPA)이 관할하고 있다. 2020년 현재 미국은 환경보호실적인덱스에서 전 세계에서 24위에 올라 있다. 2016년에 파리 기후협약에 가입했다가 2020년에 탈퇴했으나, 2021년에 재가입했다.

참조항목

참조항목
환경오염 인간 활동에 의해 발생하는 대기 ·수질 ·토양 오염 및 소음 ·진동 등으로 자연환경이나 생활환경을 손상시키는 현상.
지구온난화 지구 표면의 평균온도가 상승하는 현상이다. 땅이나 물에 있는 생태계가 변화하거나 해수면이 올라가서 해안선이 달라지는 등 기온이 올라감에 따라 발생하는 문제를 포함하기도 한다.
온실효과 대기를 가지고 있는 행성 표면에서 나오는 복사에너지가 대기를 빠져나가기 전에 흡수되어, 그 에너지가 대기에 남아 기온이 상승하는 현상이다.

2) 지형

크레이터호 국립공원
크레이터호 국립공원

알래스카와 하와이를 포함한 총 영토는 9,833,517㎢로서 러시아와 캐나다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크다. 그 중에 육지가 9,147,593㎢로서 83.65%를 차지한다. 육지의 국경은 총 12,002㎞인데 그 중 8,891㎞를 캐나다와 접하고 있고, 멕시코와 3,111㎞를 접하고 있다. 해안선은 19,924㎞에 이른다.

지형

미국의 지형은 대략 동부의 구릉지대 중서부의 평원, 서부의 산악 및 사막지대, 태평양 연안의 평야와 알래스카의 산악지대, 그리고 하와이의 화산지대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동부의 구릉지대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애팔래치아산맥이 중심으로 이루고 있다. 산맥 주변을 제외하면 대부분 평평한 평야를 이루고 있다. 산맥이 닿지 않는 동남부도 높은 산은 찾기 힘들고 대부분 평야라고 볼 수 있다. 애팔래치아산맥을 넘어 서쪽은 대평원을 이루고 있다. 미시시피강이 남북으로 길게 뻗은 이 지역은 미국의 식량창고라고 부를 만큼 미국의 농목축업의 중심지대라고 할 수 있다. 대평원의 서쪽은 로키산맥으로 대표되는 산악지대가 주를 이루고 있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로키산맥은 해발고도 4,000m를 넘는 험준한 습곡산맥으로 매우 다양한 지형을 보인다.

와이오밍 분지를 경계로 북부 로키와 남부 로키로 구분된다. 북부 로키에는 유명한 옐로스톤 국립공원과 캐나다와 접해 있는 글레이셔국립공원 등이 있어서 휴양· 관광지로 잘 개발되어 있다. 로키산맥의 서쪽은 너비 800㎞가 넘는 고원지대와 사막이 있다. 콜로라도고원, 그레이트베이슨(Great Basin, 대분지), 콜럼비아 고원지대와  모하비사막과 같은 사막지대 등으로 나뉘며,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 데스밸리 국립공원 등 건조 기후의 특이한 경관을 볼 수 있다. 태평양 연안의 산간고지는 캐스캐이드, 시에라네바다산맥 및 해안산맥의 두 줄기 산맥과 그 사이에 위치해 있는 그레이트밸리(Great Valley)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일부분인 캘리포니아 분지는 관개농업 특히 과수재배가 활발하다. 캘리포니아 중앙부 해안산맥의 태평양 연안은 환태평양 화산대에 속해 있어 이따금 지진이 일어나기도 하며, 레이니어산, 샤스타, 라센 등의 아름다운 화산도 있다.

산간고지

동부의 애팔래치아산맥과 서부의 로키산맥이 대표적인 산악지대를 형성하고 있고 서부 태평양 연안의 시에라네바다산맥과 캐스케이드산맥도 있다. 가장 높은 산은 알래스카에 있는 해발 6,194m의 데날리산(매킨리산)이다. 본래 알래스카 원주민들은 이 산을 ‘가장 높은 산’이라는 뜻의 ‘데날리 산’으로 불렀는데, 1896년 공화당 대선 후보 윌리엄 매킨리가 자신의 이름을 따 매킨리산이라 불렀고, 1917년 이 이름이 공식화되었다. 이후 원래의 이름을 되찾기 위한 지역 주민의 움직임이 계속되었고, 2015년 8월 데날리산으로 공식 개칭되었다. 반면 육지의 가장 낮은 지점은 해발 -86m의 데스밸리이다.

강과 호수

길이 3768km의 미주리강, 3544km의 미시시피강, 3190km의 유콘강, 3058km의 리오그란데강, 3057km의 콜로라도강 등이 대표적인 강이다. 광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5대호의 대부분이 미국 영토에 속한다. 미시건호, 슈피리어호, 휴런호, 이리호, 온타리오호 등이 포함된다.

참조항목

참조항목
로키산맥 북아메리카 서부를 남북으로 뻗은 대산맥.
멕시코만 멕시코 동쪽에 있는 대서양의 부속해(附屬海).
미시시피강 미국 중부를 북에서 남으로 관류하는 미국 최대의 강.
애팔래치아산맥 북아메리카의 동부를 북동에서 남서로 뻗어 있는 산맥을 말하며 길이는 약 1,800km이고 최고봉은 높이 2,037m인 미첼산이다. 임업과 광업이 주요산업이고, 오랫동안의 벌채로 삼림이 많이 황폐해졌다. 또한 미국 내의 석탄의 85%가 이곳에 매장되어 있고 철광, 석유, 아연 등도 채굴되고 있다.
오대호 북아메리카 대륙의 동부에 있는 거대한 호수군.
환태평양조산대 태평양을 둘러싸고 있는 약 40,000km 길이의 조산대로, 뉴질랜드에서부터 동남아, 일본, 알류산열도, 북아메리카 록키산맥, 남아메리카 안데스산맥까지 이르는 말발굽 형태이다. 지구상의 지진과 화산활동의 대부분이 이 지역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불의 고리'라고도 불린다.
슈피리어호 미국과 캐나다 국경에 걸쳐 있는 호수.
델라웨어만 미국 동부 대서양 연안에 있는 만.
미첼산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州) 블루리지산맥에 있는 산.
글레이셔국립공원 미국 몬태나주(州)에 있는 빙하지형의 국립공원.

3) 기후

허리케인 길버트 위성사진
허리케인 길버트 위성사진

국토가 넓은 만큼 기후 또한 지역에 따라서 매우 다양하다. 북부의 습윤대륙성기후로부터 남부의 아열대기후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기후를 볼 수 있다. 미시시피강 서쪽의 대평원은 대륙성기후, 남부 태평양연안의 캘리포니아는 지중해성 기후, 북부 태평양연안의 오리건과 워싱턴주는 해양성기후, 로키산맥의 산악지대는 고산기후를 보인다. 플로리다와 하와이는 열대기후, 남서부의 애리조나와 뉴멕시코 등은 사막 및 스텝기후와 같은 건조기후다. 예외적으로 알래스카는 지리적으로 북극에 가까운 이유로 북극 기후를 갖고 있다.

멕시코만을 끼고 있는 중서부와 동남부는 허리케인에 취약하며, 대부분의 토네이도도 이 지역에서 발생한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가 가장 큰 국가로 알려져 있다.

⑴ 열대사바나기후:플로리다반도의 남반부는 미국 본토에서 유일한 열대기후지역으로 건계와 우계가 뚜렷한 사바나기후이다. 특히 겨울에는 피한지로 가장 적합하며, 마이애미와 마이애미비치는 세계적인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반도 남단의 저습지에는 진기한 열대수가 무성한 천연림과 여러 가지 야생조류의 서식지로 알려진 에버글레이즈국립공원이 있다.

⑵ 몬순기후:대서양 연안 해안평야에서 아칸소·오클라호마 주의 내륙에 이르는 넓은 범위는 온난습윤한 몬순기후가 나타난다. 특히 대서양 연안에서는 대륙 동부 특유의 계절풍과 열대성 저기압의 영향을 받아 한국과 비슷한 기후환경을 볼 수 있다. 멕시코만 연안은 아열대성기후의 특징이 나타나며, 내륙에서는 기온이 높은데다가 건계와 우계의 구분이 뚜렷하여 세계 유수의 목화지대를 이루고 있다.

⑶ 서안해양성기후:온난습윤한 기후이나, 대륙 서부의 워싱턴주·오리건주의 해안지역에는 연중 편서풍의 영향을 받아 냉량한 서안해양성 기후를 볼 수 있다. 기온의 연교차가 작고, 연중 고른 강우현상을 나타내는 이곳은 숲이 울창하며, 사철 아름다운 꽃이 만발한다.

⑷ 냉대습윤기후:뉴잉글랜드에서 오대호 연안 및 서쪽의 그레이트플레인스의 경계선에 이르는 지역은 냉대습윤 기후가 나타난다. 이곳에는 미국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공업지대와 곡창지대가 전개되어 있다. 뉴잉글랜드는 한국의 북부지방과 유사한 기후이며, 내륙지역으로 갈수록 기온의 연교차·일교차가 커지고, 강수량이 적어져서 대륙성기후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 남부에서는 여름의 기온이 높아 옥수수·겨울밀 생산지대를 이루고 있으나, 북쪽으로 갈수록 여름에도 냉량하여 봄밀과 과수재배가 성하고 낙농업도 행해지고 있다. 대륙 내부에서는 겨울에 한랭한 북풍이 불어와 시카고 부근에서는 -20℃로 기온이 내려가는 것이 보통이다.

⑸ 지중해성기후:태평양 연안의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대륙 서안의 중위도지방에서 볼 수 있는 특유한 지중해성기후가 나타난다. 여름철은 중위도 고기압대가 북상하여 비가 거의 없으며, 겨울에는 서안해양성기후의 영향을 받아 비가 내린다. 따라서 여름에는 내건성의 감귤류나 포도 등 조엽수의 재배가 유리하다. 특히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캘리포니아해류의 영향으로 안개가 발생하는데, 그것이 바닷바람에 실려서 흘러들어 자욱한 안개의 거리가 이루어진다.

⑹ 스텝기후:서경 100°선을 경계로, 서쪽은 거의 비가 없는 스텝기후가 나타난다. 따라서 이곳에는 건조초원이 펼쳐지며, 이를 그레이트플레인스(Great Plains:)라고 한다. 카우보이가 소를 치는 상업적 방목지역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적은 강수를 이용하는 건조농법이 발달하여 점차 농경지화하고 있다.

⑺ 사막기후:로키산맥과 태평양 산계 사이에 끼어 있는 산간고지는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내륙인데다가 중위도 고압대에 속하기 때문에 사막기후가 나타난다. 솔트레이크(Salt Lake:)와 모하비사막 등이 전개되어 있다.

⑻ 고산기후:로키·캐스케이드 산맥 등의 고지대에는 고산기후가 나타난다. 특히 남부 로키의 최고봉인 앨버트산(4,339m)은 연중 빙설로 덮여 있다.

참조항목

참조항목
냉대습윤기후 냉대기후의 한 종류로, 겨울철에 적설량이 많아 연중 강수량이 고른 기후.
고산기후 산림한계고도 이상의 고산지방 기후이다. 기온의 일변화와 연변화가 작고, 수증기량은 적으나 상대습도가 커서 구름, 안개가 잘 생기고 풍속과 일사가 강하다. 양지와 음지의 뚜렷한 일조 차이는 경작지와 취락 분포에 큰 영향을 준다.
한랭기단 발원지보다 따뜻한 지방으로 이동된 기단으로 한기단 또는 냉기단이라고도 한다. 한반도에 영향을 주는 한기단의 대표적인 예는 시베리아기단이다.
계절풍기후 계절풍의 영향을 크게 받는 기후로 몬순기후(monsoon climate)라고도 한다.
멕시코만류 멕시코만에서 시작하여 플로리다 해엽을 통과하여 미국 동부 해안선을 따라 흐르는 따뜻하고 빠른 대서양 해류로, 지구 최대 난류(暖流)이다.
캘리포니아해류 북아메리카의 캘리포니아 앞바다를 남쪽으로 흐르는 폭넓은 해류.
툰드라 북극해 연안의 동토지대로서 삼림한계보다 북쪽의 극지에 해당한다. 지의류(地衣類), 선태류(蘚苔類) 등이 있고, 방동사니 등의 초본(草本), 버드나무류 등의 낮은 나무가 혼재한다. 남반구의 삼림생육한계 이남의 툰드라와 비슷한 초원을 남극툰드라라고 부른다.
북극기단 북극지방에서 생긴 한랭한 기단으로 거의 1년 내내 존재한다. 북반구의 차가운 공기의 공급원이 된다. 대륙성인 경우 건조하지만 해양성인 경우는 다습하다.
사막기후 건조기후 중 사막이 나타나는 기후.
서안해양성기후 대략 남ㆍ북위 40˚~60˚ 사이인 중위도 대륙 서안(西岸)에 편서풍의 강한 영향으로 나타나는 온난습윤한 해양성 기후.
타이가기후 북반구 대륙의 북부에 발달하는 한랭한 기후이며, 기온의 연교차가 크다. 지면이 장기간 눈에 덮여있고, 여름철에 일시적으로 농경이 가능하기도 하다. 그러나 대부분 지역은 타이가라고 부르는 침엽수림이다.

4) 식생· 토양

데빌스타워
데빌스타워

미국은 그 영토의 크기만큼 다양한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으며, 세계 17개의 생물다양성 국가 중 하나이다. 17,000종 이상의 식물과 428종의 포유류, 784종의 조류, 311종의 파충류, 295종의 양서류, 그리고 91,000종의 곤충이 서식하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미국 본토의 식생()은 크게 동부 삼림지대, 대평원의 초원지대, 태평양 연안의 북부 삼림지대, 건조한 서남부의 사막 4대 구로 나누어진다. 동부는 남부 플로리다의 열대삼림과 북부의 상록침엽수림, 그리고 그 중간의 혼합림 지대로 나뉘고, 중서부에는 키가 작은 단초 초원과 관목지대가 펼쳐진다. 로키산맥을 넘어 태평양 연안에 있는 워싱턴주, 오리건주, 몬태나주 등에는 상록침엽수림이 넓게 분포되어 있고, 콜럼비아고원 지대에는 수림이 적고 단초의 프레리가 전개된다. 캘리포니아 남부, 애리조나주 남서부 사막이 펼쳐지는 건조대에서는 크고 작은 여러 종류의 선인장이 유일한 식생을 이루고 있다.

미국 본토의 식생()은 동부 삼림지대, 그레이트플레인스의 초원지대, 태평양 연안의 북부 삼림지대, 건조한 남부의 반사막·사막의 4개구로 대별된다. 동부의 삼림대는 다시 두 지역으로 나누어지는데, 그 하나는 남부 해안평야의 난대성식생으로 플로리다반도 남부의 열대삼림과 북쪽의 상록침엽수림, 그리고 그 이북의 혼합림지대이다. 다른 하나는 뉴잉글랜드 남부에서 중앙평지 남부에 걸쳐 전개되는 낙엽활엽수림이다. 이들 두 지역은 현재 농업이 크게 발달한 곳으로 목화, 옥수수, 담배, 밀 등을 재배하고 있다. 또 북쪽의 뉴잉글랜드 북부에서 오대호 주변에 이르면 점차 냉대림의 양상이 짙어져, 낙엽활엽수림 사이에 전나무 등의 상록침엽수가 섞여 혼합림을 이룬다. 낙엽수로는 단풍나무, 물푸레나무, 너도밤나무 등의 거목이 뒤섞여 단풍철이면 산야가 곱게 물든다. 오대호에서 북쪽의 캐나다로 들어가면 활엽수는 침엽수로 바뀌고 북쪽으로 갈수록 기온의 저하로 토양은 산화되어 포드졸로 변한다.

따라서 농업은 부진하나 삼림은 비교적 많다. 미시시피강의 서쪽에서는 강수량이 적어짐에 따라서 점차 떡갈나무와 같은 결이 단단한 나무가 많아지고 키가 큰 풀이 밀생한 임간초지()가 눈에 띄게 된다. 이 초원이 이른바 프레리(Prairie:)이며, 토양은 검고 비옥한 프레리토()로 농업에 가장 알맞은 토질을 이루나 농업 용수가 크게 문제된다. 서쪽의 그레이트플레인스에 이르면 건조도()가 높아져 반건조기후구가 된다. 이곳에서는 이 지역 특유의 키가 작은 단초()초원과 관목지대가 펼쳐진다. 이들 단경초는 목초로서의 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기업적 목축업이 발달하였다.

토양은 체르노좀(흑토의 일종) 내지 밤색 토양이 탁월하여 농업에는 적당하나 프레리보다 더욱 수리의존도가 높다. 이와 같은 단초초원은 로키 산맥 기슭까지 연속된다. 코르디예라의 식생은 지형이 복잡한데다 기후차가 크기 때문에 다양하게 나타난다. 북위 50˚에 가까운 지역의 평지에서는 상록침엽수림이 전개되고 워싱턴주, 오리건주(), 몬태나주 등의 임산자원이 되어 있으나, 컬럼비아 고원상에는 수림이 적고 단초의 프레리가 전개되어 있다. 남부 로키의 산중턱, 콜로라도고원, 캘리포니아분지 등 침엽수림대의 하한()에는 떡갈나무가 분포한다.

대분지와 와이오밍분지 이남의 산간고지와 분지에서는 건조기후를 이루기 때문에 고도가 높은 곳에서는 상록침엽수 또는 활엽낙엽수도 볼 수 있으나 저지대로 내려갈수록 기온이 높아지고 건조도가 심해지기 때문에 관목이나 단초로 바뀐다. 캘리포니아주 남부, 애리조나주 남서부 사막이 펼쳐지는 건조대에서는 크고 작은 여러 종류의 선인장이 유일한 식생이 되어 있다. 캘리포니아 중부의 지중해성 기후 지역은 조엽수림 등이 자라며, 콜로라도로부터 관개용수를 끌어들여 캘리포니아 분지를 녹색의 비옥한 평야로 바꾸어 대규모 농업지역으로 개발하였다.

