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알아봅시다.

제3대 육군총참모장 소장 신태영(申泰英), 육군본부 작전국장 대령 강문봉(姜文奉) 사진 : 크게보기

2) 국군 방어계획은 단지 계획에 불과했다.

국군방어계획(일명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38호)은 "1950년 춘계에 적이 38도선에서 전면적인 공격을 할 것이다"고 평가한 육군본부 정보국의 1949년 말 종합정보보고서에 따라 이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계획수립을 서둘러 1950년 3월 25일 국군 방어계획인「육군본부 작전명령 제38호」를 확정하고, 예하 부대에 이를 하달하여 시행토록 하였다.

국군방어계획은 신태영(申泰英) 육군총참모장의 지시로 육군본부 작전국장 강문봉(姜文奉) 대령이 중심이 되어 작성되었다.

방어계획에는 "해군과 공군작전계획에 따라…"의 내용으로 보아 해군과 공군도 기본방어계획에 따라 자체의 작전계획을 수립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국군방어계획은 적의 주공이 철원-의정부-서울 축선에 지향될 것으로 판단하고, 의정부 지구에 방어중점을 두고 방어지대를 편성하였다.

방어 목표는 이 지역으로 공격해 오는 적의 주공을 진지전방에서 격파하여 38도선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국군방어계획에 나타난 38도선 확보를 위해 국군은 다음의 조치를 취할 계획이었다. 첫째, 옹진지구의 육군 부대는 적의 공격시 인천으로 철수하는 것이었다. 둘째, 개성지구의 육군 부대는 적의 공격을 받으면 지연전을 실시하면서 설정된 임진강 남안의 방어선으로 철수하고, 기타 다른 부대는 계속 지연전을 실시하는 것이었다. 셋째, 후방지역 예비사단은 적 공격시 역습부대로 운용하는 것이었다.

38도선에서 적의 공격을 저지하지 못할 경우에는 남한 지역의 큰 강을 이용하여 지연전을 전개한다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지연전은 최초 한강 이남으로 전략적인 철수작전을 수행하면서 한강선, 대전선, 낙동강선에서 축차적인 지연전을 전개한다는 개념만을 수립했다.

그러나 국군방어계획은 1950년 3월에 수립되었기 때문에 이를 적용할 예하부대에서는 전쟁 1개월 전인 1950년 5월초에야 자체 방어계획을 수립하게 되었다.

따라서 국군은 방어계획만 수립하고 방어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6.25전쟁을 맞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