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무궁화, 영국-장미, 중국 나라꽃은?

[임대근의 시시콜콜 중국 문화] 중국 국화 논쟁

한국의 무궁화, 영국의 장미, 네덜란드의 튤립…. 모두 나라를 대표하는 꽃, 국화(國花)다.

국화는 말 그대로 한 나라의 상징이다. 꽃이 갖는 특성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국민의 정서적 일체감을 키운다. 무궁화는 백일 동안 핀다는 점 때문에 외침에 맞선 불굴의 민족정신을 상징하고, 장미는 선명한 색깔과 자태 때문에 아름답고 고귀함을 상징한다는 식이다. 이처럼 국화는 근대 국가와 더불어 시작된 관습이다. 국민의 자존감과 단결심을 높이고 이를 대내외에 천명하기 위한 상징 전략인 셈이다.

중국의 국화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중국엔 국화가 없다. 어떤 나라는 공식 절차를 거쳐 국화를 제정하기도 하고, 어떤 나라는 오랜 관습에 따라 자연스럽게 인정하기도 한다. 무궁화는 관습에 따라 굳어진 경우다. 미국을 대표하는 장미도 공식 국화는 아니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중국은 공식 국화도 관습 국화도 없다. 중국처럼 크고 자존심 강한 나라에 아직 국화가 없다니, 어찌 된 일일까?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 모란과 매화

중국에 국화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1903년, 당시 청나라 조정은 모란을 국화로 삼았다. 그러나 청은 오래지 않아 멸망했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중화민국이 들어섰다. 중화민국 정부는 1929년 매화를 국화로 결정했다. 1949년에는 사회주의 중국 정부 가 수립돼 오늘에 이르고 있지만, 중국 정부는 지금까지 나라를 대표하는 꽃, 국화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눈치 빠른 분들은 이미 알아챘겠지만, 모란과 매화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중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중국이 국화를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모란과 매화의 싸움 때문이다.

모란은 황하를 중심으로 한 중국 북부 지역에서 주로 자란다. 매화는 장강 중심의 남부 지역에 분포한다. 모란과 매화를 내세우는 국화 정하기가 미묘한 긴장과 갈등을 일으키는 이유다. 전 국민이 동의하는 꽃으로 결정하자는 의견이 대세지만, '나라 꽃'을 두고 의견이 갈리고 있는 것이다.

마오쩌둥은 매화를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눈 속에 핀 매화를 예찬하는 시편도 여럿 남겼다. 그도 그럴 것이 마오도 역시 남부 지방인 후난(湖南) 태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력의 정점에 있던 마오도 집권하는 동안 매화를 국화로 정하지는 못했다. 마오 사후 개혁 개방이 시작되면서 국화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모란과 매화 사이의 오랜 국화 논쟁

민간에서 시작된 논쟁은 급기야 정부로까지 옮겨갔다. 1994년 전국인민대표대회(우리의 국회)는 국화를 결정하자는 안건을 상정하여 중국화훼협회에 조사를 맡겼다. 광범위한 의견 수렴에 들어간 협회는 역사가 오래되고 적응력이 강하며 중국 대부분 지역에 분포할 것, 모양과 색깔이 중화 민족의 우수한 전통과 특성을 반영할 것, 쓰임이 폭넓고 국민의 사랑을 받으면서 사회, 환경, 경제적 효과를 갖출 것 등을 선정 기준으로 내세웠다.

열 달이 넘는 논의 끝에 전국 주요 행정 단위 기준으로 의견을 물었다. 결과는 백중세였다. 게다가 저마다 주장이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18개 성은 모란이 국화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11개 성은 모란, 매화, 국화, 연꽃 등 네 가지를 모두 국화로 삼자고 주장했다. 다른 2개 성은 연꽃 대신 난꽃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결과를 토대로 협회는 모란을 국화로 삼는 게 좋겠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곧바로 거센 반대에 부딪쳤다. 여론 주도층마저 모란을 유일한 국화로 내세우는데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모란은 북부 지역만을 대표하는 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고 반대로 매화를 국화로 삼을 수도 없었다. 지역 특성도 있지만, 현재 대만 정부가 여전히 매화를 국화로 삼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 부담도 적지 않았다. 중국 정부는 결국 분분한 여론을 조정하지 못하고 결정을 유보하고 말았다.

'일국양화(一國兩花)' 전략으로 해결?

나라를 상징하는 국화가 없으니 불편한 경우도 적지 않다. 세계원예박람회를 주최하고도 국화가 없어 체면을 구긴 적도 있다. 중국은 큰 나라니 당연히 국화가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모란을 중국 국화라고 지레짐작하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다. '소프트'한 국가 상징이 필요할 때도 마땅한 문양이 없어 국가 브랜드와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근에는 다시 모란과 매화를 모두 국화로 삼자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른바 '일국양화(一國兩花)' 전략이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중국 국화가 결정되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온 국민의 마음과 뜻을 하나로 모으는 이데올로기 전략만큼은 뒤지지 않는 중국이 국화만큼은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보면 아이러니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온갖 꽃이 일제히 피어난다는 뜻을 가진 '백화제방(百花齊放)'이란 말이 있다. 1956년 마오쩌둥이 '백가쟁명(百家爭鳴)'이란 말과 함께 붙여 쓰면서 예술과 학술의 자유로운 의견을 모두 허용하겠다는 방침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방침이 발표되고 이듬 해, 자유로운 의견을 표출한 인사들을 '우파'로 낙인찍은 '반우파 투쟁'이 대대적으로 펼쳐졌다.

개혁 개방과 더불어 부활한 "백화제방, 백가쟁명"은 중국 현대사의 영욕이 함께 깃든 역사적인 구호다. 국화를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 중국 상황은 바로 '백화제방'을 실천하는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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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근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및 중국어통번역학과 교수이다. 중국 영화, 대중문화, 문화 콘텐츠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강의와 번역, 글쓰기 등을 실천하고 있다. 중국영화포럼 사무국장을 맡고 있으며, 아시아에서 대중문화가 어떻게 초국적으로 유통되고 소비되는지에 관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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