참조항목

참조항목
프레리 북아메리카의 로키산맥 동부에서 미시시피강(江) 유역 중부에 이르는 온대 내륙에 넓게 발달한 초원.
체르노좀 온대 또는 냉량한 아습윤기후 하에서 주로 넓은 초원에서 생성된 토양을 말하며 흑색초원토라고도 한다. 미국의 분류체계에 의하면 보롤에 해당하며 밭토양으로서는 이상적인 토양이다.
침엽수림 침엽이 달린 구과식물로 구성된 숲의 총칭.
포드졸 냉대기후 등 한랭습윤지역에 분포하는 회백색의 성대토양(成帶土壤). 회색산림토라고도 한다.
식생 지표를 덮고 있는 식물 피복(植物被覆)의 상태. 식피(植被) 또는 식의(植衣)라고도 한다.
낙엽활엽수림 낙엽활엽수(落葉闊葉樹), 즉 기온이 낮거나 건조한 계절에 잎이 떨어지는 활엽수들로 이루어져 있는 삼림. 하록활엽수림이라고도 한다.

2 . 주민

1) 이민과 사회통합

미국은 이민자들에 의해서 건설된 나라이다. 그만큼 초창기부터 이민을 장려해 왔다. 19세기 후반에 이를 때까지 이민을 제한하는 연방법은 없었고, 각 주가 규제한 데 불과하였다. 그러나 이민의 증가와 함께 많은 사회적·경제적 문제들이 야기되면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에 걸쳐 많은 제한 입법이 마련되어 이민을 엄격하게 관리하기 시작하였다.

미국 이민집단의 구성은 1960년대를 분기점으로 크게 바뀐다. 1965년 수정이민법은 종래의 백인국가위주의 출신국별 할당제와 동양계 배제의 원칙을 폐기하고 국가별로 동일한 이민자수를 할당하였다. 이로 인해 중남미계, 동양계 등 다양한 소수집단이 등장하였고 인종구성은 기존의 흑백이원론적 구성을 탈피해 더욱 다양해졌다. 1960년대 이후에 형성된 동양계와 중남미계를 중심으로 하는 신()이민자 집단은 후기산업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저급노동력을 대체하였으며, 주로 소매업과 서비스업에 종사하였다. 이들은 경제적·문화적으로 백인 주류사회에 편입되는 것이 힘들었으며 흑인집단과 함께 새로운 하위집단을 구성하였다. 그러나 흑인은 1970년대부터 꾸준히 향상된 지위를 바탕으로 이미 중산계층과 빈민으로 분리되었다.

2017년에 외국에서 태어난 미국 인구 중에서 약 45%에 해당하는 2천 7십만 명 정도가 귀화한 시민이고, 약 27%(약 1200만 명)가 합법적 영주권자, 23%(약 1000만 명)가 불법이민자로 집계되었다. 이민자들의 본국은 멕시코가 25%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 중국(6%), 인도(6%), 필리핀(5%), 엘살바도르(3%)의 순이다. 2010년 이후 최근에는 아시아 이민자들이 가장 많아지면서, 이민을 제한 내지 억제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한편 여성의 지위향상과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소수인종의 문화에 대한 관심과 함께 여성과 동성애자 등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미 1970년대에 여성인권과 사회적 지위향상을 위한 법적 조치들이 취해지고, 여성의 교육수준도 높아져 여성의 공직취임도 늘어났다. 한편 동성애자 문제는 사회적 통념과 개인의 자유 간에 대립되는 문제로 미국사회의 또다른 쟁점이 되고 있다. 추산되는 미국의 동성애자의 숫자는 1,500만 명으로, 이는 미국 내 아시안 인구 1,200만 명을 넘는 수치여서 미국 사회에서 영향력있는 집단이 되었다. 2003년 11월 메사추세츠주에서 처음 동성 간의 결혼을 허용한 이후 2015년 6월 미국 전역에서 합법화되었다.

2) 인종

뉴욕의 거리
뉴욕의 거리

미국은 건국 초기 유럽에서 건너온 백인 이민자들이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였다. 이후에 노예해방과 함께 흑인 인구가 공식적으로 미국인으로 편입되어 소수 인종을 구성하였다. 초기 백인 이민자들 중에는 영국계, 독일계, 아일랜드계 등이 가장 많았으며, 이후에 이탈리아인, 슬라브인 등 남유럽계나 동유럽계의 이주자 비중이 높아지고, 20세기 초에는 전 이민의 80% 이상을 이들 이민이 차지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에는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급격히 늘어 미국 인구에서 또 다른 하나의 소수인종을 구성하게 되었다. 최근에 두드러지는 인구 구성의 특징은 중남미 출신의 히스패닉/라티노 인구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이들은 미국 내에서 가장 큰 소수 인종을 차지하고 있다.

지역적으로 보면 소수인종들은 미국 전역에 거주하고 있지만, 흑인들은 미국의 동남부에, 아시아계는 캘리포니아주와 같은 서부해안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 히스패닉/라티노 인종은 플로리다, 조지아주와 같은 동남부와 텍사스, 뉴멕시코주, 애리조나주와 같은 서남부에 많이 거주한다.

2020년 인구 센서스에 의하면 백인 57.8%, 히스패닉/라티노 18.7%, 흑인(아프리칸 아메리칸) 12.1%, 아시안 5.9%, 혼혈 4.1%, 아메리카 원주민 0.7%, 하와이/태평양 도서 원주민 0.2%, 기타 0.5%의 인종 구성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히스패닉/라티노의 인구 증가율이 가장 높다.

참조항목

참조항목
니그로이드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남쪽에 사는 인종군.
황화론 청일전쟁 말기인 1895년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주창한 황색인종 억압론.
유색인종 백색인종 이외의 인종의 총칭.
아메리칸인디언 1492년 콜럼버스에 의하여 발견된 신대륙의 원주민(에스키모·알류트 등은 제외).
노예제 노예가 존재하는 제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이탈리아의 탐험가. 에스파냐 여왕 이사벨의 후원을 받아 인도를 찾아 항해를 떠나 쿠바, 아이티, 트리니다드 등을 발견했다. 그의 서인도 항로 발견으로 아메리카대륙은 유럽인들의 활동 무대가 되었고, 에스파냐가 주축이 된 신대륙 식민지 경영도 시작되었다.

3) 인구현황

2020년 기준 미국의 총인구는 331,449,281명으로 인구 규모로는 중국인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 규모이다. 기대수명은 80.59세(남 78.36세, 여 82.79세)으로 세계 46위를 기록하고 있다. 출생률은 2020년 기준 인구 1,000명당 12.28명으로 여성 1명이 평균 1.64명의 아이를 낳는다. 평균 매 100초에 한 명씩 태어나고 하루에 864명이 태어난다. 사망률은 인구 1,000명당 8.38명(2022)으로 세계 78위에 올라 있다. 인구성장률은 0.69%(2022)로서 세계 130위를 기록하고 있다. 중간 연령은 38.5세이며, 남녀 성비는 0.97(2022)로 남성이 약간 적은 편이다.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는 어린이의 비율이 23%로 세계에서 매우 높은 수준이며, 이혼율도 53%(2020)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동부 대서양 연안, 서부 태평양 연안, 오대호 인근 지역, 동남부 등의 인구밀도가 높고, 로키산맥, 서남부 사막지대, 북쪽의 삼림지대, 대평원 지대 등은 상대적으로 낮다. 알래스카의 인구는 앵커리지를 중심으로 하는 남부 해안에 집중되어 있고, 하와이의 인구는 오아후 섬에 집중되어 있다.

4) 언어

미국의 문화는 기본적으로 앵글로색슨문화로 언어도 백인과 흑인 모두 영어로 통일되어 있으며 법률적으로 정한 바는 없다. 그러나 히스패닉계는 대다수가 에스파냐어(스페인어)를 사용하며 그밖에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도 사용되고 있다. 그들은 중세 유럽의 문예부흥기, 종교개혁 등을 경험하였으므로 자본주의 발흥기의 근로정신에 투철하며 독립심과 진보적 정신, 민주주의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다.
 
역사적인 발전과 함께 언어는 발음이나 단어 등 본래의 영어와는 좀 달라진 것도 있어 ‘미국어’라고 할 때도 있다. 지역에 따라 방언이 발달하였는데, 특히 서부와 남부의 사투리는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이다. 중남미지역의 이민이 많은 지역에서는 에스파냐어 억양이 섞인 영어, 이탈리아인 거리와 차이나타운에서도 독특한 사투리가 섞인 영어를 사용한다. 뉴욕지방의 영어는 일반적으로 말이 빠르다. 언어사용인구를 보면 2017년 기준 영어를 사용하는 비율은 78.2%이며, 스페인어 13.4%, 중국어 1.1%. 기타 7.3%의 비율을 보이고 있다. 

5) 종교

유럽에서 이민 온 프로테스탄트들은 처음에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다른 종교는 사교()라 하여 배격하였으나, 건국 후 헌법으로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였다. 다수의 인종·민족으로 구성된 나라인 만큼 거의 모든 종류의 종교를 볼 수 있으나, 유럽에서 온 이민이 주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도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다.

인종이 다양한 만큼 종교도 많지만, 미국은 역시 기독교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2020년 인구조사에 의하면 개신교  40%, 로마가톨릭 21%, 몰몬교 1%, 무교 29%, 유대교 1%, 이슬람교 1% 힌두교 1%, 불교 1%, 기타 3%의 비율을 보이고 있다. 기독교 인구가 대략 70%에 이를 정도로 미국은 기독교의 나라라고 할 수 있으며,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유대교 공동체를 갖고 있기도 하다. 서구에서 규모가 가장 큰 불교와 힌두교 커뮤니티도 갖고 있으며, 이슬람교도의 숫자도 북미에서 가장 많다. 종교가 없는 사람도 6,400만 명이나 되는데, 이는 중국과 일본 다음으로 많은 숫자이다.

참조항목

참조항목
유대교 천지만물의 창조자인 유일신(야훼)을 신봉하면서, 스스로 신의 선민(選民)임을 자처하며 메시아(구세주)의 도래 및 그의 지상천국 건설을 믿는 유대인의 종교.
프로테스탄트교회 16세기 종교개혁을 계기로 로마 가톨릭에서 분리하여 성립된 다양한 그리스도교의 분파를 총칭하는 말이다.
로마가톨릭교회 사도(使徒) 베드로의 후계자로서의 교황을 세계교회의 최고 지도자로 받들고 그 통솔 밑에 있는 그리스도교의 교파.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1830년 미국에서 창시된 그리스도교의 한 교파로 일반적으로 모르몬교라고 불린다.

3 . 역사

1) 식민지시대 이전

메사버드국립공원
메사버드국립공원

북아메리카 대륙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때는 16,000~20,000년 전으로 추정한다. 미국 뉴멕시코주 클로비스에서 발견된 유적을 통해 알려져 콜로비스(Clovis) 문화로 불린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한 기원에 관해서는 여러 학설들이 있으나, 아시아 대륙으로부터 현재의 알래스카를 거쳐 여러 차례에 걸쳐 이주하여 이곳에 정착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그들은 처음에 동부에서도 많이 살고 있었으나 유럽인에게 쫓겨 일부는 남부와 북부로 흩어지고, 대부분은 중서부에서 남서부에 걸쳐 정주하게 되어 지금도 그 문화의 일부가 남아 있다. 이 남서부 지역이 낳은 문화를 아나사지(Anasazi) 문화라고 하며 여러 시기로 나누어진다. 가장 오랜 몇 개의 시기는 ‘바스켓 메이커’라고 일컫는 시기인데, 그 명칭의 유래는 이 시기에 바구니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며, 이것을 계승한 것이 푸에블로(Pueblo) 문화이다. 전자의 문화를 대표하는 것은 이동성의 수렵민이며 후자를 대표하는 푸에블로는 정주민이었다.

이 두 시대를 통하여 투창기·토기의 제작, 활의 사용, 옥수수의 재배, 초기 촌락 등이 점차로 확대되었다. 건축도 수혈식() 오두막에서 진흙과 긴 막대기로 지은 집인 어도비나 돌로 만든 커다란 집으로 진화하였다. 다음 시대를 고전기라고 하며 대략 11세기 초부터 13세기 말까지 계속되었다. 이 시기에는 커다란 암굴 밑을 이용하는 주거가 만들어졌으며, 개중에는 500개 이상의 주거가 하나의 암굴 밑에 늘어선 것도 있었고 무명천도 정교하게 짜여졌다. 이렇게 진보된 문화를 가졌던 푸에블로도 마침내 다른 유목민인 인디언(shoshoni 등)의 압박으로 차츰 퇴세를 거듭, 점거지역도 좁아져 1300년경에는 리오그란데 강과 리틀콜로라도 강 연변에 새로운 촌락을 이루었다. 이 무렵부터 토기가 없어지고 다채로운 색상으로 장식된 도자기가 많이 쓰여지기 시작하였다. 다음 16세기에 들어서자 에스파냐인이 침입하였으나 그들은 이 지역 고유의 문화를 소멸시키지는 못하였으며 지금도 옛 문화의 전통을 보존하고 있어 인디언의 보고가 되어 있다.

참조항목

참조항목
바스켓메이커문화 북아메리카 남서부의 산간지대에 살던 아메리카 인디언의 선사문화.
푸에블로문화 북아메리카 남서부에 사는 푸에블로 인디언의 문화.
아나사지문화 AD 100년경부터 근대까지 미국 애리조나·뉴멕시코·콜로라도·유타 접경지역에서 발달한 북아메리카 문명.
아메리칸인디언 1492년 콜럼버스에 의하여 발견된 신대륙의 원주민(에스키모·알류트 등은 제외).

2) 식민지건설시대

유럽인들이 최초로 신대륙을 발견한 것은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 의해서이지만 북아메리카 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영국인들로 1607년의 일이다. 그 이전에 스페인, 네덜란드, 프랑스 등 유럽 열강들이 북미 대륙을 탐험하고 개척하려고 시도하였으나, 식민지 개척에는 실패하였다. 그 당시 영국은 현재의 버지니아 해안가에 제임스타운이라는 첫 식민지를 건설하였다. 이후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종교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건너온 일련의 영국 출신 청교도들이 현재의 뉴잉글랜드 지역에 정착하면서 새로운 식민지가 개척되었고, 순차적으로 뉴욕과 뉴저지, 펜실베니아, 델라웨어 등 중부 지역의 식민지와 메릴랜드, 캐롤라이나, 조지아 등의 남부 식민지가 건설되었다. 비슷한 시기 프랑스는 지금의 루이지애나미시시피강 서쪽을 식민지로 개척하였고, 플로리다는 스페인 사람들이 식민지를 세웠다.

초창기 동부해안을 따라서 건설한 13개의 식민지들은 각각 그 시기와 종교, 식민의 동기 등이 상이하여 단일한 공동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주로 개신교를 믿고, 설탕, 커피, 면화, 담배 등의 농작물로 농장을 일구고, 필요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아프리카 흑인들을 데려와서 노예화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교회를 세우고 교육기관을 설립하는 등 그들만의 공동체를 이루어 나갔다. 그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쫒아내고 점점 서부로 영토를 확장해 나갔는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다.

참조항목

참조항목
메이플라워호 1620년 영국 뉴잉글랜드 최초의 이민(移民)인 청교도(102명의 필그림 파더스, 즉 巡禮始祖)를 북아메리카로 수송한 선박.
청교도 16~17세기 영국 및 미국 뉴잉글랜드에서 칼뱅주의의 흐름을 이어받은 프로테스탄트 개혁파를 일컫는 말.
식민지 본국(本國) 밖에 있으면서 본국의 특수한 지배를 받는 지역.

3) 독립혁명과 미국의 건국

보스턴학살
보스턴학살
18세기에 들어서 식민지와 영국 본국 사이에 경제적인 문제가 불거졌다. 영국은 잇따른 전쟁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을 식민지에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고 무역독점을 강제함으로써 해결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식민지에 극심한 반발을 가져왔고, 급기야 1773년 식민지 주민들이 보스턴 항구를 습격한 ‘보스턴 차 사건’이 터졌다. 영국은 보스턴 항구를 폐쇄하고, 주민들에게 강경한 조치를 취하였지만, 식민지 주민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독립의 열망을 불태웠다. 1774년 13개 식민지 대표들은 마침내 필라델피아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대륙회의를 열고, 식민지의 자치권을 요구하면서 영국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1775년 4월 19일, 영국의 주둔 병사와 식민지 주민들이 조직한 민병대 사이에 최초의 충돌이 벌어졌다. 독립전쟁의 포문을 연 ‘렉싱턴 콩코드 전투’를 통해 보스톤에 주둔하던 영국군이 퇴각했다. 그해 5월 10일, 13개 식민지 대표들은 필라델피아에서 제2차 대륙회의를 개최하여, 조지 워싱턴을 전쟁 총사령관으로 하는 대륙군을 창설했다. 1776년 7월 4일 대륙회의에서는 토머스 제퍼슨이 초안을 잡은 독립선언문이 발표됐다. 본격적인 전쟁은 미국과 프랑스가 1778년 ‘동맹협약’(Treaty of Alliance)을 체결한 직후 벌어졌다. 1781년 10월 요크타운전투에서 영국군이 항복하면서 전쟁은 끝났다.

미국 대륙군과 영국은 1783년 9월 3일에 파리에서 ‘파리조약’으로 평화협정을 맺었고 영국은 미국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승인했다. 최초의 헌법은 1787년 9얼17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헌법회의에서 제정되었으며, 초대 대통령으로는 조지 워싱턴이 선출되었다.

