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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비디오, 보는 음악으로의 시대를 열다

'뮤직 비디오', 보는 음악으로의 첫 발을 내딛다.

1981년 8월 1일, 버글스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가 MTV 개국과 동시에 방영되며 본격적인 뮤직비디오 시대는 시작되었다. 물론 1984년 이전까지 MTV는 '유망업종'으로 언급될 뿐이었지만 음악 산업 종사자들은 비디오 세대가 마침내 지갑을 열게 되리라는 기대를 접지 않았다. 21세기에 생각해보면 그 관계자들의 뚝심이야말로 다행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1980년대와 뮤직비디오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고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음악 영상 문화의 혜택은 모두 거기서부터 파생된 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당시의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뮤직비디오를 처음 접한 사람들은 과연 음악과 영상의 결합에 대해 100% 호의적이었을까. 물론 이럴 때 쓰라고 DB검색이 존재한다. '뮤직비디오'란 말도 생소했던 20년 전, 사람들이 MTV와 영상음악에 대해 떠들던 얘기들은 지금과 유사하기도 하고 전혀 뜻밖의 것이기도 하다.

사실 한국에서 뮤직비디오의 전성기는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에 걸쳐 일어났다. 영화배우 김혜수의 데뷔작으로도 알려진 1986년 조용필의 '허공'이 한국 최초의 뮤직비디오로 기록되어 있지만, 90년대 초반까지 나미의 '빙글빙글'이나 구창모의 '희나리' 같은 가요의 뮤직비디오는 주로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제작한 영상음악이 전부였다. 그러므로 80년대 초반 한국에서 뮤직비디오를 즐겨 본 사람들은 아무래도 트렌드세터나 얼리어답터 정도였을 것이다. 이를테면 당시 MTV는 미지의 지하세계였던 셈이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그 시절의 어두컴컴한 동굴 속으로 들어가 보자. 지금 당신이 힙쌕에 챙겨 넣어야할 키워드는 비디오뮤직, MTV, 음악다방 같은 것들이다.

                                                                                                             글 /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 대중음악웹진 'weiv' 에디터)

[1983년 경향신문] 미국에 MTV라는 게 있다는데 그게 뭐지?

1983년 9월 6일 자 경향신문에는 1980년에 개국한 MTV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유명 가수나 팝 그룹의 공연실황, 노래를 비디오에 담아 방영하는 MTV가 젊은 팝송 팬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운을 뗀 이 기사는 특히 'MTV 덕분에 레코드 제작회사들이 짭짤하게 재미를 보게 됐다'는 언급을 하고 있다. 당시 MTV와 뮤직비디오의 등장으로 레코드가 팔리지 않으리라 예상했던 음반업계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내용이라 흥미롭다. 하지만 신생 방송국이었던 MTV는 광고주들에게 그리 인기 있는 채널은 아니었다. 기사에는 '기업들은 미국 가정의 반 이상이 MTV에 가입하지 않고 있으며 광고료도 적어 회의적이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러나 '광고 효과와 상관없이 MTV가 유망한 전파 사업이 되리라는 것을 의심하는 미국인은 없다'며 뮤직비디오 방송이 트렌드가 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옛날신문 기사 원문보기 :경향신문 1983. 09. 06



실제로 방송 초기에 MTV는 그저 그런 케이블 채널이었다. 10대를 중심으로 지지층을 넓히고 있었지만 음악을 영상과 함께 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더 컸기 때문이다. MTV가 대중적으로 막강한 파급력을 가지게 된 건 1983년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뮤직비디오를 통해서였다. 위의 기사가 나온 지 불과 한 달 뒤인 1983년 10월 26일, 마이클 잭슨이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Thriller'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한다는 기사도 등장했다. 수많은 기록을 세운 이 곡의 오리지널 비디오는 13분짜리 단편영화의 컨셉트를 차용해 제작된 최초의 뮤직 비디오였고 MTV를 비로소 대중적인 채널이자 광고 효과가 높은 채널로 자리 잡게 만든 1등 공신이었다. '드릴러'라는 키워드로 옛날 신문을 검색해보면 당시 그 인기가 얼마나 높았는지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1984년 경향신문] 뮤직비디오가 비로소 제자리를 잡게 된 1984년

