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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투르크멘 지역(Turkmen Sahra) 여행기

2006년 노우루즈 연휴기간동안 3박 4일로 투르크멘족이 사는 지역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이란에 투르크멘족이 사는 지역은 카스피해 동편으로 투르크메니스탄 국경 근처지역이다. 대표적인 도시는 반다레 투르크멘, 곤바드, 인체부룬, 더쉬부룬, 골리제, 얼마골 등이다.
투르크멘족이 사는 지역을 투르크멘 싸흐러 ترکمن سحرا Turkmen Sahra (투르크멘의 사막)라고 부른다.

이란의 투르크멘족은 크게 4개의 부족으로 나뉜다. 요뭇(Yomut), 구클란(Guklan), 노호르리(Nokhorli), 테께(Tekké). 이들은 전통적으로 목축업을 주업으로 삼고 있다.

반다레 투르크멘

첫번째 방문한 도시는 반다레 투르크멘(بندر ترکمن)이었다. 반다레 투르크멘은 항구도시로서 레자샤가 1306년(1927년)에 건설하였고 원래 이름은 “반다레 셔”(왕의 항구)였다.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부는 날씨여서 여행하기에는 적당치 않았다. 반다레 투르크멘이 외부 도시들과 연결되어 시내를 관통하는 도로는 어저디(آزادی자유로)이다. 어저디와 수평하게 남쪽 편에 줌후리(جمهوری) 거리가 있고 그와 수평하게 남쪽으로 캬미네(کمینه)거리가 있다.

식사할 곳을 찾기 위해서 2사람에게 밥먹을 수 있는 깨끗한 식당을 알려달라고 물었더니 두 사람 모두 한결같이 카스피얀 식당을 소개했다. 카스피얀 식당은 줌후리 거리에 있다. 식당이 큰 것도 아니었고 아주 좋아 보이지도 않았지만 이 동네에서는 가장 좋은 식당인 듯 했다. 이란의 전통음식인 고르메싸브지를 대량으로 주문이 있어서 배달나가는 모습과 직접 와서 그것들을 가지고 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우리가 1시 30분 정도에 식당에 도착했는데, 벌써부터 전화받는 아저씨는 쇄도하는 주문 전화에 음식이 다 떨어졌다고 열심히 알리고 있었다.

음식 가격은 저렴했다. 고르메싸브지가 1만리얄.

밥을 먹고 반다레 투르크멘에서 유명한 월요시장(버저레 두샨베)를 구경하러 갔다. 식당에서 바로 남쪽 편에 있는 캬미네 거리에서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그냥 길바닥에 물건을 진열해 놓고 팔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천막을 치고 팔았고 어떤 이들은 자기 차에 진열해 놓고 팔고 있었다. 바람도 많이 불고 오후 2-3시가 되어가서 그런지 물건을 정리하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반다레 투르크멘 월요시장

잠시 시장을 둘러보고 항구에 마련된 시장으로 가보았다. 항구로 가는 길 옆에 마치 오아시스들 처럼 땅에 물이 많았다. 마치 호수 한가운데로 길이 나 있는 듯 그만큼 길 옆으로 물이 많았다. 항구 방파제 뒷편으로 길이 2-300미터 정도로 길쭉하게 시장이 서 있었다. 이곳에서 파는 물건들이 이 항구를 통해서 들어온 수입품인것 같지만 실제는 하나도 이 항구를 통해서 들어온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항구가 하나의 국경이므로 이곳에서 도매상들이 물건을 값싸게 팔고 있었다. 테헤란에서 18,000리얄 하는 컵이 이곳에서 10,000리얄에 판매되고 있었다.

반다레 투르크멘 항구 옆에 난 시장

시장을 둘러보고는 반다레 투르크멘을 떠나 북쪽으로 향했다. 지도상에는 첫번째 도시가 고미션이고 그곳에서 곧장 국경까지 가면 마크툼꼴리가 국경에 바로 붙어 있었다.

고미션을 거쳐서 국경 마크툴꼴리로

고미션에서 투르크멘족의 전통가옥들을 볼 수 있었다. 반다레 투르크멘에서도 이런 식의 집을 볼 수 있었지만 고미션에서는 거의 대부분이 전통집이었다. 이란에서 익숙치 않은 건축양식이어서 흥미로왔다.