미국의 독립혁명은 영국 본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전쟁인 동시에 식민지 내부에서의 부르주아지 민주주의의 확립을 위한 혁명이었다. 독립혁명에 의하여 각지의 식민지는 주()가 되고 이들이 연합하여 합중국을 형성하였기 때문에 현재 미국의 주는 한국의 시·도와 같은 행정상의 지역이 아니고 대폭적인 자치권을 보유하는 스테이트(state)이다. 그러나 이들 식민지는 모두 영국의 전통을 존중하고 그 사상과 정치제도를 본뜨고 있었다. 영국으로부터 이어받은 여러 제도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의제()의 의회제도이다.

버지니아 식민지를 건설한 사람들은 영국 성공회를 신봉하였으며 1619년 제임스타운에 아메리카대륙 최초의 의회를 만들어 자치()를 시작하였고, 이와 동시에 미국 최초의 흑인매매도 행하여졌다. 즉 대의제 의회의 탄생이라는 민주주의적인 것의 시초와 흑인노예라는 비민주주의적인 것의 시초가 병행하여 동시에 이루어진 셈이다. 이 대의제 의회와 흑인노예 제도는 그 후에 건설된 각 식민지에서도 똑같이 채택되었으며, 식민지 거주인이 본국인과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자치를 행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국왕의 직접통치 하에 있었던 스페인과 프랑스 등의 식민지와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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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항목

참조항목
미국독립혁명 영국 본국의 가혹한 지배와 중상주의 정책에 반항하여 미국 13주(州) 식민지가 협력하여 독립을 달성한 전쟁과 식민지 내부의 사회개혁을 포함한 혁명.
파리 조약(1783년) 미국독립전쟁의 결과로 1783년 파리에서 체결된 강화조약.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연합규약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최초로 제정한 헌법.

4) 영토 확장과 서부 개척 시대

1783년 독립전쟁의 승리로 미국은 스페인령의 플로리다반도 일대를 제외한 미시시피강 동쪽의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의 수송은 미시시피강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1800년에 루이지애나의 주인이 스페인에서 프랑스로 바뀌면서 물류수송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1803년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프랑스와의 협상을 통해서 루이지애나를 포함하는 미시시피강 서쪽의 광대한 영토를 1500만 달러라는 헐값에 매입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 역사적인 사건을 일반적으로 “Louisiana Purchase”라고 부른다.

이 거래를 계기로 미국의 영토는 기존 영토의 거의 두 배가 되었다. 1819년에는 스페인으로부터 플로리다반도 일대를 매입하였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서부개척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1845년에 지금의 텍사스주뉴멕시코주 지역을 합병하였고 이로 인하여 미국과 멕시코 간 전쟁이 벌어진다. 미국은 손쉽게 전쟁에서 이겼고 1848년 2월, 양국은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을 체결했다. 양국의 국경선은 리오그란데강으로 설정되었고 지금의 캘리포니아주, 애리조나주, 콜로라도주, 네바다주, 유타주에 해당하는 서부 지역이 미국 영토가 됐다. 알래스카는 1867년 러시아로부터 매입하였고 하와이는 1900년 미국에 편입되었다.

미국 정부는 서부 개척을 장려하기 위해 1862년에 홈스테드법을 제정하였다. 미국에 적대적 행위를 하지 않은 21세 이상 성인은 누구나 160에이커(약 20만 평)의 농장 부지를 공짜로 받을 수 있었다. 5년간 의무적으로 경작을 하는 조건이었다. 때마침 1849년 캘리포니아주에서 금광이 발견되어 일명 ‘골드러시’가 일어났고, 몰몬교도들의 유타주 이주, 오리건 트레일의 개발, 1869년 대륙횡단철도 개통 등이 연달아 일어나면서 서부 개척이 본격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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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항목

참조항목
프런티어 미국 역사상 서부의 개척지(開拓地).
로키산맥 북아메리카 서부를 남북으로 뻗은 대산맥.
골드러시 19세기 미국에서 금광이 발견된 지역으로 사람들이 몰려든 현상.

5) 남북전쟁

죽음의 들판
죽음의 들판

미국의 북부와 남부는 식민지 건설 당시부터 종교·경제 등 사회의 여러 면에서 성격을 달리 하고 있었다. 북부가 이민에 개방적이고 상공업 발전에 적극적이었다면 남부는 보수적이면서 대농장을 기반으로 하는 농업이 주요 산업이었다. 특히 남부에서 면화 재배가 본격화되자 노예제도는 남부 경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된 반면, 북부의 여러 주에서는 노예제도가 이미 폐지되었던 것이다. 새로 미합중국에 편입된 주에 대해서도 북부는 노예주가 증가되는 것을 저지하려 하였으나 남부에서는 오히려 노예주를 확장하려 하였다. 1820년 노예제도를 인정하는 미주리주가 합중국의 주가 되려고 하였을 때, 노예제도는 첨예한 정치문제로 떠올랐다.

1860년 공화당의 에이브러햄 링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그는 흑인 노예 해방을 공약으로 내세워 복부 자본가들의 환영을 받았다. 남부의 노예주들은 링컨의 정책에 반대하여 남부연합을 결성하여 연방으로부터의 분리를 선언했다. 미합중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1861년 4월 남북전쟁이라는 형태로 내전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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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은 4년간 지속되었다. 전쟁 초기에는 남군이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었지만, 북군은 해상 봉쇄 등으로 대항하였고 1863년 링컨이 〈노예해방 선언〉을 발표하면서 급속하게 지지를 확대하면서 북군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결국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북군이 승리를 거두면서 남군의 세력이 급속하게 약화되었다. 1865년 남부연합이 항복을 선언하면서 전쟁이 종결되고 미합중국은 다시 통일되었다. 종전 후에 링컨은 헌법을 개정하여 ‘노예제 폐지’를 명문화하였고, 수정헌법 제13조에 의한 노예해방(1865), 제14조에 의한 시민권보장(1867), 제15조에 의한 투표권부여(1870) 등으로, 비로소 모든 흑인노예도 법적으로는 노예신분에서 해방되었다. 자유로운 시민이 되었어도 그들의 인권이 사회적으로, 그리고 실질적으로 보호받기까지는 그 이후로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참조항목

참조항목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재임 1861~1865). 남북 전쟁에서 북군을 지도하여 점진적인 노예 해방을 이루었다. 대통령에 재선되었으나 이듬해 암살당하였다. 게티즈버그에서 한 연설 중 유명한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라는 불멸의 말을 남겼다.
멕시코전쟁 1846~1848년 발생한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전쟁으로, 미국은 전쟁의 결과로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뉴멕시코, 유타, 네바다주와 콜로라도주 일부를 새로 획득했다.
미주리협정 1820년 미국 자유주(自由州)·노예주(奴隸州)의 세력균형 유지를 위해 남·북 양 지역이 타협한 협정(법).
캔자스-네브래스카 법 1854년 캔자스와 네브래스카 2개의 준주 설립에 대한 법으로, 미국 노예논쟁을 격화시켰다.
남북전쟁 1861년부터 1865년까지 미국의 북부와 남부 사이의 내전으로 ‘제2의 미국 혁명’이라 불리기도 한다.
미국공화당 미국의 정당. 1854년에 창당한 보수주의 정당으로, 민주당과 함께 양당 체제를 이룬다.
노예제 노예가 존재하는 제도.

6) 재건의 좌절

남북전쟁 이후 북부 산업 부르주아지의 대변자인 공화당의 군사적 독재에 의한 정치상·사회상의 개혁은 상당한 성과를 올렸으나 남부경제의 중심과제인 토지문제를 혁명적으로 처리하려다가 남부의 농장주와 여기에 예속된 백인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받게 되었다. 그들의 재건정책에 대한 반항은 주법() 또는 지방조례로서 흑인을 사실상 차별하는가 하면 비합법적 비밀결사인 이른바 KKK단 등에 의한 흑인 살해, 협박 등 갖은 박해의 형태로 나타났다. 그 결과 북군의 남부철수와 전후하여 남부의 여러 주는 흑인의 선거권 행사를 실질적으로 빼앗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인두세, 교육·취직·임금 등 일상생활에서 흑인을 차별하기 위한 법의 제정이나 행정조치 등 합법적 수단은 물론, 비합법적인 차별수단을 차례로 고정화하였다. 남북전쟁 중 남부 출신 의원들이 워싱턴에서 떠났으므로 종래 남부에서 반대하던 여러 법안이 모두 의회를 통과하였다. 그중에는 산업자본주의를 조장·육성하는 국립은행법, 모릴관세법, 서부의 급속한 발전을 기대하는 자영농지법 등이 있었다.

남북전쟁 후 공화당이 정치의 주도권을 장기간에 걸쳐 장악한 일은 그후 미국사회를 공업화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도시는 발달하고 교통기관도 확장되었다. 그러나 패전 후의 재건에 고심하는 남부는 여전히 농업사회로 남게 되었고 대()플랜테이션은 분할되었다. 해방된 흑인은 자본의 결여, 기술의 결여, 낮은 교육 수준 등으로 자립하거나 기간산업의 임금노동자가 될 수 없어 태반은 영세소작인이 되었다. 남부에 공업이 발달하여 흑인들이 공업 노동자가 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부터이다.

참조항목

참조항목
남북전쟁 1861년부터 1865년까지 미국의 북부와 남부 사이의 내전으로 ‘제2의 미국 혁명’이라 불리기도 한다.
플랜테이션 열대, 아열대기후지역에서 선진국이나 다국적기업의 자본 및 기술과 원주민의 값싼 노동력이 결합되어 상품작물을 대규모로 단일 경작하는 농업 방식.
미국공화당 미국의 정당. 1854년에 창당한 보수주의 정당으로, 민주당과 함께 양당 체제를 이룬다.

7) 제국주의 시대

1890년 이후 서부 개척시대가 정점을 지나면서 미국은 경제적·군사적으로 강력한 국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미국 내에서는 “국경 밖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의식이 일어났고, 1889년의 ‘전미회의(Pan-American Conference)’는 미국의 라틴아메리카 진출의 촉매제 역할을 하였다. 때마침 쿠바를 점령하고 있던 스페인의 쿠바 주민들에 대한 강압적인 정책을 구실로 1898년 미국은 스페인과 전쟁을 시작했다. 미국은 과거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필리핀, 푸에르토리코, 등의 영토를 전리품으로 챙겼다.

필리핀은 1565년부터 스페인의 식민지였다. 1898년 미국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독립국이 됐다. 그러나 미국은 필리핀을 다시 식민지로 삼았고 이에 반발해 독립전쟁이 벌어졌다. 1902년 미국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미국은 그 이후 카리브해 지역으로 관심을 돌렸다. 중남미의 여러 지역에서 스페인 세력을 몰아내고 경제식민지(바나나 공화국)를 건설했다. 필리핀과 괌 이외에 쿠바를 보호국으로, 푸에르토리코를 식민지로 만들었다. 또한 물류수송로를 확보하기 위하여 파나마 운하의 건설을 추진하기도 했다.

아시아에 대한 관심은 필리핀에서 시작하였으나 점차 중국과 일본으로 관심을 확대하였으며, 특히 중국에 대하여 어느 국가도 독점적인 교역권을 가질 수 없도록 문호개방정책(Open Door Policy)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8) 자본주의 발전

식민지 시대부터 미국의 경제는 외국의 투자와 자유무역에 기반하여 성장하였다. 1776년 당시 미국은 세계 최대 규모로 상업선단을 보유하였으며 북대서양 연안의 거의 모든 유럽의 국가들과 통상관계를 유지하였다. 미국 식료품과 면화, 담배 등에 대한 유럽인의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나폴레옹 전쟁과 1812년 전쟁 기간을 제외하고 무역관계는 중단 없이 지속되었고, 미국 서부지역으로의 확장 덕분에 경제는 빠르게 성장하였다. 서부경제의 성장에는 대륙횡단철도의 건설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869년에 최초의 대륙횡단철도가 완성되자 광부나 목축업자에 이어 많은 농민이 서부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철도는 동부의 자본으로 건설되어 그 시장을 서부로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나, 농민은 차별적인 운임 등으로 손해를 보았다. 농민 공제조합인 그레인지(Grange)를 중심으로 하는 운동에 의하여 각 주정부에 철도운임을 규제하는 주법을 제정하게 하였고, 이것은 마침내 1887년 주간통상법()으로 발전하여 연방정부가 민간기업에 처음으로 통제를 가하게 되었다. 한편 노동자도 미국 노동총동맹을 조직하여 숙련노동자의 생활수준 향상과 노동조건 개선을 도모하였다. 1891년에는 농민에 의하여 인민당이라는 제3당이 결성되어 이듬해부터의 선거에서 진보적인 정책을 내걸고 세 번이나 싸웠다. 그들이 주장한 철도·전신·전화의 공영, 비밀투표제의 채택, 누진소득세의 부과, 우편 저금 및 소포제도, 상원의원의 직접선거, 여성참정권 등은 20세기에 들어와 점차 실현되었다. 건국 초기에 농업이 중심이었던 미국사회는 공업의 발달과 함께 점차 변하여갔다.

국내자원의 개발과 교통수단의 발달 등에 힘입어 석유업, 금융업, 철강업 등 다수의 산업이 국가경제의 중추적 부분으로 떠올랐다. 미국식의 대량생산 시스템이 자리를 잡으면서 생산능력이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었고, 엑셀, J.P.모건, 앤드류 카네기, 존 D. 록펠러, 헨리 포드 등 잘 알려진 산업자본가들이 이 시기에 거대 기업을 일구어, 결과적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1890년에는 미국 공산품의 생산총액이 농산품 생산의 총액을 초과하였고, 이 시기를 기점으로 미국의 산업 생산과 1인당 국민소득은 전 세계 1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19세기 후반부터 유럽의 경제사정이 악화되면서, 유럽으로부터의 이민이 급속히 증가하였다. 이들이 산업에 필요한 노동력을 공급하고 저 개발된 지역에 다양한 커뮤니티를 형성하였다. 유럽으로부터의 이민은 1880년부터 1914년까지 절정에 달했는데, 이 기간에 2200만 명 이상이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1890년대에 들어서자 그때까지의 서·북유럽으로부터의 이민보다도 남·동유럽의 이민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이들은 지금까지의 이민과는 달리 주로 경제적 이유에 의한 이민으로, 정치적으로는 전제군주국에서 왔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경험이 없었다. 더구나 종교도 프로테스탄트가 아니었으므로 종래의 이민에 비하여 동화력이 없어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야기하였다. 그 때문에 1920년대에는 할당이민법의 재정을 보게 되었다. 테오도르 루스벨트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1901년부터 대통령 윌슨의 제1기말, 즉 1919년까지의 시기는 독점 반대의 사회개혁이 행하여진 시기였으며, 이것을 혁신주의시대라고 한다. 공공의 복지를 해롭게 하는 독점은 정부에 의하여 고발되고 최고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해산되었다. 윌슨 시대에는 독점적인 지주회사를 금지하는 반()트러스트법이 제정되었다. 루스벨트는 노동쟁의도 정부가 직접 조정한다는 선례를 만들었으며, 또 상무부 노동성이 신설되었다. 또한 철도의 통제에 대하여도 주간통상법을 강화하는 여러 법률이 제정되어 국토자원의 보존이 행하여졌다. 태프트 시대에는 우편저금 및 소포제도가 만들어지고, 또 누진적 소득세를 규정하는 수정헌법 제16조 및 상원의원의 직접선거를 정한 제17조가 1913년에 제정되었다. 윌슨 시대에는 관세인하와 은행제도의 개혁이 이루어졌다.

참조항목

참조항목
할당이민법 미국의 이민제한법.
반트러스트법 시장을 지배하는 독점행위나 거래의 제한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합동을 금지 또는 제한하는 법률의 총칭.
노동조합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근로조건의 유지, 개선 기타 노동자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 또는 그 연합단체.

9) 1차 세계대전 참전

SB2C 헬다이버
SB2C 헬다이버

1914년 유럽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전쟁 초기에 우드로 윌슨 대통령과 미국은 당초 유럽의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고립주의를 표방한 ‘먼로 독트린’을 고수하면서 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그러나 미국 선박들에 대한 독일의 무차별적인 잠수함 공격과 독일이 멕시코에 도움을 요청하는 비밀 전보, 이른바 ‘짐머만 전보(The Zimerman Telegram; 독일은 멕시코에 협력의 대가로 멕시코가 미국에 빼앗긴 영토를 되찾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제안한 것)’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미국은 1917년 4월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선전포고를 하고 전격적으로 전쟁에 참여하였다. 전쟁은 1919년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고, 전후처리를 위해 모인 베르사이유 평화회의에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국제연맹(The League of Nations)의 창설 등 세계평화를 위한 일련의 제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 국제연맹안은 이상주의적이어서 국제정치의 현실에 실현되기는 어려웠으며 국내의 반대가 강력하여 끝내 상원의 비준을 얻지 못하였다. 이리하여 1920년대의 미국은 공화당의 시대로 바뀌어 외교적으로는 고립주의, 국내적으로는 또다시 자유방임주의로 되돌아갔다.

1920년대에 라디오, 자동차, 영화, 인견공업() 등 새로운 산업이 출현하여 미국은 번영의 시대를 맞이하였다. 그 반면, 농업·석탄·면공업은 쇠퇴하였다. 공화당은 또다시 고관세 보호정책을 취하였으므로 국제무역은 침체되고 기업활동과 독점은 더욱 촉진되었다. 호경기는 1925년에 그 절정을 맞이하여 주식투자가 성행하고 과대투기가 유행하였다. 이것은 번영이라 하지만 균형 있는 것이 되지 못했다. 1929년 10월 뉴욕주식시장의 주가폭락을 계기로 대공황이 일어났으며 이것은 즉시 유럽에 파급되어 세계공황으로 번졌다.

