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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개황

유엔가입을 위한 한국 정부의 외교 노력

국제기구명칭 국제연합(UN)

○ 한국 정부는 1948년 제3차 유엔총회가 대한민국 정부를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하는 결의를 채택한 직후인 1949.1.19 고창일 외무장관 서리 명의로 유엔가입 신청서를 유엔 사무총장에게 제출하였다. 1949.2월 한국의 유엔가입 권고 결의안이 안보리 표결에 부쳐진 결과 안보리 이사국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음에도 불구, 소련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되었다. 한편 북한도 1949.2월 유엔가입을 신청, 안보리에서 토의되었으나, 동 신청을 신규 회원국 가입심사 위원회에 회부하자는 소련의 결의안이 부결됨으로써 가입위원회에조차 회부되지 못하였다.

○ 1949.11.22 제4차 유엔총회는 특별정치위원회의 보고를 기초로 안보리에 한국가입 신청의 재심을 요구하는 결의를 채택하였으나, 소련의 계속적인 반대로 진전을 보지 못하였다. 1955.12월 안보리에서 18개국 일괄 가입안이 논의되었을 때 미국과 중화민국이 한국과 월남의 가입도 권고하자는 수정안을 제출하여 절대다수의 지지를 획득하였으나, 역시 소련의 거부권 행사로 다시 부결되었다.

○ 1956년 제11차 유엔총회에서 미국을 위시한 13개국의 공동제안으로 한국의 가입신청에 재심을 안보리에 요청하는 결의안이 채택되어(총회 결의 제1017(XI)호), 9.9 안보리 표결에 부쳐진 결과 절대다수의 찬성표를 얻었으나, 소련의 계속적인 거부권 행사로 거듭 부결되었다.

○ 1956년 10월 미국 등 13개국은 한국의 유엔가입자격을 재확인하는 공동 결의안을 제출, 1957.10.25 제12차 총회 본회의에서 동 결의안을 채택하였다.(총회 결의 제1144(XII)호) 1958년 제13차 유엔총회 기간 중 미국은 상기 총회 결의에 입각, 안보리에서 한국가입 문제를 다시 제기하여 표결에 부친 결과 역시 소련의 거부권 때문에 부결되었다.

○ 이처럼 한국의 유엔가입 신청이 소련의 계속적인 거부권 행사로 좌절되어 정부는 한동안 유엔가입 노력을 중단하였으나,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의 '6 · 23 평화통일 외교 정책 선언'속에서 북한의 유엔가입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함으로써 한국 정부의 유엔가입 정책은 중대 전환에 이르게 된다.

○ 그러나 북한 김일성은 남 · 북한의 유엔동시 가입은 한반도의 분단을 영구화한다고 주장하면서 '고려연방 공화국'이라는 단일 국호하의 유엔가입을 제안, 대한민국의 유엔가입 정책에 정면으로 반대하였다.

○ 1975년 제30차 유엔총회에 앞서 정부는 남 · 북 월남의 유엔가입 신청 기회에 한국의 유엔가입 신청을 재심해 줄 것을 두 차례에 걸쳐 요청하였으나, 안보리 의제채택 과정에서 절대 다수표를 얻지 못하여 부결되었다.

○ 1980년대 들어와서도 정부는 한국의 유엔 가입에 유리한 국제적 여건을 조성한다는 방침 하에 한국 유엔가입 당위성을 유엔 회원국에게 설득하는 외교적 노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국력신장을 배경으로 유엔의 각종활동에 적극 참여해 왔다.
- 1985.10.21 노신영 국무총리는 유엔 총회연설에서 가입문제에 관한 한국입장을 재차 밝힌 바 있으며, 1987.8.18자 유엔 안보리 문서(S/19054)로 유엔가입 당위성에 관한 한국의 기본입장을 배포
- 1988년 제6공화국 출범이후 북방외교의 활발한 추진 결과, 소련, 중국 등 사회주의권 국가들도 대거 참가한 서울 올림픽의 성공 등으로 주변정세가 한국의 유엔가입에 유리한 방향으로 변화
- 1989년 제44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는 한국의 유엔가입에 관하여 최초로 지지 발언한 영세중립국(오스트리아), 동구국가(헝가리), 비동맹 중립국(인도, 말레이시아, 나이지리아, 코트디부아르) 등 18개국을 포함, 총 48개국이 한국의 유엔가입 입장을 지지 발언한데 반하여, 북한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국가는 3개국(쿠바, 르완다, 말리)에 불과

○ 이는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이후 적극적인 북방외교의 추진과 더불어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유엔가입 당위성에 대한 인식이 뚜렷이 확산되고 있었고, 한국이 유엔 총회 관련교섭을 유엔 가입 문제에 집중시킨 결과로 분석된다.

○ 1990년은 한국의 유엔가입 실현에 있어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 한해였다. 한국 정부는 적극적인 북방외교를 통하여 1989.2월 헝가리를 시발로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게 되었고, 마침내 사회주의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소련과도 1990.9.30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또한 중국과도 1990.10.20 무역대표부 설치에 합의하였다.

- 한국의 유엔가입에 대한 국제적 지지 분위기가 확산되자 북한 김일성은 1990.5.24 최고인민회의 시 남북한의 유엔가입은 분단을 고착화, 영구화시키게 될 것이므로 통일전 유엔가입은 남북한의 하나의 의석을 가지고 공동 가입해야 한다는 내용의 소위 「단일 의석 공동가입안」을 내놓음. 그러나 북측의 분단고착화 논리는 1990.5월 예멘의 통일 및 1990.10월 독일의 통일로써 현실적으로 그 설득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으며, 또한 단일의석 가입안도 유엔헌장 규정에 배치될 뿐만 아니라 선례도 없는 비현실적인 제안에 불과하며 국제사회에서 외면

- 남북한의 유엔가입에 관한 국제사회의 지지입장은 제45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시 잘 나타난 바, 부시 미국 대통령이 최초로 유엔총회 연설에서 한국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그리고 단호하게 지지한 것을 비롯하여 71개국 대표가 한국의 유엔가입을 적극 지지한 데 반하여 북한의 소위 단일의석 가입안을 지지한 나라는 전무

- 북한은 한국의 유엔가입을 지지하는 국제사회의 입장을 인식, 남북 고위급회담의 3대 선결과제로서 남북한의 유엔가입 문제를 논의할 것을 제기하였고 정부는 북한을 설득,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을 실현코자 각각 3차에 걸쳐 개최된 고위급 회담과 유엔 가입 문제에 관한 실무급 접촉에서 북한을 설득하였으나 북한은 계속 단일의석 가입안을 고집

마지막 수정일

  • 2015. 9.

유의사항

  • 본 내용은 2015년 9월 기준으로 작성된 유엔 개황 외교간행물 정보입니다.
    2015년 9월​ 이후 수정 된 내용 중 반영되지 않은 정보가 있을 수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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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제공처 정보

유엔 개황 201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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