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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무엇이 위대한 이사회를 만드는가

입력 : 
2010-12-03 14:29:22
수정 : 
2010-12-06 16:2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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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제도나 규제가 아니야. 바로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이야.
It`s not rules and regulations. It`s the way people work 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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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이사회를 정점으로 하는 기업 지배구조의 모범 국가로 꼽힌다. 그러나 미국도 위기 때마다 이사회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2000년대 초 월드콤ㆍ엔론 등이 잇따라 무너질 때도 그랬고, 2008년 금융위기로 씨티그룹 등 금융회사들이 파산 위기에 직면할 때도 그랬다. 하지만 제도를 바꾸고 규제를 강화했지만, 계속 이사회의 무능이 지적되면서 제도나 규제가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는 깨달음이 나왔다. 이사회 이사로 올바른 사람을 선별해야 한다는 '사람의 문제'와 함께 뽑힌 이사들이 어떤 방식으로 함께 일하는냐는 '운영의 문제'가 제도나 규제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깨우침이었다.

◆ 원칙 1=전문성 있는 경영인으로 이사회를 채우세요

= 2006년 금호그룹은 지나치게 높은 값에 대우건설을 인수해 그룹이 위기에 처하게 된다. 당시 대우건설 인수에 뛰어든 금호그룹 컨소시엄을 대표한 기업은 금호산업.

이 회사는 2006년 6월 9일 컨소시엄 대표자 자격으로 대우건설 인수를 위한 최종 입찰서를 제출했으며, 2006년 11월 15일에는 대우건설 인수 계약을 공시한다. 공시 당일, 금호산업 이사회는 대우건설 주식 매매계약 체결의 건을 가결하게 된다.

2006년 금호산업 기업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금호산업 사외이사는 7명으로 검사 출신 2명, 언론인 2명, 대학교수 1명, 관료 출신 1명, 금융인 출신 1명 등 쟁쟁한 멤버였다.

이들이 명망가임은 틀림이 없지만 대우건설 인수 가격의 적절성을 평가할 능력을 갖춘 경영 전문가였는지는 의문이다. 만약 인수ㆍ합병(M&A)의 적절성을 따질 수 있는 전문성 있는 사외이사가 경영진이 내놓은 인수안에 소신껏 '노'(No)라고 외칠 수 있는 문화가 있었다면 금호그룹이 대우건설 인수로 휘청대는 위기는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영국과 미국은 이사회 구성이 한국과 전혀 다르다. 리처드 돕스 맥킨지 서울사무소 디렉터는 최근 한 심포지엄에서 "영국과 미국은 풍부한 사업 경험과 상업적 백그라운드를 가진 경영인 출신으로 이사회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이사회는 경영진이 마련한 주요 경영 전략을 검토해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게 핵심 역할이다. 따라서 풍부한 기업 운영 경험을 갖춘 전문경영인 출신이 많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 콘ㆍ페리 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미국 기업의 78%는 다른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또는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사외이사로 선임할 정도로 전문경영인을 이사회 멤버로 영입하는 데 적극적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의 이사 선택이 바람직할까.

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 램 차란은 '스킬 매트릭스'(skill matrixㆍ표 참조)를 활용하라고 제안한다. 이사회가 필요한 여러 자질을 가로 축에 놓은 다음, 이사회 멤버들마다 해당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표시하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 우리 이사회는 어떤 자질이 부족한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런 자질을 갖춘 이사를 찾아 선임하라는 게 램 차란의 충고다.

로버트 프로즌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빅 아이디어: 프로페셔널 이사회를 위한 제안'이라는 글을 통해 이사회는 최고경영자(CEO) 1명과 6명의 사외이사로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이들 사외이사는 기업의 라인 비즈니스에 대해 폭넓은 전문성을 갖춘 프로페셔널이어야 한다는 게 프로즌 교수의 주장이다.

그러나 한국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경제개혁연구소가 2009년 4월을 기준으로 81개 기업집단 계열사 263곳을 분석한 결과, 사외이사 중 경영인 출신은 전체의 27.8%에 불과했다. 여기에 계열사 임직원 출신인 7.9%를 제외하면 독립적인 사외이사 구실을 할 수 있는 경영인은 사외이사 10명 중 2명(19.9%)에 불과했다. 오히려 대학 교수가 전체의 30%에 이르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기업체마다 교수가 사외이사로 끼지 않은 곳을 찾기 힘들지만 절반 정도의 미국 기업은 학계 출신이 아예 이사회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최대 기업 월마트는 사외이사 16명이 전문경영인이거나 투자자, 은행가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교수는 단 한 명도 없다.

◆ 액션 1=은퇴한 CEO를 활용하세요

= "한국은 사외이사의 인재 풀이 매우 제한적입니다. 많은 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경영자 입장에서 바람직한 분을 택하려고 한다면 제약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구택 전 포스코 회장이 올해 한 심포지엄에서 밝힌 말이다. 한국 기업들은 이사회 멤버가 될 자질을 갖춘 인재를 찾기가 매우 힘들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재를 찾고자 한다면 못 찾을 리가 없다. 로버트 프로즌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주요 기업에서 은퇴한 CEO 출신을 인재 풀로 활용하라고 충고한다. 실제로 콘ㆍ페리 연구소에 따르면 미국 기업의 96%가 다른 회사의 은퇴한 임원을 사외이사로 활용하고 있다. 오랫동안 삼성전자의 성장을 이끌었던 윤종용 삼성전자 전 부회장, 이학수 삼성물산 고문 등을 사외이사로 영입한다면 이들이 쌓은 귀중한 경험과 노하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액션 2=멤버십 클럽으로 여기는 이사는 쫓아내세요

= 미국이나 한국이나 일부 이사들은 이사회를 고급 사교클럽 또는 멤버십 클럽으로 생각한다. 주요 기업의 이사회 멤버라는 자리가 제공하는 사회적 특권과 급여 때문에 사외이사 자리를 탐내는 이들이다. 이런 이들은 가려내서 이사회에서 쫓아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이런 이들을 가려낼까.