참조항목

참조항목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의 정치가, 제34대 대통령(재임기간 : 1952~1961).
해리 트루먼 미국의 정치인으로 제33대 미국 대통령을 역임했다(재임 1945~53).
대공황 1929년에 시작된 사상 최대의 공황.
린든 존슨 미국의 정치가. 상원의원에 6차례 당선되었다. 대통령후보 지명전에서 J.F.케네디에게 패하고 부통령이 되었으며, 케네디가 암살당한 후 제36대 대통령이 되어 많은 진보적 정책을 착실히 실현하였다. 1964년 대통령선거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재선된 그는 사회적·경제적 개혁을 통해 복지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페어딜 미국의 H.S.트루먼 정부의 기본적인 국내정책.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의 제32대 대통령(재임 1933∼1945). 민주당 출신으로 미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4선 대통령이다.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뉴딜(New Deal)’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10) 경제대공황과 뉴딜정책(1929~1939)

전쟁기간 동안 전쟁물자를 팔아 수익을 올렸던 기업들은 종전 후 수요가 줄어들면서 하나둘씩 문을 닫기 시작했고, 수많은 실업자들이 생겨났다. 미국의 산업이 쇠퇴하고, 금융시장이 붕괴되면서 경제 대공황이 미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휩쓸었다. 이 당시 미국은 국민총생산이 이전의 3/4 수준으로 떨어졌고, 실업률은 33%까지 치솟았고, 농작물 가격은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디플레이션까지 겹쳐 발생했다. 국민들의 구매력은 떨어지고, 예금이 고갈되는 등 자본주의 경제시스템 전체가 흔들리게 되었다.

1933년 대통령에 취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경제대공황을 해결하기 위하여 정부가 경제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이른바 ‘뉴딜정책’을 시행하였다. 공공사업에 정부의 재정을 투입하여 국민들의 구매력을 높여주는 정책이 그것의 핵심 내용이었지만, 그밖에도 루스벨트 행정부는 반독점법을 제정하고, 노동조합의 설립을 보장하고, 사회보장제도를 확충하는 등의 방법으로 자본주의가 가진 내재적인 문제점들을 해결해 나가면서 순수자본주의에서 수정자본주의로의 이행을 현실화했다. 이후에는 순수 자본주의보다 정부의 개입을 어느 정도 수용하는 수정자본주의가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형태가 되었다.

11) 2차 세계대전과 냉전시대

경제대공황 이후 미국은 국내 문제에 집중하고 유럽의 분쟁에 휘말리지 않는다는 입장에 서서 1935년 중립법을 제정하고 다시금 고립주의를 표방하였다. 이 당시 유럽에서는 히틀러가 이끄는 독일의 나치정권과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이끄는 파시스트 정권이 군사대국과 유럽 정복의 야심을 키우고 있었고, 동아시아에서는 일본 제국이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결국 영국과 프랑스의 중재 노력에도 불구하고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전쟁 초기에 미국은 참전을 반대하였으나, 1941년 12월 7일 일본 제국이 진주만을 공습하자 미국은 전격적으로 영국, 프랑스, 소련 등의 연합국의 편에서 전쟁에 개입하게 되었다. 결국 1945년 전쟁은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 미국의 위상은 이전과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전쟁 중 미국은 연합국의 군수물자 공급을 담당하게 되었고, 민간기업은 전쟁을 위한 군수산업으로 전환되어 급속한 생산의 증가가 이루어지고 경제는 대규모로 팽창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날 즈음, 미국은 1945년 50개 연합국 대표들을 샌프란시스코에 초청하여 국제연합헌장에 서명하도록 함으로써 국제정치, 경제에서의 주축을 담당하는 국제주의의 길로 나아가면서 세계질서를 주도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면서 세계에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는 전쟁 중에는 아군이었던 미국과 소련의 이념 대립과 냉전의 시작으로 현실화되지 못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세력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 세력은 서로의 세력을 확장하고 상대방의 확장을 저지하기 위하여 치열하게 대립하게 되는데, 실제로 전면전에 이르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 시기를 ‘냉전(The Cold War)’이라고 부른다. 냉전이 정확하게 언제 시작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들이 있으나, 1947년 미국이 터키와 그리스에 대한 소련의 침공 또는 개입을 용인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이른바 ‘트루먼 독트린’을 그 시작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냉전기간 동안 미국은 자유주의 및 자본주의 세력의 확대를 위해서 ‘마셜 플랜’이라는 이름으로 유럽에 전후 복구를 위해 엄청난 재정지원을 쏟아 부었고, 나토를 창설하여 유럽의 안보까지도 책임지고자 하였다. 유럽 외의 여러 신생국들에게도 무기와 군사훈련 지원, 재정 지원 등의 형태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이러한 일련의 정책들은 사회주의와 권위주의에 대항하고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를 전 세계의 기본질서로 정착시키고자 하는 미국의 전략목표에서 비롯되었다.

냉전기간 동안 미국과 소련이 전면전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한국전쟁(1950~1953), 베트남전쟁(1960~1975), 그리고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 양측의 무력충돌은 끊이지 않았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는 미국이 직접 개입을 했고,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에는 소련과 핵전쟁 직전까지 갔지만 가까스로 전쟁을 피하기도 했다. 양측 간의 군사적·정치적 긴장은 시기에 따라서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했지만, 1989년 사회주의권의 몰락이 시작될 때까지 양측의 이념 대립은 계속되었다.

12) 풍요의 시대와 미국 사회의 진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1940년대말 트루먼은 루스벨트의 뉴딜자유주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여러 가지 사회개혁 정책들을 재시도하였다. 그 후 몇 차례의 위기가 왔으나 한국전쟁으로 미국의 경제적 성장이 지속되었다.

미국 내 메카시즘의 출현으로 절정에 이르렀던 냉전과 반공의 혼란이 어느정도 정리가 되고,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이 되면서 행정부의 권한 축소와 주정부 활동의 장려를 통한 분권화와 기업가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지원함으로써 친기업적인 공화주의가 등장하였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조성된 국가주의에서 벗어나 개인의 자유를 더 중요시하는 자유주의로의 방향전한을 의미하는 것이다. 1950년대의 아이젠하워 시기의 미국은 역사상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되었으며, 사회적으로는 소득의 재분배가 실현되고 사회복지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짐으로써 이른바 ‘풍요로운 사회’가 되었다. 임금노동자들의 수입이 상승함으로써 화이트칼라블루칼라 간의 격차가 줄어들고 1960년대에 이르면 노동력의 절반이상이 전문직, 사무직, 판매직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 사회의 뿌리깊은 인종차별은 항상 잠재된 사회적 불안 요소였다. 이로 인해 1950년대부터 시작된 흑인의 지위향상을 위한 민권운동은 여전히 상존하였던 인종차별에 대한 격렬한 저항운동으로 커져갔다. 민권운동의 결과 인종차별을 철폐하는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졌지만, 대다수의 미국 남부의 주들은 이러한 흑백차별의 철폐에 반대하였다. 흑인목사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중심으로 하는 흑인들의 저항운동은 비폭력의 원칙하에 평등과 정의를 부르짓으며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저항적 민권운동의 결과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존중하고 보호할 많은 관련법들이 만들어짐으로써 흑인들의 권리가 법적으로는 조금씩 신장되어갔다.

196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43세의 젊은 가톨릭교도인 케네디가 극적으로 당선되었다. 그는 그동안 미국사회의 이념적 토대가 되었던 자유주의와 이상주의를 하는 ‘뉴프론티어’를 제시하였으며, 빈곤의 타파와 흑인을 중심으로 하는 민권의 신장에 적극적으로 앞장섰다. 그의 이러한 노력에도 남부의 백인들은 여전히 인종차별적이며 관습을 법으로 폐지할 수 없었다. 케네디는 대외정책에서도 미국적 국제질서를 강요하기보다 약소민족의 민족주의 운동에 긍정적이었으며, 신생국의 빈곤을 퇴치하기 위해 군사적, 경제적 원조를 함으로써 공산화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케네디는 뉴프런티어를 우주에까지 확장하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움으로써 우주 경쟁에서 앞서가고 있던 소련을 조금씩 따라잡고 있었다. 그러나 케네디 행정부는 1961년에 쿠바침공계획을 세우다가 실패하면서 큰 어려움을 겪었으며, 1962년에는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설치하려는 시도로 냉전시대 최대의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위기를 겪었다. 이 쿠바미사일 위기 사태는 미국이 튀르키예의 기지를 철수하고 소련은 쿠바의 기지를 철수한다는 협상이 성사되어 가까스로 해결되었다.

케네디가 암살로 갑자기 사망하였지만 그의 뒤를 이은 존슨은 케네디의 정책을 계승하여 빈곤의 퇴치, 사회보장제도, 교육진흥 등 ‘위대한 사회’라고 부르는 그의 정책을 일관성있게 추진하였다. 케네디에서 존슨에 이르는 민주당 정부의 자유주의적 개혁정책은 미국사회의 평등과 자유를 더 높은 수준에서 실현하였다. 그렇지만 1960년대는 자유와 인권에 대한 의식이 상승하면서 항의와 폭력의 시대이기도 하였다. 주요도시에서의 흑인의 폭동, 킹목사의 피살, 케네디의 암살 등과 같은 폭력적인 요소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기성세대와 기존체제에 대한 반항은 대학가의 중심 이슈였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의 개혁과 발전은 국제문제에 있어서 베트남전쟁(1960-1980)이라는 수렁에 빠져들면서 점점 약화되었으며, 미국의 서방세계 주도권도 타격을 입기 시작하였다. 1965년 그동안 미국이 지원하던 남베트남정부가 패배하는 기미가 보이자, 미군은 지상군을 파견하면서 북베트남에 대한 강력한 공격을 감행하였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베트남전쟁에 더 깊이 개입하면서 징집거부나 납세거부 등을 통한 정치적 행동이 표면화되었고, 기존사회를 변혁하기보다는 회피하려는 히피들로 대변되는 반문화운동이 대두되는 등 반전과 반항이 극단으로 치달았다. 그리고 남성우월주의에 대항하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려는 여성해방운동과 함께, 흑인 외에 인디언·히스패닉 등 미국 내에서 소외된 소수집단의 권익을 회복하려는 운동도 나타났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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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F. 케네디 미국의 정치가로 제35대 대통령을 지냈다. 소련과 부분적인 핵실험금지조약을 체결하였고 중남미 여러 나라와 ‘진보를 위한 동맹’을 결성하였으며 평화봉사단을 창설하기도 하였다.

13) 냉전의 해체와 미국 패권의 시대

1960~70년대가 진보의 시대였다면 80년대는 보수가 힘을 받던 시기였다. 베트남전쟁의 충격과 오일쇼크가 겹치면서 미국의 국력이 국내외에서 의심 받으면서 미국은 강력한 지도력과 보수주의의 물결이 강해졌고, 이런 경향은 강경한 보수주의자인 레이건의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졌다. 레이건 행정부는 복지비 지출을 감축하고 국방비의 지출을 늘리는 등 보수적인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레이건 행정부가 추진했던 강력한 군사정책은 아이러니하게도 소련과의 데탕트 무드를 만들어냈다. 원래 미국과 소련은 1969년부터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Strategic Arms Limitation Treaty) 논의를 시작하고 데탕트 무드가 조성되었으나,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 미국에서는 보수적인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모처럼의 화해 분위기는 막을 내리는 듯하였다. 그러나 1985년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면서 분위기는 다시 반전되었다. 결정적으로 1989년 11월 동독과 서독 분단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사회주의권의 몰락이 시작되었다. 동유럽의 사회주의국가들이 잇달아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자본주의를 그들의 경제시스템으로 채택하였다. 또 권위주의 독재자들을 축출하면서 자유주의 및 자본주의 세력으로 편입되었고, 1991년 소련마저 해체되어 현재의 15개 국가로 분리되었다. 비록 러시아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나, 그 위상은 이전 소련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미국은 명실상부한 세계의 유일 초강대국이자 패권국가로 올라섰다.

미국은 냉전시대에 소련에 대한 경계에 사용하던 막대한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돌려, 보다 강력해진 군사적, 경제적 힘을 바탕으로 1990년대에서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중동지역 문제에 깊숙이 개입하였다. 중동은 전략자원인 석유를 둘러싼 강대국의 이권 개입, 지역 내 패권에 대한 갈등, 동·서양 문화충돌로 세계의 화약고가 되었다.

1990년 이라크쿠웨이트와 석유 분쟁을 벌이던 중 이란-이라크 전쟁의 승리의 여세를 몰아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군이 이라크를 항복시키고 쿠웨이트를 복구시키면서 아랍 지역에서의 석유자원에 대한 교두보를 지켰다. 1990~1991년의 이라크-쿠웨이트 전쟁의 연속선상에서,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은 핵무기 사찰에 응하지 않는 이라크를 1998년에 다국적군을 동원하여 집중적으로 공습하였다.

이러한 미국 주도 다국적군의 공습은 아랍의 회교권국가들로부터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가져왔고, 그 결과 이슬람 테러조직에 의해 2001년 9.11 테러사건이 발생하여 뉴욕의 무역센터가 파괴되고 수천 명이 죽는 참사가 일어났다. 이 사건 이후 미국의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테러조직과 대량살상무기를 제공하는 이란, 이라크, 시리아, 북한 등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2003년 세계평화와 자국민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워 대량살상무기 사찰에 응하지 않는 이라크에 선전포고를 하여 영국, 호주 등 연합군과 함께 전면적인 전쟁을 개시하였다. 전쟁 발발 26일만에 이라크 전쟁은 미국 주도의 연합군의 승리로 끝이 났으며, 미국은 2011년 이라크에서 완전히 철수하였다.

소련의 해체와 냉전 종식 이후 약 20년에 걸쳐서 미국은 경제 호황기를 보냈고, 중동, 아프리카, 유럽의 발칸반도 등 세계 여러 지역의 분쟁에 개입하여 세계경찰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1991년 1차 걸프전쟁과 2003년의 이라크전쟁 등 필요하다면 군사적인 활동도 결코 마다하지 않으며 세계의 리더 국가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었다. 2001년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테러조직 알카에다에 의해서 자행된 9.11 테러, 2008년의 금융위기 등의 위기가 없지 않았으나 2000년대 초반까지 세계 패권국으로서 미국의 위상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로는 상황이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다. 대외적으로는 중국의 부상이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고 있다. 중국은 냉전 종식 이후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 이른바 “중국몽”이라는 이름 하에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패권국으로서의 야심을 키우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의 갈등이 무역전쟁, 기술전쟁 등의 형태로 표면화되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정치·사회의 분열과 갈등이 미국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최근의 미국의 정치·사회적 분열은 이전 대통령과 구별되는 제45대 트럼프 대통령의 독특한 통치 스타일과 관련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출현 이후에 미국 사회의 분열 양상이 더욱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2021년 1월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일부 극우 보수주의자들이 미 의회에 난입하는 미국 역사상 초유의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치적인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이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최근에는 그 양상이 더욱 과격하게 표출되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우려를 낳고 있다.

참조항목

참조항목
조지 W. 부시 미국의 정치가·제43대 대통령. 미국 제41대 대통령 조지 부시(George Bush)의 아들이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석유 사업을 하기도 하였으며, 1993년 텍사스 주지사가 되었다. 2000년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2004년 재선에 성공했다.

4 . 정치

미국은 1776년 독립을 선언할 당시부터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하였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고 그것을 보호하기 위하여 정부가 존재한다는 점이 독립선언서에 명시되어 있다. 또한 미국은 건국 당시 13개의 주가 모여 이룬 연방공화국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민주공화국이자 연방제 국가이다.

미국은 민주주의의 이상, 즉 ‘국민에 의한 지배’를 현실정치에 구현한 최초의 근대국가로서,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간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의해서 정부가 운영되는 대통령제를 세계 최초로 채택하였다. 미국이 연방제 국가라는 것은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국가를 운영하는 권한과 권력을 분담하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연방정부의 주요 기능은 국방, 외교, 대외무역 정책의 조정, 통화, 최고 법 집행기능, 주() 간 통상의 조정, 이민 등을 포함하고, 주정부의 주요 기능에는 교육, 농업, 자연보호, 공공안전, 고속도로 관리, 차량 감독, 교도행정, 개별 주 내부의 통상조정, 교육·보건·복지 정책의 시행 등이 포함된다.

1) 입법

미국 최초의 헌법은 1787년에 제정되었고, 1789년에 발효되었다. 그 이후 1992년까지 27번의 개정을 거쳐 현재의 헌법에 이르고 있다. 미국의 헌법은 세계 최초의, 그리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문헌법이다.

법률안 제출권을 갖는 의회는 상원(Senate)과 하원(House of Representatives)의 양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원과 하원은 대등한 권한은 갖고 있으며 법률안은 양원을 모두 통과해야만 법률로서의 효력이 발생한다. 양원에서 통과된 법안은 대통령의 서명이 있어야 법률로서 성립되며, 대통령은 법률안 거부권 행사로 의회를 견제할 수 있지만 의회가 3분의 2 이상으로 재가결하였을 경우에는 다시 거부하지 못한다.

상원은 100명의 정원을 갖고 있으며 각 주에서 2명씩 선출하기 때문에 주를 대표하는 성격을 갖는다. 상원의원의 임기는 6년이고 2년마다 1/3을 다시 선출한다. 상원은 2/3의 찬성으로 모든 조약을 비준하고 연방 고위 공무원 및 대사에 대한 대통령의 임명을 승인하며, 2/3의 찬성으로 대통령을 탄핵할 수도 있다. 상원의 의장은 부통령이 겸임한다. 하원은 435명의 정원이며 임기는 2년이고 각주의 인구수에 비례하여 1명에서 53명(캘리포니아)까지 선출한다. 하원의 의장은 호선한다. 대부분의 주에서 양원 모두 소선거구제와 단순다수제를 채택하고 있다.

2) 정당

미국에서는 일찍부터 양당제가 정착되었다. 제3의 정당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세력이 매우 약해 오래 가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공화당(Republican Party)과 진보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민주당(Democratic Party)이 양당체제를 이루고 있다.

