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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의 황제, 한국에 특별한 감정 있었다

입력 2012-06-26 오전 12:00:24
수정 2012-06-26 오전 12: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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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이 지난 1988년 한복을 입고 찍은 사진. [사진 LA중앙일보]
“통일교 측이 1988년 마이클 잭슨(1958~2009)의 한국 공연을 추진하면서 그에게 한복을 입히고 애국가를 부르게 하려 했다.”

 작가인 J. 랜디 타라보렐리(56)가 20일 본지와 단독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타라보렐리는 잭슨의 전기 『마법과 광기』의 작가다. 언론인 가운데 잭슨과 가장 많이 인터뷰했던 인물로 알려졌다. 그는 잭슨이 13세 때 처음 인터뷰한 뒤 사망하기 전까지 꾸준히 접촉을 가졌다.

 타라보렐리에 따르면 당시 통일교 측이 공연을 성사시키기 위해 보낸 인물은 현 유아이에너지의 회장인 최규선(미국명 케네스 최)씨.

최 회장과 수차례 인터뷰를 가졌다는 타라보렐리는 “최씨가 공연을 성사시키기 위해 잭슨의 형제와 부모에게 먼저 접촉을 시도했다”고 했다. 잭슨이 사상 최다판매고를 기록한 앨범 ‘스릴러’(1억 장 이상 판매)와 ‘배드’ 등으로 팝계 최고의 수퍼스타로 떠오른 것에 반해 그의 형제들은 잭슨 파이브 시절의 영광을 이어가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마이클 잭슨 전기를 쓴 J. 랜디 타라보렐리
 통일교 측은 서울올림픽 주 경기장에서 네 차례 공연을 갖는 조건으로 잭슨의 형제와 부모에게 총 750만 달러를 지불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잭슨의 형제·부모들은 통일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타라보렐리는 “(잭슨의 아버지인) 조셉은 이들로부터 롤스 로이스, 그의 형 저메인은 레인지 로버를, 또 어머니 캐서린은 아들을 설득시키는 조건으로 현찰 100만 달러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마이클이 형제들과 공연하는 것을 극구 꺼려했지만 그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의 뜻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며 “결국 잭슨이 한국 공연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고 밝혔다. 애국가와 한국가요는 부르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잭슨의 88년 한국 공연은 출연료 문제로 결국 무산됐다.

 타라보렐리는 “잭슨이 한국에 대해 특별한 감정이 생긴 것 같다”며 “마지막으로 세계투어를 했던 곳도 1999년 서울 공연이었다”고 말했다. 타라보렐리는 『프랭크 시나트라: 그 남자의 신화』 등 18권의 책을 집필한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CBS TV의 뉴스분석가로 활동하고 있다.

엔시노=원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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