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쓰레기 혁명' 폭풍전야

예루살렘/노석조 특파원 2015. 8. 31.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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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파리는 지금..] 처음엔 "쓰레기를 치워달라"였다, 하지만 이젠 "쓰레기 같은 정부를 치우자"고 외친다 베이루트 反정부 시위 한달.. 시민혁명으로 확산 가능성 종파 갈등, 대통령 1년 공석 "쓰레기도 제대로 못치우는 무능한 정부 청소해야"

시리아 내전과 IS(이슬람국가) 사태 등 주변국 혼란에도 비교적 안정적인 정국을 유지해온 레바논이 최근 쓰레기 처리 문제로 대규모 반(反)정부 시위에 휘말렸다. 한 달간 계속된 시위는 지난 22일 경찰과의 무력 충돌로 격화했고 일주일 뒤인 29일 최대 5만명 규모로 확산했다. 쓰레기가 부른 이번 시위가 '레바논판 시민혁명'이 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29일 수도 베이루트 총리실과 인접한 '순교자 광장'에서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오후 6시 수천여명이었던 시위대는 지나가는 시민들이 동참하면서 금세 4만~5만명으로 커졌다. 이들은 "쓰레기도 제대로 못 치우는 정부야말로 쓰레기"라면서 "무능한 정부를 청소해야 한다"고 외쳤다. "정부 관료와 정치인은 재활용 금지"라고도 했다. 시위 주도자 가운데 하나인 시민운동가 알아사아드 테비안은 "우리의 시위는 어떤 종교나 정치적 편향 없이 일어난 것"이라면서 "국정을 마비 상태로 방치한 관료와 국회의원을 규탄하고 더 나은 레바논을 만들기 위해 시민이 나섰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시위의 이름은 '툴레아트 리히타쿰(레바논 공식어인 아랍어로 '네게서 구린내가 나'라는 뜻)'이라면서 정부가 깨끗해질 때까지 계속 이어나가겠다"고 했다.

시위대 일부는 2011년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등 아랍의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아랍의 봄'의 대표적 시위 구호인 "앗샤압 유리드 이스캇틀 니잠(민중은 정권의 퇴진을 원한다)"을 외치기도 했다. 아랍권 방송 알자지라는 "시위대가 정부 측에 쓰레기 문제의 책임으로 환경부 장관과 연관 지자체장들의 사퇴 그리고 총선거를 요구했다"면서 "72시간 내에 수용하지 않으면 시위를 확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정부는 고무탄과 최루탄을 동원한 지난 22일과는 달리 이날은 시위대를 강경진압하지 않는 등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이번 시위는 쓰레기 매립지가 포화 상태인데도 정부의 느린 일처리로 대체 매립지가 정해지지 않아 도심 곳곳에 쓰레기가 10여m씩 쌓일 정도로 방치되면서 이를 빨리 처리해달라는 차원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시위가 전면적인 정치개혁 운동으로 확대된 배경에는 레바논 현 정권의 무능과 부패가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냄새나고 더러운 쓰레기의 속성과 서로 싸우느라 쓰레기도 제대로 치우지도 못하는 현 정부의 무능과 부패가 연결되면서, 시위 확대에 불을 댕겼다는 것이다. 문화 예술의 발달로 '중동의 파리'라고 불리는 베이루트에서 이 같은 사건이 벌어져 국제사회의 이목도 집중됐다.

레바논은 종파 갈등 때문에 1년 넘게 대통령이 공석이다. 이슬람 세력의 영향력이 점점 세지면서, 기독교도만 임명이 가능한 대통령을 뽑는 의회 선거가 계속 미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종파별로 형성된 정당들이 서로 양보하지 않아 예산안도 통과되지 않고 있다. 레바논 인구는 레바논 고유의 기독교 분파인 마론파 기독교인, 이슬람 수니파, 이슬람 시아파 등 3개 종교 신자로 구성된다. 이에 종교별 권력 분배를 위해 대통령은 기독교, 총리는 수니파, 국회의장은 시아파 출신만이 임명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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