미국의 보수와 진보는 이슈에 따른 국가 개입의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 진보정당인 민주당은 경제적 평등과 사회적 자유를 추구하고, 보수정당인 공화당은 사회적 규제와 경제적 자유를 중시한다. 따라서 민주당은 여성의 임신 중지 권리를 지지하고, 총기 규제에 적극적이며, 보편적 의료보험을 지지하고, 상대적으로 높은 세금을 부과하여 부의 재분배를 실현하고자 하는 등 친서민 정책을 지향한다. 이와 반면 공화당은 생명권을 존중하여 여성의 임신중지권에 반대하며, 총기 규제에 소극적이고, 보편적 의료보험에 반대하며, 상대적으로 낮은 세금을 부과하여 친기업적인 정책을 추구한다. 민주당은 계층적으로는 노동자와 농민, 사회적 약자(minority) 등이, 지역적으로는 북동부 지역과 서부지역이 주요 지지층이고, 공화당은 계층적으로는 백인 기득권층을, 지역적으로는 남부와 중부지역을 주요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다.

3) 행정

행정부의 수반은 대통령으로 부통령과 함께 4년 임기로 선출되며, 대통령의 연임은 2회로 제한된다. 대통령은 의회에 법안을 발의할 수 있고 의회를 통과한 법안에 대하여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또한 대통령은 군의 최고 통수권자이며, 15개 행정부서와 대통령 집무실(통상 백악관)을 통솔한다. 행정부서의 장은 대통령이 추천하고 상원의 인준을 받아 임명한다.

미국에서 출생한 35세 이상의 미국 시민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데, 대통령 선거는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를 채택하고 있다. 각 정당은 선거 몇 달 전에 대통령 후보자를 선출하고, 대통령 선거인단 투표는 4년마다 11월에 시행된다. 각주의 유권자들이 대통령선거인단을 선출하면, 각 주에서 가장 많은 표를 획득한 후보가 그 주의 전체 선거인 투표에서 승리하게 된다. 선거인은 12월에 각주의 주도에 모여 자기 당의 대통령 후보자에게 투표하고, 그 결과는 다음 해 1월 5일 개표되어 당선자가 정식으로 확인된다. 부통령은 상원 의장을 겸임하며, 대통령의 궐위 시에 대통령의 직위를 승계하고, 대통령과 부통령이 모두 궐위 시에는 하원 의장이 그 직위를 승계한다.

대표적인 행정부서는 국무부(Department of State), 재무부(Department of Finance), 국방부(Department of Defense), 법무부(Department of Justice), 내무부(Department of the Interior), 농무부(Department of Agriculture), 상무부(Department of Commerce), 노동부(Department of Labor), 보건사회복지부(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rvices), 주택도시개발부(Department of Housing and Urban Development), 운수부(Department of Transportation), 에너지부(Department of Energy), 교육부(Department of Education), 제대군인부(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 국토안보부(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 등이다.

참조항목

참조항목
미국의 대통령 선거 4년마다 열리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제도. 1789년 처음 시행되어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이 당선되었다.
미국의 대통령 헌법상의 지위미국의 헌법은 "행정권은…대통령에 속한다"(2조 3항)는 간결한 조문으로 대통령을 규정하고 있지만, 대통령은 국가적 위기에 처하여는 '헌법적 독재제(獨裁制)'로 이행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권한을 가진 공직이다.임기와 선거대통령의 임기는 4년이며, 1947년 대통령의 3선(三選)금지가 성문화되었다. 대통령에 입후보할 수 있는 자격은 미국에서 출생하여 미국에 14년 이상을 거주한 35세 이상의 미국시민이어야 한다. 대통령은 대통령선거인단에 의

4) 사법

 미국의 사법부는 헌법에 의해 특별히 설치된 유일한 법원인 연방대법원이 이끌고 있으며, 항소법원과 미국 전역의 도시에 산재한 연방지방법원은 의회에 의해 설치됐다. 미국의 사법제도는 다른 대부분의 연방제 국가들과 달리 사법제도가 연방과 주 체계로 이원화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연방법원과 주법원은 서로 다른 법적 영역과 관할권을 가지고 있으며, 주법원의 판결과정에서 연방헌법 규정에 대한 위반이 발생했을 때에는 연방법원이 주법원의 판결을 다룬다.

연방사법체계는 연방대법원을 주축으로 13개 항소법원, 95개 연방지방법원, 2개 특별법원(국제무역법원, 연방 청구 법원)으로 구성된다. 연방대법원은 1명의 연방 대법원장과 8명의 대법관으로 이루어지며, 연방대법원이 내린 판결에 대해서는 다른 어느 법원에도 상소할 수 없다. 연방대법원은 외국의 고위인사들이 관련될 때이고, 다른 하나는 주 전체가 사건에 연루될 때에만 제1심 관할권을 행사한다. 판결은 만장일치가 아니라 다수결에 의해 판결이 이루어지므로, 최소 6명(법적 정족수)의 판사들이 판결에 참여해야 한다.

항소법원은 순회지구 내 연방지방법원의 판결에 불복하거나 행정관리의 명령에 불복종하여 항소한 사건을 심의한다. 연방 관할권을 지닌 제1심 법원인 연방지방법원은 연방사법체계의 심리법원으로 설립됐으며, 대부분 불법 우편물 이용, 연방 재산의 절도, 식품위생법이나 금융 및 위폐관계법 위반과 같은 연방법 위반 행위를 담당한다.

2개의 특별재판법원은 특정 유형의 사건에 대해 전국에 걸쳐 관할권을 행사하는데, 국제무역법원은 국제 무역이나 관세 문제와 관련된 사건을, 연방청구법원은 미국에 대한 금전적 손해배상 청구, 연방 협약과 관련된 분쟁, 연방 정부에 의한 사유재산의 불법적인 ‘취득’, 미합중국에 반하는 기타 다양한 청구들에 대해 사법권을 행사한다.

5) 군사

미국국방부
미국국방부

국방의 총 책임자는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국방장관과 합동참모총장을 임명한다.

국방부는 워싱턴 D.C. 인근에 위치한 펜타곤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육군(Army), 해군(Naqvy), 공군(Air Force), 해병대(Marine Corps), 그리고 우주군(Space Force)을 총괄한다. 해안경비대(Coast Guard)는 평시에는 국토안보부에서 관할하지만, 전시에는 해군으로 지휘권이 이관된다.

미국은 2019년 기준 6490억불의 군사비를 지출함으로써 전 세계 군사비 지출의 36%를 차지하고 있다(세계1위). 이것은 국내총생산(GDP)의 4.6% 규모이며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GDP 대비 세계 2위 규모이다. 미국은 또한 전 세계의 핵무기 중 40%를 보유하고 있어 러시아에 이은 2위에 올라 있다. 2019년 기준 미국은 140만 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시에 소집할 수 있는 예비군의 성격인 주 방위군의 병력은 230만 명을 보유하고 있다. 또 국방부는 계약직을 제외하고 약 70만 명의 민간인을 고용하고 있다. 미국에서 징병제는 1973년에 폐지되고 모병제로 전환되었으나, 전시에는 징병국(Selective Military Service)에서 징병을 실시할 수도 있다.

중국과 인도에 이은 세계 3위의 병력 규모를 보유하고 있으며, 미국은 국내뿐만 아니라 아시아, 유럽, 중동 전 세계에 군대를 배치하고 있다.

참조항목

참조항목
바르샤바조약기구 동구권 8개국이 바르샤바에 모여 체결한 군사동맹조약기구.
핵확산금지조약 비핵보유국이 새로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과 보유국이 비보유국에 대하여 핵무기를 양여하는 것을 동시에 금지하는 조약.
조지 부시 미국의 제41대 대통령(재임:1989~1992). 자파타석유회사, 자파타원양회사를 공동창설, 이사장을 지내고 공화당에 입당해 텍사스 주 제7구에서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었다. R.W.레이건의 러닝메이트로 출마해 부통령을 지냈고 제41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베트남전쟁 베트남의 통일 과정에서 미국과 벌인 전쟁 (1960~1975).
6·25전쟁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 공산군이 남북군사분계선이던 38선 전역에 걸쳐 불법 남침함으로써 일어난 한반도에서의 전쟁.
로널드 레이건 미국의 제40대 대통령으로 1981년부터 1989년까지 재임하였으며, 공화당 소속이었다. 취임 초 경제회복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 를 주창하여 경제를 활성화시켰으며, 대외정책은 《레이건독트린》을 기초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평화’를 표방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 제2차 세계대전 후 동유럽에 주둔하고 있던 소련군과 군사적 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체결한 북대서양조약의 수행기구.

6) 외교

레이건대통령의 공화당 전당대회 연설
레이건대통령의 공화당 전당대회 연설

19세기 후반 미국 외교의 기본은 먼로주의라고 하는 고립주의라는 명목 하에 중립노선을 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세기 말에 국내의 자본주의 체제가 정돈되고 경제적 성장을 거듭하면서 카리브해와 태평양을 향하여 적극적인 팽창정책을 취하였으며,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 결과 하와이, 괌, 필리핀, 푸에르토리코 등을 병합하고 이어서 1921년에는 중국시장의 문호개방을 요구하는 워싱턴조약을 체결하였다.

제1·2차 세계대전에는 먼로주의를 관철하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말려들었으나, 개입의 배경에는 유럽에서 초대국()으로 성장한 독일의 세력이 미국의 번영을 크게 위협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한 목적이 다분히 포함되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전쟁 당시 그 역할이 지대하였던 미국은 유럽의 피폐,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의 대두 등 국제정세에 비추어 외교정책을 적극적인 개입주의로 전환하지 않을 수 없었다.

UN(United Nations: 국제연합)에의 참가, 마셜플랜에 의한 유럽의 부흥 원조, 중국의 공산화, 더욱이 소련과의 냉전 격화 등에 따라 공산주의에 대한 ‘봉쇄정책’에서 ‘반격정책’을 목표로 하는 상호방위조약의 적극적인 체결 및 신흥 제국에 대한 원조로 미국은 경제적·군사적 원조를 세계적인 규모로 확대하기에 이르렀다. 1959년 소련 수상 흐루시초프의 미국 방문을 계기로 한 미·소 간의 해빙()은 1962년의 쿠바미사일위기를 거쳐 1963년의 부분적 핵실험 정지조약의 체결을 성립하게 하였고 1970년부터 시작된 SALT(전략무기감축협정)에서는 우발 핵전쟁 방지협정이 1971년 9월에 체결되었다. 5월에는 대통령 닉슨이 소련을 방문함으로써 ABM망()의 제한 등 일련의 성과가 있었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 대통령 레이건 때 다소 경화되었던 미·소 관계는 대통령 부시가 1989년 12월 몰타에서 소련 공산당서기장 고르바초프와 정상회담을 가짐으로써 적대관계에서 동반관계로 변화하였다. 양 거두는 베를린 장벽 개방과 동유럽의 혁명적 개혁을 지지하면서 비개입을 다짐, 냉전시대의 종식과 신()데탕트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소련의 붕괴와 함께 러시아와 새로운 협력관계를 추진해온 미국은 1993년 2단계 전략무기 감축 협정 합의, 대 러시아 경제지원 등으로 옐친정부의 민주화 개혁을 지지하고 있다. 베트남전쟁의 종결 후 대 중국관계의 개선에 노력하던 중 1979년 1월부터 정상화되었던 미·중 관계는 1980년대에 들어와서 크게 진전되어 왔으나, 중국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일어난 1989년의 톈안먼[] 사건으로 급격히 냉각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세계평화와 동북아 지역 안정에 대한 중국의 역할을 고려하여 미국은 대 중국 최혜국 대우를 연장하였으며, 1993년 APEC(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경제지도자 회의에서 양국 관계 강화와 경제협력을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하였다. 대 중남미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 것은 대 쿠바 관계로, 오바마 행정부는 쿠바와 국교를 회복하고, 양국에 대사관을 설치하였다.

1979년에 조인된 이스라엘·이집트 간의 평화조약, 1980년대의 이라크·이란 전쟁과 호메이니 사망 후의 대 중동 관계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으나, 1990년 이라크군의 전격적인 쿠웨이트 침공에 대한 다국적군의 반격으로 시작된 걸프전에서 승리함으로써 미국의 국제적인 지위는 한층 견고해졌다. 그후 이라크, 리비아 등에 대한 강경한 외교노선을 펴는 한편 이스라엘과 PLO(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팔레스타인해방기구) 간의 화해를 주도함으로써 중동평화협상에 주력하였다.

그러던 중 2001년 9월 11일에 일어난 세계무역센터 테러사건으로 5,000여 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하였고, 미국은 그 주범으로 아프가니스탄에 은신 중인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오사마 빈 라덴(Usama Bin Laden)을 지목하고 그를 양도할 것을 요구하였다. 모하메드 오마르(Mohammed Omar)가 이끄는 탈레반이 이를 거부하자 미국은 우방인 영국과 함께 맹렬한 공격을 감행하였고, 미국의 침공에 대하여 크게 반발하는 이슬람문화권과 미국의 관계는 냉각되었다. 2011년 5월 미국은 마침내 파키스탄에서 은신 중인 빈 라덴을 찾아내어 사살했다. 빈 라덴 사살 이후에도 한동안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은 계속되었고, 2021년 바이든 행정부는 미군의 철수를 결정하였다. 미국으로서는 20년이라는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이 막을 내렸지만,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이 재집권하면서 정세 혼란이 가중되었다.

2000년대 들어 가장 중요한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은 중국과의 관계이다. 냉전 종식 이후 중국은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고, 이를 바탕으로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중국의 부상에 대해서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 당시 중국을 우호적인 파트너로 대우하면서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편입시키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중국의 부상을 제어하려는 목적의 대 중국 견제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요약하면, 미국은 양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세계 패권국의 지위에 올라섰다. 그 이전까지는 주로 고립주의 외교를 취하면서 국내문제에 치중하였으나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국제주의를 표방하고 세계패권국으서의 지위를 차지하였다. 냉전 시기에는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세력과 경쟁하기 위하여 봉쇄정책을 추진하였고, 냉전이 끝나고 공산권이 몰락한 이후에는 세계 유일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빠른 속도로 세력을 키우고 있는 중국의 도전을 받고 있는데, 중국의 세력 확대를 저지하는 것이 미국 외교안보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대외정책의 기본적인 기조는 다른 모든 나라와 마찬가지로 국익을 추구하는 것이지만, 그 방법론에 있어서는 각 정권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왔다. 고립주의와 국제주의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으며, 무력사용에 대한 선호, 다자주의에 대한 선호 등도 정권에 따라서 다르게 적용되었다.

참조항목

참조항목
먼로주의 1823년 12월 미국의 제5대 대통령 J.먼로가 의회에 제출한 연두교서에서 밝힌 외교방침.
리처드 닉슨 미국의 제37대 대통령(재임 1969~1974). 하원의원 재직 시절에는 반공주의자로 이름을 떨쳤으며 후에 상원의원, 부통령 등을 거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닉슨독트린》을 발표하였고, 《워터게이트사건(Watergate Case)》으로 사임하였다.
니키타 세르게예비치 흐루쇼프 소련의 정치가. I.V.스탈린 사망 후 중앙위원회 총회에서 제1서기로 선출되었다. ‘스탈린 비판’을 제기하고, 대외적으로도 ‘중소논쟁’ ‘헝가리사건’ 등을 도발, 공산진영 분열의 실마리를 제공하였다. 동서긴장 완화의 ‘공존외교’도 일관성이 결여되어 마침내 중국 ·알바니아 이반(離反)의 결정적 계기를 제공하고 실각하였다.
워싱턴협약 세계적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상업적인 국제거래를 규제하고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하여 채택된 협약.
마셜 플랜 제2차 세계대전 후, 1947년부터 1951년까지 미국이 서유럽 16개 나라에 행한 대외원조계획이다. 정식 명칭은 유럽부흥계획(European Recovery Program, ERP)이지만, 당시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던 마셜(G. C. Marshall)이 처음으로 공식 제안하였기에 ‘마셜 플랜’이라고 한다.
걸프전쟁 1990년 8월 2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미국·영국·프랑스 등 34개 다국적군이 이라크를 상대로 이라크·쿠웨이트를 무대로 전개된 전쟁이다.
미국대폭발테러사건(9·11테러사건) 2001년 9월 11일 발생한 미국 뉴욕의 110층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과 워싱턴의 국방부 건물에 대한 항공기 동시 다발 자살테러 사건.
조지 W. 부시 미국의 정치가·제43대 대통령. 미국 제41대 대통령 조지 부시(George Bush)의 아들이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석유 사업을 하기도 하였으며, 1993년 텍사스 주지사가 되었다. 2000년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2004년 재선에 성공했다.
베트남전쟁 베트남의 통일 과정에서 미국과 벌인 전쟁 (1960~1975).
로널드 레이건 미국의 제40대 대통령으로 1981년부터 1989년까지 재임하였으며, 공화당 소속이었다. 취임 초 경제회복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 를 주창하여 경제를 활성화시켰으며, 대외정책은 《레이건독트린》을 기초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평화’를 표방했다.

5 . 경제

연방준비은행
연방준비은행

오늘날 미국의 힘의 가장 강력한 원천은 19세기 이후 이어진 미국경제의 혁신적인 성장이다. 미국 경제체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풍부한 자연자원과, 숙련된 인력, 잘 갖추어진 기반시설, 기술혁신 등이 잘 어우러져 규모 면에서 오랜 기간 세계1위 경제의 지위를 유지해 왔다. 

1950년대 후반부터 독일 등 유럽 여러 나라와 일본의 경제부흥이 진전됨에 따라 전후와 같은 미국 경제의 압도적 지배력은 약화되고, 1958년 이후는 국제수지도 적자로 전락하였다. 1973년 1월에는 유럽과 일본의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의 투매가 일어나 마침내 달러화의 평가절하()가 이루어져 전후 세계통화의 기준으로 되어 있던 달러화의 신화()는 무너지고 말았다.

