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일 교수의 리더십 이야기]
경제위기로 CEO가 갑자기 물러나자 후임자 없어 경영에 큰 타격 입은 기업 많아
CEO뿐 아니라 COO·CFO 등 최고 경영자 팀을 평소에 체계적으로 준비해둬야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대한 부실 투자로 회사 순이익이 무려 57% 격감한 씨티그룹의 척 프린스(Prince), 같은 이유로 8조원이 넘는 금액을 손실 처리해야 했던 메릴린치의 스탠리 오닐(O'Neal)이 있다. 또 150년 전통의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를 미국 역사상 가장 큰 파산기업으로 만든 리처드 펄드(Fuld)와 GM의 릭 왜고너 (Wagoner)도 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경영계가 새삼 주목하게 된 이슈가 하나 있다. 바로 CEO 승계 계획(succession plan)이다. 스타 CEO들의 갑작스런 사임은 분명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큰 충격은 CEO가 물러난 후에 이들을 대체할 후임자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스탠리 오닐을 승계할 마땅한 CEO 후보가 없었던 메릴린치는 고육지책으로 이사회 멤버였던 앨버트 크리비오(Cribiore)를 앉혔다. 하지만 크리비오 앞에 달린 타이틀은 CEO가 아닌 '임시 회장(Interim non-executive chairman)'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이었다. 실질적인 의사결정권이 없다는 뜻이다. 이때 생긴 리더십 공백은 경영에 큰 타격을 주었고, 결국 2008년 9월 메릴린치는 BOA에 매각됐다.
씨티그룹도 척 프린스의 갑작스런 사퇴 후 적당한 CEO 후계자가 없어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씨티그룹의 유럽시장을 이끌었던 윈 비스코프(Bischoff)를 임시 CEO로 임명했지만, 비크람 팬디트(Pandit) 현 CEO가 임명되기 전까지 한 달이 넘도록 최고경영자 없이 위기와 맞서 싸워야 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금융기업이었던 씨티그룹에서 발생한 일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일이다. 보잉, HP, 3M, 포드, 크라이슬러, 알코아 등 세계적인 기업들도 차기 CEO가 준비되지 않아서 지난 수년간 곤경에 빠진 경험이 있는 회사들이다.
반대로 CEO 승계 계획을 포함한 조직 내부의 리더십 개발 계획이 아주 체계적이며 전략적으로 이루어져 유사시에도 경영의 공백 없이 조직을 잘 이끄는 경우도 있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맥도널드이다.
2004년 당시 맥도널드의 CEO였던 짐 칸탈루포(Cantalupo)는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켜 사망한다. 하지만 이사회는 당시 최고운영책임자(COO)였던 찰리 벨(Bell)을 신임 CEO로 두 시간 만에 선정하여 주주들과 직원들을 안심시켰다. 벨은 CEO가 된 후 당시 회사를 괴롭혔던 맥도널드 음식에 대한 여러 가지 건강 관련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고, 커피를 새로운 주력 상품으로 내세운 '맥카페'를 신설하는 등 맥도날드의 성공적인 변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포천(Fortune)지에 따르면 미국 500대 기업 3분의 1가량이 새로운 CEO를 내부에서 발굴하지 못해 외부로 눈을 돌린다. 그렇다면 위기 때 더욱 빛을 발하는 CEO 승계 계획을 왜 기업들은 평상시에 마련해 두지 않을까?
필자가 생각하기에 CEO 승계 계획이 실천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CEO 스스로의 불안과 관심 부족이다. 한국의 많은 CEO들은 매일 처리해야 하는 엄청난 양의 업무로 인해 차기 CEO에 대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또 차기 최고 경영자를 키우는 것이 내 자리를 위태롭게 만든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CEO 승계 계획을 성공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다음 몇 가지 사항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첫째, CEO 승계 계획은 현 CEO의 은퇴가 임박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상시 가동되어야 한다. 리더십 개발로 유명한 GE는 매 해 12월 정기 이사회에서 지금 당장 현 CEO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물러난다면 당장 누가 그 역할을 맡을 것인가를 정하는 작업을 하며, 경영 공백의 최소화를 위해 상시 CEO 승계 계획을 실천하고 있다.
둘째, CEO 승계 계획은 조직 내 다른 리더십 개발 계획과 전략적인 연계성을 가지고 실천되어야 한다. 핵심 인재를 개발하는 전체적인 인재 양성 시스템이 없이 CEO 승계 계획만 개발하기란 불가능하다. 인재 개발에 GE만큼이나 투자를 하고 있는 P&G의 경우 CEO 후보군을 미리 선정하고, 이들을 전세계에 퍼져있는 회사의 전략적인 포지션에 파견해 '미니 CEO'의 역할을 경험하게 한다. 그리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최종 CEO 후보를 결정하고 있다. 조직의 핵심 인재 개발이 궁극적으로 CEO 승계 계획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셋째, CEO 승계 계획이야말로 책임 소재가 분명하고 조직 내외부의 영향에도 흔들리지 않는 독립적인 기관이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하는 작업이다. GE는 경영 개발 및 보상 위원회라는 독립적인 기관에서 CEO 승계 계획을 추진한다.
마지막으로 체계적으로 개발된 CEO 승계 계획에는 비상시 누가 CEO가 될 것인가뿐만 아니라 COO와 최고재무책임자(CFO)를 포함한 전체 최고경영자 팀을 포함시키는 것이 이상적이다. 미국 기업은 최고경영자 팀 전체의 승계 계획을 '전용기 추락 시나리오(company plane crash scenario)'라고 부르기도 한다. 최고경영자 팀이 전용 비행기로 함께 이동을 하다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때를 가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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