고미션에서 본 투르크멘 전통가옥

고미션을 떠나 한 5km정도 왔을까 작은 군대초소가 있고 직진 길을 막아서 있었다. 군인이 어디를 가느냐?고 해서 국경까지 간다고 했더니 이해를 못하는 듯 했다. 나는 국경을 보고 싶다고 말했고 국경까지 갔다가 국경을 따라 나 있는 길을 통해 Pol이라는 곳까지 가서 악깔라로 해서 고르간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가 외국인이라 허용해주는 듯 했다. 하지만 만약 이 길로 들어가면 반드시 이 길로 돌아와야 한다고 하면서 신분증을 맡기고 가라고 했다. 운전면허증을 맡기고는 초소를 지나 북쪽으로 계속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런데 한 5km정도 왔을까 비포장도로가 시작되었다. 마크툼꼴리에 가서 투르크멘족 사람들을 보고자 하는 일념으로 비포장도로지만 열심히 달렸다. 가는 길은 점점 험악해졌다. 양 옆으로 바다처럼 물이 보이기도 했다. 거대한 늪지대인지? 한 12-3km를 달렸다. 앞쪽에서 달려오던 4륜구동 토요타 경찰차가 불을 깜빡이면서 나를 세웠다.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다. 마크툼꼴리에 간다고 하니까. 왜 가냐고 묻는다. 거기에 만날 사람이 있느냐?고 묻는다. 그게 아니고 그냥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 마을을 보고 싶어서 간다고 하니까. 그곳에는 민간인이 살지 않고 국경수비대 부대만 있다고 대답한다. 내가 그곳까지 얼마나 남았냐고 하니까 한 10km는 더 달려야 한다고 한다. 결국 차를 돌렸다. 지도가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마크툼꼴리는 투르크메니스탄과 길이 연결되어 있지는 않았다. 해안과 접해있고 또 투르크메니스탄과 접해 있기에 군사시설이었다. 그리고 그곳까지 가는 길에 왼쪽은 카스피해이고 오른쪽은 거대한 늪지대겸 호수였다. 사람도 안살았고 풍경도 험악했다.

곤바드로.. 그러나 다시 미누다쉬트로

다시 돌아와 고미션에서 동쪽으로 나 있는 길을 통해 악깔라로 향했고 악깔라에서는 시외곽에 마련된 노우루즈 여행안내센터에 들러서 여행가이드 팜플렛을 하나 얻고는 바로 출발하여 고르간을 통과해 다시 곤바드로 향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곤바드는 투크르멘족의 센터와 같은 도시였다. 투르크멘이 사는 도시들 중에서는 가장 컸다. 그러나 도시의 크기에 비해서 호텔이 없었다. 여인숙은 있었지만. 그만큼 투르크멘족이 사는 지역이 저개발된 상태로 있다는 얘기이다.

곤바드에서 호텔이 없어서 다시 5km정도 떨어진 미누다쉬트로 가서 그곳에서 일박을 했다. 이곳은 작년 이맘때에 마쉬하드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침식사를 했던 곳이다. 당시 알리어버드라고 하는 작은 도시에서 아주 허름한 여인숙에 묶었는데, 너무 지저분하고 화장실이나 씻는 곳도 공동으로 사용하는 방식이어서 집사람이나 애들이 잠만자고 빨리 떠자고 해서 새벽같이 일어나서는 떠나는 바람에 식사를 미누다쉬트에서 했었었다.

미누다쉬트의 에스테끄럴 호텔은 별 1개인데, 시설이 낙후되었다. 호텔주인의 가족들이 호텔에 와서는 식당 입구에 노우루즈가 가까왔다고 소프레예 하프씬을 차리고 있었다. 호텔에 주인 가족들이 와서 마치 자기 집인양 행동하는 것이 별로 보기엔 좋지 않았다. 하지만 시골의 맛이 이런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 호텔은 앞쪽 정원에 애들이 탈 수 있는 그네가 있어서 아이들이 놀기에 적합했다.

곤바드에서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를 하고 다시 곤바드로 향했다. 곤바드는 상당히 도시 모양새가 났다. 곤바드에서 유명한 높이 68미터의 탑으로 먼저 향했다. 미누다쉬트에서 도시로 진입하기 전에 멀리서도 그 탑이 보였다. 도시에 가까워지자 도시 건물들에 가려서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이 탑은 11세기 이 지역의 왕이었던 커부스에 의해서 세워졌는데, 이곳을 그의 무덤으로 사용했을 것이라는 추측과 그냥 자신을 기념해서 세운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커부스는 지여르 왕조(Ziyarid)의 왕이였다. 지여르 왕조는 지금의 곤바드 북쪽에 위치한 조르전(Jorjan)을 수도로 두고 이 일대를 다스렸던 왕조였다.

이 곳에서 우리와 얼굴이 비슷한 투르크멘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왔으나, 반다레 투르크멘이나 곤바드 두 곳 모두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는 없었다. 간혹 눈에 띄긴했으나 말이다.

커부스의 탑

커부스의 탑이 있는 공원 주위의 한 서점에서 투르크멘족 관련 책을 2권 구입했다. 그리고는 곤바드를 떠나 인체부룬으로 향했다.