1980년대에도 인플레이션이 계속되어, 1988년에는 처음 10개월간은 1981년 이래 최고인 4.5%를 기록하였다. 또한 소비자물가도 4.6%나 올라 역시 7년만에 최고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의 우려 속에서도 계속된 달러화의 약세정책, 제3국에 대한 시장개방 압력 등으로 클린턴 행정부는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은 연평균 3% 내외의 높은 성장을 달성했으며, 물가안정과 기업투자 등이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1990년대 이후 전반적으로 경기가 회복되어, 2020년 기준 미국의 구매력 기준 국내총생산은 약 20조 달러에 달하여 중국에 이은 세계 2위를 기록하였다. 경제성장률은 2019년 기준 2.16%를 기록하여 세계 129위에 올라 있다.

미국은 세계의 기술혁신을 선도하는 국가이며, 특히 컴퓨터, 인공지능, 바이오, 우주항공 등 첨단산업 역량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앞서 있다. 여기에 풍부한 인력, 잘 갖추어진 인프라 등 경제발전을 위한 요건들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 미국의 경제력을 떠받치는 또 하나의 원동력은 미국의 통화, 즉 달러($)이다. 미국 달러는 미국 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소위 말하는 기축통화이기 때문에 그로 인한 혜택 또한 미국 경제에 큰 이점으로 작용한다.

참조항목

참조항목
뉴딜 미국 제32대 대통령 F.D.루스벨트의 지도 아래 대공황(大恐慌) 극복을 위하여 추진하였던 제반 정책.
대공황 1929년에 시작된 사상 최대의 공황.
북미자유무역협정 북아메리카에 위치한 미국·캐나다·멕시코 3국이 관세 등 무역장벽을 폐지하고 자유무역권을 형성한 협정.

1) 산업구조

미국은 다원화된 산업구조를 갖고 있다. 경제대국인 만큼 첨단산업을 비롯하여 제조업 분야(석유, 철강, 자동차, 우주 항공, 통신, 화학, 전자, 식품가공 등)가 발전되어 있는가 하면, 중국에 이은 세계 2위의 농업 생산국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1차산업(농업, 수산업, 광업)과 2차산업(공업)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3차 산업(유통, 금융, 통신, 공공서비스업 등)의 비중이 점차 확대되어 미국 전체 경제 생산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2017년 기준 1차 산업이 0.9%, 2차 산업 19.1%, 3차 산업 80%로 나타난다. 

산업구조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다른 하나의 기준은 민간 부문(private sector)과 공공 부문(public sector)의 비율이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공공부문보다 민간 부문의 비중이 큰 산업구조를 갖고 있다. 대공황을 거치면서 정부의 재정적인 역할이 확대되어서 공공 부문의 비중이 늘어났지만 아직도 여전히 다른 선진국들에 비하면 민간 부분의 비중이 큰 편이다.

2) 농림수산업

미국농무부
미국농무부
미국은 광대한 국토의 대부분이 온대기후에 속하는데다가 평지도 넓어 자연조건의 혜택을 받은 세계적인 농업지대를 이룬다. 그리고 남북전쟁 후의 공업화와 노동력 부족은 일찍부터 기계화농업을 발달시켰으며, 대규모의 합리적인 기업적 농업이 주가 되었다. 미국 경제 전체로 보면, 국민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농·림·수산업의 비율은 불과 3%이며, 취업인구 비율에서도 4.3%에 불과하나, 그 생산규모는 세계 유수의 농업국임을 입증한다.
 
경작지·삼림지역의 면적은 약 2억ha로 세계 제1위, 목초지는 2.4억ha로 오스트레일리아·러시아연방에 이어 세계 제3위이다. 농산물 중 밀은 세계의 12.6%로 세계 제2위이고, 옥수수 46%(1위), 콩 66%(1위), 귀리 20%(2위), 담배 17%(2위), 목화 23%(1위), 포도 67%(1위), 귤 19%(1위), 파인애플 19%(1위), 사과 14%(1위) 등 세계 제1∼2위를 다투는 생산량을 올리고 있다.
축산에서도 우유·버터·육류·치즈·달걀의 생산량이 세계 1~2위를 다툰다. 임업은 태평양 연안 북부의 워싱턴주·오리건주 및 로키산맥 지역이 성하며, 용재 생산량은 세계 25%, 펄프 생산은 세계 37%를 차지하여 모두 세계 제1위이다. 조림사업에 의한 2차림은 극히 적고, 자연림의 벌채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나, 삼림의 보호관리에 노력하고 있다. 수산업은 북태평양·북대서양의 세계 4대 어장 중에서 2개의 연안어장을 가지고 있으나, 어획량은 270만t으로 세계의 4%(6위)에 그쳐 세계 최대의 수산물(가공품을 포함) 수입국이다.
 
미국은 선진국 중에서는 식량의 완전자급이 가능한 몇 나라 중의 하나일 뿐만 아니라 수출능력도 높고 대형 농업기계나 비행기까지 사용하는 고도의 기술로 생산성도 높다. 또한, 밀이나 쌀은 가격안정 등 원활한 수급을 위해 경작제한 등 미국 정부는 생산 억제정책까지도 취하고 있다. 미국 농림업의 지역분포는 기업적 경영과 적지적작()업이 특징이다. 중서부의 옥수수지대, 남부의 목화지대, 프레리의 밀지대, 그레이트플레인스의 기업적 방목과 건조·관개 농업, 캘리포니아의 과수농업, 로키산맥과 태평양 연안의 해안산맥 지대의 침엽수림, 멕시코만안의 원교농업 등이 그 대표적 예이다.

참조항목

참조항목
그레이트플레인스 북아메리카 대륙 중앙에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고원 모양의 대평원.
로키산맥 북아메리카 서부를 남북으로 뻗은 대산맥.
오리건주 미국 태평양 연안에 있는 주.
워싱턴주 미국 태평양 연안에 있는 주.

3) 지하·에너지 자원

미국은 국토가 광대한 만큼 각종 지하자원 및 에너지 자원이 풍부하다. 미국의 석탄, 석유, 천연가스, 철광석 등 주요 광물 및 에너지 자원의 매장량과 생산량은 세계적이며, 니켈 등 극히 일부분의 비철금속을 제외하고 모든 자원의 자급자족이 가능하다. 2021년 기준 석유 생산량은 세계 1위이면서 석유 수입도 유럽연합과 중국에 이어 3위이다. 1973년의 석유파동 이후 오일셰일(oil shale) 혹은 샌드오일(sand oil: 석유를 포함하고 있는 흙이나 모래층)에서 석유를 추출하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등 석유 확보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석탄은 애팔래치아 산지와 로키 산지를 중심으로 대규모로 매장되어 있으며, 확인된 매장량이 세계 매장량의 17%로 러시아 다음으로 많으나 생산량은 상대적으로 적다. 특히 애팔래치아산맥에 위치한 펜실베니아 탄전에서 생산되는 양질의 역청탄은 미국의 산업혁명기에 철강업 등 각종 산업에 효과적으로 이용되어 공업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철광석의 매장량도 풍부한데 주요 광산으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노천광산인 메사비 광산이 있다. 오대호의 수운을 이용하여 애팔래치아 산맥의 석탄과 결합되어 그 중간에 위치한 디트로이트, 클리블랜드에서 세계 제1의 철강산업을 육성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자동차, 조선, 기계 등 관련 산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비철금속으로는 구리가 세계 생산량의 22%를 차지하는 것을 비롯하여 (15%, 1위), 바나듐(42%, 1위), 몰리브덴(64%, 1위), 아연(8%, 3위) 등을 생산하며, 경금속 마그네슘도 47%로 1위이다.

에너지 소비량은 그 나라의 경제나 물질문명의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라 할 수 있는데 미국은 에너지자원의 소비량과 이에 의해 생산된 에너지 소비량도 단연 세계 1위이다. 전력 생산은 2020년 기준 화석연료 약 60%, 원자력 약 20%, 풍력 8.3%, 수력 7%, 태양열 3.2% 등 다양한 자원을 활용하고 있다.

2004년 8월 발효된 부시 대통령의 에너지법안(Energy Bill)에도 자국의 에너지를 보호하기 위하여 비싼 석유 수입을 줄이고 향후 300년 사용이 가능한 석탄 매장량을 활용하기 위한 광산, 건설, 지역 실업문제 해소 등 관련 산업 구제책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대기 중 환경오염의 주범인 화력발전을 대체하기 위하여 최근 안전성 확보와 친환경을 기치를 내세우는 원자력, 생물체를 열분해시키거나 발효하여 얻는 바이오매스(Biomass)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 석탄을 가스로 바꿔 대기오염을 줄일 수 있는 기술인 IGCC(Integrated Gasification Combined Cycle) 등이 각광받고 있다.

원자력의 경우 2022년 현재 92기의 원전이 가동되어 원자력발전소의 수는 세계에서 가장 많고 원자력에 의한 전력 생산도 세계적인 규모이다. 그러나 1979년 펜실베니아주 쓰리마일(Three Mile Islands) 원전 사고 이후 안전을 이유로 원자력 발전소를 거의 세우지 않고 그동안 출력 증강에 주력하였으나, 2005년부터 다시 원전건설 계획을 세우고 있다. 원자력 발전의 연료가 되는 우라늄도 세계의 53%를 생산하고 있다.

참조항목

참조항목
콜로라도강 미국 남서부를 흐르는 강.
애팔래치아산맥 북아메리카의 동부를 북동에서 남서로 뻗어 있는 산맥을 말하며 길이는 약 1,800km이고 최고봉은 높이 2,037m인 미첼산이다. 임업과 광업이 주요산업이고, 오랫동안의 벌채로 삼림이 많이 황폐해졌다. 또한 미국 내의 석탄의 85%가 이곳에 매장되어 있고 철광, 석유, 아연 등도 채굴되고 있다.
함유셰일 석탄 ·석유가 산출되는 지역에 널리 분포하는 흑회색 또는 갈색의 수성암으로 함유혈암 ·유모혈암 ·유혈암 ·오일셰일이라고도 한다.
그랜드쿨리댐 워싱턴주 북동부에 있는, 높이 168m, 길이 1,272m의 거대한 중력식 댐으로, 1934년 댐 건설에 착공하여 1942년에 준공하였다.
후버댐 미국 남서부 콜로라도강(江) 유역의 종합개발에 의해서 건설된 높이 221m. 기저부 너비 200m, 저수량 320억m3의 아치형 콘크리트 중력댐으로, 1936년에 완성되었으며 ‘볼더댐’이라 불리다 제31대 대통령 후버를 기념해서 개칭되었다.
컬럼비아강 미국과 캐나다의 태평양안 지방을 흐르는 강.
티브이에이 테네시강유역 개발공사.
석유파동 1973~1974년, 1978~1980년 2차례에 걸친 국제석유가격의 상승으로 인해 석유를 소비하는 국가들을 비롯한 세계적 혼란.

4) 공업

필라델피아의 전경
필라델피아의 전경
미·영전쟁(1812∼1814)으로, 영국으로부터의 공업제품 수입이 단절된 것을 계기로 국내 공업이 섬유공업을 중심으로 발달하기 시작하였고, 북부의 산업자본주의의 승리로 끝난 남북전쟁은 그후 공업 입국의 방향을 설정하는 기초가 되었다. 거기에 풍부한 지하자원과 제1,2차 세계대전에서 비롯된 국제적 우위성을 배경으로 발전을 계속하여 오늘날 세계 최대의 공업국으로 성장하였다. 공업생산량은 일본·독일·프랑스의 합계에 필적할 뿐만 아니라, 항공기·전자계산기·우주산업 등 기술적인 면에서도 최첨단을 걷고 있다. 공업은 국민총생산의 26%, 취업인구의 25%를 차지하는 이 나라 최대의 산업으로 세계에서 그 생산성이 가장 높다.
 
중화학비율은 51%로서 독일·영국보다 낮으나 일본보다 높다. 미국 공업 최대의 특징은 거대한 독점자본에 의한 과점()이 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업관계 기업의 매출액에 의한 세계적 랭킹 상위에 드는 기업이 많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자동차업계에서 상위를 차지하는 제너럴모터스(GM)·포드·크라이슬러, 전기업계의 상위를 차지하는 제너럴일렉트릭·IBM·웨스턴일렉트릭, 석유업계 1위인 엑슨, 철강업계 1위인 US스틸, 화학업계 1위인 뒤퐁, 항공여객기 업계 1위인 보잉사() 등이 있다. 국내에서는 상위권 50사()가 전국 생산량의 65%, 취업자의 75%를 독점하고 있다. 철강 부문에서는 일본이, 자동차와 가정용 전기제품 부문에서는 일본·독일 등이 눈부신 진출을 보여 미국의 국제적 독점의 비중이 낮아지고는 있으나, 이들 제품 대신 보다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항공기·우주산업·컴퓨터 등을 대표적인 공업제품으로 생산함으로써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컴퓨터가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것은 그 좋은 예이다. 그리고 이들 공업은 정부의 국방지출에 의하여 지탱되는 군수산업이기도 하여, 이 군산복합체가 새로운 기술개발의 추진력이 되고 있다. 미국 공업은 원래 자원입지형으로 북동부에서 오대호 연안에 이르는 지역에 석탄과 철광자원에 의존한 공업지대를 형성하여 왔다. 그러나 1980년대 경제구조의 개편이후 새로운 지식·기술집약형 공업이 주류를 이루면서 텍사스주나, 애리조나주 등의 남서부, 또는 캘리포니아주워싱턴주와 같이 태평양 연안의 쾌적한 지역에 공업이 분산입지하여 새로운 공업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참조항목

참조항목
남북전쟁 1861년부터 1865년까지 미국의 북부와 남부 사이의 내전으로 ‘제2의 미국 혁명’이라 불리기도 한다.
보잉 미국의 항공기 제조회사.
US스틸 미국의 종합철강회사.
웨스턴일렉트릭 미국의 통신기기 제조회사.
제너럴모터스 미국의 자동차제조회사.
엑슨모빌 미국의 석유화학회사.
E.I.뒤퐁드느무르앤컴퍼니 미국의 종합화학회사.
제너럴일렉트릭 미국의 첨단 기술, 서비스, 금융 기업.
포드자동차 헨리 포드가 설립한 미국의 자동차 회사.
크라이슬러 미국의 자동차 및 부품 제조회사.

5) 고부가가치산업

1980년대 이후 미국 경제는 과거 자동차-조선-중화학공업으로 대표되던 공업화시대의 산업들은 대부분 쇠퇴하고 고부가가치 산업을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개편되었다. 이른바 첨단하이텍 산업과 4, 5차 산업의 핵심산업인 군사-우주-항공산업, 정보-전자-통신-컴퓨터 산업, 유통-금융-서비스 산업 등이 국가경제의 중심을 이루는 선진화된 산업구조로 성공적으로 발전하였다. 소프트웨어, 반도체, 에너지, 건설, 유통, 무역, 금융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으로 고부가가치 산업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었으며, 전체적으로 절반정도를 차지하는 것이 군수산업이라는 점이 미국산업의 특징적인 측면이다. 이로 인해 미국의 군수.산업 복합체는 다방면의 방위산업체들과 민간기업들이 연결되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엄청난 관련효과를 가져오는데, 하나의 우주선 발사와 관련하여서도 수천개의 산업체가 관련된다.
 
미국은 인터넷을 탄생시킨 종주국으로서 인터넷관련산업이 미국의 경제구조를 바꾸고 있다. 인터넷경제는 2000년에 이미 약 8,300억 달러정도의 엄청난 매출액을 만들었고, 인터넷을 통해 물건을 사고 파는 전자상거래의 활성화는 기존의 시장구조를 바꾸고 있다. 또한 외식산업과 영화산업은 세계 최고의 경쟁력과 함께 미국문화의 전 세계로의 전파에서 첨병역할을 한다.

6) 소득분배

세계 인구의 4.24% 밖에 안되는 미국이 전 세계 GDP의 30.2%를 차지한다는 통계는 세계에서 미국 경제가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준다. 상위 10%의 인구가 전체 부의 72%를 차지하고, 하위 50%가 단지 2%의 부만을 차지할 만큼 빈부격차가 크다. 빈부격차를 보여주는 지니계수는 0.41(2016)로, 주요 선진국들 사이에서 상당히 높은 편이다. 실업률은 3.89%(2018)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은 신자유주의 경제시스템이 잘 반영되어 빈부격차가 크고, 공공건강보험 등 사회복지시스템이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노동자의 노동조합 조직률도 12%로 서유럽의 30%에 비하여 상당히 낮은 편이며, 해고와 고용이 쉬운 나라로 꼽힌다.

7) 교통통신

로스앤젤레스 60번 하이웨이
로스앤젤레스 60번 하이웨이
광대한 국토로 인하여 철도·수운·자동차·항공기 등 각종 다양한 교통수단이 이용되여 국토이용의 효율성을 능동적으로 추진해 온 나라이다. 개척시대, 광활한 지역에 걸쳐 대규모 개척을 가능하게 한 것은 철도이며, 독립 후에는 영국·멕시코와 싸우면서도 볼티모어·오하이오철도(1830)를 개통시켰고, 남북전쟁 4년 후에는 최초의 대륙횡단철도(1869)가 개통되었다. 철도가 19세기를 통하여 미국의 산업자본 형성에 미친 영향은 컸으며, 세계 제1의 철도왕국을 이룩하였다. 1970년대 미국은 철도여객업무를 전담할 미국철도여객공사(AMTRAK)를 창설하여 전국 500여 개 정거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영업철도 연장 33만 8000km는 세계 제1위이며, 현재 철도의 기능은 여객수송보다 화물수송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연간 1조 1억t 이상의 화물을 수송하고 있다.

화물수송에서는 내륙수로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데, 오대호와 미시시피강은 천혜()의 수로로서 미국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오대호와 허드슨강을 연결하여 뉴욕의 발전을 촉진한 이리 운하와 대서양 항로의 외항선박이 직접 오대호에 드나들 수 있게 한 세인트로렌스수로 등은 많은 내륙운하 중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으며, 항행거리는 4만 1009km이다.
 