경영 구루(guruㆍ스승)로 꼽히는 로저 마틴 캐나다 토론토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나쁜 이사회를 구분할 수 있는 6가지 방법'이라는 글에서 이사회를 멤버십 클럽으로 여기는 나쁜 이사들의 특징을 제시했다. 이사회 멤버가 됐다며 지나치게 자부심을 표시하거나 이사회의 사교적 분위기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또 사외이사 급여에 대해 불평하거나 평균보다 훨씬 높은 급여를 받으려 하는 사람도 경계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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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칙 2='노(No)'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세요 = 제프리 소넨펠트 미국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무엇이 위대한 이사회를 위대하게 만드는가'라는 글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기고했다. 그가 제시한 답은 이랬다. "그것은 규정과 규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방식이다.(It's not rules and regulations. It's the way people work together.)"

그렇다면 이사회 멤버들이 어떤 방식으로 일해야 위대한 이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소넨펠트 교수는 20년간 홈데포의 최고경영자를 거쳐 홈데포의 이사회 의장를 역임한 버니 마르쿠스의 입을 통해 해답을 제시한다. 다음은 버니 마르쿠스가 했다는 말이다.

"나는 (이사회 이사로서) 많은 질문을 (경영진에게) 할 것이다. 만약 답을 얻지 못한다면 나는 자리에 앉지 않을 것이다. (많은 질문을 던지고 답을 요구하는) 이런 유형의 이사야말로 내가 홈데포 이사회에 앉히려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사회는 경영진이 승인을 요청한 경영 전략과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쟁을 벌이는 것을 의무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잘못된 경영 전략이라고 판단하면 이사회 이사는 경영진에게 적극적으로 '노'(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사회가 오너와 경영진의 거수기에 그치는 젠틀맨 그룹이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 액션 1=적극적으로 정보를 요구하세요

= 보잉은 2000년대 초 회사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전략적 선택 앞에 직면하게 된다. 경쟁사인 에어버스가 555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는 슈퍼점보 여객기인 A380 개발을 결정한 상황에서 보잉 역시 미래 투자를 집중할 핵심 기종을 선택해야 했다. 보잉 경영진은 200~300명의 승객을 태우되 운항 비용은 20% 절감할 수 있는 중형 787여객기를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에어버스와는 정반대 결정이었다.

경영진은 787여객기 개발안을 들고 이사회의 승인을 신청했다. 보잉 이사회는 거수기가 아니었다. 이사회는 787여객기 개발 결정의 바탕이 된 여러 가정들의 근거를 요구했다. 787여객기의 각종 기능에 대한 실험 데이터도 요구했다. 각종 데이터와 근거를 확인한 뒤에야 보잉 이사회는 787 개발을 승인했다.

이처럼 이사회가 경영진이 제시한 경영전략을 따지고 때로는 거부할 수 있으려면 충분한 정보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경영진은 이사회에 정보 제공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사회는 적극적으로 경영진에게 정보를 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사회와 경영진 상호 간, 이사회 멤버 상호 간에 신뢰가 있어야 한다. 경영진이 일부 이사들만을 대상으로 비공식적인 채널을 유지한다거나, 이사회 내부에서 여러 정치적인 분파가 생긴다면 신뢰가 유지될 수 없다.

◆ 액션 2=사외이사의 주요 결정을 공개하세요

= 2006년 11월 금호산업 이사회가 대우건설 인수계약건을 가결할 당시 사외이사 중 누가 찬성하고 누가 반대했을까.

안타깝게도 당시 금호산업 기업 보고서에는 '가결'이라는 결론만 나와 있을 뿐 사외이사 개인별 찬반 의견에 대한 정보는 담겨 있지 않다.

만약 기업의 주요 현안에 대해 사외이사의 찬반을 기록하고 기업보고서에 공개하는 것을 의무화하면 어떨까. 신시아 몽고메리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사회의 잃어버린 링크'라는 글에서 "이사들의 투표 내용을 공개하면 이사들이 좀 더 신중하게 결정하게 되고 주주들에 대해 더욱 책임 있게 행동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사들이 이사회 전체의 결정이라는 그림자 속으로 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올해 8월 현대그룹의 주력인 현대상선의 이사회는 회사 미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결정을 했다. 경영진이 제출한 현대건설 인수참여의 건을 원안대로 가결한 것이다. 사외이사 5명 가운데 4명이 참석해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

이 이사들이 주주를 대신해 현대건설 인수의 타당성을 꼼꼼히 따졌는지는 당장 확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근 현대건설 인수 가격ㆍ방법의 적절성을 놓고 사회적 논란이 일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사외이사들이 현대건설 인수안을 적절하게 검토했는지는 의문이다.

현대상선이 기업보고서에 사외이사의 찬반 여부를 공개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사외이사의 결정에 대한 공과를 함께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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