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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화폐개혁 왜 단행했나

송고시간2009-12-0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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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최선영 기자 = 북한이 17년만에 화폐개혁을 단행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겉만 보면 북한의 이번 화폐개혁은 시장경제 국가에서 유사한 조치가 취해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일단 인플레 억제와 음성적 화폐유통 차단을 겨냥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극히 제한적으로 시장경제적 요소가 가미돼 있는 북한 경제체제의 특성에 비춰 볼 때 이번 조치에는 통상적 의미의 정책 목표를 넘어서는 `다목적 포석'이 깔려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제 막 시작 단계인 김정일 위원장의 3남 김정은으로의 후계구도 구축이나 북한 내 엘리트 계층의 부정축재 척결 등도 바로 이 `다목적'의 범주에 든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타깃은 2002년 이른바 `7.1조치' 이후 걷잡을 수 없이 팽창한 인플레를 잡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북한은 수백만 명이 굶어 죽은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을 겪은 뒤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를 단행했다.

이는 국가 존립의 기반까지 위협한 당시의 극심한 경제난과 주민 생활고를 조금이나마 완화하기 위해 일부 시장경제적 요소를 도입한 것이었다.

그런데 고육지책으로 채택한 이 조치가 결국 `인플레'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온 결과가 됐다.

북한은 7.1조치 이후 나름대로 점진적인 경제개혁을 추진했다. 하지만 에너지 및 원자재 부족, 낙후된 사회간접자본, 낮은 공장가동률, 만성적인 재화공급 부족 등의 내재적 악재들은 통제불능의 인플레를 가져왔다.

원래 북한에는 1원, 5원, 10원, 100원 4종의 지폐만 있었는데 7.1조치로 임금과 물가를 현실화하면서 200원, 500원, 1천원, 5천원, 1만원 5종을 추가로 발행했다. 바로 이 고액권 발행이 본래 의도와 달리 인플레를 빠르게 가중시켰다.

대북 인터넷방송인 `열린북한방송'의 소식지 `열린북한소식'에 따르면 지난 8월 현재 평양에서는 옥수수쌀 1㎏이 1천500원 내지 1천600원에 거래되고 있다.

현재 북한의 일반 노동자 월급이 3천원 전후니까 한 달 월급 갖고 쌀2㎏밖에 사지 못할 정도로 인플레가 극심한 것이다.

인플레 다음으로는 북한 주민들이 집안에 보관하는 이른바 `장농화폐'를 시장으로 끌어내는데 목적을 두고 있는 듯하다.

사실 북한 당국의 입장에서 주민들의 `장농화폐'를 끌어내는 것은 경제활성화를 위해 매우 절실하다.

7.1조치 이후 주민들 사이의 개인 장사가 급증하면서 개인이 소유의 화폐량은 크게 늘어났지만 북한 내에서 실제 유통되는 통화량은 많이 부족한 실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대다수 주민들이 국가은행을 믿지 않아 돈을 맡기지 않고 집안에 보관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통화경색이 극심해져 국가경제 운용에까지 심각한 주름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북한 내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와 달리 은행이 아닌 저금소를 중심으로 돈이 유통되고 있는데, 이자율이 낮고 지급보장도 완전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저금소에 예치했다가 국가에 빼앗긴 전례도 있다.

1992년 화폐개혁 때가 바로 그런 경우인데 당시 북한당국은 저금소에 예치했던 개인 돈을 새 화폐로 바꿔줄 때 1인당 상한액을 정해 초과하는 돈은 사실상 환수했다.

`장농화폐'의 문제는 또 7.1조치 이후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배금주의가 확산되고 부정부패가 심화된 상황과도 무관치 않다. 개인장사와 뇌물 등으로 상당한 부를 축적한 북한의 일부 특권층이 이번 화폐개혁으로 된서리를 맞게 됐음은 물론이다.

이번 조치를 김정은 후계구도와 연관짓는 관측은 과거 북한의 화폐개혁이 메가톤급 사회변혁 조치의 전조가 된 예가 많다는 점에 근거를 두고 있다.

당장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민심안정에 필수적인 내수경제 부양이다. 즉, 화폐개혁으로 치솟는 인플레를 먼저 잡은 뒤 음성적으로 거래돼온 엄청난 양의 `장농화폐'를 양지로 끌어내 주민생활과 직결되는 경공업 분야에 투자한다는 구상이 가능한 것이다.

화폐개혁을 통한 부정축재 차단과 부패 척결은 당연히 민심을 위무하는 부수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단, 북한당국이 이번 화폐개혁을 단행하면서 알려진 것처럼 1인당 교환액을 10만원으로 묶었다면 이미 `시장경제의 맛'에 익숙해진 주민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여 파장이 주목된다.

chs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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