인체부룬

인체부룬으로 향하는 길은 아름다웠다. 온통 노란 꽃밭을 보고서는 잠시 차를 세워 가족 사진도 찍고 꽃도 찍었다. 내려보니 도로 옆에 작게 핀 야생화도 아주 아름다웠다.

이란의 카스피해 연안지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꽃밭

노란 꽃밭에 핀 꽃

길 옆에 핀 야생화

인체부룬으로 가는 도로에서 낙타그림이 그려진 표지판을 보았다. 우리끼리 “왠 낙타. 소나 말을 그려놓지 있지도 않은 낙타를 그려놓았담.”하고 말하면서 지나쳤는데, 글쎄 얼마 못가 낙타가 도로 옆으로 걸어가고 있지 않은가!.. 사막도 아닌 푸른 들판에 웬 낙타인가? 이 일 이후에 우리는 가는 마을마다 낙타를 보았고 집에서 낙타를 마치 소처럼 사육하는 것을 보는 것은 시골에서 소를 보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길 옆으로 지나가는 낙타

낙타를 몰고가는 투르크멘 청년

인체부룬에 도착해서 동네 어귀에 차를 세우고는 동네를 관통하는 메인거리를 걸어 집들을 구경하며 걸어갔다. 동네는 한가했다. 하지만 길가는 사람들도 우리를 그리 이상히 여기지는 않는 듯했다. 어쩌면 우리를 투르크멘족으로 이해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반다레 투르크멘이나 곤바드에서 우리가 길을 묻거나 대화를 할 때에 현지 주민들은 우리에게 투르크멘어로 말을 했다. 자기네 이웃들 가운데 우리처럼 생긴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인체부룬

한 오토바이 수리점 앞에서 앉아 있는 한 30대후반의 남성에게 말을 걸면서 투르크멘에 대해서 공부하고자 왔다고 소개했다. 그 사람은 가로 세로 문제풀기에 집중하면서 나의 질문에 별관심이 없는 듯이 보이려고 했다. 엄청나게 나에게 관심이 있을텐데도 말이다. 결국 그 옆에 있넌 거푸르라는 남성이 내게 다가왔고 그와 대화하였다.

인체부룬은 좁은 구릉지라는 뜻이다. 부룬은 투르크멘어로 코라는 뜻인데, 땅이 솟아 올라 높아진 곳을 부룬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마을에 사는 투르크멘은 아타바이 타이페에 속한다. 생김새는 일반 이란인과 별반 다를 바 없이 보였다. 간혹,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인체부룬의 주민은 대략 1000명 정도가 되며 모두 서로를 알고 지낸다고 한다. 학교는 중학교까지는 남자, 여자 모두 있지만 고등학교는 여자고등학교만 있고 남자고등학교는 없어서 남자아이가 고등학교를 진학하려면 곤바드에 가서 공부한다고 한다. 이곳에서 만난 한 10대 소년은 중학교까지만 다니고 더이상 공부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소년은 검은색의 개가 한 마리 있는데, 이 개와 함께 천둥오리 사냥을 다니는 것이 유일한 일이라고 한다.

투르크멘족이 사는 집의 모양이 새로왔고 동네 아이들이 배구를 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이 마을뿐만 아니라 그 이후 들른 탄골리에서도 보았고 골리제에서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테헤란이나 이란의 다른 지역에서는 축구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있는데 비해 배구하는 모습도 이 지역에서 새로운 모습이었다.

배구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투르크멘족 아이

마을 여성들은 카펫짜는 일로 돈을 벌고 있는 듯 하다. 집사람이 내가 이야기 하고 있는 동안 앞집 여자들과 사귀어 그 집에 들어가 한참을 이야기했는데, 그 집의 딸도 카펫짜는 일로 최근에 월급을 탔다고 한다. 시골에서 돈이 귀한데, 우리 두 아이에게 팩우유를 하나씩 2개를 주었다.

인체부룬에서 만난 투르크멘족 여자 아이들

노우루즈에 대해서 물어보았더니 투르크멘족은 노우루즈를 명절로 보내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랑은 별 상관없는 명절이라는 투다. 이는 골리제에서 만난 투르크멘 가정에서도 동일하게 확인하였다. 투르크멘에게 가장 큰 명절은 고르반 명절과 피트르 명절이라고 한다.