제철산업의 발전에 이어 디트로이트를 중심으로 한 자동차산업이 발전하였는데 포드회사는 세계최초로 컨베이어시스템에 의해 자동차의 대량생산시대를 열었다.  자동차가 출현하자 정부는 자동차 산업의 육성을 적극적으로 꾀하는 한편, 교통정책을 철도에서 도로로 전환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간선국도였던 US 하이웨이는 40만km의 포장도로이다. 전후에는 증가하는 교통량에 대처하기 위하여 아주 새롭고 완전한 중앙분리대를 형성하여 평면교차가 없을 뿐만 아니라 편도가 최소 2차선인 도로 6만 8000km의 주간 고속도로(Interstate Highway)를 1956년에 착공하여 1975년 완공하였다. 이들 도로와 대형화된 고성능 자동차가 보급되면서 도시가 교외로 확산되어 자동차 없이는 살 수 없는 미국사회가 출현하게 되었다. 세계 제1의 자동차 보급률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도시의 교통체증과 지나치게 자동차에 의존하는 생활, 그리고 자원낭비 등에 대한 반성이 싹트기 시작하여 도시의 대중 교통기관의 필요론이 대두되어 새로운 교통기관의 개발이 시작되고 있다. 지상 교통의 발달뿐만 아니라 높은 국민소득에 의하여 항공교통도 2차대전전후 급속도로 성장되었다. 대도시는 서로 다투어 거대한 비행장을 건설하였으며, 지방의 소도시까지 항공로로 연결되어 있을 정도이다. 1960∼1970년 동안에 플로리다, 텍사스, 애리조나주() 등이 높은 인구증가율을 보이고, 메갈로폴리스의 인구증가의 둔화가 눈에 띄게 되었는데, 이와 같은 인구분산을 촉진한 원인의 하나로 항공교통의 보급을 들 수 있다. 미국의 민간항공은 1999년 현재 1만 4572개가 넘는 공항이 전국 각지에 산재해 있어서 많은 승객과 화물을 운반하고 있다. 미국의 여객수는 전 유럽의 항공여객 총계의 3배 이상이나 된다. 
 
미국의 통신제도 중 우편을 제외한 그밖의 모든 것은 민영화되어 있다. 1876년 A.G.벨에 의해서 전화가 발명되고 1878년에 벨전화회사가 설립되었고 1885년에 미국 전화전신회사(ATT)가 되었으며, 그후 벨 시스템은 전국 전화대수의 80% 이상을 지배하는 동시에 웨스턴일렉트릭을 비롯한 많은 기업을 산하에 두고 있다. 전신사업은 1851년에 설립된 웨스턴유니온 전신회사에 의하여 거의 독점되고 있다. 컴퓨터를 최초로 생산하여 이를 상호연결하는 인터넷 시스템의 개발로 세계첨단의 IT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참조항목

참조항목
대륙횡단철도 대륙을 횡단하는 철도.
미시시피강 미국 중부를 북에서 남으로 관류하는 미국 최대의 강.
고속도로 대도시·산업도시·항만·공항 등 정치·경제·문화상으로 특히 중요한 지역을 연결하는 간선도로 중에서, 자동차가 고속으로 안전하고 쾌적하게 주행할 수 있게 법률적·구조적으로 마련된 도로를 말한다.
허드슨강 미국 뉴욕주(州) 동부를 흐르는 강.
오대호 북아메리카 대륙의 동부에 있는 거대한 호수군.
세인트로렌스수로 캐나다와 미국의 국경 부근을 흐르는 세인트로렌스강(江)의 물길을 대규모로 개발하여 외항선이 대서양에서 오대호까지 직접 항행할 수 있게 이어놓은 수로.
존에프케네디국제공항 미국 뉴욕시(市) 퀸스구(區)에 있는 세계 최대급의 공항.
이리운하 미국 뉴욕주 북서부에 있는 운하로 길이 약 584km, 깊이 12m, 표면 너비 12m이며 허드슨강 연안의 올버니에서부터 출발하여 모호크 계곡을 종관(縱貫)한 다음 버펄로 부근에서 이리호에 이르는데 1827년 완성되었다.
웨스턴일렉트릭 미국의 통신기기 제조회사.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영국 태생의 미국 과학자·발명가. 자석식 전화기의 특허를 받아, 1877년 벨전화회사를 설립하였으며, 이 발명으로 받은 볼타상을 기금으로 볼타연구소를 창설하여 농아교육에 전력하였다. 그밖에 광선전화의 연구 외 여러 방면의 업적을 남겼다.

8) 무역

미국은 전통적으로 자유무역을 신봉해온 나라이다. 가끔 정권의 성격이나 대공황과 같이 글로벌 경제 상황에 따라 보호무역의 성격을 띠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미국은 자유무역을 추구해 왔고, 이것이 미국의 경제성장에 큰 원동력이 되어 왔다. 

2021년 기준 미국의 수출량은 약 2조5천억 달러를 상회하고 수입은 약 3조 4천억 달러에 달하는 규모이다. 주요 수출국은 캐나다(17%), 멕시코(16%), 중국(7%), 일본(5%) 등이고, 주요 수입국으로는 중국(18%), 멕시코(15%), 캐나다(13%), 일본(6%), 독일(5%) 등이 있다. 주요 수출 품목으로는 기계류(13%), 전기전자기기류(11.3%), 유류 및 석유화학류(9.0%), 항공우주 관련 제품(8.5%), 자동차 및 부품(8.4) 등이며, 수입 품목은 전기전자기기(15%), 기계류(14..6%), 자동차 및 부품(12.4%), 유류 및 석유화학(8.3%), 의약품(4.1%) 등이 대표적이다.

참조항목

참조항목
북미자유무역협정 북아메리카에 위치한 미국·캐나다·멕시코 3국이 관세 등 무역장벽을 폐지하고 자유무역권을 형성한 협정.

6 . 사회

1) 특색

롱비치 해안
롱비치 해안

미국은 건국 당시부터 자유주의 사상이 사회의 근간을 이루어 왔다.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보장하기 위하여 정부가 존재하고, 정부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해서는 안된다는 신념을 기초로 국가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자유라는 가치는 미국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사상적 근본이 된다. 종교의 자유, 경제활동의 자유, 심지어 총기 소유의 자유까지도 미국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면들이다.

미국 사회의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다민족, 다인종 국가라는 점이다. 미국 사회의 주류는 일찍이 건국 초기부터 신대륙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백인들이고, 그 이후 노예해방으로 미국 시민으로 인정받은 흑인들,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크게 늘어난 중남미에서 이주한 히스패닉 인구, 그리고 소수의 아시아인들이 비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미국이 ‘자유’와 ‘기회의 평등’을 중요한 가치로 간주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차별은 존재한다. 주류를 이루는 백인들과 달리 소수인종들은 많은 경우 교육 수준이 낮고 고급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빈곤의 악순환에 시달리고 사회의 하층을 형성한다. 주류 백인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교육 수준과 그에 따른 경제적인 우위를 갖고 있다. 자유와 평등을 중요시하는 미국 사회에서도 일부 주류 백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우월의식과 인종에 대한 차별의식은 현재 미국 사회를 분열시키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참조항목

참조항목
인종문제 인종적 편견에 의하여 빚어지는 인종집단간의 갈등.
니그로이드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남쪽에 사는 인종군.
로스앤젤레스폭동 1992년 4월 29일부터 5월 4일까지 로스앤젤레스에서 일어난 흑인 폭동 사건이다.
워터게이트사건 1972년 6월 대통령 R.M.닉슨의 재선을 획책하는 비밀공작반이 워싱턴의 워터게이트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입하여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체포된 미국의 정치적 사건.
미국대폭발테러사건(9·11테러사건) 2001년 9월 11일 발생한 미국 뉴욕의 110층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과 워싱턴의 국방부 건물에 대한 항공기 동시 다발 자살테러 사건.
베트남전쟁 베트남의 통일 과정에서 미국과 벌인 전쟁 (1960~1975).

2) 사상

미국 역사 초기에 종교상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너온 초기이민자들은 강한 극기심과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노력의 성과를 자손들에게 전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었으며, 때로는 목적 달성을 위해 인디언의 대량학살과 노예의 사용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또 때로는 인디언으로부터 의식주에 대한 것을 배우는 등 실용주의적 경향이 강하였다. 그들은 힘찬 에너지로 독립전쟁이나 남북전쟁 등을 비롯한 많은 전쟁을 거쳐 자본주의를 발전시켜왔다. 그 결과 그들은 그들이 믿는 자유, 즉 미국적인 민주주의에 바탕을 둔 자유를 구가하고, 그것을 국내외에 펼치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있다.

미국의 사상과 생활은 이 저류를 기반으로 늘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철학은 처음에는 유럽에서 건너올 때부터 가졌던 반가톨릭의 엄격한 퓨리터니즘(청교도정신)이 강하였다. 이후에는 자유주의적인 경향이 나타나 에머슨에 의해서 대표되는 초월주의가 대두하기도 하였다. 이에 따르면 개인은 그 자체가 모든 것을 포함하기 때문에 산업주의로 기울어지는 것을 반대하고 극단적인 개인주의를 정당화하는 경향도 있었다. 산업혁명을 촉진한 남북전쟁 후에는 초월주의가 점차 약화되었다.
 
이에 대신하여 세력을 얻은 사상은 제임스 등에 의해서 제창된 실용주의(프래그머티즘)이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진리는 그 실제적 효용, 특히 인간의 행동에 끼친 영향으로 판단된다고 한다. 이 사고방식은 근대과학, 특히 심리학의 대두와 연결되며 현재에는 사회과학 연구에서 볼 수 있는 심리학적 경향의 원천이 되었다. 듀이는 실용주의를 더욱 발전시켜, 사상은 환경을 지배하기 위한 도구이며 인간의 경험이나 진보에 도움이 되는 것일수록 참된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도구주의(인스트루멘털리즘)를 제창하였고 그후 다양한 사상이 출현하였으나 오늘날 미국 기계문명의 밑바탕에는 지금까지 실용주의가 엄존하고 있다.

참조항목

참조항목
존 듀이 미국의 철학자이자 교육학자. 미네소타·미시간·시카고·컬럼비아 각 대학에서 교수를 역임하였고 '전국교육협회' 명예회장을 지냈다. 서민의 경험을 프래그머티즘에 의해 소화하여 보편적 교육학설을 창출하여 세계 사상계에 기여하였다. 대표적 저서로는《논리학-탐구의 이론》, 《경험으로서의 예술》 등이 있다.
랠프 에머슨 미국 사상가 겸 시인. 자연과의 접촉에서 고독과 희열을 발견하고 자연의 효용으로서 실리(實利)·미(美)·언어(言語)·훈련(訓練)의 4종을 제시했다. 정신을 물질보다도 중시하고 직관에 의하여 진리를 알고, 자아의 소리와 진리를 깨달으며, 논리적인 모순을 관대히 보는 신비적 이상주의였다. 주요 저서에는《자연론》,《대표적 위인론》등이 있다.
초월주의 19세기에 미국의 사상가들이 주장한 이상주의적 관념론에 의한 사상개혁운동의 입장.
실용주의 현대 미국의 대표적 철학.
인스트루멘털리즘 추상적 개념에 대한 프래그머티즘, 특히 J.듀이의 사고방식.
개인주의 국가나 사회보다 개인의 존재와 가치를 더 중요시하는 사상과 태도.
민주주의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행하는 제도, 또는 그러한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
윌리엄 제임스 미국의 심리학자 ·철학자.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으며 빌헬름 분트와 함께 근대 심리학의 창시자로 일컬어지고 있다. 소설가이며 비평가로 유명한 헨리 제임스(Henry James)의 형이다.

3) 교육

필드자연사박물관
필드자연사박물관

미국의 초중등 교육은 주에 따라서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만 4~5세에서 만 17~18세(유치원~12학년)까지 12~13년 동안의 의무교육을 실시한다. 일반적으로 유치원 및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4년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주마다 약간씩 다르다. 전체 유치원(Kindergarden)부터 12학년까지의 초중등 교육시스템을 ‘K-12학제’라고 부른다. 공립학교와 사립학교로 나누어져 있고 공립학교는 무료이며 사립학교의 학비는 학교마다 천차만별이다. 교육의 질적인 면에 있어서 공립학교보다 사립학교가 우위에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 경제적 사정이 허락하면 자녀들이 사립학교에서 교육 받기를 원하는 부모들이 많다.

고등교육, 즉 대학은 2년제의 초급대학과 4년제의 일반대학이 있는데, 2년제 초급대학은 공립이며, 4년제 대학은 공립, 즉 주립대학과 사립대학으로 나뉜다. 사립대학이 주립대학보다 학비도 비싸고 교육의 질도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버드, 예일, 스탠포드, 프린스턴, MIT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의 대학들은 거의 대부분이 사립대학이다. 미국의 대학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고등교육을 제공한다고 평가를 받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유학생들이 몰려든다.

참조항목

참조항목
통신교육 교육자가 통신수단을 이용하여 피교육자에게 실시하는 교육.
프린스턴대학교 미국 뉴저지주(州) 프린스턴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 아이비리그의 8개 대학에 속한다.
예일대학교 미국 코네티컷주(州) 뉴헤이븐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 미국 동부 8개 명문 사립대학인 아이비리그에 속한다.
하버드대학교 미국 매사추세츠주(州) 케임브리지시(市)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 미국 동부 8개 명문 사립대학인 아이비리그에 속한다.
스탠퍼드대학교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산타클라라 카운티의 스탠퍼드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 미국 매사추세츠주(州) 동부 케임브리지에 있는 과학기술계의 사립 종합대학교.
캘리포니아대학교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주립 종합대학군(群).

4) 사회보장

미국은 자유주의경제를 신봉하는 국가답게 건국 초기부터 사회보장을 위한 중앙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개인의 자선이나 지방정부의 역할로 한정했다. 그러나 1920년대 말에 터진 경제대공황으로 개인의 생존과 안전이 위협받게 되자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사회보장제도의 확충을 추진했다. 그 결과 1935년 사회보장법(Social Security Act)이 제정된 것이 미국 최초의 사회보장제도이며, 이후 점차 확대되어 왔다. 특히, 린든 존슨 행정부에서는 의료보장제도인 저소득자를 위한 메디케이드(Medicaid)와 노령자를 위한 의료보험제도(Medicare), 그리고 푸드스탬프 등의 제도가 시행되기 시작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는 전 국민을 위한 보편적 의료보험을 지향하는 오바마케어 제도가 시행되기도 했다.

2020년 기준 전체 인구 중 약 11.4%인 3720만명이 빈곤층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이들은 정부로부터 각종 지원과 혜택을 받고 있으나, 아직도 전 국민을 위한 보편적 사회보장제도와는 거리가 멀다. 의료보험의 경우 오바마케어가 정상적으로 이행될 경우 미국 국민 95%가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을 만큼 그 이전보다는 진일보된 면이 있으나, 대다수의 국민이 공공보험이 아니라 민간보험에 가입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적 사회보장의 취지와는 거리가 있다.

5) 이민

미국 인구 및 사회적 구성의 특징은 미국이민사에서 잘 나타난다. 미국이민은 1800년대부터 유럽인들이 대규모로 이주해옴으로써 미국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백인사회를 형성하였다. 유럽인의 대규모 이민은 1800년대 이후 세 차례에 걸쳐서 이루어졌으며, 흑인은 미국 남부의 노예제 대농장이 팽창하던 시기부터 이미 유입되어 있었다. 동양계 및 중남미계의 대규모 이민은 제한이 풀어진 1960년대 이후에서 나타난다. 따라서 미국 이민의 역사는 유럽인들이 주를 이룬 세차례의 대규모 이주와 1960년대이후의 동양계및 중남미계에 의한 대규모 이주 등 크게 네차례의 인구이동의 파동으로 설명된다.
 
유럽인의 첫 번째 대규모 이주는 1830년과 1860년사이에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라인중부지방으로부터 이루어졌으며, 두 번째 대규모 이주는 1860에서 1890년 사이로 독일,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들로부터 이루어졌으며, 세 번째는 1900년에서 1914년 사이로 동유럽의 슬라브족 국가들과 이탈리아 등 남부유럽 국가들로부터 이루어졌다. 특히 1907년에는 이민이 130만여명에 이르러 최고조에 달했으며, 1차 세계대전 후에도 상당한 규모로 이루어지다가, 1927년에는 이민자수를 매년 15만명으로 제한하였다. 이민들은 각 집단이 선호하는 자연적, 인문적 조건에 맞는 지역에 촌락단위로 정착하여 각 지방의 독특한 문화를 유지함으로써 인종과 문화의 전시장이 되었다.

7 . 문화

1) 문화예술

구겐하임미술관
구겐하임미술관

아메리카 대륙에 신세계를 구축한 개척자들은 엄격한 청교도이며 그 금욕사상은 모든 경쟁이나 즐거움을 죄악시하여 종교적인 활동을 제외하고 생산과 결부되지 않은 활동을 부정하였다. 따라서 영국을 중심으로 한 ‘옛 세계’에서 도입된 문화예술이 신세계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개척민들은 그들 고유의 언어와 문화관을 가지고 있었으나 빠르게 미국사회에 동화되었고 새로운 문화를 형성해 나갔다. 건축, 미술, 문학, 음악 등 다방면에서 미국적인 사고와 양식이 표출되었으며, 특히 지금까지 전세계적으로 영향력을 가지는 것은 대중음악과 영화를 들 수 있다. 풍부한 자본과 뛰어난 기술을 바탕으로 미국의 대중음악과 영화는 세계 각국의 문화에 빠르게 흡수, 발전되었다.

영화·공연

미국의 영화와 공연산업은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로 대표된다. 미국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는 전세계에서 상영되며, 폭스, 유니버설, 파라마운트 등의 영화사들은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 들인다. 1929년에 처음 시작된 아카데미 시상식은 아직도 세계 영화계의 가장 중요한 이벤트로 여겨진다. 뉴욕의 브로드웨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연극과 뮤지컬도 전 세계인을 매혹한다.