1984년 8월 30일 경향신문은 '미, 비디오 음악상 15개 부문 새로 제정'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MTV가 뮤직텔레비전비디오음악상을 창설했다'고 전했다. 바로 MTV가 매년 선정하는 [비디오 뮤직 어워드(VMA)]의 시작이었다. 이 짧은 기사는 '영화의 오스카, 음악의 그래미, TV의 에미상에 이어 또 하나의 권위 있는 상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언급하며 최다 후보자로 지목된 허비 핸콕을 비롯해, 신인 가수인 신디 로퍼가 5개 부문, 마이클 잭슨과 더 카스 등이 4~5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는 소식을 전한다. 마이클 잭슨은 이미 같은 해 그래미 시상식에서 'Thriller'로 8개 부문을 휩쓸기도 했다.
                                                                                    옛날신문 기사 원문보기 :경향신문 1984. 08. 30



뮤직비디오 시대는 1980년에 상징적으로 시작되었지만 그게 산업적으로도 자리 잡은 건 1984년이었다. 1983년과 1984년 사이에 MTV는 미국 내에서 막강한 파급력을 가진 매체로 급성장했고,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는 그에 대한 자신감의 표출이었다. 2009년 26회를 맞이하는 이 시상식은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쇼로 올해는 9월 13일 일요일 현지시각으로 밤 9시, 뉴욕에서 개최된다. 영국 밴드 뮤즈가 새 앨범 [The Resistance] 발매에 맞춰 신곡 'Upcoming'을 처음으로 공개하기로 예정된 시상식이기도 하다. 2008년에는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3관왕을 수상하며 화제가 된 이 시상식은 케이블 채널 Mnet의 [MKMF]의 롤 모델로도 잘 알려져 있다.

[1984년 동아일보] 냉전 시대의 뮤직비디오: 미국 문화에 대한 소련의 견제

1980년대는 냉전 시대였다. 미국과 소련이 핵무기를 중심으로 견제를 거듭하고 있을 때 대중문화는 가장 상업적이고 가장 강력한 무기로 여겨졌다. 1984년 9월 5일 자 동아일보는 '음악 비디오는 폭력과 섹스의 표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소비에트 컬쳐 지를 인용해 '듀란듀란과 컬쳐클럽은 폭력과 섹스의 음악적 접근을 나타내는 표상이라고 질타했다'고 말한다. '듀란듀란의 'Hungry Like A Wolf'는 정신병자의 광란 같은 느낌을, 보이조지는 일본 기생 같은 옷차림으로 어필한다'고 전하는 이 기사는 'MTV는 인종차별 정책을 지휘하고 있다'는 주장으로 끝난다.
                                                                                    옛날신문 기사 원문보기 :동아일보 1984. 09. 05



냉전 시대에 미국 대중문화, 특히 록 음악은 자본주의의 첨병이었다. 록 음악이 애초부터 정치적이어서가 아니라 록이 그 당시에 가장 대중적인 청년문화였기 때문이다. 1989년 본 조비와 신데렐라, 스키드 로우, 오지 오스본 같은 당대 최고의 밴드들이 총출동한 [모스크바 음악 평화 축제]가 1991년 소련 몰락의 상징적인 사건이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MTV 개국 10년, 소비에트컬쳐 지가 상단의 기사를 내놓은 지 불과 5년 만에 소련은 록 음악에 철의 장막을 열었고 소련의 소년소녀들은 세바스찬 바하(스키드 로우의 보컬)를 향해 '공식적인' 괴성을 질러댈 수 있었다. 소련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미국 대중문화가 그리 환영받진 못했지만, 그 맥락은 전혀 달랐다. 반독재 운동권 내에서는 상업주의의 첨병이라는 이유로, 보수진영에서는 저속한 대중문화란 이유로 거부당했기 때문이다. 기묘한 정서적 차이로 미국 대중문화는 공동의 적이 되어버린 셈이다. 하지만 당시 10대들은 AFKN을 통해 갖가지 뮤직비디오를 접하며 90년대 이후 등장한 영상 세대(혹은 신세대, X세대)의 감수성을 갈고 닦고 기름칠하고 있었다.

21세기의 뉴미디어, 이 후의 행보는?

21세기에 뮤직비디오 제작은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심지어 음악보다 영상을 더 중요하게 취급할 때도 있어 음악팬들의 빈축을 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뮤직비디오의 예로부터 확인할 수 있듯이 언제나 뉴미디어는 문화와 반-문화의 사이의 숨겨진 갈등을 수면 위로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21세기에 그 역할은 뮤직비디오가 아니라 mp3나 온라인 스트리밍 같은 서비스가 하고 있다. 지금 여기에서는 음악 저작권자들이 온라인에서의 권한을 강화하는 한편, 다른 쪽에서는 어떤 음악가가 온라인에서 무료로 음원을 공개하는 일이 동시에 벌어진다. 과연 20년 뒤에는 mp3나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 같은 지금의 이 첨예한 사안에 대해서 어떤 평가를 내리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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