또 하나 기록할만한 것은 종교심이 강하다는 것이다. 최근에 어디서 들었는지? 읽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슬람 국가들 가운데 통계를 내어서 진짜 무슬림이 많은 비율을 리스팅했는데 1위가 말레이지아이고 2위가 사우디 아라비아이고 3위가 터키이고 이란은 20위라고 말하면서.. 자신도 내가 투르크멘족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서 현장에 방문한 것처럼 자신도 터키에 가서 터키 사람들이 정말로 이슬람이 강한지 확인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이란에서는 터키가 술을 자유롭게 팔고 성적으로도 개방적이라면서 부정적인 선전을 하는데, 최근에 자신이 알게된 통계는 오히려 그와 반대로 터키의 무슬림들이 이란보다 훨씬 더 무슬림답다는 것이어서 이를 확인해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인체부룬 국경시장

인체부룬에서 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는 투르크메니스탄으로 가는 국경이 있다. 그곳에 국경시장이 있다고 해서 그곳에 가보기로 했다. 인체부룬에서 악깔러 방면으로 가다가 탄골리라는 마을이 끝나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회전해서 직진하면 국경이 나온다. 지도상에는 폴이라고 적힌 곳이다.

국경시장에는 길 양편에 2개의 시장골목이 형성되어 있는데, 그곳에 있는 제품들은 모두 바로 옆에 있는 국경을 통해서 건너온 물건들이 아니다. 단지 국경 근처에 시장을 마련함으로써 손님들의 마음을 끌 뿐이다. 모두 다른 루트를 통해서 이란에 들어온 물건들이다. 이는 반다레 투르크멘의 항구에 형성된 시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인체부룬에는 식당이 없었다. 그래서 이곳 국경시장내에 있는 샌드위치 가게에서 샌드위치를 하나씩 사먹고 근처 광야에 차를 세우고는 가져온 컵라면을 먹었다.

인체부룬 국경시장 외부 모습

인체부룬 국경시장 내부 모습

더쉬부룬

인체부룬을 떠나서 더쉬부룬으로 향했다. 더쉬부룬은 돌구릉지라는 뜻이다. 투르크어로 돌은 타쉬인데 이것이 이곳에서 더쉬로 변화되어 불려지는 듯 하다. 더쉬 부룬역시 골리제방면으로 가다가 삼거리가 나오는데 왼쪽으로 턴하여 북쪽으로 올라가면 된다. 더쉬부룬은 인체부룬보다 훨씬 작은 마을이었다. 차에서 내리지는 않고 동네를 한바퀴 돌고는 나왔다. 이 마을은 진입하는 도로 양옆에서부터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싸리나무같은 나무를 많이 모아 둥글게 망을 쳐서 그 안에 뭔가를 키우고있었다. 그리고 그 나무를 가지고 동물의 우리를 만들어 놓기도 하였다. 이 풍경을 인체부룬이나 골리제에서는 볼 수 없었다.

골리제

더쉬부룬에서 다시 메인도로로 나와서 골리제까지 갔는데, 한 40킬로 정도 되었다. 길은 쭉쭉 잘 뻗어 있었다. 골리제도 메인도로에서 한 3-400미터 왼쪽으로 들어가 있었다. 메인도로에서 동네로 들어가는 길은 비포장도로였다.

마을로 들어가다가 첫번째 왼쪽 집에 낙타를 키우는 것을 보고는 사진을 찍고자 멈춰섰다. 우리가 멈취서 사진을 찍자 그 집 아이들이 우리를 쳐다보고 멀리서나마 관심을 가졌다. 우리는 그 집에 잠시 들러서 물을 얻어먹는다는 핑계로 잠시 이야기하고자 했다. 그 집 사람들은 우리가 물을 달라고 하기도 전에 우리가 집 근처로 다가가자 우리를 집 안으로 안내했다.

골리제에서 방문한 집의 낙타들

이 마을은 쉬르무함마드리 타이페에 속한 사람들과 아타바이 타이페에 속한 사람들이 있다고 하였다. 이 집 주인은 아들 넷과 딸 셋이 있는데, 대부분 곤바드에 나가 살고 있었다. 노우루즈 연휴라 그 자식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의 집을 찾아와 있었다. 이 집 식구들은 모두 우리 한국사람과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찾던 그런 투르크멘족이었다.

우리가 집안으로 들어가자 낙타젖으로 만든 둑(요구르트)과 머스트(요거트 같은 요구르트)와 집에서 만든 넌(빵)과 낙타고기요리를 꺼내왔다. 둑을 한컵 마셨는데, 깔끔한 것이 상당히 맛이 좋았다.

골리제의 하미드 집에서 대접받은 낙타에서 나온 음식들

이 집 막내 아들은 곤바드에 사는 큰 형님댁에서 살면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고 그 바로 위의 아들은 아버지 옆에서 소와 낙타를 기르고 있는 듯 했다.

이란의 투르크멘 지역에서 낙타를 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오늘은 낙타를 엄청나게 많이 보는 하루였다. 낙타를 떼를 지어 들에서 풀을 먹이는 모습도 보았고 한 도로에서는 낙타가 도로를 횡단하여 길이 막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투르크멘족이 사는 지역은 더넓은 평야로 지평선까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란의 투르크멘족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으면…

  • Turkman Tribes: Cultural & Athletic traditions & Rites by Javad Khiabani & Bergeroni Baghos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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