음악

미국은 장르에 상관없이 거의 모든 종류의 대중음악이 소비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대중음악 시장이다. 컨트리 블루스, 포크 록, 댄스, , 재즈, 블루스 등 다양한 종류의 대중음악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다. 매주 순위를 매기는 빌보드 차트와 매년 시상하는 그래미 어워드는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한다.

미술

뉴욕현대미술관, 메트로폴리탄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 등과 시카고 미술관 등 그 외 지역의 미술관들은 세계적인 작품들을 다수 전시하여 연중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 미술관들은 고전 작품 외에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e), 마스덴 하틀리(Marsden Hartley),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앤디 워홀(Andy Warhol),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 stein),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필립 존슨(Phillip Johnson), 프랭크 게리(Frank Gehry) 등 현대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 에드워드 웨스턴(Edward Weston) 등 사진작가들의 작품도 자주 전시한다.

문학

19세기 전반기에는 워싱턴 어빙, 에드가 엘런 포(Edgar Ellen Poe),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Henry David Thorea)와 같은 작가들이 등장하였고, 19세기 후반기에는 마크 트웨인(Mark Twain), 월트 휘트먼(Walt Whitman), 에밀리 디킨슨과 같은 작가들의 작품이 많은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20세기에는 윌리엄 포크너, 어니스트 헤밍웨이, 존 스타인벡 등이 대표적인 미국 작가들로 이름을 남겼다. 2022년 현재 13명의 미국 작가들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바있다.

참조항목

참조항목
월드시리즈 아메리칸리그와 내셔널리그를 포함하는 메이저리그 전체의 챔피언을 결정하는 경기.
메이저리그 미국 프로야구의 아메리칸리그(American League)와 내셔널리그(National League)를 아우르는 말로, 빅리그(Big League)라고도 한다. 아메리칸리그 소속 15개 팀, 내셔널리그 소속 15개 팀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 동부지구, 중부지구, 서부지구로 나뉘어 정규 시즌을 치른다.
할리우드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지구. 영화의 중심지.
아카데미상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영화상으로 오스카상이라고도 부른다.

2) 스포츠

20세기 후반 경제적인 여유와 여가시간 및 여가활동에 대한 수요 증가는 미국사회에 스포츠를 비롯한 각종 위락산업을 발달시켰다. 스포츠의 특색은 순수한 기업으로서 이루어지는 프로스포츠, 학교제도 내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적인 의의를 목적으로 하는 스포츠, 그리고 개인적인 오락으로 행해지는 레크리에이션 스포츠의 유기적인 융합이라 하겠다. 보통의 미국인들은 생활 속에서 체육을 즐길 뿐만 아니라 엔터테인먼트의 일종으로 즐긴다. 올림픽과 같은 국가 대항 국제경기에서도 항상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으며, 프로 스포츠도 활성화되어 있다. 주로 TV를 통해서 프로 스포츠와 대학 스포츠를 즐긴다.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는 미식축구(NFL), 농구(NBA), 야구(MLB), 아이스하키(NHL) 등이다. 이외에 테니스와 골프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스포츠 행사로는 프로야구의 월드시리즈, 프로미식축구의 슈퍼볼, 프로농구의 플레이오프전, 프로아이스하키의 스탠리컵 등이 있다.

3) 매스커뮤니케이션

뉴욕타임즈 반면
뉴욕타임즈 반면

미국은 ‘자유’의 나라답게 언론의 자유를 철저하게 보장하고 그만큼 다양한 언론들이 활동하고 있다. 언론은 크게 방송, 신문, 인터넷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방송은 공중파 방송과 케이블 방송으로 나눌 수 있다. American Broadcasting Company(ABC), Microsoft National Broadcasting Company(MSNBC), Columbia Broadcasting System(CBS), Cable News Network (CNN) 그리고 FOX Broadcasting Company(FOX)가 있다. 네 개의 메이저 방송사들은 모두 민영방송이다. 이밖에 뉴스, 영화, 취미,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다루는 수 백 개의 민간 케이블 채널이 운영되고 있다. 2021년 기준 12세 이상 인구의 83%가 라디오를 청취하고 41%가 팟캐스트를 듣는다. 공영방송은 1967년 공영방송법(Public Broadcasting Act)에 의하여 설립된 NPR(National Public Radio)과 PBS(Public Broadcasting Service)가 담당하고 있다.

신문은 각 주 혹은 지역마다 대표적인 신문들이 있으나,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진 신문은 New York Times, Wall Street Journal, Washington Post, USA Today 등이 대표적이다. 정치성향으로 분류하면 New York Times는 진보, Wall Street Journal은 보수 Washington Post와 USA Today는 중도에 가깝다. 거의 대부분의 신문들이 민간 소유이다.

참조항목

참조항목
MBS 미국의 상업 라디오 방송사.
NBC 미국의 방송사.
UPI 미국의 통신사.
뉴욕타임즈 뉴욕에서 발간되는 미국의 대표적인 일간신문.
CBS 미국을 대표하는 방송회사.
AP 미국의 통신사.
월스트리트저널 1889년에 창간된 미국의 경제신문.
워싱턴포스트 미국 워싱턴에서 발행되는 조간신문.
CNN 미국의 24시간 뉴스 전문 유선 텔레비전 방송망.
ABC 미국의 방송회사.

4) 기념일과 명절

미국인들은 전통적으로 12월 25일 크리스마스와 11월 넷째 목요일을 추수감사절을 가장 중요한 명절로 기념한다. 이때는 멀리 떨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 데 모여 식사를 함께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크리스마스 직전부터 다음해 1월 1일까지 휴가를 즐기는 경우가 많고, 따라서 이 기간에는 공공기관을 비롯하여 많은 상점들이 문을 닫는다. 추수감사절의 경우는 목요일부터 주말까지 휴일로 지정되어 있으며, 목요일 추수감사절에는 온 가족이 모여 칠면조 요리를 먹는 전통이 있다. 금요일에는 많은 상점들에서 이른바 ‘블랙프라이데이’라는 1년 중 가장 큰 할인행사를 연다.

명절을 제외한 기념일 중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7월 4일의 독립기념일이다. 이날 밤에는 미국 전역에서 거대한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그 외 공휴일로 지정된 기념일은 New Year Day(1월 1일), MLK Day(마틴 루터 킹 탄생일, 1월 셋째 월요일), 현충일(5월 마지막 월요일), 노동절(9월 첫째 월요일) 등이다. 일부 주에서는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기념하는 프레지던트 데이(2월 셋째 월요일)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기념하는 콜럼버스 데이(10월 둘째 월요일)도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5) 관광

미국의 관광은 뉴욕, 시카고, LA, 샌프란시스코 등 도시 관광과 국립공원을 중심으로 하는 자연 관광으로 나눌 수 있는데, 지역별로는 크게 동부, 중서부, 서부로 나뉘어진다.

동부 관광은 뉴욕과 워싱턴 D.C., 보스턴 등 대도시와 나이아가라 폭포 등이 주요 관광 포인트이다. 뉴욕은 도시 자체가 거대한 테마파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볼 거리, 즐길 거리, 먹을 거리가 넘쳐나서 일년 내내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워싱턴 D.C.는 백악관과 내셔널 몰 등 박물관을 중심으로 관광이 이루어진다. 중서부는 시카고 등 대도시 관광지로 유명하다. 서부는 자연과 도시 관광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자연은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요세미티 국립공원,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 등이 유명하고, 도시는 LA, 샌프란시스코, 샌디에고, 시애틀 등이 관광지로 유명하다. 그밖에 하와이와 플로리다는 휴양지로 유명하며 미국인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일년 내내 찾는 휴양지이기도 하다.

6) 식생활

흔히 가장 미국적인 음식이라고 하면 햄버거를 떠올린다. 사실상 햄버거는 빵과 고기, 그리고 야채가 적절히 결합되어 있어 필수 영양소를 간편하게 섭취할 수 있어 미국인들이 가장 즐겨먹는 음식 중 하나이며 다양한 종류의 패스트푸드로 개발되어 있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미국인들은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의 육류룰 즐기고 곡물은 밀로 만든 빵과 감자 요리가 일반적이다. 다양한 종류의 채소를 샐러드로 즐기기도 한다.

세계 각지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각국의 다양한 요리를 미국 사회에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이탈리안 요리, 중국요리, 멕시칸 요리, 인도요리, 타이 요리, 일본 요리, 한국요리 등 다양한 문화의 요리들이 미국 사회의 식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8 . 과학기술

E-3 센트리
E-3 센트리

미국의 국적을 가진 학자가 자연과학계통의 노벨상을 거의 해마다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기초적인 과학연구, 특히 원자력, 우주관계 등의 기술개발 부문에서 미국은 세계의 첨단을 걷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원인은 설비의 완비, 풍부한 연구비는 물론, 기초연구의 세분화에 따른 전체의 뚜렷한 진보, 외국학자의 영입 등에 의한 발전도 간과할 수 없다. 이것은 러시아연방과의 미사일·인공위성 등의 경쟁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 바 있다.

미국의 세계전략에 직접·간접으로 쓸모 있는 연구계획에는 군부를 중심으로 하는 각 기관으로부터 풍부한 자금이 지원되고 있는 데도 원인이 있다. 원래 미국은 과학기술면에서도 유럽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고전()에 편중하는 유럽 각 대학에서는 인간의 활동 가운데 사고()가 최고이며, 노동은 최저라고 간주되어 왔으나, ‘노동의 신성’을 부르짖고 통나무의 오두막에서도 대통령을 배출하는 신대륙에서는 타당하지 않았다.

미국인들은 노동이 성공에의 지름길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었으며, 광대한 황야를 개척하려면 여러 가지 기술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초기에는 영국과 프랑스 등의 도구·기계·기술로 각종 수공업이 비롯되었으나 유럽의 모든 기술이 조국에서는 꽃을 피우지 못하고 미국에서 그 가치를 발휘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미국의 자본주의기술혁신을 받아들이는 조건을 구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신대륙에서는 기술혁신이 정체할 줄 모르고 끊임없이 촉진되고 있었다. 미국은 개인의 창의력과 능률을 존중하고 사기업을 바탕으로 발전하였다.

특히 H.포드(자동차), T.에디슨(전력), A.G.벨(전신전화), E.H.게리 및 J.P.모건(제철) 등은 합리적인 기업운영으로 이름나 있으며, 이들은 미국 기간산업의 기반을 구축하였다. 최근의 과학기술은 항공기·인공위성에서도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서로의 경계선이 희박해져서 양자를 포함하는 ‘거대한 과학’으로 불리게 되었다.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연구원을 조직화하고 정부의 거대한 장기적 재정투자를 필요로 한다. 이 면에서도 미국은 당분간 세계의 무대에서 독주할 것이다.

참조항목

참조항목
헨리 포드 자동차 왕으로 불리는 미국의 자동차 회사 '포드'의 창설자로, 조립 라인 방식에 의한 양산체제인 포드시스템을 확립하였다.
토머스 에디슨 미국의 발명가. 특허수가 1,000종을 넘을 정도로 많은 발명을 하였고 특히 중요한 것은 백열전구를 개선·발전시키고 그것의 생산법을 발명한 것이다. 전구실험 중에 발견한 ‘에디슨 효과’는 20세기 들어와 열전자 현상으로서 연구되고, 진공관에 응용되어 전자공업 발달의 바탕이 되었다.
챌린저호 미국이 보유한 스페이스 셔틀(유인 우주왕복선) 제2호기.
우주왕복선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개발한 우주수송수단.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영국 태생의 미국 과학자·발명가. 자석식 전화기의 특허를 받아, 1877년 벨전화회사를 설립하였으며, 이 발명으로 받은 볼타상을 기금으로 볼타연구소를 창설하여 농아교육에 전력하였다. 그밖에 광선전화의 연구 외 여러 방면의 업적을 남겼다.
아폴로계획 우주비행사를 달에 착륙시켰다가 지구로 안전하게 귀환시키는 미국의 계획.
디스커버리호 1984년 8월에 처음 발사된 미국의 세 번째 우주왕복선.
미국항공우주국 미국의 비군사적 우주개발 활동의 주체가 되는 정부기관.

9 . 대한관계

한미 관계는 제너럴 셔먼호 사건(1866)과 이어진 신미양요(1871)가 계기가 되었다. 이후 조선 정부 내에서 미국에 대한 관심이 점차 커지고 조미수호통상조약(1882)을 맺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당시 미국은 고립주의 정책을 취하고 있었고 고립주의 정책을 완화하고 나서도 아시아 지역에서는 한반도보다는 스페인과의 전쟁의 결과로 차지하게 된 필리핀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었다. 결국 미국은 일본과 “미국은 일본의 한반도 지배에 대한 우월권을 인정해 주고, 그 대신 일본이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인정한다”는 내용의, 이른바 ‘카스라-태프트’ 밀약을 맺기에 이른다. 조선-미국의 정부 간 공식관계 이외에 민간인 교류는 주로 미국의 선교사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알렌, 언더우드, 아펜젤러, 스크랜턴 등이 선교 부대사업으로 시작한 의료, 기술, 교육, 학술 관련 사업들이 조선의 근대화를 위한 기초를 제공하였다. 이 당시 설립된, 배재학당, 이화학당, 숭실학당, 연희전문 등이 한국의 근대 교육의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미국과 한국이 본격적으로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은 일제의 패망 직후 1945년 8월 25일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 38도선을 경계로 분할 점령을 발표한 이후다. 미국은 남한에 대하여 하지 중장이 지휘하는 ‘재조선 미육군사령부 군정청’을 설치하고 3년 간의 미군정을 시작하였다. 미국은 권력 공백 상태인 한국 문제를 유엔으로 가져가서 1947년 10월 유엔에 ‘한국독립촉진결의안’을 제출하였다. 결국에는 미국이 원하는 대로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남한에 단독정부가 세워지면서 1945년 8월 15일 0시를 기하여 미군정은 폐지되었다. 뒤이어 1949년 6월 미국은 500여 명의 병력과 군사고문단만을 남기고 미군을 전면 철수하였고, 이것이 1950년의 한국전쟁, 즉 북한의 남침을 유발하는 큰 요인이 되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즉각 참전을 결정하고 기존의 38선 획정을 백지화하여 유엔군을 북진시켰다. 한국의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 직후인 1950년 7월 14일 국군의 작전지휘권을 유엔군 사령관에게 넘겼다. 전시작전권은 2022년 현재까지 미국이 행사한다. 한국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미국은 휴전을 추진하였고 휴전에 반대하였던 이승만 정권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결국 1953년 7월에 휴전협정이 이루어졌고 이를 계기로 한국과 미국은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여 미국이 한국의 안보를 책임진다는 의지를 표명하게 되었다.

휴전협정 이후 미국은 한국을 다방면으로 지원하였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한 군사적 지원은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졌는데, 대표적으로 한국군의 현대화를 지원하고, 최신예 전투기를 한국에 배치하여 공군력을 강화하였으며,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정례화하였다. 또한 한국전쟁 이후에 본격적으로 경제 원조가 이루어졌는데, 이 당시 미국이 지원한 무상원조와 차관은 한국 국민의 생존과 경제 발전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또한 한국은 거대한 미국 시장을 잘 활용하여 수출산업을 일으킬 수 있었는데, 한국의 대미수출 의존도는 1961년의 16.6%로부터 1968년에는 51.7%로 그 상승곡선의 정점에 달하여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였고, 그 후 다각적인 수출정책에 따라 1976년 32.3%, 1989년 12%, 1994년 21.4%로 점차 낮아졌으며, 2021년에는 약 15%로 감소하였다. 초기에는 한국이 대규모의 대미무역흑자를 기록하였으나 현재는 그 규모가 많이 줄어들었다. 2020년 현재 한국의 대미국 수출은 741억불, 수입은 574억불로서 한국이 166억불 가량 상품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였다. 미국은 한국으로부터 주로 승용차, 반도체, 자동차부품, 핸드폰을 비롯한 전자기기 등을 수입하고, 석유, 반도체창비, 농축산품 등을 수출한다.

한미 양국은 2000년대 초반부터 자유무역협정을 이어왔고 마침내 양국 간의 FTA가 2012년 3월 15일을 기해 발효되었다. 개정 한미 FTA도 2019년 1월 1일부로 발효되었다. 한미 FTA를 계기로 양국 간의 교역을 이전에 비해 약 30% 가량 증가하였고, 직접투자 또한 크게 증가하는 등 양국 간의 경제관계는 더욱 긴밀해졌다.

미국과 한국 간에 갈등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휴전협정에 반대하면서 미국이 이승만 제거 작전을 고려하기도 하였고(실제로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음), 미국의 카터 행정부가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 당시 한국의 인권 상황을 문제삼고 나서 한미 간의 갈등이 표면화된 적도 있다. 2000년대 초반에도 일부 미군의 문제적인 행태 때문에 반미 감정이 국민들 사이에 퍼졌던 적도 있다. 그러나 현재도 여전히 미국은 한미동맹관계를 바탕으로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한국에 가장 중요한 국가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상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불가피하게 안보의 중요한 부분을 미국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에서 어떤 정권이 들어서느냐에 따라, 혹은 한국의 정권 성격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한국에게 있어서 한미동맹의 중요성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참조항목

참조항목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미국인 선교사이자 교육자로 한국 광혜원에서 물리·화학을 가르쳤으며 서울 새문안교회와 기독교서회를 세웠다. 기독청년회(YMCA)를 조직하였고 경신학교에 대학부를 개설, 연희전문학교로 발전시켰다.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 미국 출신 감리교 목사로 한국에서 활약한 선교사이다. 한국선교회를 창설하고 배재학당(培材學堂)을 설립하여 한국의 교육발전을 위해 헌신하였다.
메리 스크랜턴 한말에 한국에서 활동한 여성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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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 : 부경대학교 글로벌지역학연구소 부경대학교 글로벌지역학연구소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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