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뒤 새출발, 회사가 밀어주고 나라가 끌어줘
스톡홀름서 식당 연 교민 이찬희씨, 토직한 1년6개월치 월급 ‘종잣돈’
민간 안정위원회선 ‘실업급여’, 고용사무소에선 창업컨설팅
심사 끝나자 개업보조금까지
[한겨레] 박현 기자 기자블로그 기자메일
등록 : 20110518 21:09 | 수정 : 20110519 15:24
  • 텍스트크게
  • 텍스트작게
  • 스크랩하기
  • 오류신고
  • 프린트하기
  • 이메일보내기
  • MSN보내기
  •  
  •  싸이월드 공감
  •  
» 보편적 복지 스웨덴의 길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서 사는 교민 이찬희(50)씨는 2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휴대전화 제조업체 에릭손에서 16년 동안 소프트웨어 설계를 해온 그는 회사가 구조조정에 나서자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코리아하우스’라는 한식당을 차리기까지 스웨덴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몸소 체험했다. 그것은 불안한 시기에 그를 도와준 안내자이자 안전판이었다.

이씨가 에릭손을 그만둔 것은 2009년 6월이었다. 회사는 그에게 퇴직 이후 1년 동안 계속 월급을 주기로 하고, 이와 별도로 6개월치 월급을 일시불로 지급했다. 모두 더하면 81만크로나(1억3770만원)라는 돈이 주어진 셈이다. 이 돈은 그가 1년 이상 쉬는 동안 생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줬을 뿐 아니라 창업을 결심하게 한 종잣돈이 됐다.

» 대기업 직원이었던 교민 이찬희씨는 퇴직 후 식당을 차리기까지 스웨덴 기업과 정부가 제공해준 각종 지원이 그에게는 “불안한 시기에 안내자이자 안전판이 되어 주었다”고 말했다.
에릭손은 퇴직자들의 전직을 돕는 민간회사인 ‘노동자안정위원회’를 통해 그의 ‘새출발’을 지원했다. 그를 대신해 매달 월급의 0.3%에 해당하는 돈을 안정위원회에 내줬고, 안정위원회는 그에게 취업시장 동향과 직장을 소개해줬다. 창업에 필요한 절차와 법률, 세무 등 실무지식도 가르쳐줬다. 안정위원회는 생계 지원 명목으로 보충실업급여도 지원했다. 보충실업급여는 첫 6개월 동안에는 실직 전 소득의 80%, 이후 6개월 동안은 70%, 이런 식으로 최대 2년간 지원된다. 이씨는 6개월치 9만크로나(1530만원)를 일시금으로 받았다.

스웨덴의 실업보험제도는 부문별 노조가 만든 실업기금을 통해 운영된다. 노동자는 취직과 함께 실업기금에 가입하는데,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노조원이 된다. 노조 조직률이 80%를 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씨는 직장에 다닐 때 한 달에 실업보험료로 100크로나, 노조회비로 200~300크로나를 냈다. 스웨덴 실업보험기금연합 멜케르 외데브링크 이사는 “재원은 고용주가 55%, 노동자가 45%를 부담한다”고 말했다.

» 교민 이찬희씨가 퇴직 뒤 받은 돈과 서비스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복지 혜택은 그가 식당을 개업하는 과정에서도 이어졌다. 회사를 그만두자 지역고용사무소로부터 등록을 하라는 통지서가 날아왔다. 창업을 하려 한다고 하자 상담원은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면 개업보조금을 준다는 것이다. 사업계획서에는 투자금액과 자금조달계획은 물론, 창업 이후 1년간 자금 전망과 예상 수입·지출 내역 등이 포함돼야 했다. 이씨는 “사업계획서를 쓰면서 사업을 다시 한번 점검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업계획서는 민간 컨설팅회사로 넘어가 전문가들의 심사를 받았다. 컨설팅회사가 2주 만에 사업을 해도 좋겠다는 평가를 내리자 1주 뒤에 개업보조금이 나왔다. 6개월치 월급의 80%인 9만크로나였다. 이씨는 결국 에릭손에서 받은 명예퇴직금(1년6개월치 월급) 외에 보충실업급여 9만크로나와 개업보조금 9만크로나를 추가로 받은 셈이다.

스웨덴은 자영업자들도 실업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외데브링크 이사는 “자영업자들을 주로 회원으로 받는 실업기금도 있다”며 “또 ‘알파’라는 실업기금에는 예술가들처럼 일반 실업기금에 가입하기 힘든 사람들도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스톡홀름/글·사진 박현 기자 hyun21@hani.co.kr

■ 궁금합니다
스웨덴에선 자영업자들도 실업보험 가입이 가능한가요?

자영업자가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우리나라와 달리, 스웨덴에서는 자영업자도 일반 노동자와 같은 방식으로 실업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실업보험엔 하루 340크로나(5만4000원)를 주는 기초보험과 최대 680크로나까지 주는 소득연계 보험 두 종류가 있다. 소득연계 보험을 받으려면 최소 1년 이상 실업기금에 가입해 있어야 한다. 자영업자가 실직자로 간주돼 수급자격을 얻으려면 사업을 그만둬야 하고, 그만두기 직전 최소 6개월 동안 월 80시간 이상 노동을 해야 한다. 자영업자들은 실업보험을 운영하는 31개 실업기금 어느 곳에나 가입할 수 있다.





임금 격차 줄이는 ‘연대임금제’의 힘
스웨덴의 노동복지 환경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 15%
임금은 정규직의 80% 수준
[한겨레] 박현 기자 기자블로그 기자메일
등록 : 20110518 21:00
  • 텍스트크게
  • 텍스트작게
  • 스크랩하기
  • 오류신고
  • 프린트하기
  • 이메일보내기
  • MSN보내기
  •  
  •  싸이월드 공감
  •  
스웨덴에선 우리가 흔히 비정규직으로 부르는 임시직이 전체 노동자의 15%를 차지한다. 이들이 받는 임금은 정규직 평균임금의 75% 수준이다. 이는 지난해 비정규직 비중이 50.4%에 이르고, 정규직 대비 임금이 46.9%에 불과한 우리나라 현실과 사뭇 다른 수치다.

스웨덴의 노동복지는 1950년대부터 발전시켜온 연대임금제에 힘입은 바 크다. 연대임금제는 노사가 중앙 교섭을 통해 동일업종 내 저임금 기업의 임금 상승을 촉진하고, 고임금 기업의 임금 상승을 억제해 노동자 간 임금 격차를 줄였다.

예란 라르손 스웨덴노총(LO) 노동생활국장은 “집단협상이 과거 중앙 교섭에서 산업부문별, 지역별 교섭으로 바뀌었지만 산업 내 연대임금 원칙은 지금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최근의 교섭은 2010년에 있었다. 부문별로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전체 평균 임금상승률을 1.8%로 결정했다. 결정된 부문별 임금상승률을 지키지 못하는 기업에는 벌금을 부과한다. 이 집단협상 결과는 전체 노동자의 93%가량에 적용되고 있다.

산업 내 연대임금제는 남녀 간 임금격차를 줄이는 ‘양성평등 임금제’로 진화하고 있다. 라르손 국장은 “스웨덴에서도 여성들이 많이 종사하는 부문의 임금이 상대적으로 낮다”며 “그래서 지난번 협상 때 이런 부문의 임금상승률을 더 높이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스웨덴의 최저임금은 부문별로 노조와 고용주의 집단협상으로 결정된다. 지난해 최저임금은 평균임금의 62% 수준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은 평균임금의 28.7%에 불과하다. 스톡홀름/박현 기자


“장기실업자들 줄이려 정책 수정…재교육 통해 노동시장 복귀시켜”
노동정책연구소 포르슬룬드 교수
[한겨레] 박현 기자 기자블로그 기자메일
등록 : 20110518 21:14 | 수정 : 20110518 21:15
  • 텍스트크게
  • 텍스트작게
  • 스크랩하기
  • 오류신고
  • 프린트하기
  • 이메일보내기
  • MSN보내기
  •  
  •  싸이월드 공감
  •  
» 노동정책연구소 포르슬룬드 교수
스웨덴은 직업 창출과 훈련, 직장 이동 등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지원으로 완전고용을 달성하고자 하는 이른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의 ‘원조’ 국가다. 연대임금 정책으로 생산성이 낮은 기업의 폐쇄·해고 조처가 잇따르자 노동자들을 재교육시켜 생산성이 높은 산업·기업으로 이동시키고자 한 게 이 정책이 나온 배경이다. 스웨덴 고용부로부터 이 정책에 대한 평가를 위임받은 웁살라대학 ‘노동시장정책평가연구소’(IFAU)의 안데르스 포르슬룬드(사진) 교수를 만났다.

-스웨덴 실업률이 8%대로 높다. 왜 이렇게 높은가?

“1991~93년 경제위기로 실업률이 급등했는데, 그 여파로 14개월 이상 장기실업자들이 늘었다. 어느 정도 정책실패 탓도 있다. 실업자들이 실업보험과 노동시장 정책 주변에 머물도록 하는 유인이 있었다. 다른 유럽국가들은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실업률이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는데, 스웨덴은 90년대 위기가 그런 역할을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실업률을 높이는 요인이 됐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스웨덴은 어떤 정책을 펴나?

“우선 2000~2001년에 개혁을 단행했다. 초점은 실업급여 연장 혜택을 줄이는 대신, 장기실업자들을 노동시장으로 복귀시키는 것이다. 직업훈련과 재교육, 고용보조금 지급 등이 그런 정책들이다. 그러나 2006년 보수당 정부가 집권해서는 이보다는 직업 탐색과 알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고용사무소 역할이 중심을 이루고, 실업보험 급여 기간과 수준도 줄였다. 현재 정책은 한계가 있다고 본다. 실업률은 경기변동에 따라 오르내리는데, 지금 같은 경기상승 국면에선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을 통해 장기실업자들을 노동시장으로 진입시키는 게 중요하다.”

-‘관대한’ 실업급여가 생산성에 악영향을 준다고 보는가?

“스웨덴의 실업보험과 관련해 외부에 잘못 알려진 게 있다. 실업자들은 실직 전 임금의 최대 80%까지 받을 수 있으나, 하루 한도가 정해져 있어 80%를 다 받는 사람은 10% 정도에 불과하다. 평균적으로 50~60% 정도 받는다. ‘관대하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80% 수준이 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이것이 생산성에 큰 문제를 끼친다고는 보지 않는다.”

웁살라/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